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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덕사의 《에밀레종》전설
신라의 경덕왕은 자기 아버지의 《명복》을 빌며 《극락왕생》을 제축한다면서 봉덕사에 큰 종을 만들어 걸게 하라고 하였다. 12만근이나 되는 큰 종을 주조하는데 매우 엄청난 량의 구리와 비용이 요구되였기때문에 주지는 시주를 받아오라고 승려들을 독촉하여 곳곳에 내보내며 분주탕을 피웠다. 승려들은 목탁을 두드리며 구리와 쇠붙이는 물론이요, 어떤 재물이든지 꼭 시주해야 한다고 하며 매일같이 집집마다 돌아다니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승려가 몹시 가난해보이는 집 마당에 들어서게 되였다. 살펴보니 걷어갈만 한 쇠붙이가 보이지 않아 승려는 시주쌀이라도 받아가려는 심산에서 목탁을 계속 두드리며 경을 외웠다. 아침끼니도 풀죽으로 에웠는데 승려가 목탁을 두드리며 가지 않고있는데다가 잔등에 업힌 아이도 배고파서인지 울어대며 귀찮게 굴었다. 녀인은 장지문을 열고 《우리 집에는 끼니거리조차 없어 아이마저 이렇게 보채니 정 시주받고싶으면 이 아이라도 가져가시오이다.》 하고 역정스레 말하고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었다. 승려는 어쩔수없이 물러나 다른 집으로 향했다. 이렇게 숱한 승려들과 주조관계자들이 사방에서 모아들인 구리와 자금으로 끝내는 큰 쇠종을 부어내게 되였다. 례식을 갖추어 정히 쇠종을 부어냈건만 종각에 달아매고 치니 이상하게도 소리가 울려나오지 않았다. 주지는 불길한 이 사실에 접하여 어쩔줄 몰라하다가 필경 부처를 노엽힌 일이 있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주조자들과 시주받으러 갔던 승려들을 다 모이게 하였다. 그리고는 종을 주조했으나 소리가 나지 않으니 이는 분명 부처님을 노엽혔거나 속임수를 쓴것과 관련이 있는것 같다면서 한사람씩 캐여묻기 시작하였다. 시주받으러 갔던 승려들은 저저마다 별다른 일이 없었노라고 대답했는데 한 승려가 자기의 차례가 되자 시주쌀도 줄것이 없으니 보채는 이 아이라도 가져가겠으면 가라고 하던 그 녀인의 말이 마음속에 짚이는지라 그 사실을 그대로 주지에게 아뢰였다. 그제야 주지는 성이 독같이 올라 그것이 바로 부처를 속인 죄로 되는것만큼 당장 그 아이를 잡아다가 쇠종을 다시 부으라고 엄하게 령을 내리였다. 그리하여 《애기를 내놓겠다며 부처님을 노엽혔으니 불도에 어긋난다.》는 미명하에 어머니품에서 강제로 떼내여진 아이는 끝내 쇠물가마속으로 들어갔다. 쇠종을 다시 주조해낸 다음 예전같이 종각에 정히 달아매고 나무메로 쳤더니 이상하게도 《에밀레- 에밀레-》 하는 구슬픈 소리가 울려나왔다. 그후 사람들은 그 소리를 가엾게 죽은 어린것이 어머니를 찾는 소리라고도 하고 포악한자들에게 목숨을 빼앗긴 어린아이의 원한의 흐느낌소리라고도 하였다. 그래서 봉덕사의 종을 그 구슬픈 소리를 따서 《에밀레종》이라고 전설화하였던것이다. 전설은 과거 착취사회에 대한 인민들의 원성을 진실하게 담고있는것으로 하여 사람들속에서 널리 전파되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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