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와 절개를 반영한 전설

 

대나무는 곧고 속이 비여있지만 단단하고 굳세여 꺾일지언정 굽어들지 않는 생태적특성을 가지고있다.

하기에 우리 인민들은 대바르고 굳세게 살기를 바래서 대나무에 비유하여 이름을 지었거나 죽을지언정 굽히지 않는 절개를 대나무에 비유하여 전설화한것이 적지 않다.

고려충신 정몽주의 굽히지 않은 절개를 찬양한 전설이 대표적이다.

고려의 수도 개경에는 정몽주가 리방원이 파한 괴한들에 의해 무참히 타살된 작은 돌다리가 있다.

이 다리의 이름은 원래 선지교였는데 정몽주가 죽은 후 돌틈새에서 이상하게도 대나무가 한그루 솟아난 다음부터 선죽교라고 부르게 되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돌다리틈새에 돋아난 그 대나무는 고려충신 정몽주의 굽힐줄 모르는 굳센 절개와 넋을 상징한것이라고 전설화하면서 리성계와 리방원의 왕위찬탈행위를 고발저주하였다.

이처럼 대나무는 굽힐줄 모르는 강의한 의지와 대바르고 굳센 절개를 상징하여 인간생활과 결부시켜 풍물전설화되여왔다.

갈대에도 전설적사연이 깃들어있다.

5세기 전기신라의 외교가이며 충신인 박제상은 왜나라에 인질로 잡혀간 왕자(미해)를 몰래 빼돌려 귀국시키고 자기는 붙잡힌 몸이 되였다.

왜왕이 그에게 높은 벼슬을 줄테니 왜국의 신하가 되라고 회유하였으나 박제상은 단호히 거절하며 끝까지 지조를 지켰다.

그러자 성이 독같이 오른 왜왕은 그의 발바닥가죽을 벗기고 칼끝같은 갈대그루우로 걸으라고 호통쳤다.

박제상이 이런 모진 고문에도 마음을 굽히지 않자 포악하기 그지없는 왜왕은 그를 장작불에 태워죽이고말았다.

그후 이 사실이 전하여지면서 민간에서는 갈대에 피빛자국이 있는것은 박제상의 피가 배인때문이라고 전설화하였다고 한다.

충의를 버리고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적극 가담하여 《공신》칭호를 두번이나 받고 나중에는 병조판서를 거쳐 대사성에 이른 신숙주를 녹두나물에 빗대여 비난하며 전설화한것도 있다.

신숙주는 세종왕때 등용된 수하신하로서 어린 단종을 내쫓는데 가담하여 높은 벼슬자리까지 차지하게 됨으로써 선대 측근신하들은 물론 백성들로부터도 지조를 지키지 못한 아부굴종자로 비난을 세게 받았다.

그의 안해는 그 비난의 목소리에 얼굴을 쳐들고다닐수 없어 끝내는 목을 매여 죽었다.

그리하여 신숙주는 《공신》이지만 머리를 뻐젓이 들고다닐수 없게 되였다. 백성들은 숙주에게 분노의 눈빛을 던지며 그를 녹두나물에 비유하여 비난하고 풍자해학하였다.

머리가 꼬부라진 녹두나물의 모양이 마치도 신숙주가 죄를 짓고 머리를 숙이고다니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그리고 해빛도 꺼리고 건듯 부는 바람에도 못견디는 녹두나물과 신숙주가 다를바 없다는데로부터 그의 이름을 따서 녹두나물에 《숙주나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아 불렀던것이다.

이렇듯 갖가지 식물의 연원과 그에 깃든 풍물전설은 환상적으로 가공된것이 적지 않지만 당대 사회생활과 결부시켜 의로움과 대바르고 깨끗한 절개를 찬양하였거나 기구하고 불우한 정상을 동정하여 전설화한것이 기본을 이루고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