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많은 사연을 전하는 《무영탑》전설

 

불국사는 경상북도 경주 토함산중턱에 자리잡고있는 오랜 사찰로서 6세기 전반기에 처음 지어졌으며 8세기 중엽에 크게 확장되면서 다보탑과 석가탑이 세워졌다.

불국사의 석가탑은 《무영탑》으로도 불리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깃들어있다.

석가탑건설장에는 이름난 장공들이 적지 않게 끌려왔는데 이들중에는 아사달이라는 석공도 있었다.

그는 탑건설에 불리워오는 날 오래 걸려야 3년안이라는 말로 리별을 서러워하는 안해를 위로하고 집을 떠나왔었다.

그런데 사찰의 앞마당에 동서로 나란히 탑을 세우자면 큰 화강석을 다듬어 탑밑단과 탑몸체 그리고 돌탑층을 정교하고도 웅장하게 세워야 하였으므로 오랜 시일이 걸리게 되였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안해와 약속한 해수도 두배가 훨씬 넘게 흘러갔다.

아사달은 탑건설이 예상했던바와는 달리 너무도 오래 걸리는지라 집에 잠간 다녀오려 하였으나 건설을 맡은 관리는 빨리 완공하기만 하면 돌려보내주겠다고 하면서 그가 자리를 뜨지 못하도록 감시까지 붙여놓았다. 그것은 아사달의 석공기술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탑을 완성할수 없었기때문이였다.

한편 그의 안해는 나무가지로 날과 달을 세여가며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으나 종무소식이라 무슨 변고가 생긴것이 아닐가 하는 우려와 걱정끝에 집을 떠나 탑건설장 울타리밖에 이르게 되였다.

그는 불국사건설장 문지기에게 남편 아사달을 만나러 아사녀가 왔다고 전달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문지기는 그 사실을 인차 관리에게 알리였다.

그러자 감독관리는 부처의 공덕을 기념하여 세우는 불탑가까이에 녀인이 나타나는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절대 엄금이라면서 빨리 돌려보내라고 일렀다.

그 소리를 전해들은 아사녀가 한번만 만나보게 해달라고 안타까이 애걸했으나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절대로 안된다고 딱 잘라맬뿐이였다.

아사녀는 남편을 찾아 수백리길을 걸어왔건만 한번 만나보지도 못하고 돌아설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사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정 그렇다면 먼발치에서라도 그의 얼굴을 바라볼수 있게 해달라고 문지기에게 다시 사정하였다.

문지기는 아사녀의 정상이 하도 측은하여 한참 생각하던 끝에 이제 저 서산기슭에 있는 큰 못가에 가면 사찰과 함께 탑이 세워지는 모습도 물면에 비쳐질터이니 그것을 지켜보고있다가 탑이 완공되는 날에 만나보는것이 어떤가고 하였다.

그래서 아사녀가 그 못가로 달려가보니 정말 수면에 불국사의 모습과 함께 법당과 종각들이 일떠서는 모습이 완연하게 어려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애써 그림자를 살펴보아도 아사달이 다듬어가는 석가탑만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더 맑은 날에는 보이겠지 하고 마음속으로 위안하며 여러날동안이나 못가를 떠나지 않고 물면만 들여다보느라 아사녀는 지칠대로 지쳤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그렇게도 보이지 않던 아사달이 돌을 쪼아가며 다듬는 석가탑이 물면에 환히 비꼈다.

아사녀는 너무도 기뻐 《여보, 내가 왔어요!》 하며 남편이 쪼아가는 탑체를 껴안을듯 물속으로 뛰여들었다.

그러자 탑그림자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아사녀는 그리운 랑군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보지 못한채 수중고혼이 되고말았다.

탑이 완공된 다음에야 안해가 온것을 알게 된 아사달이 못가로 달려나와 아사녀를 부르며 찾아보았으나 안해의 대답소리를 들을수 없었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이상하게도 련못에 탑의 그림자가 비쳐지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그것이 아사녀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한 조화라고 하면서 석가탑을 《무영탑》, 아사녀가 빠져죽은 못을 《영지》라고 부르며 전설화하였다.

전설은 인민들이 겪은 재난과 불행이 바로 봉건통치배들에 의하여 빚어진다는것을 폭로하고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