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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백
계백은 7세기 중엽 백제의 애국명장이고 관창은 당시 신라장군 품일의 아들로서 나이가 어리지만 용맹하여 부장으로 출전한 소년이였다. 이들의 위훈과 전투사적은 《삼국사기》 권47에 력사기록적으로 기사화되였으며 그후 여러 명인집에 수록되여 전하여온다. 당시 백제로 말하면 봉건통치배들이 나라의 정사는 돌보지 않고 사치와 부화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며 국력을 강화하는데 힘쓰지 않고있었다. 인재도 바로 쓰지 못하여 어수선한데다가 밖으로부터의 침습도 막아내지 못하여 백성은 시달리고 나라의 형세는 갈수록 쇠진해졌다. 그런데다가 신라와의 전쟁에 말려들어 수많은 병력과 국력을 손실당하여 헤여날 길이 없었다. 하도 형세가 처참하여 당시 충신이였던 성충은 죽음을 각오하고 의자왕에게 간하였다가 《역신》으로 몰려 옥에 갇히게 되였다. 그는 《신이 시세를 살펴보니 반드시 병화가 일어날듯 하니 륙로로는 탄현을 넘지 못하게 하며 수군은 기벌포해안에 들어서지 못하게 엄하게 방비하옵소서.》라는 상서를 올리고 죽었다. 그러나 의자왕은 충신의 간언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화방탕하고 안일한 생활에 파묻혀 세월을 보내였다. 그런데 660년에 드디여 신라가 외세와 련합하여 큰 병력으로 파죽지세로 밀려들어왔다. 의자왕은 어찌할바를 몰라 좌중을 살피다가 용장 계백에게 신라군을 징벌하도록 령하였다. 계백은 최후를 결심하고 출중한 병장 5 000명을 뽑아 출격을 서둘렀다. 출전에 앞서 그는 급히 말을 달려 집으로 향하였다. 그는 《내가 패하면 처자도 적의 노예가 될지 모르니 욕을 당하기보다 차라리 죽는것이 더 좋음직하다.》 하고는 자기 손으로 처자를 칼로 베이였다. 그리고는 장졸들을 이끌고 황산벌의 유리한 지점을 택하여 군영(진지)을 배치하고 은밀히 매복하여 대기하고있었다. 그는 군사들에게 큰소리로 말하기를 《옛날 한 소국의 왕은 5 000명으로 70만의 적군을 격파하였거늘 각자는 결사의 각오로 떨쳐일어나 나라를 지켜내라!》고 하였다. 계백장군의 절절한 호소에 따라 백제군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분발하여 일떠섬으로써 네차례에 걸치는 적의 공격을 제압격퇴시켰다. 형세가 이렇게 되자 신라장수 품일은 소년시기부터 말타기와 활쏘기, 교제술이 능하여 명성이 높았던 16살 나는 자기 아들 관창에게 이르기를 《네가 비록 나이는 어리나 굳은 의지와 기개가 있으니 오늘이야말로 공훈을 세워 부귀를 얻을 때로다. 어찌 용기를 내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관창은 《그렇게 하겠소이다.》 하고는 말에 올라 창을 비껴들고 단신으로 백제군영에 달려들어 마주오는 병사 두명을 찔렀으나 병사들에게 사로잡혀 백제장군 계백앞에 끌려오게 되였다. 계백장군이 투구를 벗겨보니 어린 소년인지라 아깝게 여겨 차마 죽이지 못하고 되돌려보냈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살아돌아온 관창은 품일의 앞에 꿇어앉아 《제가 장수의 목을 베오지 못하고 살아돌아온것을 한스럽게 생각하오니 다시 들어가면 반드시 성공할가 하나이다.》고 여쭈었다. 그리고는 다시 돌입하여 창을 휘두르며 격렬하게 싸웠으나 인차 사로잡히게 되였다. 계백장군은 신라군을 향하여 큰소리로 《신라에는 남아장군이 이 소년밖에 없는가? 상대도 되지 않는 애숭이를 보내여 소란을 피우다니…》 하고는 분노하여 관창의 머리를 베여 그의 말안장에 매여 돌려보내였다. 품일은 말안장에 드리워진 관창의 머리를 잡고 소매로 피를 씻으며 말하기를 《내 아들의 얼굴이 산것만 같구나. 나라일에 죽었으니 후회할것이 없다.》 하고는 백제군영을 응시하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있던 신라의 장졸들은 관창의 원한을 갚을 때가 왔다고 분격하여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백제군영으로 쳐들어갔다. 계백장군은 선두에서 칼을 휘두르며 놈들을 무찔러나갔으나 련속 밀려드는 적군 수십만을 다 격파할수는 없었다. 백제의 장졸들은 모두가 하나와 같이 장수힘을 발휘하였으나 국력쇠퇴의 한을 품고 대지에 피를 뿌리며 장렬히 숨지고말았다. 계백장군의 영웅적기개와 나라를 위한 애국희생성은 력사에 전설로 길이 남아있지만 눈물겨운 교훈을 되새겨주고있다. 나라의 안녕과 국력을 다지지 않고 부귀와 향락에 눈이 어두워 정사를 돌보지 않으며 충신과 간신을 가려보지 못하고 인재도 바로 쓰지 못하니 어찌 나라의 위세와 군력을 떨칠수 있으며 만백성을 도탄에서 구원할수 있단 말인가. 계백장군에 대한 전설은 이런 력사적교훈과 원한을 되새겨보게 하는데서도 일정한 력사적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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