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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정과 산성, 성문루전설
우리 나라에는 이름난 루정과 정각들이 수없이 많으며 그것이 산마루나 벼랑턱, 산성의 높은 봉우리들에 세워진것으로 하여 군사지휘처나 감시소 그리고 절승경개를 부감하는 명승루정으로 널리 쓰이였다. 다양한 형식과 양상으로 세워진 산성과 성루, 루정들은 선조들의 뛰여난 건축재능과 함께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용감히 싸운 우리 인민의 애국적소행을 전설로 전하여오고있다. 1
군사적위용을 떨친 루정과 관련한 전설
산성의 높은 곳에 세워진 루정이나 정각은 많은 경우 군사들의 망원초나 수루로 리용되였다. 물론 높은 산마루나 사방의 일만경치를 바라볼수 있는 곳에 세워진 루정들의 경우 산수를 감상하거나 놀이터로 리용된것도 있다. 그러나 군사들이 진을 치고있는 곳에서는 망원초나 훈련터로 리용한것이 많으며 후세에 그 이름도 군사와 관련하여 붙인것이 적지 않다. 례하면 《수항루》라는 루정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깃들어있다. 수항루는 옛날 함경도 종성읍성의 장대로서 하늘의 번개도 막아낸다고 하여 처음엔 《뢰천각》이라고 불러왔다. 리조 초기 종성읍성을 쌓을 때 처음 세워진 《수항루》는 당시 북방으로부터 침입해오는 적들을 감시하고 막아내기 위한 군사루정으로서의 역할을 담당수행할 목적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당시로 말하면 여기 북변고을에는 외적들이 자주 침노하여 소란을 피우고 백성들을 괴롭혔다. 그래서 이 루정을 세운 다음 군사들은 진을 치고 장군의 지휘하에 무술을 익히고 활쏘기와 칼쓰는 법을 배우면서 훈련을 거듭하고있었다. 건너편에서 그들의 일거일동을 살펴보고있던 외적의 한 패당은 수많은 장졸들을 거느리고 은밀히 넘어와 성루를 멀리 둘러싸고 기회만을 엿보고있었다. 망원초로부터 외적이 침노하였다는것을 통보받은 장군은 그 기미를 모르는척 하면서 군사들이 무술훈련과 활쏘기연습을 계속하게 하였다. 적들은 조선군사가 기미를 알아채지 못한것으로 알고 산릉선을 따라 은밀히 기여들었다. 이때 솔밭에 숨었던 꿩 한마리가 신호라도 하는듯 푸드득 공중높이 날아올랐다. 장군이 《누가 저 꿩을 맞힐 사람이 없는가?》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감히 장군앞에서 날아오르는 꿩을 쏘아떨구겠다고 용단을 내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장군은 재빨리 활에 살을 메워 날아가는 꿩을 쏘아떨구었다. 장졸들은 장군의 궁술이 너무도 신묘하여 함성을 지르며 저저마다 활과 칼을 높이 쳐들었다. 이것을 은밀히 살펴보던 밀정은 한달음으로 제편 장수에게 달려가 《명장의 궁술이 신묘한데다가 신하군졸들의 기세가 충천하니 대적하기 어려울줄 아나이다.》라고 아뢰였다. 적장은 정면대결을 피하고 은밀히 퇴각하는척 하다가 다른 길로 돌아와 어둠을 리용하여 아군을 포위할것을 꾀하였다. 적들의 계책을 망원초를 통하여 통보받은 장군은 에돌아올 적의 통로에 재빨리 매복진을 펴서 대기시켜놓고 적은 군사로 퇴각하는척 하였다. 적군은 좋은 기회로 여기고 밀려왔으나 아군의 매복권에 들어서게 되였다. 갑자기 사방에서 복병이 일시에 일어나 함성을 높이 지르며 달려드는지라 적장과 그 장졸들은 독안에 든 쥐신세가 되여 모두 사로잡혔다. 장군은 사로잡은 적패당을 끌고와 뢰천각아래에 꿇어앉혔다. 적장과 그 장졸들은 손을 들어 빌면서 죽이지만 말아달라고 애걸하였다. 장군은 루정에 올라 소리치기를 《네놈들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다시는 침노하지 않으며 항복한다는것을 네손으로 써서 바치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그후로부터 사람들은 적의 항복을 통쾌하게 받아낸 루정이라고 하여 《수항루》라고 고쳐부르게 되였고 오늘까지 전설로 전하여오게 되였다. 평안북도 의주군에는 군사루정이였던 통군정이 산하를 굽어보며 높이 솟아있다. 통군정은 옛날 의주읍성의 북쪽장대로서 그 이름에는 군대를 통솔하는 루정이라는 뜻이 담겨져있다. 통군정은 고려 전반기에 세워진 루정으로서 의주성의 북쪽 높은 곳에 위치한 군사지휘처였다. 언제인가 사냥군으로 가장하고 의주 삼각산에 은밀히 기여든 외적의 밀정이 군사들이 달밤에도 신이 나서 훈련하며 함성을 지르고 불화살을 날려대는 모습을 눈이 휘둥그래서 바라보고있을 때였다. 뜻밖의 광경에 넋을 잃고 서있던 밀정놈은 우리 군사들이 날린 불화살이 자기가 숨어선 나무에까지 날아와 박히자 제놈을 발견하고 쏜것으로 지레짐작하고 기겁하여 굴러떨어져 압록강에 처박혔다. 그후 적들은 다시는 렴탐군을 파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통군정은 산마루에 치솟아있는것으로 하여 망루로 이름이 높았을뿐아니라 아래로 압록강 푸른 물이 흐르고 멀리 50리안팎의 수려한 산천경개를 한눈에 바라볼수 있는 루정이라 하여 그후로는 《관서8경》의 하나로 일러오게 되였다. 군사루정의 하나로는 평안남도 평원군 평원읍 미두산기슭에 자리잡고있는 훈련정이 있다. 본래는 여기에 여러 건물들이 있었으나 오래전에 없어지고 현재는 훈련정과 비석만 남아있다. 훈련정은 17세기경에 세운것으로서 리조시기 군사행정단위인 진이 평원에 있었는데 그때 지방군을 훈련시키고 사열하는데 쓰이던 군사루정이다. 훈련정은 당시로 보면 큰 루정으로서 앞면은 5간이고 옆면은 4간인데 겹기둥체계로 두줄로 사방에 둘러세웠다. 이 루정에서는 마루보우에 얹은 화반대공의 별지화가 이채를 띠는데 가운데 화반대공에는 《라치》(귀신을 쫓는 상상동물)의 무서운 모습과 달리는 황룡과 청룡이 그려져있으며 그 량쪽의 화반대공에는 말을 타고 긴칼이며 세가닥 창을 든 두 무사의 용맹스러운 모습이 각각 그려져있다. 군사루정치고는 특수하게 건물전반에 희귀한 반금단청을 입혀 화려함과 위용스러움을 다 갖추고있는 훈련정은 우리 민족의 우수한 건축술이 잘 반영된 귀중한 유산이다. 원래 군사들의 용맹과 의기를 돋구어 훈련이나 전투에서 과감무쌍하도록 고무할 목적에서 세워진 군사루정인것만큼 이곳의 함성소리와 말 달리는 소리가 크고작은 산발을 흔들며 100여리밖까지 울려퍼졌다는 전설이 전하여오고있다. 루정이 세워진 앞 넓은 뜰에는 무술을 닦는 군사들이 말을 달리며 활을 쏘고 검을 쓰며 작은 나무잎도 큰 칼로 금을 냈다는 훈련터가 있었다. 어느날 군사들이 편을 갈라 실전을 방불케 하는 군사연습을 하였는데 주변에 있던 지방의 도적패당들이 자기들을 잡으러 오는줄 알고 넋을 잃고 도망치다가 못에 빠져죽었다고 하는가 하면 백성들은 전란이 난줄 알고 관가에 가 알리는 바람에 몹시 놀란 평원부사가 며칠 앓아눕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하기에 훈련정에 진을 치고있은 병정들은 누구나 용감하고 날파람이 있어 그후 나라에 변고가 생겼거나 외적이 침노했을 때는 평양성을 지키는 싸움에 앞장섰다고 한다. 군사루정으로 오랜 전설을 안고있는것은 량강도 혜산시의 압록강과 면한 절벽우에 세워진 《괘궁정》이라는 루정이다. 처음에 이 성문터에는 인공적으로 쌓아놓은 돌성이 우뚝 솟아있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 오누이장수가 살고있었는데 그들은 혼자서도 100명의 외적은 쉽게 요정낼수 있는 용맹을 소유한 힘장사들이였다. 하루는 장수오누이가 내기를 하였는데 오빠는 강건너에 돌로 10층탑을 쌓고 녀동생은 압록강의 절벽우에 돌성(괘궁정자리)을 쌓기로 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쌓으면 북을 쳐서 내기에서 승리를 알리기로 하였다. 서로 마주볼 사이도 없이 돌을 날라다 탑을 쌓기 시작하였다. 동생 역시 치마폭에 돌을 나르면서 성루가 우뚝 솟아나도록 일심전력하였다. 그래서 녀동생은 돌성을 우뚝하게 쌓아놓고 손에 묻은 흙과 치마폭을 털고있는데 강건너에서 오빠가 먼저 북을 쳤다. 결국은 탑과 성돌이 다 쌓아졌지만 북을 치지 못한것으로 하여 누이동생은 지고말았다. 분함을 삭이지 못해 누이동생은 기절하여 쓰러졌는데 뒤미처 그의 오빠가 달려와보니 녀동생의 몸은 점점 식어가고있었다. 오빠는 이 나라의 백성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숨진 녀동생을 높은 성마루 등성이에 안장하고 죽어 혼이라도 이 성벽을 지키라고 눈물을 쏟으며 되뇌이고는 나라방위를 위한 길을 떠났다고 한다. 그후 혜산진이 개척되면서 장수오누이의 전설이 깃들어있는 이 돌성마루에 루정을 세우고 처음엔 《복융대》라고 불렀다. 북으로부터 빈번히 침입하는 적들을 제압하여 복속시킨다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그렇게 붙인것이였다. 이 루정은 혜산진의 성벽중에서도 제일 높고 돌성우의 벼랑턱에 세워진것으로 하여 멀리까지 감시하는 수루로, 망원초로 리용되였다. 그러다가 1631년에 개축하면서 이름도 군사루정이라는 의미를 반영하여 《괘궁정》이라고 고쳐부르게 되였다고 한다. 여기서 《괘궁정》이라는 이름은 옛날 이곳에 주둔한 군인들이 이 루정에 활을 걸어놓고 감시하다가 침입해오는 외적을 막았다는 뜻에서 붙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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