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산밀영에서 열린 국내당공작위원회 회의

 

 

곰산밀영에서 열린 국내당공작위원회 회의

                                                 백 학 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백두산일대에서 활동하던 시기 당창건을 위한 준비사업을 적극 추진시켰습니다.

나는 곰산밀영에서 국내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들을 만나 당조직건설사업을 지도하였습니다. 보천보전투가 있기 얼마전인 1937년 5월 하순에 곰산밀영에서 국내당공작위원회 회의를 지도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0년대 후반기부터 백두산일대에 꾸려진 비밀근거지들을 거점으로 하여 주체적인 당창건준비사업을 더욱 줄기차게 벌려나가시였다.

나는 지금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내에서의 당조직건설사업을 성과적으로 추진시키기 위하여 국내당공작위원회를 내오시고 백두산지구 비밀근거지의 곰산밀영에서 국내당공작위원회 제2차회의를 지도하시던 때를 잊을수 없다.

력사적인 보천보전투가 있기 얼마전이였다.

장백일대에 나가시여 대부대에 의한 국내진공작전준비를 다그치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동학동지를 비롯한 지휘관들을 부르시여 국내에서의 당조직건설사업을 적극 추진시켜 당조직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며 당면한 보천보진공작전준비를 완성하기 위하여 백두산지구비밀근거지로 나갈데 대한 지시를 주시였다.

그리하여 1937년 5월하순 위대한 수령님께서 거느리신 대오는 그곳을 떠나 곰의골밀영을 거쳐 백두산지구 비밀근거지로 나오게 되였다.

그때 사령부전령병이였던 나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함께 나왔다.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백두산지구에 나올 때마다 느끼군하는 일이였지만 이때에도 수령님께서는 이 일대에 꾸려진 밀영들이 조선혁명의 중심적령도거점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원만히 수행하도록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행군대오가 압록강을 건는 다음 쏙새밭을 가로질러 국내에로 드나드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리용하는 련락소에 도착하였을 때였다.

귀틀집처마끝에 꽂혀있는 길고 짧은 낚시대들과 바깥쪽에 걸려있는 옹노를 비롯한 사냥도구들 그리고 노루가죽, 곰가죽 등 산짐승가죽들을 살펴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만족해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마치 포수막같군. 비밀보장과 위장을 위하여 이렇게 하는것도 필요하오.

그곳은 지리적으로 보나 지형적으로 보나 련락소로서는 매우 유리한 곳이였다.

강과 잇닿은 산들이 급한 경사를 이루고 울창한 원시림으로 덮여있어 부대들이 행군길에 휴식하기도 좋고 은밀성을 보장하는데도 좋았다.

그리고 강안을 중심으로 하여 크고작은 릉선들이 백두산밀영과 사자봉밀영, 곰산밀영, 간백산밀영 등 백두산지구 비밀근거지의 여러 밀영들과 련결되여있어 대부대들이 임의의 밀영이나 국내깊이에로 쉽게 기동할수 있고 밀영들 호상간의 련계를 취하는데도 유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귀틀집곁에 있는 큰 물황철나무밑에서 이곳 소부대 성원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련락소의 사명과 역할, 그 중요성에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혁명적경각성을 높일데 대하여, 주변나무들에 혁명적구호들을 써서 지나다니는 대원들을 고무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얼마후 다시 대오를 이끄시고 10리쯤 압록강을 따라 행군하시다가 작은 개울이 압록강으로 흘러드는 골짜기로 들어가시였다.

드디여 대오는 곰산밀영지에 도착하였다.

곰산밀영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설하신 백두산지구비밀근거지밀영의 하나로서 주로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가 들어와 활동하던 곳이였다.

사자봉과 거의 같은 위도선상에 마주 솟아있는 1 868m의 곰산은 둥실하고 덩지가 큰 산이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곰산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곰이 많이 나와 논다고 하여 곰노는 산이라고도 부른다고 알려주시였다.

이곳에는 정말 곰이 많았다. 그때 우리가 압록강안련락소를 떠나 곰산밀영으로 오는 어간에서만도 곰을 세마리나 만났었다.

압록강의 험한 계곡을 끼고있는 곰산을 중심으로 하여 가파로운 비탈우에 자리잡은 곰산밀영은 그 자연지리적조건으로 보아 밀영지로서는 안성맞춤한 곳이였다.

당시 그곳에는 사령부귀틀집과 대원들의 병실을 비롯하여 여러채의 귀틀집이 있었다.

밀영에 도착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부대성원들이 거처하는 병실에 잠시 들리시였다가 이어 사령부귀틀집으로 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맞이한 곰산밀영은 환희로 들끓었다.

밀영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미 박달, 권영벽동지들을 비롯하여 국내에서 활동하던 국내당공작위원회 성원들과 당조직핵심들이 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와있었는데 모두들 흥분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있었다.

그들은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하고 국내당공작위원회가 결성되던 나날들을 돌이켜보기도 하고 또다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조국땅에서 회의를 하게 된 감격에 대하여서도 이야기하였다.

국내당공작위원회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로 꾸린 백두산지구 비밀근거지에 의거하여 전국적범위에서 당조직을 확대하며 당조직들에 대한 령도체계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시는 과정에 결성되게 되였다.

력사적인 동강회의에서 국내에서의 당창건준비사업을 통일적으로 지도할 국내당공작위원회를 내올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실현을 위하여 준비된 정치공작원들을 국내에 파견하시는 한편 이미부터 국내에서 투쟁하고있는 공산주의자들을 교양결속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국내당공작위원회 성원으로 된 박달동지도 이 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교양하시여 혁명가로 키워주신 국내공산주의자들중의 한사람이였다.

박달동지는 당시 갑산군 운흥면에 활동거점을 정하고 대중조직인 갑산공작위원회를 지도하고있었다.

그로 말하면 욕망은 크나 무슨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모대기면서 백두산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손길이 와닿기를 손꼽아 기다리고있었다.

리제순동지를 통하여 이러한 사실을 아시게 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권영벽동지를 파견하시면서 친서와 함께 명주천에다 그를 조선인민혁명군 대표로 파견한다는 내용을 쓰고 공인과 자신의 실인까지 찍으신 신임장을 주시였다.

오풍동비밀련락소에서 박달동지를 비롯한 갑산공작위원회 성원들을 만난 권영벽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친서를 정중히 전한 다음 수령님께서 밝히신 주체적인 혁명로선과 전략전술적방침에 대하여, 국내공산주의자들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상세히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박달동지를 직접 만나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전하고 만날 날자와 장소, 접선방법을 대주었다.

그리하여 1936년 12월 박달동지는 백두산밀영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박달동지틀 밀영에 데리고계시면서 여러모로 준비시키신 다음 국내에서의 당조직건설사업을 통일적으로 장악지도하기 위한 지역적당지도기관인 국내당공작위원회를 내오기 위한 회의를 소집하시였다.

그리하여 1936년 12월 31일 위대한 수령님을 수위로 하고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 책임일군들과 박달동지로 구성된 국내당공작위원회가 결성되였던것이다.

그때로부터 반년이 지나 이렇듯 여기 곰산밀영에서 국내당공작위원회 회의를 하게 되였으니 그들의 감격이 그렇듯 큰것이였다.

다음날인 5월 26일 오후 곰산밀영의 사령부귀틀집에서는 마침내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력사적인 국내당공작위원회 제2차회의가 열리였다.

회의에는 박달동지를 비롯한 국내당공작위원회 성원들, 당핵심들과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온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성원들이 참가하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의 사업을 보좌해드리면서 나는 회의 전과정을 목격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국내당조직을 확대강화할데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먼저 국내당공작위원회를 결성한 후 처음으로 조국땅에서 국내당공작위원회 회의를 개최하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1936년 12월 국내당 공작위원회가 결성된 이후 당조직건설정형을 총화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국내당공작위원회는 결성된 후 지난 반년간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의 지도하에 당창건준비사업을 추진하며 혁명투쟁에 대한 통일적인 령도를 실현해나가는 지역적당지도기관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당공작위원회가 국내의 광활한 지역에서 조국광복회를 비롯한 지하혁명조직들을 결성하고 분산적으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들을 결속하기 위한 사업을 활발히 전개한데 대하여 말씀하시고 국내당공작위원회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하여 갑산, 혜산, 북청, 단천, 성진, 리원, 길주 일대를 비롯한 국내의 광활한 지역에 조국광복회 조직들이 나오고 일부 지역들에서는 당조직들이 결성되였다고 하시면서 이것은 국내당공작위원회가 남호두회의의 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이룩한 중요한 성과라고 지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당공작위원회의 사업을 총화하신 후 국내에서 당조직을 확대강화하여야 할 필요성을 분석하시고 국내당공작위원회앞에 나서는 과업들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시기 국내당공작위원회가 자기앞에 부과된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먼저 당조직건설사업에서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극복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러시면서 지금 국내에서 활동하고있는 일부 공산주의자들이 사대주의, 교조주의의 사상적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는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당시 국내에서 활동하고있는 일부 공산주의자들은 사대주의, 교조주의에 사로잡혀 당조직을 내오는 문제를 가지고 쓸데없는 론쟁만 하고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당조직을 먼저 내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군중단체를 먼저 조직하여야 한다고 고집하고있었으며 지어 일부 사람들은 국내에 당조직을 내와도 《국제당의 비준》을 받을수 없다느니 뭐니 하면서 자체의 힘으로 당을 조직할 생각은 하지 않고 국제당의 눈치만 보고있는 형편이였다.

이러한 실태에 대하여 지적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당조직건설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천명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당을 건설하는것은 그자체에 목적이 있는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조선혁명을 바로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것만큼 조선혁명의 주인인 우리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당을 건설하고 혁명을 잘 령도해나가면 되는것입니다. 혁명을 하는데서 그 어떤 기존공식이나 고정격식화된 방법론이 따로 있을수 없습니다. 조선사람이 조선혁명을 잘하기 위하여 당을 내오려고 하는데 여기에 무슨 국제당의 비준이 필요하겠습니까. 우리가 당을 잘 건설하여가지고 조선혁명을 령도해나가면 구태여 비준을 받으러 여기저기 찾아다니지 않아도 국제당이 자연히 우리 당을 승인하게 될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조직을 내올수 있는 준비가 충분히 된 지역에서는 당조직을 먼저 내오면 될것이며 당조직을 내올수 있는 준비가 불충분한데서는 농민동맹이나 반제동맹과 같은 군중단체를 먼저 내오고 실천투쟁을 통하여 핵심들을 육성하여 그들로 당조직을 내오면 된다고 가르치시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에서 당조직건설사업을 조국광복회 조직을 확대강화하는 사업과 밀접히 결합하여 진행할데 대하여서와 당조직을 유리한 지역들에 먼저 내오고 그에 기초하여 점차 확대해나갈데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국내 도처에서 당조직들이 확대되는데 맞게 그에 대한 통일적인 조직지도체계를 철저히 세워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조직건설사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려면 다음으로 국내에서 분산적으로 활동하고있는 공산주의자들을 조직적으로 결속하고 그들을 조선혁명에 관한 주체적인 로선과 전략전술적방침으로 튼튼히 무장시켜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 국내에서 분산적으로 활동하고있는 공산주의자들중에는 과거에 종파분자들의 책동을 식별하지 못하고 본의아니게 그에 휩쓸려 파벌에 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하시면서 자기의 죄과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새 출발을 하고있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옳은 길로 인도해주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엄중한 결과를 초래할수 있다고, 그들을 다 포섭하고 교양하여 결속하는 원칙을 견지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지금 국내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서로 단결하지 못하고 당창건문제를 가지고 쓸데없는 말공부를 하고있는것은 그들이 조선혁명에 관한 주체적인 로선과 전략전술적방침들을 잘 모르고있고 옳바른 령도를 받지 못하는것과 중요하게 관련되여있다고 명철하게 분석하시면서 그들속에 깊이 들어가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맞게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조선혁명의 주체적로선과 방침들을 인식시킬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조직건설사업을 성과적으로 진행하려면 또한 공작원들이 경각성을 고도로 높이며 조직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일제의 광란적인 반공책동이 로골화되고있던 당시의 조건에서 공작원들이 혁명적경각성을 높이고 조직의 비밀을 엄격히 지키는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였다. 그런데 그때 일부 지방들에서는 명절날 머리에 붉은 수건을 동이고 씨름판에 나가서 《내가 공산주의자요.》 하고 자랑하는것과 같은 위험한짓을 하는가 하면 봉건을 타도하고 유교를 반대한다고 하면서 향교에서 준 장의체와 늙은이들의 감투를 불살라버리며 조혼과 매혼을 반대한다는 미명하에 남의 혼사에 훼방을 놓고 강제리혼까지 시키면서 늙은이들과 젊은이들을 갈라놓는 한심한 행동까지 함으로써 인민들로부터 리탈되고 적들에게 공산주의에 대한 악선전자료를 주고있는 참을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나고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하공작원들이 언제나 높은 혁명적경각성을 가지고 사소한 안일성과 해이성도 철저히 배격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비밀을 눈동자와 같이 지킬데 대하여 그리고 모든 문제들을 림기응변의 지략으로 심사숙고하여 능란하게 처리하며 혁명동지들과 인민대중에 의거하여 풀어나가는 품성을 소유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연설에서 국내에서의 당조직을 확대강화하는 사업을 원만히 진행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국내당공작위원회 성원들이 어떻게 투쟁하는가 하는데 달려있다고 하시면서 《나는 동무들이 조선혁명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을 가지고 자기앞에 맡겨진 혁명임무를 책임적으로 수행해나가리라는것을 확신합니다.》라고 힘있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력사적인 연설은 회의참가자들을 크나큰 격정과 흥분에 휩싸이게 하였다.

그칠줄 모르는 박수속에서 박달동지는 장군님의 연설은 우리 당 건설의 앞길을 밝혀주는 대강령이라고 하면서 《참으로 명철하신 가르치심입니다. 장군님의 연설을 들으니 막혔던 가슴이 확 트이는것 같습니다.》라고 감격에 넘쳐 말하였다.

이러한 심정은 국내의 동무들이나 지휘관들이나 회의참가자들 그 누구나 다를바가 없었으며 한결같이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와 구상대로 당건설위업을 한몸바쳐 실현해나갈 불같은 결의를 가다듬었다.

어느덧 곰산마루에 해가 기울더니 저녁노을이 물들기 시작하였다.

회의참가자들은 회의가 끝난지 오래되였으나 헤여질줄을 모르고 사령부와 경위중대병실주변에서 서로들 어울려 이야기들을 나누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전령병들을 데리시고 그들에게로 가시여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나누고있는가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오늘은 모든 동무들이 수고들도 많았고 또 뜻깊은 날이기도 한데 그냥 헤여지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동무들과 함께 식사라도 한끼 나누자고 하는데 어서 식당으로 갑시다.

그리하여 이날저녁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회의참가자들이 소박한 식사를 나누게 되였다.

이날 식사는 그때 사령부작식일을 보던 장철구동무가 정성껏 준비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날 그를 부르시여 부족되는것은 많겠지만 있는것만으로라도 한번 솜씨를 내여 적구에서 고생하는 동무들을 잘 대접하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래서 장철구동무는 양지쪽을 찾아다니며 갓 돋아난 산나물을 뜯어다 소중히 간직하고다니던 고추장으로 산나물국을 끓이였다.

그리고 밀영동무들이 잡아온 산천어를 가지고 물고기찜도 만들었다.

백두산의 산나물국에 산천어찜은 류별나게 구미를 돋구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박달동지를 비롯한 회의참가자들을 둘러보시며 《산속이다나니 변변히 차린것은 없지만 많이들 드십시오.》라고 하시며 손수 색다른 음식그릇들을 국내동무들앞으로 가져다놓으시였다.

백두산에 들어와 생각밖에 지성어린 식탁을 마주하게 된 동무들은 황송하여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박달동지는 한없이 자애로운 위대한 수령님의 그 인품에 깊이 감격해마지 않으며 장군님의 로선을 받들고 일을 더 잘해나가겠다고 다시금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모두 힘을 합쳐 하루빨리 조국을 광복하자고 하시면서 오늘은 이 백두산의 산나물국과 산천어찜을 놓고 둘러앉았지만 이제 나라가 독립되면 평양에 나가 푸짐한 식탁을 차려놓고 뜻깊은 오늘일을 추억하자고 말씀하시였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무렵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령병들인 나와 김봉석동무를 부르시여 밖에 우등불을 피워놓을데 대한 지시를 주시였다. 우리들은 경위중대병실앞공지에 우등불을 피워놓았다.

이윽하여 저녁식사를 마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의참가자들과 함께 우등불가에 나오시였다.

그러시고는 우등불곁에 모여있는 대원들에게 국내에서 온 동무들을 한사람한사람 소개하시면서 이 동무들이 우리의 혁명로선을 받들고 적들이 살판치는 국내의 어려운 조건에서도 당조직을 뭇고 힘찬 투쟁을 벌리고있는 동무들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우리들은 그들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등불가에 마련해놓은 긴 통나무의자에 손님들의 자리를 잡아주시고나서 오늘저녁은 이렇게 모처럼 국내동무들과 함께 모였는데 그저 지내겠는가고 하시면서 우리들을 뜻있는 눈길로 둘러보시였다.

그 순간을 기다리기나 한듯이 우리 동무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혁명가요 합창으로 시작된 오락회는 하모니카독주와 합주, 독창 등 다채로운 종목으로 이어지면서 밤이 깊도록 온 밀영이 흥성거렸다.

특히 위대한 수령님께서 대원들과 함께 친히 하모니카를 부시여 손님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오락회를 마지막으로 장식한것은 《유격대행진곡》의 합창이였다. 처음 인민혁명군대원들의 합창으로 시작된 노래소리에 국내동무들이 모두 신이 나서 박자를 맞추어 손벽을 치면서 따라하다가 나중에는 대합창으로 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된 뜻깊은 국내당공작위원회 회의후 곰산밀영에 울려퍼지던 그날의 노래소리와 밤하늘에 활활 타오르던 우등불이 지금도 나의 눈앞에 삼삼하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곰산밀영에서 열린 국내당공작위원회 회의는 국내공산주의자들의 활동에서 나타나고있던 편향들을 극복하고 국내에서 당조직을 확대하며 당조직들에 대한 지도체계를 철저히 세워나가는데서 획기적인 계기로 되였다.

이 회의가 있은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에서 우수한 정치일군들을 선발하여 북선정치공작대를 뭇고 그들을 국내에 파견하여 당조직들을 내오게 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의 지도밑에 국내당공작위원회의 기능이 높아지고 북선정치공작대의 역할이 강화됨에 따라 국내에서 당조직건설사업이 더욱 활발히 벌어지게 되면서 백두산지구와 무산, 연사지구를 포함한 북부조선의 넓은 지역에 당조직들이 급속히 확대되여나갔다.

오늘 불패의 대오로 통일단결된 백전백승의 조선로동당의 영광스러운 력사의 갈피에는 이렇듯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당창건의 초석을 튼튼히 마련하시던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곰산밀영에서 진행되였던 국내당공작위원회 회의도 력력히 기록되여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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