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 않는 휴식명령
리 치 호
전투와 함께 행군은 항일유격대생활에서 떼여놓을수 없는 한 부분이였다.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은 피어린 전투와 행군의 련속이였다고 하여도 과히 틀리지 않을것이다. 더구나 그 시기 사령부통신원이였던 나는 누구보다 많은 걸음을 걸어야 하였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때를 돌이켜보면서 그 준엄하고 시련많은 머나먼 길들을 과연 무슨 힘으로 헤치고 혁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올수 있었던가 하고 생각하군 한다.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1940년 가을에 있은 일이 선히 떠오르군 한다.
력사적인 소할바령회의가 끝난 후 어느날이였다.
이날도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맡겨주신 단독임무를 수행하게 되였다. 임무의 내용은 소할바령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한 련락지점에 가서 사령부의 명령이 들어있는 통신문건을 전달하는것이였다.
그때는 소할바령회의방침에 따라 부대들이 개편되고 새로 편성된 소부대들이 각기 활동지점으로 떠나간 후였는데 며칠내로 사령부도 안도-화룡현경쪽으로 진출하게 되여있었다. 그러므로 사령부가 이동하기 전에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와야 하였다. 시간이 매우 촉박하였다.
나는 급한 마음으로 걸음을 다그쳐 약속된 날자에 련락지점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만나야 할 통신원이 오지 않았다. 나는 안타깝고 조급한 마음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임무수행을 포기하고 돌아설수는 없었다. 기다리던 통신원은 다음다음날에야 나타났다. 련락지점으로 오다가 적들과 조우하여 먼길로 에돌다나니 불가피하게 시간을 어기게 된것이였다. 나는 그에게 사령부의 통신문건을 전해주고 그길로 돌아섰다. 돌아올 때는 더욱 마음이 급하여 끼니도 번지다싶이 하면서 달리고 또 달리여 사흘길을 하루반에 대여왔다.
내가 사령부에 도착한것은 이른아침이였는데 마침 사령부가 새 활동지점을 향해 떠나려던 참이였다. 나는 즉시 임무수행정형을 보고드리고 행군대렬에 들어섰다.
드디여 행군이 시작되였다.
나는 며칠째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했지만 힘든줄을 몰랐다. 임무를 수행하고 제때에 사령부에 당도한 기쁨과 안도감으로 하여 마음은 날듯이 가벼웠다. 그런데 얼마를 못가서 다리맥이 쑥 빠지면서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왕복 수백리길을 걸은데다가 허기가 졌기때문이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행군했으나 점점 더 맥이 진해지는것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흔들레판까지 만났다. 흔들레판이라는것은 밀림속의 습지대인데 길길이 자랐던 풀들이 그자리에 넘어져 썩으면서 두엄더미처럼 진펄을 덮어서 얼핏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은것 같지만 한발자욱만 잘못 짚었다가는 깊은 수렁에 빠져 헤여나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풀더미》들을 잘 골라짚어야 하는데 발을 옮길 때마다 《풀더미》들이 흔들흔들 한다. 그래서 흔들레판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어떤데서는 한곳을 짚으면 온 진펄이 다 움씰움씰하였다. 소할바령주변에 그런 흔들레판이 많았는데 행군을 시작하여 얼마 못가서 또 흔들레판을 만나서 고생하게 된것이였다. 허기때문에 진땀을 흘리면서 흔들레판을 지나려니 몸이 휘청거려서 금시 쓰러질것만 같았다. 있는 힘을 다 내서 흔들레판을 지나니 더는 견디여내지 못할것 같았다.
그때 문득 나를 찾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울리였다.
《동무, 어디 아픈게 아니요?》
나는 정신이 펄쩍 들어 《아닙니다. 아픈데가 없습니다.》라고 큰소리로 말씀드리였다. 그이께 걱정을 끼쳐드릴것이 념려되여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런데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가, 아침밥은 먹었는가고 근심어린 어조로 다시 물으시였다.
나는 이번에도 아침밥을 먹었다고 기운차게 말씀드리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새 헤아려보시였는지 동무가 힘들어하는것을 보니 아침밥을 먹은것 같지 않다고 하시면서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동지께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이 동무가 먼길을 갔다가 사령부를 찾아오느라 아침밥도 먹지 못한것 같소.》
이렇게 걱정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동지께 물으시였다.
《정숙동무, 배낭에 밥을 건사한것이 없소?》
김정숙동지께서는 잠시 주저하시다가 사령관동지께 드릴 점심식사밖에 없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밥을 나에게 주라고 이르시였다.
나는 일없다고 다시금 말씀드리였으나 그이께서는 기어이 나에게 점심밥을 넘겨주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가 김정숙동지께서 넘겨주시는 밥보자기를 받는것을 보시고서야 앞으로 나가시였다.
나는 밥보자기를 가슴에 안고 아이들처럼 눈물을 떨구면서 행군대오에 들어섰다.
그런데 조금 걸으려는데 휴식명령이 내렸다.
나는 휴식지점도 아닌데서 휴식하는것이 웬일인가싶어 사방을 두리번두리번 살피였다. 다른 동무들도 모두 의아스러워하였다.
그래서 대렬을 헤쳐야 할지 어쩔지 모두들 망설이고있는데 김정숙동지께서 나있는데로 달려오시여 사령관동지께서는 동무가 밥보자기를 받고서도 식사를 못한다고, 아무리 바빠도 여기서 좀 쉬여가자고 하시면서 지휘관을 부르시여 휴식명령을 내리도록 하시였다고 알려주시는것이였다.
그것은 참으로 뜻밖의 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행군때마다 로정에 따르는 일정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도록 하시였는데 거기에는 어디까지 가서 휴식하고 어느 지점에서 숙영하며 다음날 행군은 몇시에 시작한다는것이 다 밝혀져있었다.
그 일정대로 행군하는것은 하나의 엄격한 군률이였다.
그런데도 한 대원의 아침식사를 걱정하시여 자신께서 드셔야 할 점심식사를 내여주시고 전대오에 특별히 휴식명령까지 따로 내리시여 식사를 할수 있도록 시간을 내주시는 그 따뜻한 보살피심을 어찌 말이나 글로 다 표현할수 있겠는가.
나는 김정숙동지께서 이끄시는대로 잠풍한데를 골라 자리를 잡고 앉아서도 밥먹을념을 하지 못하였다.
형언할수 없는 커다란 격정을 안고 소소리높은 이깔나무너머 푸른 하늘을 바라보니 때아니게 고향생각, 어머니생각이 간절하였다.
이 자식이 얼마나 자애깊고 다심한 사랑의 품에, 얼마나 뜨겁고 웅심깊은 사랑의 품에 안겨사는지 어머니가 아신다면…
이런 생각을 하던 나는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에 눈길을 돌리였다.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며 인사를 드리였다.
그러는 나를 앉으라고 하시며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왜 식사를 하지 않소? 빨리 식사를 하오.》
그러시고는 밥이 차겠는데 덤비지 말고 천천히 먹으라고, 찬밥을 빨리 먹으면 얹힐수 있다고 따뜻이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멀리에서 지켜보시다가 내가 식사를 끝내는것을 보신 다음에야 행군을 계속하도록 하시였다.
나의 온몸에는 새 힘과 투지가 용솟음쳤다. 그리고 뜻밖의 휴식명령에 대한 사연을 알게 된 대오에는 새로운 활기가 차넘치였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흘러 그날의 이야기는 어느덧 50여년전의 옛일로 되였다. 그러나 그날에 걷던 혁명의 천만리행군길은 오늘에로 끝없이 이어지고 내가 받아안던 그날의 고귀한 사랑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은혜로운 품속에서 날로 더욱 뜨겁게 꽃피여나고있다. 그것으로 하여 우리가 걷는 혁명의 길, 투쟁의 길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래일과 모레도 언제나 승리와 영광으로 빛나는것이며 그 길에서 당을 따르는 인민의 일편단심은 영원히 변함이 없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