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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과 불상, 탑과 종에 대한 전설
우리 나라에 불교가 들어온것은 세나라시기인 4세기 후반기부터이다. 불교가 들어옴으로써 사찰들이 생겨나고 불탑들이 세워지게 되였으며 그와 관련한 전설도 생겨나게 되였다. 그러한 전설들가운데서 대표적인것을 선택하여 취급하려고 한다.1
《보현사》, 《관음사》에 깃든 전설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에는 보현사가 자리잡고있다. 보현사에는 여러가지 불교와 련관된 전설들이 깃들어있으나 그중에서도 서산대사가 금강산의 송운대사와 처음 만나 깊은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와 임진조국전쟁때 고령인 서산대사가 총섭이 되고 사명당이 부총섭이 되여 왜구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안긴 군담이 이채를 띤다. 보현사에 깃든 전설로는 사찰을 지을 때 어디에서 왔는지 알수 없는 세 뿔을 가진 황소가 나타나 일손을 도와준 기이한 이야기도 전해온다. 당시로서는 보현사와 같이 큰 건물을 세우자면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여 고역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등짐으로 흙을 메나르고 산에 올라 통나무도 끌어와야 하는 힘겨운 일을 다 사람의 힘으로 하였으니 날이 갈수록 쓰러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산에서 통나무를 끌고 내려오는데 큰 뿔이 세개 달린 황소가 나타나 요란한 영각소리를 내며 세 뿔사이에 나무를 떠이고 공사장으로 달려가는것이였다. 공사를 맡아보던 승려가 하도 신기하여 도사를 찾아가 물었더니 그가 하는 말인즉 묘향산이 하도 명산이여서 산신이 도와 세 뿔 황소를 보내준것이라고 하였다. 세 뿔 황소는 산에서 나무를 끌어내리는가 하면 큰 돌도 뿔로 떠서 날라오군 하였다. 이렇게 부지런히 일하다가는 하루에 한번씩 산너머에 가서 쉬고 오군 하였다. 후세사람들은 그자리를 《우복등》이라고 불렀으며 후날 보현사아래에서 발견한 소무덤을 전설에서 나오는 그 세 뿔 황소의 무덤이라고 전하여온다. 묘향산의 주봉인 비로봉으로 오르는 법왕봉중턱에 상원암이 자리잡고있다. 상원암은 크지 않은 사찰이지만 보현사를 가까이 하고 상원동골안의 황홀한 경치를 한눈에 바라볼수 있는 명당자리에 위치하고있다. 상원암으로 오르는 길 중턱에는 크지 않은 넙적한 바위돌이 있는데 옛날 범이 여기에 앉아있었다고 한다. 길을 잃은 사람이 범의 안내를 받아 암자를 찾았다고 하여 《인호대》라는 이름을 붙여 전설화하였다. 사찰건설과 관련하여 전하여오는 전설중에는 관음사의 미완성문살조각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관음사는 고려시기인 970년에 개성시 박연리 천마산기슭에 세워진 사찰이다. 이 사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의 뒤문문살은 오늘까지도 미완성물로 기구한 전설을 전해오고있다. 이 사찰을 건설할 때 끌려온 부역군들속에는 12살때부터 나무조각을 잘하여 이름을 날린 운나라는 소년도 있었다. 이 소년은 목수기술이 특이하여 대웅전 문살장식조각을 맡아하게 되였다. 문살조각은 기묘하고 섬세하여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이 소년의 몫이였다. 소년은 섬세하고 많은 품이 드는 문살조각을 아침일찍부터 저녁늦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은 어머니가 사망하였다는 슬픈 소식을 받게 되였다. 그래서 어머니장례를 치르러 가려고 사찰건설을 책임진 주지에게 알리였다. 그러나 주지는 어머니가 돌아갔는데 이제 가서 뭘 하겠는가 하면서 사찰을 성심껏 빨리 건설하면 자연히 천당으로 갈테니 문살조각을 빨리 하라고 강박해나섰다. 소년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집으로 가보지 못하는 불효자식이 사찰의 문살이나 잘 조각해서는 무얼 하겠는가고 목놓아울며 목수기술을 배운 자기자신을 원망하였다. 그는 손이 나를 어머니마저 모르는 불효자로 만든 화근이라고 하면서 도끼로 자기 손목을 잘라버리였다. 그리고는 주지에게 더는 문살조각을 할수 없으니 나는 떠나간다고 하고는 그길로 어데론가 영영 떠나버리였다. 그후 누구도 문살조각을 운나소년처럼 해낼수 없어 1 0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미완성문살조각으로 남아있게 된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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