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식대원들에게 돌려주신 어버이사랑

 

 

작식대원들에게 돌려주신 어버이사랑

                                                        고 현 숙      
    

항일무장투쟁시기 나는 유격대에서 주로 작식대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최전연을 시찰하시는 그 긴박한 속에서도 군인들의 식당에까지 들리시여 친어버이사랑을 부어주시는 모습을 TV화면을 통하여 볼 때면 남다른 감회에 잠겨 부풀어오르는 흥분을 금치 못하군 한다.

(어쩌면 수령님과 그리도 꼭 같으실가!)

그러느라면 나의 눈앞에는 60여년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모습이 선히 떠오르군 한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셋째섬에 자리잡고있는 우리 왕청 2중대를 자주 찾아주시였다.

오실 때마다 그이께서는 중대의 전투력강화와 후방사업에 깊은 주의를 돌리시였으며 우리 작식대원들의 사업과 생활에 대하여서도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1933년 초여름 어느날이였다.

이날도 중대에 내려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들이 일하고있는 취사장을 찾아주시였다.

밝은 미소를 지으시고 우리들의 인사를 정답게 받아주신 그이께서는 작식대동무들이 수고한다고 하시며 우리들의 손을 허물없이 잡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아침식사는 끝냈는가고 물으시는것이였다.

우리는 아무 말씀도 올릴수 없었다.

아침식사시간이 지난 그때까지도 가마안에서는 밥이 아니라 맹물이 끓고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며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그때로 말하면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때였다.

미리 장만하였던 식량은 겨울을 나면서 다 소비한데다가 일제놈들이 한알의 식량도 유격구에 들어오지 못하게 봉쇄정책을 써서 식량을 구하기가 조련치 않았다.

중대에서는 식량을 구하려고 여러차례 대원들을 내보냈지만 거의나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또다시 식량공작을 내보냈는데 그들이 도착하지 않아 그날 아침은 대원들의 식사를 보장하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벌써 모든것을 헤아리시고 나에게 대원들이 몇끼 굶었는가고 물으시였다.

내가 대답을 못하자 옆에 있던 작식대원이 그러지 않아도 근심 많으신 위대한 수령님께 또 걱정을 끼칠것만 같아 굶지 않았다고 말씀올렸다.

그이께서는 나를 안심시킬 필요는 없다, 동무들은 이보다 더한 곤난도 있을수 있다는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하시며 정치지도원에게로 눈길을 돌리시였다.

최춘국동무가 아직 아침식사를 못시켰다고 솔직히 대답하고나서 며칠전에 대원들을 식량공작에 내보냈는데 늦어도 어제까지는 돌아와야 했을 그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기다리는중이라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거우신 어조로 《그래 식량이 떨어져 굶고있단 말이지.》라고 하시며 잠시 바깥쪽으로 시선을 돌리시더니 식량공작나갔던 동무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렇게 가만히 앉아있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사냥이라도 내보내야지 대원들을 굶겨서야 되겠는가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정치지도원에게 지시하여 사냥에 능숙한 동무들을 세명 선발하여 사냥하러 보내시는것이였다.

점심때가 좀 지나서 사냥갔던 대원들이 큼직한 노루 한마리를 잡아가지고 돌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인차 노루를 삶도록 하시였다.

가마에서 노루고기가 끓으며 구수한 냄새를 풍기자 중대후방사업을 맡아보는 동무가 식사를 내려고 서둘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하시며 굶었던 대원들이 설익은 고기를 먹으면 체할수 있으니 좀더 푹 삶으라고 이르시였다.

결국 이날 식사는 저녁녘이 되여서야 아침 겸 점심 겸 저녁식사로 때늦어 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식사하는 대원들에게 꼭꼭 씹어먹으라고 당부하시며 자신의 국사발을 제일 나어린 대원앞에 밀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육친의 정에 대원들은 모두 눈굽을 적시며 노루고기국을 맛있게 먹었다.

그날저녁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춘국동무에게 중대의 전투력을 강화하자면 후방사업을 잘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정치일군으로서 대원들의 생활을 잘 조직할데 대하여 따뜻이 일깨워주시였다.

그때 중대에는 수령님을 따로 모실 방 한칸 없어 그이께서는 자주 식당칸에서 중대간부들에게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므로 우리 작식대원들도 수령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많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춘국동무에게 정치일군에게 있어서 대원들의 생활조직을 잘하는것은 특별히 중요한 문제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대원들이 굶고있는데 정치지도원이 속수무책으로 근심만 해서야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 할수 없으면 나무껍질이라도 벗겨다 대원들의 때식을 마련해야 할것이 아닙니까.

그러시면서 작식대원들이 맘고생이 얼마나 많겠는가고 하시며 우리쪽을 돌아보시였다.

우리들은 너무도 송구하고 부끄러워 머리를 들수 없었다.

사실 그것은 정치지도원이 아니라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였다.

아무리 없다없다 하여도 명색이 작식대원이라는 사람들이 있어가지고 대원들이 때식을 건는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였다.

정 없으면 나무껍질이나 풀뿌리를 캐서라도 때식은 이어댈수 있었다.

더구나 그때 우리에게는 며칠전에 해묵은 마른 산나물을 뜯어다가 물에 불구어둔것도 있었는데 그것을 데쳐서 대원들에게 대접했더라면 끼니를 번지는것과 같은 그런 일은 없었을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저 쌀이 오기만을 기다렸지 작식대원으로서 어떻게 해서라도 대원들의 식사를 보장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우리들을 두고 책망할 대신에 작식대원들의 맘고생을 헤아려주시며 오히려 우리들을 념려해주시는것이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가슴에 되새기며 어느 초소에서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맡은 일은 무조건 제힘으로 끝까지 책임지고 해내야 한다는것을 깊이 느끼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대간부들이 대원들의 식생활에 언제나 선차적관심을 돌리도록 일깨워주시였을뿐아니라 친히 작식대일까지 도와주시며 우리들을 고무해주시였다.

어느날 중대일과생활을 지도하시기 위하여 내려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벽일찍 취사장에 나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식사보장을 위하여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동무들의 수고가 많겠다고 하시며 군복팔소매를 걷어올리시였다.

우리들이 굳이 만류하자 그이께서는 대원들이 일어날 때까지는 시간이 좀 있는데 그동안 무엇을 하겠는가고 하시면서 몸소 우리들의 일손을 도와주시였다.

그러시다가 기상나팔소리가 울리여서야 군복차림을 단정히 하시고 집합장소로 나가시였다.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때로는 우리와 함께 감자껍질도 깎아주시고 만두도 빚어주시였다.

그러기에 중대대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후면 작식대일을 더 잘 도우면서 늘 수령님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어떤 대원들은 《그저 장군님께서 오셨다 가야 작식대원들의 얼굴에서 주름살이 펴진다.》고 롱을 하였고 노루라든가 뭘 좀 잡아온 날이면 《이런 때 장군님께서 오셔야 작식대원들이 더 좋아하겠는걸!》라고 하면서 못내 위대한 수령님을 기다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식량이나 소금 같은것이 떨어져 곤난할 때 그이께서 오시면 《장군님께서 또 걱정하시겠구나!》 하고 온 중대가 걱정하였고 다문 얼마간이라도 구해오게 되면 《장군님께서 오늘은 기쁜 마음으로 가시겠구나!》 하고 우리를 둘러싸고 한마디씩 하였다.

이뿐이 아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작식대원들이 먹고 입고 쓰고사는 생활상 문제에 이르기까지 각별한 관심을 돌려주시며 세세히 보살펴주시였다.

어느날엔가는 부뚜막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나와 최춘국동무사이에 뜻밖에 싱갱이가 벌어졌다.

처음에는 소곤소곤 조용히 시작된것이 나중에는 싸움하다싶이 어성이 높아졌다.

나는 가마목에 있는 사람이 배곯겠는가, 밥내만 맡아도 배부르다고 한사코 사양하였지만 정치지도원은 제 밥그릇을 들고와 무작정 나의 밥그릇에 덜어주려 하였다.

내가 너무도 사양하자 나중에 그는 동무네때문에 사령관동지께서 얼마나 걱정하시는지 아는가, 오늘은 잔소리말고 밥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막 성을 내였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내 밥그릇에 밥을 푹 덜어놓고나서 당장 먹으라, 먹지 않으면 아예 혼뜨검을 내서 쫓아버리겠다고까지 으름장을 놓는것이였다.

나는 군수관동무로부터 그날 있은 가슴뜨거운 이야기를 듣고서야 모든 사연을 알게 되였다.

그날 중대에 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대사업을 지도하시고나서 정치지도원에게 작식대원들이 식사는 제대로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였다.

정치지도원이 딱히 식사하는지는 제눈으로 보지 못했다고 말씀드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식대원들은 중대의 어머니로서 어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듯 입을것도 못입고 먹을것도 제대로 못먹을수 있으니 중대지휘관들이 이에 대하여 관심을 돌려 그들이 배곯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내 이름을 외우시며 부모형제를 다 잃고 홀몸으로 혁명에 나선 그가 누굴 믿겠는가고 하시며 제동생처럼 생각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일이 힘들어하면 좀 조절해주라고까지 하시였다는것이였다.

나는 그제서야 정치지도원이 덜어준 밥그릇에 숟가락을 가져갔으나 목이 메여 그것을 떠넣고서도 넘기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작식대원들에게 군복도 두벌씩 내주도록 하시였다.

거기에도 작식대원들을 남달리 생각하시는 그이의 각별한 사랑이 뜨겁게 어려있었다.

어느날 작식대에 들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의 차림새와 취사장안을 둘러보시며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그러시던 그이께서는 우리들에게 작식대원들의 일은 언제나 고되고 분주하다고 하시면서 그럴수록 모든 일을 알뜰하고 깐지게 하며 자신들의 몸단장과 옷차림에도 늘 주의를 돌려야 한다고, 그래서 전체 유격대원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수 있도록 생활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러시고는 작식대원들은 다른 대원들과 달라서 여벌옷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같이 온 지휘관에게 전체 녀대원들에게 다 공급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작식대원들에게만은 옷을 한벌씩 더 내주자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이께서 다녀가신 후 인차 군복 한벌씩을 더 공급받고 속옷까지 더 타입게 되였다.

결국 우리가 타입은 군복은 두벌, 속옷은 세벌씩이나 되였다.

이것도 다 땀을 많이 흘리고 궂은일을 하는 우리들을 생각하시여 그리고 땀에 절고 냄새나고 기름때묻은 차림을 하고 모임장소나 대렬속에 들어서기 꺼려하는 우리들의 속마음을 헤아리시여 어느때 어느곳에도 나무랄데 없는 유격대작식대원으로 떳떳이 나설수 있도록 해주시려는 어버이수령님의 다심한 사랑을 떠나서는 그때 형편에서 도저히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였다.

바로 이런 사랑, 이런 은정을 지니신분이시기에 그이께서는 내가 시집가서 동자질할 때의 그 버릇대로 치마허리를 질끈 동이고 일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친히 우리 작식대원들에게 새파란 목세루천을 보내주시여 치마저고리까지 해입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세심한 보살피심속에서 우리 작식대원들은 다른 대원들보다 여벌옷을 더 가지고 단정하고 깨끗하게 입고 생활하였고 깊은 산속에서도 추운줄을 모르고 불편없이 지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작식대원들에게 학습장도 다른 대원들보다 배로 내주시였다.

학습장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작식대원들의 학습에 대하여서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그때 우리 작식대원들은 학습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작식대일이 별로 힘든것은 아니라고 해도 잔손질이 많다보니 옹근시간을 내여 학습할수 있는 형편이 못되였으며 또 중대가 자주 유격구역을 떠나서 활동했으므로 중대성원들과 일상생활을 같이하는 시간이 적다보니 별로 학습에 낯을 돌리지 못하였다.

게다가 작식대원들의 학습에 대하여서는 조직적통제도 거의나 없었다.

그러다나니 어느새 우리는 작식대원들이야 하루 세끼 식사나 보장하면 되는데 학습을 하지 않는다고 밥이야 못하겠는가 하는 그릇된 생각까지 하게 되였고 그것이 점차 만성화되여 정치학습을 하지 않고서도 별로 가책을 받지 않고 심상한 일로 여기게까지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실정을 료해하시고 어느날 또다시 우리들이 일하고있는 취사장에 들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식대원들이 수고를 많이 한다고, 언제 보나 손에서 일을 놓는 때가 별로 없다고, 그러니 학습도 남과 같이 할수가 없을거라고 하시며 이렇게 물으시였다.

《일이 바쁘면 그에 따르는 학습방법을 생각해내야 하오. 그런 학습방법을 생각해냈소? 어느 동무가 한번 말해보오.》

하지만 누구도 선뜻 대답을 올릴수가 없었다.

이제껏 이런 학습방법에 대하여 생각해본 일이 없었고 또 생각해보려고도 하지 않았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두 얼굴이 홍당무가 되여 고개를 수그리고 서있는것을 보시더니 호탕하게 웃으시며 어머니가 자식들을 타이를 때와 같이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람이 하루 세끼 밥을 먹어야 살아갈수 있는것처럼 우리 혁명가들은 학습을 하여 혁명하는 리치를 알아야만 진정으로 인민을 위하여, 조국광복을 위하여 복무하는 혁명가로 될수 있다고 하시면서 작식대원이라고 하여 단순히 유격대원들에게 식사나 보장해주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오늘은 작식대원의 임무를 수행하지만 혁명이 요구하면 래일은 소대장, 중대장의 임무도 수행해야 하며 앞으로 일제를 몰아내고 조국을 광복하면 동무들도 다 새 조국건설의 지휘성원이 되여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우리 다같이 방법을 연구해보자, 나도 연구하고 동무들도 연구하라, 이럴 때는 이렇게도 할수 있고 저렇게도 할수 있지 않는가고 하시며 어느 시간을 내여 어떻게 학습하고 무슨 일을 할 때에는 어떤 공부를 하겠는가 하는것까지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고는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하시던 시기 오가자일대의 농민들속에서 우리 글을 배우려는 의욕을 높여주기 위하여 《딸에게서 온 편지》라는 연극을 하나 만들어 공연한적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 연극의 내용을 들려주시는것이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연극의 주인공이 좋은 소식을 보내온 딸의 편지를 받고도 글을 몰라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읽어달라고 하다가 딸이 그만 잘못된줄로만 알고 목놓아울던 이야기를 어찌나 실감있게 말씀하시였던지 우리는 배를 그러안고 웃다가 나중에는 눈물까지 찔끔 흘리였다.

그후부터 우리는 열심히 학습하였다.

가마에 밥을 안치고는 돌아앉아서 땅에다가 글을 쓰면서 직심스레 공부하였다.

그렇기때문에 유격대가 있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다 그러하였지만 특히 작식대가 있는 주변의 눈은 글자투성이였다.

적들의 《토벌》로 하여 산에 올라가 있을 때에는 불무지재에다가도 글을 써보군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해보니 작식대라고 하여 학습을 못할것도 아니였다.

그리하여 그전에는 학습토론시간에 돌아앉아 남이 하는 소리도 제대로 듣지 않던 우리들이 혁명의 원리와 사회발전리치를 리해하면서부터는 앞을 다투어 토론에 참가하였고 기회가 차례지지 않아 나서지 못했을 때에는 섭섭하기까지 하였다.

참으로 항일무장투쟁시기 우리 작식대원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각별하고 세심한것이였으며 뜨겁고 웅심깊은 자애로운것이였다.

나는 지금도 이따금 내 손을 만지며 깊은 추억에 잠기군 한다.

그것은 내 손에 어려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애틋한 사랑이 6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가슴사무치게 안겨와서이다.

1933년 겨울이라고 생각된다.

어느날 중대에 내려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또다시 우리 취사장을 찾아주시였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우리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앞에 이르시여 문득 안색을 흐리시였다.

《손이 다 텄구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슴이 아프신듯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고 오래도록 나의 손을 어루만지시였다.

나는 목구멍으로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라 그만 고개를 돌리고말았다.

《크림을 바르면 좀 낫지 않을가… 불이라도 쪼이면 좀 덜하겠지…》

이렇게 말씀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음성은 저으기 갈리시였다.

순간 나는 눈앞이 확 흐려왔다.

가슴속에서는 뜨거운것이 소용돌이치고 목구멍으로는 쩝쩔한것이 흘러들었다.

이날이때껏 어느 누가 터갈라진 나의 손을 두고 이토록 마음쓰며 살뜰히 대해준적이 있었던가.

째지게 가난한 우리 집에서는 내가 어렸을 때에 시집을 보냈다.

말이 시집이지 그것은 조 4마대를 받고 맘없이 간 시집이였다.

그러니 그 조를 익혀 입에 떠넣는 우리 부모들의 마음인들 오죽했으랴.

어머니는 조 한줌 떠넣고 방아를 찧을 때마다 딸생각이 나서 눈물로 방아확을 적시였고 앞못보는 아버지는 딸을 팔아 목구멍의 거미줄을 치운다고 목이 메여 울고 울었다 한다.

그런데 그 어머니, 그 아버지도 줄수 없었던 그렇듯 뜨거운 사랑을 우리 수령님께서 부어주시는것이였다.

나는 수령님께 그냥 손을 내여맡긴채 목이 메여 울면서 쏟아지는 눈물로 그이의 군복소매를 적시였다.

사실 그때 우리들의 손이 그렇게까지 험한것은 아니였다.

늘 물을 만져 부풀어오른데다가 갑자기 적들의 《토벌》이 들이닥치면 젖은 손으로 이고지고안고 밖으로 내달리다나니 찬 날씨에 손이 좀 얼고 터갈라졌을뿐이였다.

그 손으로 때식을 지어 대원들의 식사를 보장하자니 그게 부끄럽고 미안스러워 저녁이면 더운물을 끓여놓고 문다졌지만 인차 낫지 않아 좀 험해보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의 그 손을 보시고 수고부터 헤아려주시며 그리도 가슴이 아프시여 깊이 마음을 쓰시였던것이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식대원들은 누구보다 물을 많이 만지기때문에 적들이 들어오면 손을 얼굴수 있다고 하시면서 손건사를 잘할데 대하여 우리들에게 당부하시였으며 중대지휘관들에게는 작식대원들을 잘 돌봐줄데 대하여 간곡히 말씀하고 떠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전투를 지휘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로획품가운데 크림같은것이 있으면 그것을 잘 건사했다가 우리 작식대원들에게 보내주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크림이나 분 같은것을 늘 가지고 다니게 되였고 저녁에 불무지에 모여앉아 크림을 꺼내 바를 때면 수령님의 그 사랑이 안겨와 눈시울을 적시군 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사랑이란 말을 흔히 한다.

하지만 그 의미를 다 모르는 이들도 있다.

참사랑이란 어떤것인가. 나는 이런 물음을 종종 받는데 그때마다 거침없이 대답하군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을 다 합치고합친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 바로 이것이 사랑중의 참사랑이라고.

진정 우리 수령님은 사령관이시기 전에 위대한 인간, 위대한 동지이시였으며 우리의 위대한 어버이이시였다.

한두해도 아닌 장구한 세월 그처럼 모진 시련과 곤난속에서도 굴함없이 우리가 꿋꿋이 싸워이길수 있은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그 자애깊은 어버이사랑이 전대오를 보살피고 그 사랑이 항일혁명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끌었기때문이였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도 확신한다.

어버이수령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계시고 그분의 위대한 사랑이 온 나라 전체 인민을 보살피고있기에 백두밀림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은 반드시 성취되고야말것이라고.

인생말년에 혁명의 첫세대로서 앞날의 승리를 락관하는 나의 마음은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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