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혁명의 리익을 위하여

 

 

오직 혁명의 리익을 위하여

                                                  오 백 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당원은 혁명을 위하여,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종국적승리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는 자각적인 혁명투사들입니다.》

당원들이 혁명의 리익을 위하여서는 모든 정력, 모든 지혜, 지어는 생명까지 바치여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투쟁하는 혁명가적품성을 소유할것을 요구하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 교시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1933년 6월 수령님께서 오의성부대에 담판하러 가시던 일을 회상하게 된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50여명의 유격대원들을 친솔하시고 선두에 붉은기를 휘날리면서 반일부대가 주둔한 라자구로 오직 혁명을 위하여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떠나가시였던것이다.

그 당시 조선공산주의자들을 보기만 하면 학살하던 반일부대가 수천명이나 집결되여있는 곳으로 얼마 안되는 대원들을 거느리고 들어가신다는것은 사실 위험천만한 일이였다.

그것은 목숨을 내걸고 혁명을 위하여 나설 용단과 헌신성, 어떠한 위험속에서도 공산주의자로서의 견결한 립장을 고수하기에 준비된 그러한 혁명가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감히 엄두도 낼수 없는 일이였다.

당시 일부 반일부대들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을 적대시하고있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만주를 강점한 첫날부터 반일의 기치를 들고 장학량부대에서 떨어져나간 수많은 반일부대들을 진압하려고 날뛰였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무서워하는것은 유격대와 반일부대사이의 련합이였다.

놈들은 공산주의자들이 만일 반일부대들을 자기 영향하에 넣기만 한다면 그것은 무서운 반일력량으로 강화될것이라고 공포에 떨고있었다.

그러기에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기를 쓰고 공산주의자들과 반일부대를 리간시키려고 악랄한 책동을 집요하게 감행하였다.

놈들은 《만보산사건》을 조작하여 조중인민의 리간을 꾀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조선사람은 일본의 앞잡이》라느니, 《공산당은 반일부대를 무장해제하려고 한다.》느니 하면서 민족리간정책에 미친듯이 날뛰였다.

사상적으로 각성되지 못한 반일부대들은 적들의 이러한 기만술책에 넘어가 항일유격대에 대하여 적대적행동을 감행하는데까지 이르렀다.

반일부대들은 조선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일제의 《앞잡이》라고 하여 죽이고 《공산당》이라고 하여 죽이기 시작했다.

그런데다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의 내부를 파괴하기 위하여 조작한 반혁명간첩단체인 《민생단》과 극단한 좌경적구호를 들고나온 대국주의자들과 종파분자들은 일제의 민족리간정책에 맞장구를 쳤다.

그들은 반일통일전선로선을 외곡하여 《반일부대와는 하층통일만 해야 한다.》느니 《반일부대 병사들로 하여금 자기 두령을 죽이고 반변해나오게 해야 한다.》고 지껄이면서 반일부대들이 조선공산주의자들을 더욱 적대시하도록 책동하였다.

원래 지주, 자본가계급을 대표하는 반일부대상층은 반일적인 립장이 불철저한데다가 적들의 악랄한 책동이 가해지자 일제와 싸우는것은 제쳐놓고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려들었고 또한 그 일부는 동요하여 적에게 투항할 기미를 보이고있었다.

이러한 정세하에서 당시 반일부대들과의 반일통일전선을 형성하고 그들과의 단결을 강화하는것은 혁명의 전진도상에서 해결하여야 할 초미의 문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하시던 첫시기부터 다른 나라 공산주의자들과는 물론 광범한 반제력량과의 단합을 실현하여야 한다는 확고한 혁명적립장을 밝히시고 실천활동으로써 산 모범을 보여주시였다.

반일부대들을 반일공동투쟁에 이끌어들일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방침을 높이 받들고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이 반일부대들에 들어가 반일부대와의 단결을 강화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그러나 일제의 민족리간책동과 종파분자들의 좌경기회주의적 무모한 책동 그리고 반일부대내 상층들의 반동적본성으로 말미암아 반일부대와의 공동전선결성문제에서는 다시 난관이 조성되게 되였다. 당시 왕청현당위원회안에 은밀히 잠입하여 군사부책임까지 지고있던 화요파이며 일제주구인 김명균과 같은자는 의식적으로 조중인민의 리간을 조성하는 악랄한 책동을 꾀하였었다.

그자는 《보위단》에서 반변하여 유격대로 넘어온 아직 의식이 낮은 대원이 적통치구역에 나갔다가 배는 고픈데 돈은 없고 하여 어떤 음식점에 들어가서 돈을 안주고 음식을 먹고 왔다는것을 자백하자 당장에 그 대원을 총살하였을뿐만아니라 이러저러한 구실로 대원들을 마구 총살하는 악랄한 범죄행위를 감행했다.

이것을 보자 일부 중국인대원들은 공포를 느끼고 유격대에서 도망쳐서 부근에 있던 반일부대인 관부대를 찾아가 《유격대는 중국사람을 함부로 죽인다.》고 말하게 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반일부대들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였다.

관부대에서는 반일부대사업을 위하여 유격대에서 파견되여 그곳 참모장의 직위에서 사업하고있던 김은식동무와 4명의 조선사람을 무참히 학살하였고 반일부대인 동산호부대에서는 당시 유격대의 별동대장으로 활동하고있던 충실한 공산주의자인 리광동지를 비롯한 33명의 별동대동무들을 체포하여 학살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되자 유격대원들의 분노와 복수심도 또한 걷잡을수 없이 커갔다.

유격대원들은 당장 동산호부대를 치고 무장을 해제시켜야 한다고 들고일어났다.

사태는 아주 험악하여졌다.

강적 일제와 싸우는 길에서 비록 립장이 철저하지는 못하다 할지라도 일제를 반대하는 반일부대들과 적대관계에 놓이게 된다는것은 혁명에 얼마나 큰 손실인가!

혁명의 리익을 위하여 알륵과 오해를 아량있게 극복하고 반일부대와 반일통일전선을 형성해야 하며 조중인민의 단결된 힘으로 공동의 원쑤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 다같이 나서게 해야 할것이였다.

혁명을 위하여서는 이 어렵고 중대한 임무를 반드시 수행하여야만 하였다. 혁명은 이 위험한 고비를 풀기 위하여 서슴없이 생명을 내걸고나서야 할 사람을 절실히 요구하였으며 이 어려운 사업을 해결할 능숙한 수완과 정치사상적인 준비를 갖춘 혁명가가 나서기를 요구하였다.

당시 오의성부대에 비밀리에 들어가서 비서장으로 사업하고있던 동무는 이 문제를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수 없으므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셔야만 해결할수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여왔었다.

그러나 동지들은 그이의 신변을 념려하여 어찌할바를 모르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태연히 오의성부대로 떠날것을 결심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반일부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것은 혁명의 전도와 관련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또한 능히 해결할수 있는 문제입니다. 물론 그들이 정치적으로 락후하고 일제의 리간정책에 속아 무분별한 행동을 감행하고있는만큼 이 사업은 어렵고 복잡하며 위험을 동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과의 사업은 가능하며 또한 꼭 해야 할 혁명과업인데 곤난이 있다고 하여 손을 뗀다면 이것은 진정한 혁명가의 태도가 아닙니다.

오직 혁명을 위하여 그처럼 견결하시며 혁명을 위하여서라면 물불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한몸을 서슴없이 바쳐나아가시는 그이의 이 고결한 혁명가적품성에 우리모두의 가슴은 격동되였다.

수령님에 대한 굳은 신뢰와 존경!

우리는 그이께서 가시는 길 그 어디라도 따라나설 굳은 결의를 다졌다.

우리는 저마다 서로 앞을 다투어 그이를 따라나설것을 자원해나섰다.

이때 나의 간절한 소원도 이루어져서 나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가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호위하여 그이와 함께 간다는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떠한 위험속도 두려움없이 마음이 든든하였다.

당시 오의성부대는 일시 라자구시가를 점령하고있었다.

우리의 사령관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나팔을 불고 붉은기를 나붓기며 전진하는 우리 대렬의 선두에서 말을 타시고 위풍당당하게 라자구시가로 들어가시였다.

그이께서는 반일부대들이 우리를 해칠수도 있다는 위험에 대하여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계신듯 하였다.

어디까지나 태연자약하시였고 자신만만한 태도이시였다.

우리는 가슴을 내밀고 보무당당히 오의성부대본부로 행진해갔다.

우리의 당당한 위풍과 도도한 태도에 위압된 반일부대병사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감히 우리에게 부접을 못하였다.

오의성을 비롯한 반일부대우두머리들도 감히 김일성동지의 대담하고도 당당하신 태도에 소홀히 대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우리가 담판을 하러 왔다는것을 알자 저희들끼리 오래동안 쑤군덕거린 후에야 겨우 자기들의 당황한 태도를 수습하고 어디 한번 만나보자는격으로 담판에 응하였다.

처음에 오의성은 저희들의 세력이 크다는것을 믿고 조선공산주의자들을 좋지 않게 여긴다는것을 꺼림없이 드러내보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침착하게 그리고 태연하고 당당하면서도 례절바르게 그들을 상대하시였다.

제아무리 허장성세하는 오의성부대우두머리들이였지만 그이의 외유내강한 혁명가적풍모에는 머리를 숙여 존경과 례절로 대하지 않을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리를 밝혀가며 그들을 설복하기 시작하시였다.

론리정연한 그이의 주장과 혁명의 대국을 한손으로 쥐였다폈다 하시는 지략과 기개에 오의성은 경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오의성은 처음에 자기의 옹졸한 생각을 고집도 해보고 머리도 기웃거려보았으나 나중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사상과 정연한 론리에 완전히 감복되여 그이앞에 머리숙여 존경의 뜻을 표시하면서 친선과 련합을 약속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은 최고존칭으로 《김사령》이라고 그이를 부르며 깍듯이 례절을 갖추어 존대하였다.

이렇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부대우두머리들과의 담판에 성공하시여 반일통일전선형성에서 일대 전환을 일으키시였다. 이것은 공산주의자들이 반일부대를 반일공동투쟁에 인입함에 있어서 결정적계기로 되였다.

만약 이 막힌 고리를 풀지 않았더라면 혁명은 얼마나 큰 손실을 입었겠는가!

이 전환이 없이는 반일부대들을 그렇게도 장기간 우리편으로 이끌어 일제를 반대하여 나아갈수 없었을것이다.

오직 한몸을 서슴없이 혁명에 바치시는 고결한 혁명정신으로 이 위기를 타개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헌신적투쟁이 있었기에 혁명은 일대 앙양에로 전환되였던것이다.

담판이후 분산된 반일부대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공동의 원쑤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 력량을 집결하여 우리 유격대와 함께 싸우게 되였다.

그이의 지휘밑에 1933년 9월 6일 우리 유격대와 함께 1 000여명의 반일부대들이 동녕현성을 진공한 대전투, 그리고 대전자, 라자구 전투들과 1936년 8월에 있은 무송현성전투 등 크고작은 전투들에서 반일부대들과의 련합작전은 련속적인 대승리를 쟁취하였다.

지금도 나에게는 동녕현성전투직후에 오의성부대를 인입하여 왕청시가를 치고 옷을 비롯한 많은 겨울나이용물자를 로획하여 인민들에게 나누어주면서 환영받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 전투를 통하여 유격대와 반일부대와의 단결은 강화되였으며 인민들속에서 항일유격대의 위신과 신망은 비할바없이 높아졌었다.

이 거대한 전환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혁명의 리익을 위하여서는 어떠한 위험속에라도 서슴없이 뛰여드시여 혁명을 위기에서 구원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가적품성에 나는 오늘도 가슴뜨거워지는것을 느끼며 수령님의 이 이신작칙의 고상한 풍모를 따라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금 가슴을 친다.

우리 조국은 아직 통일되지 못하였다.

우리는 안일한 생활을 추구할수 없다.

혁명의 리익을 위하여서라면, 당과 수령의 부름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어떤 어려운 일, 어떤 위험한 곳에나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생명까지 바쳐 서슴없이 뛰여들 사상적준비가 항상 되여있어야 한다.

누구나 말하기는 쉽지만 임의의 순간에 이를 실천한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실천하여야만이 바로 위대한 수령님의 참된 혁명전사이며 주체의 혁명적당인 조선로동당의 당원이라고 떳떳이 말할수 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을 꾸준히 따라배움으로써 조국의 통일과 번영,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한몸을 바쳐 싸울수 있도록 항상 자신을 철저히 준비하여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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