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주가 받아안은 생일상
백 학 림
예로부터 인간을 덕으로 다스리는 이가 최강자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어버이수령 김일성동지는 크나큰 도량과 고결한 인덕으로 이 세상 천차만별의 수많은 사람들을 혁명의 지지자, 동정자로 키워내신 위인중의 위인이시였다.
지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조선인민혁명군을 물심량면으로 원호해준 수많은 사람들가운데는 100정보가 넘는 땅을 가진 대지주도 있었고 큰 공장을 여러개나 운영하는 대부호도 있었으며 적측의 련대장도 있었고 경찰서장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공산주의에 대한 그 어떤 인식에 앞서 위대한 수령님의 인품에 매혹되여 혁명에 뛰여든 사람들이였다.
애국지주 김정부로인도 그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우리 부대가 장백지구에서 활동하고있던 1936년 겨울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를 부르시여 길떠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자신께서 후방부관에게 맡긴것이 있는데 그것을 찾아오라고 하시는것이였다.
내가 후방부관에게 가서 사령관동지께서 보내시여 왔다고 하니 그는 아무말없이 불룩한 배낭 하나를 내 잔등에 메워주었다.
《이게 뭡니까?》
내가 부지중 이렇게 묻자 후방부관이 대답했다.
《그안에 흰쌀과 고기, 술이 있소. 사령관동지께서 적구공작원들에게 특별히 부탁한것이라고 하는데 어디에 쓰시려는지 그건 나도 모르겠소.》
《?…》
어디에 쓰시려는것일가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사령부에 돌아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내가 배낭을 지고오자 곧 되골령으로 가자고 말씀하시였다.
(아, 설명절이 다가오는 때이니 그곳 동무들이 설준비를 하는데 쓰라고 몸소 마련하신것이로구나.)
나는 제나름으로 생각하며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되골령밀영에 도착하자 사령관동지께서는 내가 배낭을 벗어놓기도 전에 곧장 작식대동무들에게 가져다주라고 하시며 한번 솜씨를 다해 잘 차리도록 하라고 이르시였다. 그러시면서 음식을 성의껏 만들데 대하여 당부하시는것이였다.
그러니 그 배낭은 결코 설명절준비때문에 마련한것은 아니였다.
나는 머리를 기웃거리며 작식대동무들을 찾아가 배낭을 주면서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전달하였다.
작식대원들은 알겠다고 하면서 인차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로부터 두어시간 지났을가 한데 식사준비를 다 끝냈다는 련락이 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나더러 빨리 가서 음식상을 보기 좋게 차려놓으라고 하시였다.
나는 작식대동무들과 함께 귀틀집 방을 하나 따로 내여 준비한 음식들로 상을 차리였다.
김이 문문 나는 하얀 밥과 절편, 돼지고기전과 통닭, 구운 산천어며 산나물볶음채 그리고 과일통졸임… 그것은 우리 부대생활에서 거의 전례를 찾아볼수 없었던것이였다.
우리는 그때까지 전우들의 결혼식을 축하해줄 때에도 그런 음식상을 차리지 못하였다.
나는 물론 작식대원들도 의혹의 빛을 감추지 못하였다.
나는 음식상을 다 차리자 사령관동지께 달려가서 보고드리였다.
밀영책임자동무와 이야기를 나누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더니 가보자고 하시며 음식상이 차려져있는 귀틀집으로 향하시였다.
방안에 차려진 음식상을 하나하나 살펴보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저으기 만족해하시며 바깥으로 나가시는것이였다.
아마도 음식상의 임자들을 데려오시려는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사령관동지께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저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아니요, 이런 걸음은 내가 해야 하오.》
(전령병을 옆에 두시고도 사령관동지께서 몸소 찾으셔야 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사령관동지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그이께서 몸소 찾아가신 그 사람은 뜻밖에도 바로 몇달전에 김주현소부대성원들이 경제모연공작대상으로 밀영에 붙들어온 지주 김정부로인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황송하여 어쩔줄 몰라하는 김정부로인의 두손을 다정히 감싸쥐시며 추운 날씨에 산중에 들어와 정말 고생한다고 하시더니 함께 나가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로인의 손을 꼭 잡으신채 앞서 걸으시는 사령관동지를 우러르며 나는 의아함을 금할수 없었다.
(그가 아무리 애국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지주야 지주가 아닌가?…)
나의 머리속에는 몇달전에 있었던 일이 불쑥 떠올랐다.
부대가 이도강근처의 림산마을에서 군중정치사업을 하고있던 어느날 깊은 밤중이였다.
지양개부락에 모연공작을 나갔던 소부대성원들이 친일지주들이라고 하면서 여러명의 지주들을 붙들어왔다.
그들중에 바로 김정부로인도 있었다.
소부대성원들의 말에 의하면 김정부는 땅만 해도 자그만치 150정보나 가지고있는 대지주였고 일본령사관 본관 참사원이란자와도 가깝게 지낸다는것이였다.
그는 호림회장 겸 농촌조합장을 하면서 만주국관청출입도 뻔질나게 한다고 하였다.
소부대성원들은 그의 집에 전화기가 있는것까지도 친일의 증거로 삼았다.
소부대책임자는 그가 전화를 놓은것은 순수 호강만을 위한것이 아니라 밀정질을 하고싶어서였을것이라고 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부로인을 친일지주로 단정한 소부대성원들에게 자신께서 알고계시는 김정부의 과거경력을 알려주시면서 그는 타도대상이 아니라 포섭대상이며 반동지주가 아니라 애국지주라는것을 보증한다고 하시였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김정부로인으로 말하면 애국심을 가지고 나라의 독립운동에 많은 기여를 한 애국지사였다.
그는 독립군에 천과 식량을 비롯한 여러가지 후방물자를 대주었으며 그의 집은 독립운동자들이 리용한 숙박소인 동시에 회합장소이기도 했다.
그는 지양개골안에 150명이상의 학생을 가진 6년제사립학교를 세우고 자주독립과 애국애족의 사상을 심어주는 민족교육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작인들이 그의 집앞에 송덕비를 세운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였다.
그날 소부대성원들의 과오에 대하여 엄하게 지적하신 사령관동지께서는 로인들을 친히 만나시여 사과하신 다음 그들과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그러시고는 마을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시였다.
사령관동지를 만나뵙고 몹시 감동된 김정부로인은 자기가 이번에 장군님을 만난것은 정말 천지신명의 도움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고 하며 자기가 밀영에 남아있어야 아들이 원호물자를 보낼수 있는 구실이 생긴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아들만 보내고 자기가 있겠다는것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 거듭 권유하시였지만 막무가내였다.
이렇게 되여 로인은 밀영에 머물러있게 되였던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사령관동지께서는 어느덧 귀틀집앞에 이르시였다.
사령관동지를 따라 방문안에 들어선 로인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설도 멀었는데 이건 갑자기 무슨 성찬이요?》
사령관동지께서는 로인을 자애깊은 눈길로 바라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오늘은 선생의 생신날입니다. 인민혁명군의 이름으로 선생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그러시고는 잔에 친히 술을 따르시여 로인에게 권하시는것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로인이 잔을 내기를 기다리여 말씀하시였다.
《…이 엄동설한에 험한 산중에서 생일을 쇠게 해서 죄송합니다. 변변치 못한 생일상이지만 성의로 생각하고 많이 들어주십시오.》
사령관동지께서는 나에게도 로인의 잔에 술을 부으라고 이르시였다.
내가 술을 가득 부은 잔을 로인에게 권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의 두볼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있었다.
《유격대원들이 통강냉이죽을 먹으며 나라를 찾으려고 신고하는걸 보니 이 늙은것은 하루 세끼씩 먹는 더운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소. 하물며 이 산중에서 나같은 늙은이의 생일이 다 뭐요. 진정 장군의 은혜는 백골난망이웨다.》
나는 코마루가 저절로 찡해짐을 금할수 없었다.
정말 사령관동지께서는 로인의 생일을 어떻게 아시였을가.
설사 아신다 해도 생일상을 차려주지 않는다고 누가 섭섭해하겠는가.
그러지 않아도 지양개에서 온 지주들은 밀영에서 그야말로 특대우를 받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을 위한 거처를 특별히 따로 마련해주시였으며 온 부대가 죽으로 끼니를 에울 때에도 그들에게만은 비상시에 쓰려고 저축해두었던 흰쌀포대를 헤쳐 밥을 지어주도록 하시였다.
우리 대원들에게는 엽초를 공급하면서도 그들에게만은 가치담배를 보장하도록 하시였던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고마움에 목메여 눈시울을 적시는 로인에게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아무쪼록 나라가 독립될 때까지 장수하시기를 바랍니다.》
생일상에 둘러앉은 모든 사람들이 감격에 겨워 눈들을 슴벅거리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부로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사령관동지의 인품에 끌려 차츰 어려움도 없어진 로인은 그이께 이렇게 말씀올리였다.
《털어놓고 말해서 나는 지금까지 공산주의자들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아왔소이다. 그런데 김장군이 하는 공산주의는 판이하오. 같은 지주도 친일, 배일로 갈라서 친일만 치니 그런 공산주의를 누가 나쁘다고 하겠소. 왜놈들은 유격대를 〈공비〉라고 하는데 그건 다 개수작이지.… 그동안 유격대의 밥을 먹으면서 많은것을 생각하였소. 물론 결심도 새롭게 다졌구. 이제 내가 살면 몇해를 더 살겠소. 하지만 여생을 값있게 바치겠소. 죽어도 인민혁명군의 뒤시중을 하다가 죽을 작정이웨다. 이 김정부는 살아도 죽어도 김장군의 편이라는것을 믿어주시오.》
이것은 그의 진실한 고백이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앞에서 다진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인민혁명군의 후방사업을 도와 3 000여원에 달하는 많은 자금을 내놓았으며 천과 식량을 비롯한 여러가지 물자를 해결해주었다.
그의 아들은 밀영에서 내려가자마자 관청에서 받아온 소중에서 10여마리를 팔아 많은 돈을 마련했으며 그후에도 현청에 가서 보증서를 쓰고 좋은 소 20여마리를 집으로 끌고오다가 우리 부대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자기 집에 있던 재봉기까지 원호물자로 실어보냈다.
김정부로인과 그의 아들은 가지고있는 재력과 금력을 인민혁명군의 뒤시중을 하느라고 모조리 소비하였다.
지주, 자본가들에게 있어서 생명인 치부 그자체를 단념하고 자기의 재산을 아낌없이 바친다는것은 사실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 부자는 그것을 해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한없이 뜨거운 그 인덕이 김정부로인네 부자로 하여금 그러한 높은 경지의 애국충정을 발휘할수 있게 하였다고 지금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찌 김정부로인만이랴.
수많은 교인들을 조국광복회의 두리에 묶어세운 박인진도정이나 공산주의자들을 원쑤처럼 대하다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후부터는 인민혁명군원호에 한몸을 기꺼이 내대였던 중국인 지주 류통사도 다 수령님의 인품에 끌려 반일성전에 기여한 사람들이였다.
나는 지금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박인진도정과 이야기를 나누시던 60여년전의 그밤에 천도교인인 그에게 청수봉전의 기회를 마련해주신 그 순간을 잊을수가 없다.
통나무상 한복판에 맑은 물 한사발을 정히 올려놓게 하시고 성지의 물인데 놋그릇대신 법랑그릇에 담아오게 해서 안되였다고 하시며 어서 청수를 모시라고 권하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그 모습, 인간의 권리를 진정으로 귀중히 여기고 신앙세계의 법도를 진심으로 존중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고결한 풍모!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이 징벌과 재산몰수 대상으로 단정했던 류통사의 동생과도 함께 침식을 하시며 그를 인간답게 대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한 천막에서 생활하는 과정에 그는 사람이 참답게 사는 길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였고 온 가족을 반일투쟁에 불러세울 굳은 결심도 다지게 되지 않았던가.
정녕 우리 수령님께서는 넓은 도량과 높은 인덕으로 심장을 움직여 만사람을 하나로 묶어세움으로써 강도 일제를
쳐부시고 조국해방의 새봄을 안아오신 인덕정치의 시조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