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고충까지 헤아리시여

 

 

마음속고충까지 헤아리시여

                                               전 문 진       
    

이제는 나이가 들어 잊혀지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백두산시절만은 잊을수 없다.

그가운데서도 소왕청에서 있은 일은 특별히 나의 기억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서린 어둠을 가시여주고 혁명가의 참다운 삶을 안겨주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어버이사랑이 이 가슴에 눈물겹도록 꽉 차있기때문이다.

소왕청유격구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나는 왕청유격대재봉대에서 일하였다.

그때가 1933년초였는데 그 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재봉대도 자주 찾아주시고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그해 여름(음력으로 6월 중순) 어느날이라고 생각된다.

그날 우리들은 날이 무더워 문을 열어놓고 군복을 짓고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령부전령병이 달려들어오며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신다고 알려주는것이였다.

밖을 내다보니 벌써 저만치에서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재봉대병실로 오고계시였다.

우리들은 서둘러 밖으로 달려나가 위대한 수령님을 맞이하였다.

그이께서는 재봉대동무들이 수고를 많이 한다고 하시며 우리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고나서 재봉대실에 들어서시여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시였다.

여기저기에 하던 일감들이 지저분하게 널려져있었지만 그이께서는 조금도 나무람하지 않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시며 누구에게라 없이 재봉대일이 잘되는가고 하시더니 서있는 우리를 보시고 어서 자리에 앉으라고 하시였다.

우리들은 그이의 두리에 빙 둘러앉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래 앓는 동무들은 없는가, 생활하는데서 애로되는것은 없는가고 따뜻이 물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유격대가 적들을 족치고있는 소식도 알려주시고 우리의 혁명력량이 날로 장성강화되고있는데 대하여 그리고 유격구와 반유격구는 물론 국내인민들까지도 우리 유격대를 물심량면으로 적극 돕고있는데 대하여 실례를 들어가시며 말씀해주시였다.

이윽하여 그이께서는 그동안의 재봉대사업을 료해하시고나서 우리들에게 제기할것이 있으면 제기하라고 하시였다.

우리들은 별로 제기할것이 없어 그저 경건한 마음으로 그이만을 우러렀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 동무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자기는 재봉대일이나 하는것으로는 혁명하는것 같지 않고 성차지 않는데 총을 쥐고 일제놈들을 속시원히 족칠수 있게 전투구분대로 보내주셨으면 좋겠다고 제기하는것이였다.

순간 우리들은 어떻게 처신했으면 좋을지 몸둘바를 몰랐다.

사실 그것은 그때 우리모두의 심정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무슨 재봉대일이 싫거나 고달파서가 아니라 그것을 부차적인 일로 여기고있었다.

그러다보니 작식대나 병원의 녀동무들까지도 다 어떻게 하면 남자들처럼 총을 쥐고 왜놈들과 싸우겠는가 하는 생각만 하였다.

그리하여 유격대지휘부에서는 총을 잡고 싸우게 해달라는 녀동무들의 떼질이 거의나 그칠새가 없었다.

그 성화가 어찌나 지꿎었는지 어떤 지휘관들은 먼발치에서 우리들을 보기만 해도 우정 피해 숨어버리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이날 그것이 그만 위대한 수령님앞에서 그대로 드러났던것이다.

그 동무의 제의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더니 총을 쥐고 일제놈들과 직접 싸우겠다는 동무들의 심정을 충분히 리해할수 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혁명을 하면서도 아직 혁명에 대한 인식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있는 우리들에게 한시간반가량에 걸쳐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총을 잡고 일제와 직접 맞서 싸우는것만이 혁명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재봉대에서 사업하는 동무들도 그들 못지 않은 매우 중요한 혁명임무를 수행하고있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강도 일본제국주의침략군대와 장기간 싸워야 하는만큼 우리 유격대에는 손에 총을 쥐고 놈들과 싸우는 전투원들이 있어야 하지만 적과 싸워이기기 위해서는 뒤받침해주는 성원들이 보장사업도 잘해야 한다고 하시며 모두가 총을 쥐고 싸우겠다고만 한다면 작식은 누가 하고 부상병은 누가 치료하며 군복은 누가 짓겠는가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반일인민유격대는 정규군의 지원도 국가적후방도 없이 적과 싸우고있으므로 식량과 피복, 의약품 등 모든 후방물자들을 자체로 마련하여 보장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동무들은 단순한 재봉대원이 아니라 후방사업을 담당한 혁명가들인것만큼 자기 사업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맡은 혁명과업을 훌륭히 수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바닥에 널려있는 천쪼박들을 보시며 천 한필을 가져와도 거기에는 유격대원들의 피가 스며있는만큼 자투리 하나라도 버리지 말고 다 모아 담배쌈지나 손수건 같은것을 만들어 유격대에도 보내주고 산림부대들에도 보내주면 대원들의 전투사기를 높이고 통일전선을 형성하는데도 좋을것이라고 일깨워주시는것이였다.

이날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며 공연히 그이께 걱정을 끼쳐드린 자책감으로 하여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며 그이의 높은 뜻을 받들어 자기 맡은 일에 모든 열성을 다할것을 굳게 속다짐하였다.

우리들의 얼굴에서 그것을 읽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앞으로 동무들의 사업과 생활에서 성과를 바란다고 말씀하시고는 천천히 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런데 그이의 안색은 어쩐지 밝지 못하시였다.

(왜 그러실가? 신상에 무슨 편치 않은 일이라도…)

우리들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마음을 조이며 그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가에서 서서히 걸음을 멈추시더니 나를 돌아보며 말씀하시였다.

《조용히 좀 만납시다.》

무슨 영문인가 하여 바라보니 그이께서는 나에게 이야기할것이 있으니 좀 만나자고 거듭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제서야 나는 그이께서 나때문에 그러시였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생각되는것이 없지는 않았으나 딱히 짐작이 가지는 않았다.

내가 문밖에 나서니 어느새 벌써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재봉대실 뒤산에 있는 한길되는 나무곁에 가시여 새초같은 잡풀들을 눕혀놓으시며 손수 자리를 마련하고계시였다.

그러시다가 병실곁에 서있는 나를 보시자 어서 오라고 손저어 불러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내가 가까이에 가서도 그냥 서있자 손수 내 앉을 자리를 다시 더듬어 누벼주시고나서 《여기 앉소. 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하기오.》라고 하시며 자신의 오른켠에 앉혀주시는것이였다.

나는 코마루가 찡해나고 눈앞이 뿌예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앞산을 바라보시며 생각에 잠기시더니 나에게 재봉대에서 일하는데 무슨 애로되는것은 없는가, 애로되는것이 있으면 다 말해보라고 말씀하시였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그냥 있자 그이께서는 어데서 어떻게 되여 유격구에 들어와 재봉대에서 일하게 되였는가, 왜 아직까지 조직생활을 못하고있는가고 친절히 물으시였다.

그런데 그때 나는 그이의 물으심에 속시원히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수령님께서 하나를 물으시면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외마디 대답을 올리거나 목을 잔뜩 움츠리고 앉아 갑자르기만 하였다.

그러니 나를 마주하고 말씀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심중이 얼마나 안타까우시였겠는가.

그것도 그럴것이 당시는 조금만 잘못해도 《민생단》딱지가 붙어 처형되는판이라 그때까지 나는 그 누구에게도 자기 속심을 터놓고 말한 일이 없었다.

현이나 구의 간부들이 재봉대에 내려올 때면 몇번이나 억울한 심정을 말해볼가 하다가도 결국은 공연히 긁어 부스럼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말았다.

그러다보니 나는 그이의 친절한 물으심에도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고만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금도 탓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나의 심정을 헤아리신듯 어서 맘놓고 이야기하라고, 생각나는것들은 다 말해보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고향은 어데고 집은 어디에 있는가, 그곳 형편은 어떠한가, 부모들의 소식은 아는가, 재봉대일이 힘들지 않은가고 자연스레 물으시였다.

그 음성이 얼마나 친근하고 다정하게 느껴졌던지 나는 자기도 모르게 그이의 너그러우신 인품에 끌려 점차 속을 풀고 설음겨웠던 자신의 지난날을 자초지종 털어놓게 되였다.

나는 동녕현 고안촌에서 자랐다.

쏘중국경에서 얼마 멀지 않은 자그마한 그 연선마을에서 우리 가정은 지주놈의 소작살이를 하며 살았다.

그때 우리 지방에는 쏘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돌았는데 그것은 어린 나의 마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쏘련에 가서 공부하고싶어 부모들 몰래 국경을 넘으려고도 하였고 우리도 쏘련처럼 혁명을 해야 기를 펴고 살수 있지 않을가 하여 《운동》한다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무슨 심부름이라도 해보려고 하였다.

룡정에서 고학할 때에도 이른바 《혁명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을 따라 혁명을 한답시고 돌아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길림에서 일어난 시위투쟁(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과 일본상품배척투쟁)소식을 듣고는 나도 그런 거창한 투쟁의 복판에 뛰여들고싶은 생각으로 늘 가슴을 불태우게 되였다.

그리하여 룡정에서 고학의 길이 막혀 동녕현으로 와서도 나는 그 줄을 찾아 동분서주하였다.

그러다가 룡정시절에 낯을 익힌 한 지하공작원을 다시 만나 길림시위투쟁을 승리에로 이끄신 청년지도자가 다름아닌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것과 그이께서 명월구회의에서 무장으로 일제를 때려부실데 대한 방침을 내놓으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조직하시여 안도와 왕청, 연길은 물론 화룡, 훈춘에서도 유격대가 조직되고 유격근거지가 꾸려지고있다는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그이에 대한 경모심을 금할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정치공작원의 도움으로 삐라살포와 련락임무, 주구처단, 청년들속에서의 반일선전사업 등 보다 조직적인 투쟁에 참가하면서 그 과정에 그의 보증을 받아 공청원의 영예도 지니게 되였다.

그런데 나의 공청생활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그무렵 동만일대의 여기저기에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근거지인 유격구가 창설되고 그 영향력이 날을 따라 커가는데 놀란 일제강점자들은 유격구를 요람기에 없애버리려고 미쳐날뛰면서 유격구《토벌》을 강화하는 한편 주변지역의 혁명조직들을 색출하여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그때 내가 속한 공청조직도 놈들의 마수에 걸려 일군들이 체포되고 조직성원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였던것이다.

공청생활을 하기 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짦으나마 조직생활을 하여보니 조직을 떠나서는 살것 같지 못하였다.

나는 생각다못해 혼자서라도 위대한 수령님을 찾아가 투쟁을 계속하리라 마음먹고 길을 떠났다.

소문만 들었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딱히 어느 유격구에 계시는지도 모르고 떠난 길이고보니 결코 그 길이 순탄할수 없었다.

어디가나 《토벌대》놈들이 살판치고 비적들이 득실거리였지만 나는 이를 사려물고 걸음을 다그쳤다.

그렇게 간난신고하여 나는 마침내 유격구가까이까지 갈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그만 포승에 묶이운 신세가 되고말았다. 당시 동만지방을 휩쓸고있던 좌경의 칼바람을 나는 유격구에 들어서는 길목에서부터 되게 맞았던것이다.

나를 단속한 사람들은 조직선을 타지 않고 들어온것이 믿을수 없으니 살겠으면 속심을 드러내놓으라고 죄인을 다루듯 하면서 나의 이마에 총구까지 갖다대는것이였다.

혁명에 대한 피끓는 욕망을 안고 사생결단하고 수백리를 헤쳐왔는데 유격구문안에 들어서보지도 못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억이 막혔다.

《도대체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 아무리 믿지 못하기로서니 혁명하겠다고 찾아온 사람을 어떻게 감히 죽일수 있는가.》

나는 《민생단》도 아니고 적의 밀정도 아니며 오직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간다고 피가 터지도록 하소했지만 그자들은 막무가내였다.

천만다행히도 그전에 함께 투쟁하다가 조직의 추천으로 혁명군에 입대한 동무를 만나 나는 그의 보증으로 구사일생 죽음의 총구앞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그러나 불신의 의혹은 여전히 가셔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를 믿을수 없다고 생각했던지 그자들은 나를 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라자구에서 100리가량 떨어진 한적한 산막에 팽개치고는 저들끼리 훌쩍 가버리고말았다.

그리하여 나는 인적도 없는 심심산골에 홀로 남게 되였다.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그러나 혁명에 나선 이상 끝까지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가야 한다는 하나의 생각으로 나는 모진 굶주림도 추위도 괴로움도 꿋꿋이 이겨냈다.

그러던중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두명의 유격대원들을 만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유격구에 들어오게 되였다.

하지만 나는 인차 유격대에 입대하지 못하고 처음에는 반일자위대에서 밥짓는 일을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분이 미해명인 나에게 그 이상의 다른 일은 더 맡길수 없었던것이다.

그후 유격대에 입대하여 유격대병원 간호원을 거쳐 재봉대에서 일하였지만 나의 공청생활은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였다.

남들이 긍지에 넘쳐 공청회의에 참가하러 갈 때면 나는 홀로 남아 먼산만 바라보면서 괴로움에 모대기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러다나니 나의 가슴속에는 어느새 고독과 불안만이 가득찼고 나중에는 우울과 고뇌, 우려와 한숨속에 눈치만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였다.

그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재봉대에 오시여 친히 나를 만나주시였으니 그 고마움을 말이나 글로써 어떻게 다 표현할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겪은 설음에 찬 어제날보다도 위대한 수령님의 그 고마운 은정에 더 목이 메여서 더더욱 눈물이 북받쳤고 소리없이 조용히 흐느끼였다.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보다도 더 가슴이 아프신듯 아무 말씀이 없으시였다.

얼마나 괴로우시면 저러시랴 하는 생각에 나는 더이상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며 애써 참았다.

그러나 다음순간 수령님께서 그러느라니 얼마나 괴로왔겠는가, 나쁜 놈들때문에 그동안 맘고생이 얼마나 많았겠는가고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실 때는 더이상 참지를 못해 어린애처럼 막 어깨를 떨며 끝내 오열을 터뜨리고말았다.

엉키고 서리였던 설음과 울분이 그대로 눈물로 되여 그이앞에서 다 쏟아져나오니 마음은 천근무게를 털어놓은듯 가벼워지고 온몸엔 막혔던 기가 돌았다.

내가 실컷 울고나자 수령님께서도 안심되시는듯 저으기 마음을 놓으시며 우리는 동무가 나어린 녀성의 몸으로 혁명의 길에 나설 단호한 결심을 하고 그 험한 수백리길을 걸어 유격구로 찾아온것을 매우 결단성있고 용감한 행동이라고 본다, 혁명을 하자면 그런 결단성과 용감성을 가져야 한다, 일부 편협한자들때문에 시련을 좀 겪기는 하였지만 끝내 희망대로 혁명의 총을 잡았으니 얼마나 기쁘고 장한 일인가, 동무가 한주일동안이나 산막에 혼자 있으면서도 혁명에 다진 마음을 변치 않은것은 혁명에 충실한 표현이다, 앞으로 어떤 고생에 닥치더라도 마음을 든든히 먹고 변심말고 혁명에 충실하여야 한다, 이제부터 동무는 공청생활도 계속하게 될것이니 명랑한 기분으로 혁명사업을 더 잘해나가야 한다, 우리는 동무가 앞으로 조직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조직생활도 잘하고 혁명과업도 잘 수행하는 훌륭한 혁명가가 되리라는것을 굳게 믿는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며 혁명을 하자고 일단 나선바에는 추호의 동요없이 끝까지 혁명에 충실하여야 한다고 하시더니 다시금 나를 한동안 믿음어린 눈길로 바라보시고나서 혁명을 위해 끝까지 싸워주기를 바란다고 거듭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나의 두손을 꼭 잡으시고 한참이나 힘있게 흔들어주시는것이였다.

그날 나는 그 믿음, 그 사랑에 목이 메여 행복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그리고는 수령님께서 가신쪽을 점도록 바라보면서 심장으로 다짐하였다.

(내 설사 혁명의 길에서 죽는다 해도 김일성장군님만을 믿고 따르리라.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고 일편단심 혁명에 충직하리라.…)

그후 나는 인차 공청조직생활에 다시 참가하였다.

물론 재봉대일에서도 온갖 열성을 다 내여 일하였다.

내가 조선인민혁명군 재봉대원으로서 위대한 수령님께 군복과 싸창갑을 만들어올리는 남다른 행운을 지닌것도 바로 이무렵에 있은 일이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를 만나신것은 단순히 나의 과거사를 알자고 해서가 아니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때문에 이미전부터 무척 마음을 쓰시였던것이다.

우리 재봉대에 자주 오시는 과정에 그이께서는 나의 얼굴에 비낀 수심을 헤아리시고 어느날 재봉대책임자를 불러 나에 대하여 알아보시였다고 한다.

내가 공청생활을 하지 못하여 매우 우울하게 지내고있다는것과 동무들과 잘 휩쓸리지도 않고 속도 주지 않으면서 눈치만 보고있다는것을 아시게 된 그이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더니 왜 그렇게 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를 통해 나의 과거지사와 유격구에 들어온 이후 생활까지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며 그러니 그가 지금 얼마나 가슴아파하겠는가고 하시며 자신께서 인차 우리 재봉대에 내려오겠다고 하시였다.

그리하여 자식의 아픔을 두고 한시도 마음놓지 못하는 친부모의 심정 그대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며칠후 일부러 우리 재봉대에 오시였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이날도 우리를 찾으시기에 앞서 유격구의 책임일군들과 중대의 지휘성원들을 먼저 만나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재봉대원인 나를 공청생활에 참가시키지 않고있는것은 무엇때문인가고 하시였다.

나를 보증할 아무런 근거도 없을뿐아니라 현에서 내려온 간부가 직접 《민생단》혐의자의 딱지를 문건에 붙여놓았기때문에 그것을 해명할 길이 없어 아직 조직문제처리를 못하고있다는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단지 그가 조직의 추천이 없이 개별적으로 유격구에 들어왔기때문에 믿을수 없다는것인데 혁명을 한다는 사람들이 어찌 그렇게까지 편협하게 생각할수 있는가고 하시며 그들을 책망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늘 강조하고있는 문제이지만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을 진심으로 믿는가 믿지 않는가 하는것은 그가 진정한 공산주의자인가 아니면 가짜공산주의자인가를 가르는 주요한 기준으로 된다, 지금 유격구들에서는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반혁명적책동을 폭로분쇄하기 위한 심각한 투쟁이 벌어지고있다,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자기들만이 철저한 공산주의자인것처럼 자처하면서 반《민생단》투쟁을 극좌적으로 벌려놓고 우리의 우수한 혁명동지들과 애국적인민들을 함부로 의심하고 배척하고있으며 저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닥치는대로 《민생단》감투를 씌워 모해하고있다. 이것은 결국 이자들이 공산주의자라는 허울좋은 너울을 쓰고 혁명대렬안에 끼여든 가짜공산주의자라는것을 자체로 폭로하는것이나 다름없다, 우리의 지휘관들과 당 및 혁명조직일군들은 후과가 두렵다고 하여 혁명적원칙마저 줴버리고 종파사대주의자들의 압력에 못이겨 눈치놀음을 하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 혁명가들은 우선 사람을 믿고 혁명실천을 통하여 검열하여야 한다, 무턱대고 따돌리거나 배척하는것은 혁명가의 태도가 아니며 그것은 대오의 혁명적단결을 약화시키고 나아가서는 적들을 도와주는것으로 된다고 준절히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재봉대원인 나를 믿지 못할 근거란 아무것도 없다고 하시면서 나어린 녀성의 몸으로 우리와 함께 혁명을 하겠다고 수백리 험산준령을 넘어 유격구로 찾아왔는데 이 얼마나 장한 일인가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구당이나 중대간부들이 사람들에 대한 문제처리를 그 누구의 강요에 못이겨 망탕 하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과거생활에 대하여 보증하는 동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조직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은것은 아주 잘못된것이라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잠시 말씀을 끊으시였다가 자신께서 료해해본데 의하면 그는 공청원자격이 있는 동무이며 더구나 그를 공청에서 제명시킬 아무런 리유가 없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직접 보증하겠으니 공청생활을 다시 시키고 《민생단》딱지도 없애버리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던것이다.

그렇게 하시고도 그길로 우리 재봉대에 오시여 오랜 시간 나를 친히 만나주시였으니 결국 그이께서는 내 마음속의 그늘을 말끔히 가시여주시려고 우정 귀중한 시간까지 내시여 이처럼 친어버이의 다심한 사랑을 안겨주신것이였다.

그 믿음, 그 사랑, 그 은정이  있었기에 나는 장구한 항일혁명의 나날 혈전만리 불바다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어 오로지 혁명에 전심전력할수 있었으며 그이의 지시에 따라 사령부를 떠나 일시 멀리에 가있는 시간에도 변심없이 언제나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살며 싸울수 있었다.

오늘 위대하신 김정일장군님의 각별한 관심과 사랑속에서 우리 혁명의 자랑스러운 첫 세대로, 항일의 로투사로 더없는 존대를 받으며 여생을 보람있게 사는것도 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때 나의 가슴에 재생의 해빛을 안겨주고 혁명가의 긍지와 영예를 가슴깊이 아로새겨주시였기때문이다.

나만이 아니다.

항일유격대원들모두가 그 품속에서 어엿한 혁명가로 자랐고 투사로, 영웅으로 영생의 삶을 값있게 누리고있는것이다.

태양의 빛과 열을 떠나 아름다운 꽃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듯이 수령의 품을 떠나 혁명전사는 자기의 소중한 모든것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은  우리  혁명전사들모두에게  있어서 명실공히 어버이이시고 스승이시며 은인이시였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