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방이 튼튼해야 유격대가 잘 싸울수 있습니다》

 

 

《후방이 튼튼해야 유격대가 잘 싸울수 있습니다》

                                                    최 성 숙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의 전사인 인민군군인들을 친혈육처럼 아끼고 사랑하는것은 오늘 우리 사회의 기풍으로 되고있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빛나는 원군전통을 마련해주시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전당, 전국, 전민을 현명하게 이끄시였기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도 항일의 원군정신으로 살면서 잊지 못할 력사의 그 나날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군 한다.

내가 대왕청부녀회를 책임지고 사업하던 1933년 4월초 어느날이였다.

마촌에서 왕청제2구부녀회산하 열성자들의 회의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서둘러 길을 떠났다.

그곳에 당도하니 왕청제2구부녀회책임자인 최금숙동무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며 이번 제2구부녀회열성자회의를 김일성장군님께서 친히 지도해주신다고 하는것이였다.

나는 기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카륜회의가 있은 직후 공청원이 된 때로부터 조선혁명군 대원을 거쳐 이날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마음속에 경모하여마지 않던 김일성장군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이번 회의를 지도해주신다고 하니 나의 마음은 한량없이 부풀어올랐다.

나는 흥분된 심정을 안고 금숙동무를 도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하게 될 회의준비에서 미흡한 점이 없겠는가를 다시한번 하나하나 찬찬히 검토해보았다.

그러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의에 앞서 제2구부녀회사업을 료해하시기 위해 우리들을 부르신다는것이였다.

나는 울렁이는 가슴을 안고 금숙동무와 박현숙동무와 함께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리치백로인의 막내아들인 리민학의 집에 거처하시였는데 함경도식으로 지은 집 웃방에서 집주인들과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고계시였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서 앉으라고 친히 자리까지 권하시였다.

나는 그이의 한없이 소탈하신 인품에 끌려 끓어넘치는 흠모의 정을 안고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 한사람한사람 소개해드리던 금숙동무가 나를 가리키며 이 동무가 로인들을 괄세하는 좌경분자들을 반대하다가 되게 비판을 받고 출당문제까지 제기되였던 동무라고 말씀드리는것이였다.

그바람에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머리를 숙이였다.

바로 그 얼마전에 있은 일이였다.

우리 마을에 며느리가 저녁마다 산고지에 올라가 보초서는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한 로인이 있었다.

그날도 하루종일 망원초에 나가있다보니 며느리가 때식을 제때에 끓이지 못하였다.

로인은 마을사람들앞에서 며느리를 두고도 식사를 제때에 하지 못한다고 서운한 소리를 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구당서기가 대왕청에 내려와 일군들을 모아놓고 되게 다불러세우며 당장 회의를 열고 그 로인문제를 엄하게 취급할것을 지시하였다.

그리하여 한 당원의 집에서 긴급 당지부회의가 열렸다.

나는 그때 당일군은 아니였지만 대왕청부녀회 책임자의 자격으로 그 회의에서 적극 발언하게 되였다.

그런데 회의에서는 그 로인문제가 예상외로 크게 번져갔다.

회의를 지도한 구당서기가 로인의 말을 어마어마하게 분석하더니 로인을 여기에서만 취급하지 말고 군중대회를 열고 강하게 비판시키라는것이였다.

나는 그때 생각하였다.

나의 아버지라면 며느리가 제때에 때식을 끓이지 못한것을 두고 섭섭해하지 않겠는가, 또 그 로인을 군중대회에다 내세우고 두드려대면 그의 가슴은 얼마나 아프겠는가, 앞으로 동네로인들과의 사업은 또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당서기에게 제기하였다.

며느리가 놀러간것도 아니고 보초서러 산에 갔는데 어떻게 제때에 내려와 끼니를 끓이겠는가, 잘못은 내게 있다, 며느리가 내려와 끼니를 끓이지 못하면 나라도 대신 가서 때식을 지어 로인에게 대접해야겠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비판은 내가 받아야 한다, 자기비판을 하겠으니 로인을 개별적으로 만나 잘 타일러주고 그래도 정 말을 듣지 않을 때 군중대회에 내세우고 비판시키면 어떤가고 하였다.

그랬더니 구당서기는 다짜고짜 호된 욕설을 퍼부으며 너는 아무때 봐도 우경기회주의자라고 하면서 이자리에서 잘못했다고 당장 빌라는것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위대한 수령님의 군중전취로선에 어긋나기때문에 빌수 없었다.

그는 우락부락하더니 당장 출당시키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떠나면서 당지부책임자에게 나의 출당문제를 보기 위한 회의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오금박았다.

나의 출당문제는 이렇게 제기된것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차 마촌에 오시여 당시 유격구를 휩쓸고있던 좌경바람을 막아주시여 다행히도 나의 출당문제도 보류되였었다.

금숙동무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미더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시며 동무들이 부녀회사업을 하느라고 수고가 많았겠다고, 왕청지구부녀회사업이 그만하면 괜찮다고 하시더니 좌중을 둘러보시며 내가 한 행동이 옳다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우리들과 자리를 마주하시고 왕청지구부녀회사업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료해하시는것이였다.

이윽고 회의준비가 다 되였다는 련락이 와서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회의장소로 갔다.

회의에는 소왕청과 대왕청, 십리평 등 왕청제2구부녀회산하 각 지부책임자들과 열성자들 50여명에 공청에서 사업하는 녀성간부들까지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회의에서 부녀회 각 지부책임자들의 사업보고를 주의깊게 들어주시고 지난 1년간 부녀회가 해놓은 사업들을 높이 평가해주시였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부녀회사업에서 강령적지침으로 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가운데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것은 유격대원호사업과 관련하여 주신 말씀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저저마다 총을 잡고 유격대에서 싸울것만 바라는 부녀회일군들과 열성자들의 심정을 헤아리시여 이런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지금 우리 조국에서는 인구의 절반이나 되는 조선녀성들이 일본제국주의와 봉건의 2중3중의 억압과 착취속에서 신음하고있습니다. 동무들은 바로 이들에게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의 권리와 자유를 가져다주어야 할 영광스러운 사명을 지닌 일군들입니다.

녀성들의 진정한 해방, 이것은 빼앗긴 조국을 다시 찾고 인민대중이 나라의 주인으로 되는 그런 사회를 세울 때에만이 가능합니다. 다시말하면 녀성들의 진정한 사회정치적해방을 가져오자면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을 우리 조국에서 몰아내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여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바로 이 성스러운 목적을 위하여 손에 총을 잡고 피흘리며 싸우고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앞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은 우리의 혁명무력인 항일유격대오를 더욱 확대강화하여 일제를 물리칠수 있도록 힘을 키우는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녀성해방을 앞당기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전체 부녀회원들은 유격대를 원호하는 사업이 가장 중요하고도 첫째가는 임무라는것을 깊이 자각해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반일인민유격대가 창건된 후 적지 않은 녀성들이 유격대에 입대할것을 탄원해나서고있다고 하시면서 물론 이것은 대단히 좋고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꼭 총을 들어야만 적과 싸울수 있는것이 아니라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동무들이 천에 물을 들여서 군복을 철에 맞게 지어주고 농사를 잘 지어 식량을 제때에 보내주는것도 결국은 원쑤들과 맞서 싸우는것이나 다름없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지금 우리 유격대가 싸우면 싸울 때마다 이기는것은 바로 인민들의 이런 뜨거운 지지와 성원을 받고있기때문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녀회원들이 원쑤들과 싸우다가 희생된 동무들의 유가족을 돌봐주는것도 결국은 우리 유격대를 돕는것이라고 하시면서 그것은 유격대원들에게 부모처자들에 대한 근심걱정을 하지 않고 마음놓고 원쑤들을 반대하여 용감하게 싸울수 있게 해주기때문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므로 부녀회에서는 유격대를 원호하는 사업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여기고 모든 부녀회원들이 유격대원호사업에서 모범이 되도록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어린이들을 혁명의 미더운 후비대로 키우고 자신들도 언제든지 싸움에 나설수 있게끔 만단의 준비를 갖추며 생활도 전투적으로 꾸려나가도록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귀중한 원군정신을 가슴깊이 새겼으며 그처럼 엄혹한 시련속에서도 유격대원호를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쳤다.

그 정신은 동만의 각 유격구들에도 널리 퍼져 어데가나 원군의 불길이 세차게 타번졌다.

그런데 나는 본의아니게도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어길번 한적이 있었다. 그것은 일부 일군들의 좌경적조치에 의해 내가 얼마동안 교통부에 가서 작식일을 할 때에 있은 일이다.

1933년 10월경이라고 생각된다.

당시 대왕청당특별지부서기로 임명되여 사업하던 나는 어느날 뜻하지 않은 일로 하여 그 일을 그만두게 되였다.

그 얼마전에 구당에서 내려온 한사람이 나에게 마을사람들속에서 《민생단》을 잡아낼데 대한 과업을 주고갔는데 그 과업을 집행하지 못한것이 문제시되여 나는 구당을 거쳐 현당에 가서 심의도 없이 철직을 맞고 교통부로 가게 되였던것이다.

나무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때 쓸쓸한 기분을 안고 교통부로 가는 나의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교통부란 련락원들의 숙식을 보장하는 곳이였다.

그때 소왕청 마촌으로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군 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끼때마다 따끈한 식사를 보장하였지만 나의 신상에 부닥친 좋지 못한 일로 하여 늘 마음이 무겁고 괴로왔다.

그리하여 설겆이를 하면서도 그래, 산에 올라가 새초나래를 엮으면서도 그래, 그 나래를 부엌바닥에 펴놓고 아궁이에 무릎까지 들이민채 누워서도 그래, 자꾸만 그 설음이 가슴속에 북받쳐 남몰래 옷깃을 적시며 서럽게 울고울었다.

(혁명의 길이 순탄치 않기로서니 《민생단》을 못잡은탓에 이런 화도 다 당하는가. 차라리 총을 잡고 싸우는게 낫지. 말타는 법도 그래서 배워두지 않았는가.…)

그렇게 석달이 지난 그해 12월말에 적들의 대《토벌》이 있었다.

우리들은 속히 사람들을 피신시켜 십리평으로 들어갔다.

가서 들으니 뜻밖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십리평에 계신다는것이였다.

나는 나의 억울한 심정을 위대한 수령님께 죄다 말씀드릴 생각으로 서둘러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찾아갔다.

가던 길에 역시 같은 심정으로 그이를 찾아가는 리동무를 만나 그와 함께 걸음을 재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십리평의 한 골짜기에서 우등불을 피워놓고 몇몇 지휘관들과 무슨 토의를 하고계시였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서성거리는 우리를 보자 반겨맞으시며 어떻게 찾아왔는가고 친근하게 물으시였다.

나와 리동무는 눈치만 보면서 서로 먼저 말씀드리라고 옆구리를 툭툭 치다가 그이께서 재차 물으시여서야 우리들도 유격대에 입대하였으면 좋겠다는것을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유격대에 모두 받아달란 말이지.》라고 하시며 동무들의 결심이 아주 좋다, 모든 부녀회원들이 다 그런 심정을 가지고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더니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런데 이것 보시오.

동무들이 다 유격대에 들어오면 군중들과의 사업은 누가 하겠습니까. 우리는 한사람이라도 더 각성시켜 유격대를 도와나서도록 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대들을 혁명의 계승자로 키우는 문제도 그렇고 식량과 피복을 비롯하여 유격대의 후방물자를 준비하는 사업도 그렇고 그 모든 일은 일군들이 광범한 군중들과의 사업을 잘해야 성과적으로 해결될수 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유격구를 튼튼히 꾸리는 사업은 유격대에 들어와 총을 메고 일제놈들과 직접 싸우는것이나 꼭같은 중요한 일이라고 하시면서 동무들은 군중속에서 정치사업을 잘하여 유격대에 필요한것들을 충분히 보장하도록 힘껏 일해야 합니다. 후방이 튼튼해야 유격대가 잘 싸울수 있습니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날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며 개인문제를 가지고 그이께 공연한 걱정을 끼쳐드릴번한 자신을 질책하였으며 그이께서 바라시는대로 유격대원호사업을 잘 하여 우리 군대를 왜놈들이 벌벌 떠는 무적의 강군, 강철의 대오로 되게 하는데 모든것을 다 바칠것을 굳게 속다짐하였다.

그래서 나는 개인문제는 물론 유격대에 입대시켜달라는 제기도 더는 못하고 인차 돌아와 맡은 사업에 더욱 열중하였다. 물론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극좌적으로 벌어지고있던 반《민생단》투쟁을 바로잡아주시여 나의 문제도 제대로 해결되였다.

그때의 속다짐이 그만큼 굳었기에 나는 그후부터 다시는 딴생각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원군사업에 전심전력하였다.

그때 우리는 유격대원호사업을 단순히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혁명의 사활적요구로, 도덕의리적인것으로 받아안았으며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였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들의 가슴에 깊이 심어주신 원군정신, 몸소 세워주신 원군기풍의 하나였다.

혹심한 기아와 추위속에서 자기는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면서 유격대원들에게만은 더운밥과 더운물을 날라다주었으며 집이 불타 한지에 나앉으면서도 유격대병실부터 짓기 위해 도끼를 들고나섰다. 험준한 산발을 타며 비탈과 골짜기라는데는 다 뚜지고 씨앗을 심고도 성차지 않아 집주위와 진대나무밑에, 지어는 집을 지으라고 내여준 자기 집터자리에까지 밭을 일구고 낟알을 심어 유격대에 보내주었다.

장갑이나 양말도 만들어보냈으며 수놓은 손수건이나 탐배쌈지도 만들어보내였다.

쌈지에는 만든 사람의 이름도 새겨넣었다.

그러면 유격대원들이 한대 태우면서도 인민들을 생각하게 되였고 돌아와서는 그 이름을 기억했다가 우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였다.

정말 생각이 못미쳐서 그랬지 생각나는것은 다 해가지고 유격대를 원호하였다.

유격대가 싸움을 끝내고 돌아오면 로인, 아이할것없이 다 찾아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그들의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이런 일들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야지 결코 누가 시켜서는 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때 우리가 한 모든 일은 다 자력갱생이였다.

이것도 역시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해주신 원군정신, 원군기풍의 하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늘쌍 우리들에게 어디에다 손을 내밀데도 없고 기대를 가져볼데도 없다고 하시면서 모든것을 제힘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래서 우리는 유격대군복을 지을 천의 염색이 걸리면 가둑나무와 갈매나무껍질로 물을 들였다. 수백m나 되는 광목천도 2~3일어간에 다 날염하여 재봉대에 보내주었다.

우리는 세탁설비도 없고 비누도 없어서 가둑나무를 태운 재를 물에 우려 밭아가지고 그 물로 옷을 빨았다.

약 한알 없고 약제사도 없는 조건에서 산에 올라가 약초를 해다가는 자체로 처방을 내고 약도 만들어 부상자들과 환자들을 치료하였고 폭탄도 유격대가 구해오는 화약이나 쇠줄같은 일부 자재를 내놓고 나머지는 다 자체로 마련해서 제조하였다.

그때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전투적이였다.

그것도 역시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해주신 원군정신, 원군기풍의 하나였다.

임무를 받고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수행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전투를 방불케 했다.

빨래하는 과정만 보아도 그러했다.

빨래는 흐름식으로 하였는데 빨래감을 삶는 조, 빠는 조, 말리는 조, 받아서 손질하는 조 이렇게 조를 짜서 진행하였다.

급할 때 이렇게 흐름식으로 하면 한개 중대의 군복같은것은 3시간이면 다 처리하였다.

개울가에 가마를 걸어놓고 빨래를 할 때면 가마거는 조가 가마를 걸고 나무를 해오고 물을 길어다 붓는것까지 하였다.

삶는 조에서는 불을 때고 두 가마면 두 가마, 세 가마면 세 가마에다 빨래를 삶아냈다.

그러면 빠는 조에서 그것을 가지고 개울로 뛰여가고 빠는 조에서 빨래를 빨아오면 말리는 조에서 그것을 받아 말리웠다.

여기서 제일 힘든것은 빨래를 말리우는것이였다.

물론 해빛에 말리우는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마에다 말리웠다.

그래서 빨래할 때에는 개울옆에다 소여물가마나 중국사람들의 커다란 빵가마를 10여개씩 쭉 걸어놓고 한쪽에서는 삶고 한쪽에서는 화끈 단 가마에다 세탁한 옷을 말리워냈다.

미처 돌보지 못한다든가 딴눈을 팔게 되면 빨래가 눌기때문에 우리는 그 빨래가 다 마를 때까지 순간도 숨돌릴 틈이 없이 부지런히 뒤지고 또 뒤졌다.

그러다나니 빨래를 말리우는 동무들의 옷은 땀에 젖어 물주머니가 되다싶이하였다.

이렇게 하여 말리우는 조에서 빨래를 거의다 말리워내놓으면 후처리하는 조에서 그것을 잔손질하여 반듯한 곳에 개여놓고 발로 꽁꽁 밟았다.

그리고 일정하게 주름을 편 다음 서로 마주 당겨서는 다리미로 다린것처럼 알뜰하게 손질해서 유격대에 보내주었다.

한번은 적기의 맹폭격속에서 유격대의 군량미를 마련한적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왕청유격대가 동녕현성전투를 위해 마촌에서 떠나기 전날에 있은 일이였다.

금숙동무가 바삐 나타나더니 전투계획이 변경되여 장군님께서 부대를 거느리시고 급히 떠나시는데 빨리 군량미를 마련해야겠다고 하는것이였다.

원래 그날 하루는 유격대가 마촌에서 묵고 다음날 밤에 떠나는것으로 되여있어 널널이 시간을 잡아 일을 조직했던것인데 이렇게 갑자기 정황이 급변하니 야단이 아닐수 없었다.

속히 리수구골안에 사람을 띄워 준비를 다그치게 해야 하였다.

그런데 바삐 련락을 띄울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말을 하나 빌렸다.

그런데 말을 탄다는것이 그만 안장을 붙잡은채 말배밑으로 훌렁 기여들어가고말았다.

급한 마음에 말탈 생각만 하다나니 말안장끈이 늦춰져있는줄도 모르고 그냥 몸을 솟구쳤던것이다.

주위에 있던 유격대원들이 와!ㅡ 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나는 언제 거기에 신경을 쓸 경황이 없었다.

안장끈을 조이고 다시 올라서 쏜살같이 내달렸다.

리수구에 도착하자 지체없이 군량미준비를 다그쳤다.

식량이 준비되는 차제로 말에 가득 지워 내려보냈다. 그리고는 한쪽으로 연자방아를 내처 돌리게 하였다.

그런데 이때 요란한 동음이 울리더니 적기가 우리의 상공에 날아들었다. 날아들기 바쁘게 무섭게 내리꼰지면서 폭탄들을 마구 던졌다. 순간에 골안은 화염에 휩싸였다.

귀틀집은 무너져 사람들이 깔리고 소가 너부러져 발버둥쳤다.

그러나 적비행기가 물러가자 우리는 다시 털고 일어나 방아채를 잡고 어깨에 당김줄을 걸고는 필사적으로 끌고밀면서 방아를 돌리였다.

그런데 몇바퀴 돌리기 전에 또다시 적기들이 사납게 덤벼들었다.

우리는 결사전을 벌리였다.

폭탄이 작렬하고 기총탄이 퍼붓는 속에서도 우리는 일손을 놓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그날중으로 싸움터로 떠나는 유격대동무들에게 량식을 지워보냈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동녕현성으로 떠나가는 유격대원들을 우리는 울며 웃으며 바래워주었다.

금방 격전을 치르고난 우리들이였지만 부디 승리하고 몸성히 돌아오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싸움을 끝내고 돌아오는 유격대원들을 볼 때면 우리들은 눈물이 나도록 가슴이 뻐근했다. 붉은기를 날리고 승전고를 울리며 보무당당히 유격구로 돌아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배심이 든든해지고 힘이 용솟음쳤다.

이렇듯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마련해주신 그 위대한 원군정신, 원군기풍이 있었기에 항일유격대는 국가적후방도, 정규군의 지원도 없는 악조건에서도 강도 일제를 쳐부시고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할수 있었으며 3년간의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에서도 우리는 미제를 타승하고 영웅조선의 기상을 온 세상에 떨칠수 있었던것이다.

나는 오늘도 근로단체사업을 맡아보면서 군중속에 들어가 정치사업을 앞세워 그들을 당정책관철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며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전사들인 우리 인민군대를 더욱 사랑하고 적극 원호하는것을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에게 주신 필생의 과업으로 받아안고 거기에 모든 힘을 다 바쳐가고있다.

오늘 하늘과 땅, 바다 그 어디에서나 우리의 영용한 인민군장병들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며 조국의 안녕과 인민의 행복을 지켜 그토록 배심든든히 자신만만하게 싸워나가고있는것도 항일의 원군전통을 이어받은 우리 인민의 위대한 원군정신, 원군기풍이 있기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믿는다.

일제를 쳐부시고 나라를 찾은것처럼, 미제를 타승하고 승리의 7. 27을 맞은것처럼, 강철의 령장을 높이 모시고 위대한 인민의 성원을 받는 우리 인민군대는 조국통일도 이룩하고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도 끝까지 지켜낼것이며 그 성스러운 총대에 떠받들린 내 나라, 내 조국은 더욱 부강번영할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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