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기치를 높이 드시고
박 성 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직전개된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은 세계 여러 나라 공산주의자들과의 긴밀한 련계밑에 진행된 국제주의적인 투쟁이였다.
이 투쟁의 불길속에서 우리 당 활동의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전통이 이룩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유격대는 처음부터 공산주의자들의 한가정의 식구였다고, 유격대는 《전세계로동자들은 단결하라!》라는 혁명적구호를 고수하였으며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였다고 하시면서 이것도 역시 우리가 계승해야 할 좋은 전통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 뜻깊은 가르치심을 생각할 때마다 그이께서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기치를 높이 드시고 중국공산주의자들과 굳게 손잡고 공동투쟁을 벌리시면서 공산주의자들의 전투적친선단결과 혁명적련대성의 위대한 모범을 창조하신데 대하여 감회깊이 돌이켜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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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기치밑에 세계 혁명적인민들과의 련대성을 강화할데 대한 중요한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고 그를 빛나게 관철하시였다.
중국공산주의자들과의 공동투쟁을 백방으로 강화하시면서 그들을 힘있게 지원하신것은 그 대표적실례의 하나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우리 인민의 항일무장투쟁은 공동의 원쑤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인것으로 하여 그자체가 벌써 중국공산주의자들의 투쟁에 대한 가장 힘있는 국제주의적지원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중국인반일부대들과의 반일련합전선을 이룩하신것도 중국혁명에 대한 힘있는 지원이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으로써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자기의 국제주의적의무를 다한다고 보지 않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국혁명의 핵심력량인 중국공산주의자들과의 공동투쟁을 강화하는것을 가장 중요한 국제주의적과업의 하나로 내세우시고 그 관철을 위하여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그리하여 조선공산주의자들은 무장을 들고 조선혁명을 위하여 싸웠을뿐아니라 중국공산주의자들과 손잡고 중국혁명을 위해서도 피흘려 싸웠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혈로를 헤치시면서 두차례의 북만원정을 단행하신것도 중국공산주의자들과의 공동투쟁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시금 북만에 진출하시여 눈부신 군사정치활동을 벌리고계실 때 우리 부대는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북만으로 가는 행군로상에 있었다.
부대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접수하기 위하여 정치주임을 파견하였는데 나도 원정중에 있는 사령부를 찾아 북만으로 가게 되였다.
행군은 간고하였다.
한겨울에 여름옷을 입고 눈보라치는 경박호의 얼음판을 지나려니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였다.
그러나 사령부로 간다는 크나큰 기쁨으로 모진 추위를 이겨내며 처창즈를 떠난지 20여일만에 북호두의 5군지휘부에 당도하였다.
그때는 새로운 작전적방침에 따라 부대들을 동만과 북만의 여러 지역으로 떠나보낸 사령부가 이미 액목일대로 진출한 후였다.
우리는 항일련군 5군지휘관인 주보중으로부터 부대의 활동방향에 대한 사령부의 지시를 전달받았다.
우리 부대는 거기서 일정한 기간 공동작전을 진행하다가 돈화일대로 진출하라는 내용이였다.
주보중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동무들이 사령부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게 되여 섭섭해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동무들이 오면 푹 휴식시켜보내라고 말씀이 계시였으니 마음놓고 피곤을 풀라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시여 불리한 형세를 역전시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주시였기에 그때는 벌써 북만의 중국동무들이 우리를 휴식시킬만큼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친절한 환대를 받으면서 휴식도 하고 솜옷도 만들어 입었다.
우리는 또한 거기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진행하신 산동툰전투를 비롯한 군사정치활동에 대하여 상세히 알게 되였다.
그때 주보중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번에 또다시 북만에 원정하시여 우리를 크게 고무해주고계십니다.
우리 동무들은 그분께서 북만에 와계신다는 생각만 하여도 힘이 난다고 합니다.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은 하기 쉽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힘든것입니다.
자기 일을 제쳐놓고 남을 돕는다는것이 어디 쉬운 일이요. 지금 동만의 형편이 얼마나 어렵소.
내가 그것을 어찌 모르겠소.
하기에 나는 그분께 지원을 요청드리고서도 그분께서 그처럼 빨리 와주실줄은 참말 몰랐소.
내가 그분께 이런 말씀을 드렸더니 그분께서는 일제놈들을 쳐야 한다, 조선에서도 치고 중국에서도 치며 동만에서도 치고 북만에서도 쳐야 한다, 그렇기때문에 반일항전에서는 조선사람과 중국사람,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중국공산주의자들사이에 네일내일이 따로 있을수 없다고 말씀하셨소.
얼마나 위대한분이시오!》
그러면서 그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북만으로 진출한 후부터 자기 부대의 전투사기가 높아지고 유격대에 대한 인민들의 지지성원이 그 어느때보다도 강화되고있는데 대하여 감격에 넘쳐 이야기하는것이였다.
우리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혁명의 수령으로 높이 모신 자부심을 더욱 깊이 느끼였으며 그이의 숭고한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정신에서 커다란 고무를 받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간고한 항일혈전의 나날에 이렇듯 중국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을 직접 무장으로 지원하신 사실은 헤아릴수 없이 많다.
나는 그러한 사실을 수없이 목격하였지만 이 짧은 글에서 그런 이야기를 다할수는 없으므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의 항일공동투쟁을 끝까지 견지하신데 대해서와 친히 육성하시고 아끼시는 수많은 지휘관들과 대원들을 중국인부대들에 파견하시여 중국인민의 혁명투쟁을 성심성의로 적극 지원하신데 대해서만 더 이야기하려고 한다.
1936년 2월 력사적인 남호두회의를 전후한 시기였다.
그때는 일부 사람들이 배타주의적으로 벌려놓은 반《민생단》투쟁의 후과로 인하여 우리 혁명이 커다란 진통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던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당시에 어떤 동무들은 조선혁명가들이 조선혁명을 하자면 군대부터 갈라야 한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편향을 엄격히 제지하시였으며 그 어렵고 복잡한 때에도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기치를 높이 드시고 조중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사이의 전투적친선단결과 혁명적련대성을 끝까지 고수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제당에서 조중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의 항일무장부대를 가르는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보내왔을 때에도 두 나라 혁명의 근본리익과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원칙으로부터 출발하시여 국제당의 의견을 철회시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력사적인 남호두회의에서 이번에 국제당에서는 만주에서 활동하는 조중항일무장부대를 조선인부대와 중국인부대로 갈라 편성하고 활동하는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기해왔다고 하시면서 현재 만주일대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중항일무장부대에서 주력을 이루고있는것은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고 또 중국인부대들에서도 적지 않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이 핵심적역할을 하고있는 조건에서 조중항일무장부대를 조선인부대와 중국인부대로 가르게 되면 형제적중국인민의 항일무장력량을 약화시키게 되고 그것은 결국 조중인민의 공동투쟁의 발전에 큰 손실로 된다는것을 명확히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문제를 강조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협애한 민족본위주의적립장에서 떠나 공산주의자의 넓은 도량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조선혁명을 위해서뿐아니라 세계혁명을 위해서 투쟁하는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자들입니다. 조선혁명에 주력한다고 하여 형제적중국인민의 무장력량을 약화시켜서는 안될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회의에 참가한 중국인간부들, 특히 부대를 민족별로 가르는것이 좋겠다는 국제당의 의견을 받아가지고 나온 대표를 끝없이 격동시키였다.
그는 후날 사령부의 조치에 의하여 내가 자기 부대에서 오랜 기간 같이 활동하게 되였을 때 이런 말을 하였다.
《그때 나는 참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소.
솔직히 말해서 조선인부대와 중국인부대를 가르라는 국제당의 지시를 받아가지고 나올 때 나는 만주의 우리 중국사람부대는 이젠 다 녹았다고 생각했댔소.
그런데 김일성동지께서는 부대를 갈라서는 안된다고 하시였소.
그것은 정녕 꿈에도 바랄수 없었던 일이였소.
…오직 위대한 공산주의자이시고 위대한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자이신 김일성동지께서만이 베푸실수 있는 혜택이였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남호두회의에서 당장 중국땅을 모두 떠나서 조선으로 다 나올수도 없는 우리의 투쟁환경과 조건으로 보아서도 당장 부대를 가를수는 없다는것을 지적하시면서 우리는 항일련합군의 이름으로 중국공산주의자들과 항일무장투쟁을 공동으로 전개함으로써 조중인민의 반일혁명투쟁을 적극 발전시켜나가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러한 방침에 의하여 국제당의 의견이 철회되고 두 나라 인민의 반일공동항전을 곡절없이 시종일관 더욱 힘차게 발전시켜나갈수 있게 되였다.
후일 들은것이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이와 같은 립장에 대해서는 국제당의 일군들도 크게 감탄하였다고 한다.
당시 국제당이 만주에서 활동하는 항일련합군을 조선인부대와 중국인부대로 가를데 대한 의견을 제기한것은 일부 배타주의자들의 책동으로 인하여 조중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사이에 생겼던 일련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소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만 보고 둘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소견이였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그때까지 국제당이 여러 나라 공산주의자들사이의 의견상이문제를 적지 않게 다루어보았지만 어느 일방이 타방을 그처럼 아량있게 대하면서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원칙을 그토록 충실하게 지키는것을 그들은 일찌기 보지 못했던것이다.
하기에 국제당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국제공산주의운동이 낳은 탁월한 령도자로 높이 칭송하면서 그이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을 전적으로 지지찬동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중항일무장부대를 해체하지 않도록 하시였을뿐아니라 북만원정때 떨구어두시였던 부대들이 북만에 계속 남아서 투쟁하도록 하시였다.
그 역시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조국에 무보를 뻗치고 군호를 올리자!》
력사적인 남호두회의에서 제시된 이런 구호를 내걸고 우리 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하여 백두산으로 진출하게 되는 사령부에는 그 어느때보다도 준비된 력량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많은 력량을 더 떼서 북만의 중국인부대들과 공동작전을 벌리게 한다는것은 사실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그것은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에 무한히 충실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하실수 있는 일이였다.
바로 그 일때문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호두회의후 소자지하로부터 로야령-이청배-명월구-안도를 거쳐 백두산으로 가는 남행길 직선행로를 타지 않으시고 소자지하에서 액목현 청구자-관지-안도-무송을 거치는 우회로를 따라 북상행로에 오르시였던것이다.
이 우회로는 직선행로에 비해 거의 두배에 달하는 먼 로정이였다.
그런데 이 로정의 청구자와 관지 등지에 북만에 떨구어두어야 할 부대들이 있었다.
청구자에는 최춘국동무네가 있었고 관지에는 김려중동무네 중대와 오진우동무네가 속한 중대가 있었다.
그들모두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애지중지 키우시고 아껴오신 귀중한 부대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눈물을 흘리며 사령부를 따라 백두산으로 가겠다는 전사들을 간곡하게 설복하고 달래시여 그들이 머나먼 북만에서 항일공동투쟁을 더욱 힘차게 벌려나가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적지 않은 력량을 북만의 항일련군부대들에 직접 파견해주시였다.
황정해동무가 속한 훈춘청년의용군소대를 통채로 넘겨주신것도 그때였으며 자신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던 전령병 오대성동무(오중흡의 손아래동생)를 파견하신것도 그때였다.
물론 이런 일은 그것이 처음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전에도 주보중 등 중국동무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시여 한흥권, 전창철, 박길송, 박락권, 김태준 등 많은 지휘관들을 북만부대들에 파견하시였고 멀리 남만의 항일련군부대들에도 많은 지휘관들과 대원들을 보내주시였다.
그러나 그런 깊은 사연을 알리 없었던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부대에도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어떤 일이 있어도 백두산으로 진출하는 사령부를 따라가리라 벼르고 또 벼르면서 그이께서 오시기만을 기다리였다.…
드디여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
그때 우리 부대는 녕안일대에서 5군부대들과 협동작전을 하다가 돈화로 나와 우심정자에서 활동하고있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호두회의후 청구자-관지를 거쳐 백두산지구로 진출하시는 길에 우리 부대도 찾아주시였던것이다.
그이께서는 불과 10여명 안팎의 호위병들과 중국인 군정간부들을 데리고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통대원들처럼 물감들인 광목으로 지은 수수한 군복을 입으시였으나 단정하면서도 기품있는 청년장군의 위엄있는 모습은 누구나 첫눈에 매혹을 느끼게 하였다.
그이께서는 그때 우리 부대에 삼사일간 머무르시였는데 중대급이상 간부들을 부르시여 담화도 하시고 연설도 하시였다.
나는 중대청년간사였으므로 영광스럽게도 위대한 수령님을 직접 만나뵈옵고 그이께서 지휘관들앞에서 하신 연설도 들을수 있었다.
그때로부터 어언 60여년 세월이 흘러간 오늘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연설내용을 다 기억할수는 없지만 남호두회의결정과 국제국내정세 특히는 만주에서의 항일련합군의 투쟁과 그 개편문제 그리고 중국관내 로농홍군의 투쟁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해주시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의 백두산진출과 조중 두 나라 인민들의 공동투쟁의 강화발전을 위한 문제들을 특별히 강조하시던것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벌써 장차 창립하게 될 조국광복회의 10대강령내용을 완전히 구상하시고 우리들에게 한조항씩 해설까지 해주시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이 어찌나 알기 쉽고 뜻이 깊던지 그이께서 일단 말씀을 시작하시면 우리는 모두 시간가는줄 몰랐다.
이렇게 이틀동안 가르치심을 받고보니 조선혁명, 중국혁명, 세계혁명을 《무불통달》한것만 같았다.
우리는 위대한 령도자를 모신 끝없는 긍지감과 그이의 혁명전사된 끝없는 영광으로 하여 한껏 어깨가 들리우고 백배천배로 힘이 솟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부대의 중국동무들을 따로 모이게 하시고 그들앞에서도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통역없이 직접 중어로 연설하시였는데 얼마나 류창하게 말씀하시였는지 다들 중국말을 중국사람보다 더 잘하시니 이 한가지만 보아도 과연 보통분이 아니시라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어제날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래일도 함께 싸워야 한다, 우리의 원쑤는 하나이다, 그것은 강도 일본제국주의이다, 우리의 목적도 하나이다, 그것은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는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단결해야 한다, 집안에 강도가 들어왔는데 힘을 합쳐 몰아내야지 형제들끼리 옥신각신해서야 되겠는가, 지금 우리 대오에는 그런 일은 없다, 이것은 실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국제공산주의운동에는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적련대성에 대한 력사의 기록이 많지만 우리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처럼 련합군을 뭇고 공동투쟁을 벌린 실례는 아직 없다, 자기 조국의 참된 애국자들이며 또한 진정한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전사들인 조중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이 이것을 커다란 자랑으로 생각하는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연설을 들은 중국동무들은 얼마나 뜻깊은 말씀이신가, 우리도 그분의 휘하에 갈수만 있다면 천리만리도 한달음에 달려가겠다고 말하였다.
다음날 부대에서는 대렬편성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친솔부대에 뽑히지 못하였다.
청년간사이기때문에 안된다는것이였다.
하지만 나는 단념할수 없었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 직접 청을 드려보리라 크게 마음을 먹고 밤이 깊어지기만 기다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무시기 전에 숙영지를 돌아보군 하시는것을 알게 되여 그때 말씀드려보자는것이였다.
달밝은 밤이였다.
대륙의 3월은 아직 겨울이나 다름없이 추웠건만 나는 병실로 들어가지 않고 그이께서 나오시기만 기다리였다.
자정이 다 되여서야 그이께서 밖으로 나오시였다.
그런데 혼자 나오시지 않고 한 중국인지휘관과 함께 나오시였다.
일은 난처하게 되였다.
그의 오해를 살것이 우려되여 얼른 나서게 되지 않았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를 알아보시고 《청년간사동무가 어찌된 일이요.》하시며 반가와하시였다.
나는 일이 이렇게 된바 하고는 지휘관들한테서 욕을 먹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의 심정을 그대로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이거 내가 오지 말아야 할데를 온것 같소. 모두 주력부대로만 가겠다니 야단아니요.》
그러시고는 오늘 벌써 동무같은 사람을 몇사람이나 만났지만 다 《퇴》를 놓았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내 그래서 항일련합군문제와 관련하여 남호두회의에서 취한 조치도 구체적으로 말해주었는데 동무들이 자꾸 이러면 되겠는가고 엄한 말씀도 하시였다.
그렇지만 나는 이 기회를 놓치면 다라는 생각에서 《알았습니다.》 하는 말이 선뜻 나가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나를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이왕 이렇게 만난김에 이야기나 하자고 하시면서 나를 이끄시였다.
나는 너무 외람된짓을 한것만 같아 송구스럽기 그지없었으나 그이의 따뜻하고 너그러운 인품에 이끌리여 그이를 따라 걸음을 옮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어깨를 짚으시고 중국인지휘관에게 말씀하시였다.
내가 정치사업을 잘하지 못한것 같습니다. 앞에서는 모두 알겠다고 하고는 이렇게 모두 딴수를 쓴단 말입니다.
그러자 중국인지휘관은 《이 동무들을 탓하지 말아주십시오. 나도 떨어지고싶지 않은데 이 동무들의 심정이야 오죽하겠습니까.》라고 하면서 자기는 그들을 소원대로 다 보내주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울뿐이라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다면 내가 정치사업을 다시 해보겠다고 하시면서 나에게 우리 중대의 구성상태를 물으시였다.
나는 중대구성상태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였다.
당원은 얼마이고 조선인, 중국인의 비률은 얼마이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시고 말씀하시였다.
그것 보오. 동무네 중대의 지휘관, 하사관, 당핵심들은 다 조선사람들이요. 그 사람들이 다 동무처럼 생각한다면 어찌 되겠소.
동무처럼 소소한 인정에 끌려 이타발저타발하면 혁명을 못합니다. 우리야 공산주의자들이 아니요. 때문에 우리는 참된 애국자가 되여야 할뿐아니라 참된 국제주의자가 되여야 하는것이요. 어제까지 함께 싸워온 전우이며 형제인 중국동무들을 오늘에 와서 순간에 저버릴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 무슨 공산주의자이겠소.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이 다 떠나가면 중국인민의 반일항전이 손실을 입게 될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경연안으로 진출한 주력부대의 활동이 또한 어렵게 될것이라고 깨우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이 이것을 모르는가, 압니다. 알아도 잘 아는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나는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조중인민의 항일련합군을 더욱 강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모든 사연을 잘 아는 동무들이 왜 모두 국경지대로 진출하는 주력부대로만 가겠다고 하는가.
나는 여기에 본위주의적인 감정이 섞여있지 않는가 우려됩니다.
배타주의를 배격하는 우리가 본위주의를 해서야 되겠습니까. 물론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그런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나는 몸둘바를 몰랐다.
갈마드는 자책으로 온몸이 굳어지는것만 같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런 나의 심중을 헤아려보신듯 못내 부드러우신 어조로 물으시였다.
《어떻소? 내 말이 접수됩니까?》
나는 그 말씀에 대답올리였다.
《알았습니다. 사령관동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중국인지휘관에게 말씀하시였다.
《이 동무가 이제는 잘못을 알았다고 합니다. 처벌을 주자고 했는데 그만두어야 할가 봅니다.》
그러시면서 다른 동무들도 있으니 다 만나볼수는 없고 래일 떠나기 전에 내가 연설을 한번 다시 해야겠다고, 이 동무들의 속을 풀어주고 가야지 내 걸음이 가볍겠는가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다음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시금 우리들을 부르시여 조중 두 나라 인민의 항일련합군을 강화하여야 할 필요성과 항일련합군의 강화발전에서 나서는 당면한 과업들에 대하여 재삼 강조의 말씀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중국인민을 존중하고 중국의 풍속을 존중하며 중국말을 배울데 대하여서도 특별히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중국인민, 중국공산주의자들과의 관계에서 공동의 원쑤를 반대하여 함께 싸우는 형제이고 전우이며 한집안식구이라는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집안식구끼리 말을 몰라서 의사가 통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중국말을 모르는 동무들은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배워야 하겠습니다.
마디마디에 혁명적우의와 전투적련대성의 정신이 뜨겁게 흘러넘치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감격을 금치 못해하면서 중국인군정간부들은 주력부대로 가고싶어하는 동무들을 다 보낼수는 없지만 몇사람은 더 보내드릴수 있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이 우리 동무들의 청을 들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것 같은데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항일련합군을 강화하는것은 우리들 공동의 임무가 아닙니까.
그리하여 나는 친솔부대로 가려던 소원을 이루지 못하게 되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을 다시 만나뵙게 된것은 1938년 10월 남패자에서였다.
북만의 우심정자로부터 남만의 남패자에 이르기까지의 2년세월, 그것은 참으로 중중첩첩한 시련과 난관의 련속이였다.
그 기간 우리 중대는 1937년 8월 묘령전투를 치르고 남만으로 진출하여 그해 9월 26일 최춘국련대장의 지휘밑에 진행된 휘남현성전투에 참가하였으며 련이어 즙안, 통화일대로 진출하여 항일련군 남만부대들과의 공동작전에 참가하였다.
그것은 대륙침략에 열을 올리고있는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배후타격을 강화하며 열하원정에서 손실을 입은 양정우부대를 도울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에 의한것이였다.
우리 중대가 즙안으로 가서 남만부대들을 도울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방침을 전달하였을 때 양정우는 너무도 감격하여 우리들의 손을 잡고 놓지 못하였다.
열하원정에서 막대한 손실을 당한 후 부대의 전투력을 회복하지 못하고있던 양정우에게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취해주신 조치는 실로 은혜로운것이였다.
우리가 남만부대들과 손을 잡고 협동작전을 하다가 그들과 함께 남패자로 오라는 사령부의 지시를 받은것은 1938년 가을이였다.
사령부의 그 지시에 따라 즙안으로부터 몽강으로 빠져나오는 행군때 우리는 숱한 고생을 하였다.
적들은 비행기와 대포를 비롯한 중무기까지 동원하여 숨쉴사이없이 추격하여왔다.
특히 외차구에서는 전부대가 력량상 비할바없이 우세한 적의 포위속에 들어 실로 위급한 처지에 빠지게 되였다.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기관총을 쏘고 폭탄을 떨구며 발광하지, 앞에서는 양정우밑에서 사단장까지 하다가 변절투항한 정빈이 항복하라고 나발을 불어대지, 사면팔방에서 대포를 쏘아대며 포위망을 좁혀들지 정말 빠질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다시 안기지 못한다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는 우리 중대는 박선봉련대장의 지휘밑에 앞장에서 결사전을 벌려 포위를 뚫고 양정우네를 구출하였다.
양정우는 남패자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되였을 때 김일성동지께서 보내주신 조선동지들의 결사적인 투쟁이 없었더라면 자기도 자기 부대도 살아남지 못했을것이라고 하면서 그이께 거듭 감사를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고 웃으시며 우리 동무들이 잘 싸웠다니 기쁘다고, 그러나 우리가 중국동지들을 돕는것은 응당한 국제주의적임무라고 하시면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은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중국인민들과 중국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을 더욱 힘있게 지원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때 내가 조선인민혁명군의 한 중대지휘관으로서 다소나마 자기의 국제주의적임무를 원만히 수행할수 있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들을 파견하시면서 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고귀한 가르치심과 그이의 커다란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일을 잊지 않으시고 회고록에까지 기록을 남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패자에서 있었던 양정우와의 상봉을 회고하시면서 우리들의 투쟁에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남패자에서의 뜻깊은 상봉석상에서 양정우는 만약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이 항일련합군을 뭇지 않고 따로따로 갈라서 행동했더라면 자기가 이렇게 남패자에 와서 김일성동지를 뵈옵지 못했을것이라고 하면서 항일련군을 유지강화하도록 하시고 많은 간부들을 양성하여 보내주신 그이의 숭고한 국제주의적의리에 진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패자회의에서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혁명을 계속 전진시키기 위한 새로운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으며 그에 맞게 부대들을 재편성하시였다.
그때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에 무한히 충실한 참된 공산주의자의 숭고한 모범을 다시금 보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국인부대들을 강화하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에서 키우신 우수한 지휘관들을 또다시 중국인부대들에 파견해주시였으며 양정우에게는 전령병도 넘겨주시고 경위련대도 새로 꾸려주시였다.
그리하여 우리 중대도 그들을 따라가게 되였다.
그때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의도를 모르는바 아니였지만 또다시 사령부와 갈라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여 좀처럼 마음을 다잡을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심정자에서 동무를 데려오지 못하여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에도 또 헤여지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혁명의 요구이니 그런것쯤 참을줄도 알아야 한다, 중국동무들을 돕기 위해 많은 동무들을 중국인부대에 파견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는데 동무를 데려오면 되겠는가, 몸은 비록 떨어져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함께 있으니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앞으로도 중국동무들과의 관계를 잘 가져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번에 중국동무들의 말을 들어보니 동무들이 싸움을 아주 잘한다는데 앞으로도 계속 잘싸워서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에 충실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영예를 더욱 빛내야 한다고 거듭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동무는 양정우부대의 지휘부와 함께 행동하게 되므로 책임이 특별히 중하다, 그러니 전투와 생활에서 언제나 빈틈이 없어야 한다고 일러주시였다.
양정우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사상과 한없이 고결한 공산주의적의리에 무한히 감동되여 그이를 진심으로 흠모하였다.
남패자에서 사령부와 갈라진 우리 부대가 화전현 왕즈나에서 1939년 새해를 맞을 때였다.
양정우는 엄동설한의 눈보라와 수십만 대군의 포위를 뚫으며 조국에로의 행군로상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생각하면서 설음식을 들지 못하였다.
그는 뜨거운 경모의 정을 안고 지휘관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김일성동지는 이 눈보라속에서도 조선혁명과 중국혁명을 위하여 간고한 행군을 계속하고계신다. 그이께서 조선혁명을 중국혁명과 떼여서 생각하지 않는것처럼 우리도 중국혁명을 조선혁명과 떼여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렇기때문에 김일성동지의 조선 국내에로의 재진공은 일제에 대한 우리의 재공세로도 되는것이다.
그이의 조선 국내에로의 승리적재진공을 성원하여 우리도 중조 량국 전사들의 단합된 힘으로써 일제에게 쉬임없이 타격을 가하자!》
그의 말은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기치를 높이 드시고 공산주의자들의 전투적친선단결과 혁명적련대성의 숭고한 모범을 보여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끝없는 존경과 흠모의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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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앞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높이 모시고 그이의 현명한 령도따라 주체위업을 완성하며 세계사회주의운동의 새로운 승리를 위하여 더욱 힘차게 투쟁하여야 할 과업이 나서고있다.
이 영예로운 혁명과업을 빛나게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는 일찌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룩하신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전통을 튼튼히 옹호고수하며 더욱 빛내여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민족리기주의를 반대하고 공산주의자들사이의 전투적친선단결과 혁명적련대성을 강화하는데 적극 이바지하며
사회주의승리를 앞당겨나가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