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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비, 효자렬녀문에 새겨진 전설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력사유적과 유물중에는 고분벽화와 고조선의 단군릉, 고구려의 동명왕릉, 고려의 왕건릉 등의 시조왕릉과 광개토왕릉의 릉비 그리고 명인묘비와 같은 묘비들도 있어 력사에 흔적을 뚜렷이 남기고있다. 뿐만아니라 임진조국전쟁을 비롯한 외래침략자들과의 싸움에서 세운 위훈을 기념하여 각지에 세워진 대첩비와 충렬사비들이 적지 않으며 효자와 렬녀를 찬양하여 세운 효자렬녀문도 있다. 이런 유적들 역시 건축학적으로뿐아니라 예술문화적인 면에 있어서도 매우 우수하며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 애국적기개와 도덕의리적풍모를 보여주는 가지가지의 전설적사연을 안고있다.1
애국의 뜻이 어린 충렬사비전설
충렬사비는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전쟁에서 애국충정을 다하여 크게 공헌한 장군과 의병대장을 비롯한 렬사들을 추모하고 그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력사적으로 보면 충렬사비와 대첩비들이 적지 않았으나 현재 전하여오는것은 대부분 임진조국전쟁시기 장군들과 의병대장을 비롯한 애국렬사들을 추모하고 그 공훈을 기념하여 세운것들이다. 애국명장과 관련된 사당과 비중에는 임진조국전쟁에서 용감성과 위훈을 떨친 리순신장군의 추모비와 사당이 있다. 그의 시신은 아산에 안장되였는데 그의 용맹과 위훈을 전하기 위하여 사당을 세우고 《충렬사》라고 명명하였으며 큰 비를 세워 그의 공훈을 새겨넣게 하였다. 그후 나라의 곳곳에 리순신장군의 사당이 건립되였다. 그런가 하면 그의 발자취가 어려있는 남단뿐아니라 북단끝인 두만강지역에도 《리순신장군 승전대비》가 세워졌다. 리순신장군에 대한 추모비는 장군의 전공으로 하여 어느 장군보다도 많이 세워져 전설화되였다. 따라서 후세에 와서는 그를 전설적인 별칭으로 《리충무공》이라고 하였으며 시가들에도 올라 전하여진다. 승전대첩비로서는 임진조국전쟁시기 연안성전투에서 리정암장군이 애국적위훈을 떨친것을 기념하여 세운 연성대첩비를 들수 있다. 연안성전투는 왜적의 몇차례의 공격과 장기간의 포위속에서도 적들을 화공작전과 기만묘술로 성안의 모든 사람들이 단합하여 떨쳐일어나 싸움으로써 력사에 전설화된 대첩의 하나이다. 하기에 비문에는 당시 연안성인민들이 리정암장군의 지휘밑에 용감무쌍하게 싸운 이야기가 항간의 전설과 더불어 상세히 새겨져있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의병대 대장과 의병렬사들의 애국적위훈과 투쟁공적을 기념하여 세운 충렬사비는 전국도처에 그들의 투쟁사적과 함께 수많이 세워졌다. 《창렬사비》는 함경북도 어랑군 무계리의 호수가에 세워져있다. 비각속에 두개의 비석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당시 함경도일대의 의병총대장이였던 정문부장군과 특출한 공훈을 세운 8명 렬사의 애국투쟁사적을 기록한 기념비이다. 비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그들이 처음 한데 모여 의병투쟁을 결의한 《공심의》라고 하는 곳이 지명전설로 전하여오며 의병들이 무기를 만들고 훈련하던 곳이 유적으로 전하여온다. 《숭렬사비》는 임진조국전쟁시기 부령지방 의병대가운데서 특출한 공훈을 세우고 장렬하게 전사한 10명의 렬사들을 추모하여 세운것이다. 비에는 10명의 렬사들의 애국적위훈과 사적이 기록되여있다. 항간에서는 《10렬사비》라고 불렀으며 그 투쟁위훈을 전설화하고있다. 《창의사비》의 비문에는 임진조국전쟁당시 이곳 함경도일대에서 영용하게 싸움을 벌려 왜적을 격멸하는데서 크게 공헌한 12명의 의병대 대장들의 이름과 함께 그들의 공훈을 간략하여 새겨넣고있다. 항간에서는 이들을 《12공신》이라고 부르며 전설화하였다. 이외에도 함경도의 《륙충사비》가 있다. 륙충사로 이름을 붙이게 된것은 임진조국전쟁시기 이곳 의병대장으로 소문이 난 류응수장군과 그의 아버지 삼형제 그리고 장군의 동생 류응춘과 그의 아들 등 6명 애국렬사들의 투쟁과 위훈을 기념하여 충신렬사로 일러온데서 유래된것이다. 충렬사비는 전설적으로 전하여온 《임진록》과 더불어 임진조국전쟁의 치렬성, 우리 인민의 영웅성과 위훈을 전하는 력사의 증견자로서 가지가지의 전설들을 안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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