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품에 안아주시여

 

 

위대한 품에 안아주시여

                                         리 을 설        
    

사람은 길지 않은 한생에 먼길을 걷게 된다. 사람이 머나먼 길을 곡절없이 곧바로 걸으며 한생을 빛나게 살자면 시작을 잘 떼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의 초행길을 이끌어준 스승을 언제나 잊지 못하는것이다.

10대의 소년시절에 총을 메고 항일전에 나섰던 나에게 있어서 그 잊지 못할 한생의 스승은 우리모두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철없는 나를 조선인민혁명군대오에 세워 총을 메워주시였고 걸음걸음 손잡아 이끄시여 혁명가로 키워주시였다.

그 고귀한 은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한량없는 감격으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내가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한것은 1937년 여름이였다.

나는 장백현 18도구 약수골에서 살면서 소년회에 들어 활동하였는데 당시는 온 장백땅이 혁명열기로 도가니처럼 끓어번지고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밤을 새우며 유격대에 보낼 군량미를 찧었고 한뜸두뜸 군복을 누비며 원군물자마련에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우리들도 혁명군원호사업을 돕느라 바쁘게 뛰여다니였다. 압록강건너 국내로 통신련락도 다니고 적정감시임무도 수행하였다. 밤이면 야학방에 모여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시간가는줄 몰랐다.

혁명가요도 많이 배웠다. 혁명가요는 배우기 쉽고 부르기 좋아서 장백일판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나날에 나는 유격대에 입대하여 총을 잡고 일제원쑤놈들과 싸워야겠다는 절절한 소망을 품게 되였다. 그러나 한다하는 청년들도 유격대에 들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판에 나같은 애숭이들의 입대지망같은것은 조직에 제기한대야 귀담아들어줄것 같지도 않아 걱정도 하였다. 하지만 한번 품은 꿈은 가슴속에 억척같이 자리잡아서 나는 자나깨나 오직 그 한생각뿐이였다.

이제 유격대가 오기만 하면 누가 뭐라든 기어이 따라갈테다.…

나는 누구도 모르게 속다짐하며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우리가 사는 약수골에서 지척인 19도구 지양개마을에 와서 연예공연을 하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연설까지 하시였다는 감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였다. 그 얼마후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솔하신 유격대가 보천보를 들이쳤다는 희한한 이야기가 또 전해지였다.

나는 더 참을수 없어 지양개로 달려갔다.

거기에 가보니 나같은 소년들이 여럿이 벌써 와있었다. 그들은 나이나 살아온 경위가 다 나와 비슷하였고 나이는 어려도 모두 조직에서 단련된 동무들이였다. 우리는 인차 허물없는 사이가 되여 입대열의로 불타는 심정을 주고받으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였다.

우리가 지양개에 온지 3일째 되는 날이였다.

보천보의 밤하늘에 광복의  홰불을 올리시고 간삼봉에서 왜놈들의 대부대를 쳐이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대들을 이끄시고 지양개로 오신다는 련락이 왔다. 우리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유격대를 마중하여 달려나갔다.

때마침 붉은기를 휘날리며 혁명군대오가 마을어귀에 들어서고있었다.

김일성장군 만세!》

골깊은 장백의 밀림속에 환호성이 터져오르고 유격대와 인민들의 감격적인 상봉으로 마을이 들썩하였다.

마을사람들은 유격대원들을 에워싸고 위대한 장군님의 안부를 물으며 전투성과를 축하하였다. 곳곳에서 유격대원들의 전투담에 경탄하는 탄성이 터져오르고 통쾌한 웃음을 터치는 인민들의 기쁨이 온 마을에 차넘치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 웃음판, 이야기판에 끼여들 경황이 없었다. 빨리 지휘관을 만나 입대문제를 결판짓자는 조급한 생각을 어찌할수 없었던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한 지휘관을 만나 우리의 입대지망을 이야기하게 되였다.

그런데 그 지휘관은 입대하러 왔다는 우리 이야기를 듣더니 용타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생각은 좋지만 아직 안된다, 동무들처럼 어린 동무들이 어떻게 유격대생활을 하겠는가, 한 2~3년씩 더 단련하면서 몸도 더 튼튼해지고 키도 더 큰 다음에 찾아오라고 하였다.

그의 말에 우리는 의기소침해서 어깨를 떨구었다. 그중에도 나처럼 체소하고 키가 작은 동무들은 락심천만하여 어쨌으면 좋을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유격대에 입대하는것은 마음만 가지고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갈마들었다.

그렇다고 하여 그냥 돌아설수는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을 찾아뵙고 청을 드리자, 그분께서는 우리들의 청을 받아주실것이다, 장군님을 뵙기전에는 절대로 돌아갈수 없다.…

우리는 이렇게 작정하고 한 유격대원에게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는 우리의 말을 다 듣고나서 잘 생각했다고, 장군님을 만나뵈옵고 가르치심을 받으라고 고무해주었다.

뒤늦게 안 일이지만 그가 바로 후날 나의 입당보증인으로 된 김운신동무였다.

우리는 그의 말에서 힘을 얻고 기어이 위대한 장군님을 찾아뵈옵자고 마음을 더욱 굳히였다.

그날밤 우리는 새날이 밝을 때까지 잠들수 없었다. 그런데 이른아침에 김운신동무가 우리를 찾아왔다.

그는 우리의 손목을 부여잡으며 흥분된 목소리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모두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정작 기다리던 시각이 눈앞에 닥쳐오니 온몸이 굳어지는듯 하였다. 우리는 김운신동무의 재촉을 받고서야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문밖으로 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이렇게 물으시였다.

《동무들은 유격대에 입대하여 싸울 결심을 안고 찾아왔다지?》

우리들은 약속이나 한듯 일제히 답변을 드리였다.

《그렇습니다. 장군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의 씩씩한 대답이 마음에 드시는듯 환히 웃으시면서 이름과 나이, 고향과 부모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알아보시였다.

그러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유격대에는 왜 들려고 하오?》라고 물으시였다.

우리는 우리 나라를 빼앗은 일제침략자들을 쳐부시기 위하여 유격대원이 될것을 결심하였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을 대견스레 바라보시며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의 결심은 참 좋소. 그러나 동무들은 유격대생활이 매우 곤난하다는것을 알아야 하오. 동무들은 아직 나이도 어린데다 몸도 약해서 곤난을 극복하기 어려울게요.

때문에 단단히 결심을 다지지 않고는 혁명할수 없소.

우리는 그이의 말씀에 격정을 누르지 못하며 결의를 말씀드리였다.

《우리도 곤난을 이겨낼수 있습니다.》, 《배고픈것도 참을수 있습니다.》, 《눈우에서도 잘수 있고 싸움도 할수 있습니다.》…

《그래 자신있단말이지?》

《자신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의 대답에 만족해하시며 크게 말씀하시였다.

《좋소. 나는 동무들이 다진 맹세를 지켜나가리라 믿소!》

이리하여 우리는 혁명의 군복을 입게 되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을 직접 만나뵈옵고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게 된것이 꿈만 같았다.

우리는 영원히 이 감격을 잊지 않고 일제를 쳐물리치는 조국광복의 성스러운 위업에 한몸바쳐 싸우리라 굳은 맹세를 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우리 소년들을 굳게 믿으시고 마안산에서 데리고온 소년들과 지양개에서 새로 입대한 소년들로 소년중대를 조직해주시였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결심하실수 있는 일대 용단이였다.

사실 유격대생활에는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든 난관과 시련이 앞을 막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일부 지휘관들은 저 어린애들이 부대의 짐이 되지 않겠는가, 저들이 과연 준엄한 혁명의 시련을 이겨낼수 있겠는가고 하면서 마음을 놓지 못하였다. 그들의 우려는 근거없는것이 아니였다.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대기동전을 계획하고있는 부대활동의 견지에서 보면 더욱 그랬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롭게 걸머지게 될 부담을 생각하면서 소년들의 입대열망을 외면하는것은 혁명의 승리를 확신하며 미래를 사랑하는 혁명가의 립장이 아니라고 보시였기에 력사에 류례없는 간고한 유격전쟁을 지휘하시면서 우리 소년들을 혁명군대오에 받아주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때를 회고하시여 불멸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솔직한 심정을 말한다면 그 소년들은 하나같이 내 마음에 들었다. 계급적각오만 보더라도 어른들보다 못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굶을 때 자기들도 굶을수 있다고 한 소년들의 말에서 그날 나는 특별히 강한 인상을 받았다.

말로만 애국을 하는 우국지사들이나 초로인생을 운운하며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혁명의 배신자들과 타락분자들에 비해볼 때 참군소망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이 소년들이야말로 얼마나 고결하고 열렬한 넋을 지닌 애국자들인가. 소년들이 어린 나이에 입대를 탄원해나선것은 사실 그 가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꽃다발을 안겨주어야 할 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그 소년들을 만나는 과정에 유격대의 후비군육성문제에 신경을 써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였고 소년들로 특수한 군사조직을 뭇게 되면 그것이 곧 후비군육성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될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타산을 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년중대를 조직하신후 나어린 대원들을 군사정치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키기 위하여 실로 크나큰 로고를 바치시며 온갖 지성을 다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우선 우리들이 지양개에서 두주일가량 군정훈련을 받으면서 혁명군대의 면모를 갖추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부후물방향으로 진출하실 때에는 우리도 행군대오에 세워주시고 행군을 통하여 단련을 하고 사상적각오도 높이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고 이끌어주시였다.

그 행군계획이 선포되였을 때 나는 한번 본때를 보이게 되였다고 좋아하였다. 거의 매일이다싶이 지게를 지고 혜산이나 신파쪽으로 나무팔러도 다니였고 이래저래 산골길에는 미립이 터서 행군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행군 첫시작에 벌써 완전히 뒤집혀지고말았다.

사위는 한치앞도 분간하기 어렵게 어두운데 빠른 속도로 전진하는 대오를 따라가자니 등골에서 와짝와짝 땀이 났다. 걸핏하면 나무그루터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군 하였다. 게다가 대오에서 떨어질가보아 앞동무의 배낭에 붙인 흰천에 신경을 쓰다나면 나무가지를 피하지 못해 얼굴이 사정없이 긁히였다.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총을 춰올리느라 잠시만 멈칫거려도 자기 위치에서 밀려나게 되는데 제자리를 찾아가느라 덤벼치다나면 또 넘어져서 된욕을 보군 하였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해낸 보람이 있어 대오에서 떨어지지는 않았다.

마침내 휴식명령이 내려 대오가 어느 한 산마루에서 쉬게 되였을 때였다.

나는 멀리 골짜기에 희미한 불빛이 가물거리는 마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첫행군이 예상외로 힘들다보니 생각이 많았던것이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시여 다정하게 물으시였다.

《힘들지 않소?》

나는 힘들지 않다고 기운을 내여 말씀드리였다.

《왜 힘들지 않겠소. 그러나 이런 곤난을 극복해야 유격대원이 될수 있소.》

이렇게 허물없이 허두를 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행군에서 주의해야 할 점들을 하나하나 자상히 일러주시였다.

그러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는 고향이 함북도 성진군 학서면이라고 했지?》라고 하시면서 참 좋은 고장이라고, 조선의 동해바다는 바다물이 맑고 경치가 아름답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런데 동무네 집은 두번씩이나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는데 무엇때문인가고 하시며 설음많은 우리 집안래력도 다시 물어주시였다.

그러시고 사연을 말씀올리는 나의 말을 다 들어주시고 어깨를 쓸어주시며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조선사람모두가 제 나라, 제 땅에서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우리 유격대원들이 모진 곤난을 극복하면서 일제놈들을 족치고있는것이요.

혁명가들이 겪는 고난이 무엇을 위한것인가를 깨우쳐주시는 그이의 말씀은 나의 가슴에 천백배의 힘과 용기를 안겨주었다.

행군은 계속되였다. 그러나 그이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은 잊지 못할 첫 휴식이 있은 그때부터 나는 힘든줄을 몰랐다.

나는 수천수만리로 이어질 간고한 행군의 첫걸음을 이렇게 뗐다. 첫 행군의 어려움을 이겨낼수 있도록 깨우쳐주시고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그 고귀한 은정이 없었더라면 나는 첫 행군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였을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 걸음마를 뗀 우리 꼬마대원들이 첫 전투도 잘 치르도록 각별히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역시 장백에서 림강으로 행군할 때인데 그때 주력부대는 수십차례의 전투를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한번도 전투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꼬마대원들의 전투참가를 일체 엄금하시였기때문이였다. 언제인가 전장에 가까이 있던 꼬마대원이 눈먼 총알에 맞아 부상을 당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전장출입금지령》이 내려졌던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투가 시작되면 오금이 쑤셔서 진정할수가 없었다. 우리는 매일같이 이제는 우리도 싸울수 있으니 전투에 내보내달라고 청을 드리였다.

그러한 어느날 주력부대가 신방자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대에 숙영을 명령하시고 지휘관회의를 여시였다.

지휘관회의에 이어 일찍 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때이르게 자라고 하는것이 전투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좀처럼 잠을 이룰수 없었다.

아니나다를가 우리가 번거로운 생각에 뒤채기다가 잠든지 얼마 안돼서 전투비상소집구령이 내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근에 있는 목재소로 식량을 호송하는 이곳 산림경찰대놈들을 소탕할것을 작전하신것이였다.

부대는 새벽녘에 신방자에서 좀 떨어진 도로지점에 이르게 되였다. 매복지점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서 우리 소년중대원들이 첫 전투를 하게 된다는것을 알려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은 이제 첫 전투를 하게 됩니다.

이미 학습과 훈련과정에서도 여러차례 강조하였지만 적과의 싸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는것입니다.

신심을 가진 사람만이 적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묘술도 찾아내고 대담하게 행동할수 있습니다.

동무들도 실지 오늘 전투를 통하여 알게 되겠지만 원쑤놈들은 얼마든지 때려잡을수 있는 비겁한 놈들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든든히 먹고 한번 본때있게 싸워봅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듯 신심을 안겨주시고 우리들을 7련대의 구대원들과 같이 길남쪽 묵밭변두리숲속에 매복시키시였다. 맞은켠 북쪽의 고지에는 경위중대를 배치하시였다.

우리는 구대원들속에 끼여서 그들이 하라는대로 은밀하게 진지를 차지하였다.

구대원들과 함께 있으니 한결 마음이 놓이였으나 막상 전투에 직접 참가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방망이질하는것 같았다.

어느덧 시간이 퍼그나 흘러 날이 새는데 적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 시간은 퍼그나 지루하였다.

비까지 축축히 내려 잔등을 적신 비물이 배밑으로 흘러들었다.…

나는 움직이면 매복진지를 로출시킨다는것을 생각하면서 조급한 마음을 달래였다.

그때였다.

《어깨가 이렇게 들먹거리는걸 보니 겁이 나는 모양이군.》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나의 어깨를 가벼이 눌러주시였다.

부드럽게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이였으나 나는 얼굴이 확 붉어졌다.

《일없소. 처음엔 누구나 그런 법이요. 동무도 이제 전투를 하고나면 자신이 생길거요.》

그이의 말씀에 나는 마음이 든든해지면서 온몸에 힘과 용맹이 솟구침을 느끼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길옆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시며 보이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러시고는 동무는 그 나무쪽을 겨냥하고있다가 사격하라고 일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른 소년중대원들에게도 그렇게 일일이 가르치심을 주시고 힘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또다시 나에게로 오시여 몸소 조척을 보아주시고 바로잡아주시면서 사격명령을 받으면 덤비지 말고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기라고 따뜻이 일러주시였다.

그때로부터 얼마간 시간이 지나서였다.

마침내 적들이 나타났다.

식량을 가득 실은 말파리들이 련달아 늘어서고 그 량옆에는 호송대원놈들이 줄줄이 늘어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이 매복진에 완전히 들어서기를 기다리시였다가 사격명령을 내리시였다.

순간 나는 겨냥하고있던 놈을 향해 첫 총탄을 내쏘았다. 키가 구척같은 놈이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통나무처럼 텅하니 나가너부러졌다.

나는 저도 모르게 환성을 올리며 연방 방아쇠를 당기였다. 적들은 완전히 혼란에 빠져 아우성을 치며 삼대쓰러지듯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돌격명령을 내리시였다.

돌격나팔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치고 번개처럼 돌진하는 우리의 서리발총창에 놈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참으로 통쾌한 소탕전이였다.

10분도 되나마나한 이 전투에서 우리는 70~80명의 적들을 단숨에 요정내였다.

나는 전장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구겨박힌 말파리주변에 놈들의 시체가 너저분하였다. 놈들의 처참한 몰골을 보느라니 위대한 수령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적들이 별게 아니며 싸우면 능히 이길수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우리는 전투에서 많은 량의 무기와 탄약, 식량과 피복을 로획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5리쯤 숲속으로 들어가서 숙영하도록 하시고 전투총화를 지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소년중대원들이 첫 전투에서 잘 싸웠다고 치하하시면서 우리들의 이름까지 하나하나 불러주시였다.

이처럼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으면서, 그이의 세심한 보살피심을 받으면서 첫 전투를 성과적으로 치르었으며 그 어떤 싸움도 자신있게 할수 있다는 배짱과 담력, 만만한 투지와 신심을 간직하게 되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수백수천차례의 전투를 치르었다. 그러나 첫 전투에서 얻은 슬기와 담을 지니고 언제나 싸워이겼으며 시련많은 투쟁의 고비들을 억척같이 이겨내였다.

그것은 우리 전사들을 위대한 품에 안아주시고 간고하고 준엄한 혁명의 수십만리길을 변함없이 꿋꿋이 걸어나갈수 있도록 첫걸음마를 떼여주고 보살펴주고 이끌어주신 위대한 스승, 위대한 어버이의 고귀한 사랑과 믿음에 대한 숭고한 이야기로 력사에 길이 전하여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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