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전호에서 9시간
백 학 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리명수전투로 인하여 팔도구방면의 적들은 〈동기대토벌〉의 주력을 잃게 되였다. 유격대를 전멸시킨다고 호언장담하던 적들의 위세는 땅바닥에 구겨박히고 〈동기대토벌〉놀음은 물거품이 되고말았다. 결국 우리는 리명수전투의 승리로써 적들의 〈대토벌〉작전에 종지부를 찍어놓은셈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교시하신바와 같이 리명수전투가 가지는 정치군사적의의는 참으로 큰것이였다.
그래서 우리 부대가 장백지구에 진출한 후 크고작은 전투를 많이 치르었지만 그중에서 리명수전투가 나의 기억속에 더 뚜렷이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만도 아니다.
장백현 리명수전투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더욱 생생하게 추억되는것은 승전의 그 추억속에 가슴저린 나의 마음속아픔도 함께 남아있기때문이리라.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의 불바다, 눈바다를 헤쳐오신 그 나날에 어느 하루인들 편하신 날이 있었으랴만 리명수전투의 승리를 위하여 겪으신 고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옴을 어쩔수가 없다.
우리 부대가 적《토벌대》에 대한 섬멸전을 벌리기 위해 장백현 사문개정마을에서 리명수골로 진출한것은 1937년 2월 26일 새벽이였다.
리명수라고 하면 우리 나라 신파 (오늘의 김정숙군)에서 압록강건너 북쪽으로 50리남짓한 곳에 자리잡은 사문개정마을 웃쪽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하여 림강현 팔도구 아래마을에 와서 압록강으로 흘러드는 팔도구하의 지류이다.
부대의 진출지점은 사문개정마을에서 서쪽으로 얼마간 떨어진 리명수물과 북수골물이 합수되는 곳이였다.
행군도상에 나의 눈길은 자꾸만 사령관동지께로 쏠리였다.
이제 큰 전투를 치르셔야 하겠는데 그이의 안색에는 피로가 너무도 짙게 어려있었던것이다.
도천리전투를 진행한 후 사문개정마을에 도착하자 사령관동지께서는 부대에 휴식명령을 내리시고 곧 적들의 동태와 움직임을 장악하기 위하여 리명수상류와 팔도구방향에 정찰조를 파견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정찰자료에 기초하여 리명수골에서 적을 칠 작전계획을 세우시느라고 잠시도 휴식할 짬을 내지 못하시였다.
어느덧 밤이 깊어 사령관동지께서 좀 쉬실가 하는데 뜻밖에도 2사부대가 마을에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시간을 보니 자정이 지났었다.
2사로 말하면 사령관동지와 친분관계가 두터운 조국안사장이 이끌던 부대였다.
조국안은 사령관동지의 위대성에 진심으로 매혹되여 항일의 마당에서 우리와 어깨겯고 싸울것을 맹약하고 그 길에서 헌신해온 참된 공산주의자였다.
그가 몇달전에 원쑤들과의 격전에서 희생되였다는 비보를 들으신 사령관동지께서는 너무도 애석하시여 침식을 하시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 2사부대가 사령관동지를 찾아온것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김주현후방부관을 부르시여 2사부대동무들에게 대접할 떡국을 끓여놓으라고 지시하신다음 급히 그들을 마중나가시였다.
나는 곧 그이의 뒤를 따라섰다.
사령관동지의 모습이 보이자 2사의 지휘관들이《사령관동지!》 하고 목메여부르며 달려와 그이의 품에 와락 안기였다.
조국안을 대신하여 부대를 이끌던 지휘관은 사령관동지의 손을 놓을줄 몰랐다.
《고맙습니다. 사령관동지는 우리 부대가 큰 시련을 겪고있을 때 우리에게 힘을 준 은인입니다.》
지휘관을 잃고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당황해진 그는 사령관동지께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부대의 행동방향과 관련된 조언을 줄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여왔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의 처지를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서로 단결하고 합심하여 부대앞에 조성된 위기를 타개해야 한다는것과 부대관리에서 집체적지혜를 높이 발양해야 한다는것 그리고 눈이 많이 내린 조건에서 적들이 쉽게 근접할수 없는 리명수산지에 밀영을 꾸리고 신입대원들에 대한 정치사상사업과 군정훈련에 주력하라는 고견이 담긴 답장을 보내주시였다.
2사 인솔지휘관이 바로 그때의 일을 두고 그이께 올리는 말씀이였다.
사령부의 숙소에 도착한 후에도 사령관동지께서는 장밤 그와 무릎을 마주하시고 사단의 활동과 전망문제에 대해서 일일이 가르쳐주시였으며 뒤이어 리명수전투를 위한 우리 주력부대와 2사부대 지휘관들의 련합작전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작전회의 참가자들에게 날이 밝으면 있을것으로 예견되는 적들의 행군기도를 알려주시고 이미 구상하고계시던 매복전의 작전안을 발표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지휘관들에게 매복전투의 승패는 은밀성을 어떻게 보장하는가에 크게 달려있는것만큼 날이 밝기 전에 아침식사를 끝내고 매복지점에 가닿아야 한다는것과 각 부대들이 매복진지를 차지한 다음에는 연기를 피우거나 말소리, 기침소리를 내거나 진지를 리탈하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하며 명령없이는 사격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것 등 전투에서 류의할 점을 일일이 일러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적들에게 들이댈 함화내용과 방법, 포로취급문제에 대해서까지 설명해주신 다음 각 부대에 전투임무를 하달하시였다.
그러느라니 사령관동지께서는 순간도 눈을 붙이지 못하시고 꼬박 한밤을 새우시였던것이다.
《빨리 전투를 끝내고 사령관동지께서 좀 쉬셔야겠는데…》
《전번에 덕수골의 한 로인이 사령관동지의 손맥을 짚어보고 지나치게 과로하고 식음을 소홀히 한탓에 신기가 허해졌다고 하던 말이 생각나? 그때 사령관동지의 몸보신에 쓰라고 준 산삼도 아직 쓰지 않았으니 어쩌면 좋아.》
《이번 전투가 끝난 다음에는 절절히 말씀드려야겠어.》
우리 전령병들은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그이를 뒤따랐다.
부대가 매복지점에 도착한것은 날이 밝기 전이였다.
주변은 온통 눈바다였고 리명수에는 얼음이 깔려있었다.
장백의 겨울은 령하 40도를 넘어서기가 일쑤였는데 이날따라 류별나게 날씨가 찼다.
부대들은 분담된대로 매복진지를 차지하고 눈속에 전호를 파기 시작하였다.
강추위로 뼈속까지 얼어들었지만 전투원들의 사기는 높았다.
특히 사령관동지께서 지휘하시는 전투는 언제나 승리한다는 소문을 들어온 2사동무들은 이번 싸움은 크게 이길 싸움이라고 장담하면서 열심히 전호를 파고 사격좌지의 눈을 꽁꽁 다지였다.
우리 전령병들도 지휘처의 전호를 파야겠는데 너무도 난감하여 서로 얼굴만 마주보며 일손을 잡지 못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한동안 지형을 둘러보시던 사령관동지께서 지휘처의 위치를 적의 화력이 집중되는 전투서렬 가까이에 찍어주시였던것이다.
언제나 대원들과 생사를 함께 하시는 사령관동지께서는 내내 그렇게 하시였지만 우리 전령병들은 물론 다른 지휘관들도 여느때없이 치렬한 격전이 예견되는 이번의 대부대련합작전지휘처를 후면 안전한 곳에 정했으면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한갖 욕망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번에도 우리들의 소망을 받아들이지 않으시였다.
하는수 없이 우리는 그 자리에 지휘처의 전호를 팠다.
눈속에 층층이 다져진 얼음층이 몹시 애를 먹였다.
지휘처의 코앞에는 우리 부대의 7련대와 경위중대가, 좌측에 8련대, 우측에 2사대원들이 진지를 잡았다.
지휘처의 건너편 산등성이에는 60~70명의 용사들로 구성된 돌격대가 진지를 차지했다.
일단 이 골바닥에 들어서기만 하면 적들은 독안에 든 쥐신세를 면할수 없었다.
전부대는 아침 8시가 가까와올무렵에 진지굴설을 끝내고 매복에 들어갔다.
한시간 두시간…
시간은 지루하게 흘렀다.
어느덧 정오가 되여오는데도 적정은 나타나지 않았다.
온몸은 얼어들다 못해 마비가 오는것만 같았다.
여러시간이 지나도 적정이 감감무소식이니 2사의 지휘관들이 지휘처에 찾아와 사령관동지께 이제는 그만 철수하는것이 어떻겠는가고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을 타이르시여 자기 진지로 돌려보내시였다.
추위는 점점 더 심해졌다.
날씨가 어찌나 맵짰던지 쇠붙이에 손이 닿으면 떡떡 얼어붙군하였다.
몸을 좀 움직이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면 은밀성을 보장할수 없었다.
《놈들이 안오는게 아닙니까?》
나는 참기가 급하여 이발을 맞쪼으며 곁에 계시는 사령관동지께 무랍없이 말씀드리였다.
《너무 조급해마오. 이제 꼭 오게 될테니까.》
전방을 살피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성에가 허옇게 풀린 얼굴을 돌리시여 떨고있는 나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시는것이였다.
그이를 마주 뵈옵는 순간 나는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림을 어쩔수 없었다.
충혈진 안광, 강추위에 얼어 퍼렇다못해 거멓게 변한 안색, 터갈라진 입술…
심신에 과중하게 들씌워지는 중하가 그이의 만면에 그대로 내비치고있었다.
나는 자기의 급한 생각만 앞세우며 사령관동지께 철없이 말씀드린것이 후회막급하였다.
(사령관동지를 이렇게 모실바에야 전령병이 백이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차라리 눈집이라도 지어 그이를 잠시라도 모셨으면 좋으련만 사령관동지께서 그 《특전》이나마 허용하실리 만무하였다.
나를 한참동안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시며 자애깊은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무척 참기가 힘들지. 그러나 승리하기 위하여서는 이보다 더한 간난신고도 참고 견딜줄 알아야 하오.…》
모자와 머리카락, 눈섭마저도 하얀 성에로 뒤덮인 그이의 모습, 공중으로 날아가다가 그대로 얼음으로 정지되는듯만싶은 입김, 추위로 하여 떨리는 음성…
승리를 위해서는 그 어떤 간난신고도 달게 여길줄 알아야 한다는 깊은 뜻이 사령관동지의 온몸과 온 넋에 그대로 슴배여있는듯싶었다.
나는 잠시나마 움츠러뜨렸던 몸을 쭉 펴며 손에 쥔 무기를 더 억세게 틀어잡았다.
그런데 점심때가 지나도록 적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되고보니 한가지 걱정이 또 새롭게 머리에 갈마들었다.
추위에 얼어든 신상에 시장기까지 겹치면 사령관동지께서 어떻게 견디여내시랴 하는 생각이였다.
나는 하는수 없이 배낭에서 강낭떡을 꺼냈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사령관동지께서 매 전투원들이 간수하도록 하신 끼니용이였다.
그런데 보자기에 싼 강낭떡은 꽁꽁 얼어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요기할것이란 그것밖에 없었다.
《사령관동지, 이 강낭떡이라도 좀 드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용단을 내려 이렇게 말씀드리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죄송스러워하는 나의 불안한 마음을 헤아리신듯 흔연히 그 강낭떡을 받아드시였다.
그러시고는 우리 전령병들에게 한개씩 집어주시는것이였다.
《우리 몫은 있습니다. 사령관동지…》
우리가 받지 않으려 하자 그이께서는 어서 같이 먹자고 하시며 기어이 우리 손에 떡을 쥐여주시였다.
그러시고서야 자신께서도 떡 한개를 집으시였다.
언몸에 언떡 한개로 무슨 요기가 되였으랴만 사령관동지께서는 그것으로 점심을 에우시였다.
눈속에 엎드리신채 사령관동지께서 우리들과 함께 드셨던 그날의 그 언강낭떡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알찌근하다.
오후 2시가 넘도록 나타나지 않던 적들이 5시경에야 나타났다.
그러니 우리가 눈속에 매복을 친지 무려 9시간만이였다.
나는 백두산시절에 헤아릴수 없이 많은 매복전에 참가했지만 이때처럼 장시간 매복을 한적은 없었다고 기억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쌍안경을 드시고 적정을 살피시더니 나를 부르시여 선두척후대를 지나보내고 부대의 뒤꼬리가 매복권안에 들어선 다음에 사격명령을 내릴터이니 함부로 사격해서는 안된다는것을 각 부대에 전달하라고 이르시였다.
내가 전호에서 일어나니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듯 하늘에는 먹장구름이 시꺼멓게 뒤덮이고 날씨가 급작스럽게 요동을 치기 시작하였다.
사위에 어둠을 몰아오는 세찬 눈바람덕분에 적들에게 로출될가봐 우려할것은 없게 되였다.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각 부대에 전달하고 돌아오니 위만군장교가 인솔하는 척후대가 앞장에 서고 그뒤로 일본지도관이 거느린 기본대렬이 느릿느릿 지휘처의 매복지점을 지나고있었다.
음산한 저녁 대지에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적들의 면상을 후려갈겨 놈들은 눈도 바로 뜨지 못하였다.
놈들의 긴 대렬이 매복권안에 완전히 들어서자 사령관동지께서 한방의 총소리로 사격명령을 내리시였다.
량쪽고지에서 수백정의 보총과 여러정의 기관총들이 마침내 일제히 불을 토하고 적의 서렬복판에서 수류탄이 작렬하였다.
적들은 총 한방 쏠사이도 없이 무리로 쓰러지고 수습할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죽음의 함정속에서 일부 악질적인 놈들이 헛총질을 하면서 발악했으나 그놈들의 반항도 오래 가지 못하였다.
전투가 시작되여 10분도 되나마나한데 벌써 골짜기에는 적의 주검이 한벌 깔리였다.
이런 때에 우리 대원들의 함화소리가 골짜기를 울리였다.
적들속에서는 더욱 심한 동요와 혼란이 일어났다.
사령관동지의 지시에 따라 한익수동무가 돌격나팔을 불었다.
순간 《만세!》의 함성을 지르며 무서운 기세로 내닫는 우리 대원들의 기상앞에 완전히 넋을 잃은 적들은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전과는 대단히 컸다.
불과 30분동안에 적 100여명을 살상하고 2개 중대를 사로잡았으며 3정의 경기관총을 비롯하여 150여정의 보총과 많은 탄약을 로획하였다.
전투승리의 30분을 위하여 눈속에서 보낸 9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은것이였다.
나는 지금도 만약 그때 우리가 모진 추위와 지루함을 참아내지 못하고 중간에 그 매복진지에서 철수했더라면 항일전쟁사에 기록된 리명수전투의 승리가 차례지지 않았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고난의 행군길을 걸어가고있는 우리 인민들에게 당부하고싶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항일의 전사들이 전투승리 30분을 위하여 장백의 그 강추위속에서 우등불 한점 피우지 못하고 사격진지에서 한걸음도 탈선하지 않은채 강의한 의지와 인내력으로써 견지해낸 9시간을 잊지 말고 더 휘황찬란한 래일의 령마루를 향하는 오늘의 행군길에서 모두가 승리자가 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