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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보은전설
새들에 대한 전설은 소쩍새로부터 종달새와 뻐꾸기, 뜸부기 등 사람과 인연을 맺고있는 동물들에 대한 전설로서 민요나 산문에도 적지 않게 올라있다. 까치의 보은전설로는 《은혜갚은 까치》가 있다. 옛날 어느 고을에 매를 기르는 한 사람이 열너덧살 나는 딸과 함께 살고있었다. 딸은 까치새끼 한마리를 상자에 넣어 기르고있었는데 처음에는 벌레를 잡아다 먹였고 좀 큰 다음에는 남은 밥과 고기쪼박을 먹이며 늘 《내 까치》라고 애지중지하였다. 까치도 그를 따르며 재롱을 피웠다. 딸이 손바닥에 밥알을 놓고 부를 때면 고개를 갸웃거리고 날개를 치며 달려와서는 앙증스러운 주둥이를 짝짝 벌리군 하였다. 깃털이 다 자라자 아침에는 밖으로 나가 먹이를 찾아다니다가도 저녁이면 꼭 돌아와 상자에서 자군 하였다. 까치는 딸이 시집간 후 다시는 제 살던 집에 돌아오지 않고 한달에 한번 혹은 두어달에 한번씩 딸의 시집으로 찾아오군 했다. 그때마다 딸은 먼발치에서도 자기 까치를 대뜸 알아보고는 반갑게 맞이하였다. 《내 까치가 왔구나.》 그러면 까치는 그의 품속으로 날아들어 옷섶에 주둥이를 비비기도 하고 어깨우에 올라앉아 머리칼을 물기도 하면서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였다. 딸도 까치를 한참이나 살뜰하게 쓰다듬어주군 하였다. 그러던 까치가 차츰 드물게 찾아오더니 웬일인지 종적을 감추었다. 몇해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딸은 유복자 하나를 키우며 살게 되였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이 세살에 잡히자마자 마마를 앓던중 생명이 위급하게 되였다. 시집에는 아직 마마를 앓지 않는 어린것들이 많았으므로 딸은 앓는 아들을 안고 이웃마을에 피해앉았다. 자그마한 촌마을이라 의원도 없어 안타까움으로 속만 태우는데 아들의 병은 점점 심해져가더니 어느날 끝내 숨이 끊어져버렸다. 딸은 숨이 진 아이를 방안에 뉘운채 이불로 덮어놓고 문밖에 혼자 나와앉아 하늘도 무심하다고 목놓아울었다. 그런데 갑자기 울바자쪽에서 《깍깍-》 하는 까치소리가 들렸다. 《내 까치가 왔구나!》 딸은 눈물을 씻으며 반색하였다. 가슴에 꽉 차오르는 애타고 슬픈 감정을 어디 쏟을데도 없던 참이라 까치에게 울며 하소연하였다. 《내 팔자가 기박하여 자식 하나 있던것마저 보존하지 못하였구나. 하늘에 닿고 뼈에 사무친 이 슬픔을 네가 아느냐?》 딸의 말을 듣더니 까치는 품속으로 곤두박히듯 날아들었다. 그리고는 집안으로 들어가고싶은듯 날개를 펴고 퍼덕거리였다. 《네가 들어가보고싶어 그러느냐?》 딸이 손으로 문을 반쯤 열어주자 까치는 집안으로 뛰여들어가 시신을 씌운 천을 물어젖히더니 부리로 아들의 코밑을 네댓번 연거퍼 쪼아댔다. 그러자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신기하게도 아이가 피여나는것이 아닌가. 놀라움과 고마움으로 목이 메여오른 딸이 눈물이 글썽하여 바라보고만 있는데 까치는 이내 밖으로 날아가버리더니 그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함께 접동새(소쩍새), 쪽박새와 같이 설음겨운 울음소리를 내는 새에 대한 구슬픈 사연을 전하는 이야기들도 있다. 접동새와 소쩍새는 같은 새로서 그 처량한 울음소리를 자기의 처지에 따라 각이하게 감수하고 표현한데로부터 생겨난 새이름이다. 쪽박새는 접동새와 같은 류형의 새의 별칭으로서 그렇게 부르게 된 유래에 대한 전설을 안고있다. 옛날 황해도의 어느 한 산촌마을에 심술궂고 며느리구박을 잘하는 시어머니가 있었다. 아들은 반편이여서 장가를 보내지 못하고있다가 빚을 많이 진 가난한 농부의 딸을 민며느리로 데려왔다. 농부의 딸은 빚값으로 끌려온지라 반편인 남편에게 정이 갈수가 없었다. 범같은 시어머니는 낮이면 종을 부려먹듯 온갖 궂은일을 다 시키고도 좀 허리를 펴려고 웃방에 올라가면 쉴 사이없이 불러내여 공연히 트집을 걸며 구박하였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심술궂은 성미에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안하고 참아가며 혼자 눈물을 흘리군 하였다. 그럴 때면 본가집생각이 나 우물가에 나와서 하염없이 집쪽을 바라보군 했다. 그러다나니 자연히 동네에서도 그 며느리를 동정하게 되였고 범같은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몹시 구박한다는 소문이 나돌게 되였다. 그 소문이 돌아가는것을 얻어들은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퍼친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그를 더욱 구박했다. 그러던차에 본가집어머니가 몹시 앓는다는 기별이 왔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잠시 집에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앓는 어머니에게 쌀죽이라도 대접해주려고 하니 쌀을 얼마간 가져가게 해달라고 말하였다. 시어머니는 마뜩지 않아하면서 빚군에게 쌀을 꾸어주듯 되로 세번을 떠서 주었다. 며느리는 기가 막혔으나 아무 말도 안하고 갔다오겠다고 말하고는 무거운 걸음으로 마을을 지나다가 동네에서 인심이 후하다는 배나무집에 들어가 사정이야기를 하여 쌀 한말을 꾸어가지고가서 앓는 어머니에게 쌀밥을 대접하고는 사흘째 되는 날 시집에 돌아왔다. 그후 시어머니가 얼마나 못되였으면 며느리가 남의 집에서 쌀을 꾸어가지고 본가집으로 갔겠는가 하는 소문이 퍼져 범같은 시어머니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시어머니는 앙갚음으로 자기가 밥을 지을 때에는 큰 되박으로 퍼서 짓던것을 작은 되박을 주며 3개를 퍼서 밥을 지으라고 하였다. 그러니 종전과는 달리 밥이 모자랄수밖에 없는지라 시아버지는 물론 반편인 남편까지 투정질을 하였다. 범같은 시어머니는 쪽박으로 며느리의 면상을 치고 머리를 끄집어당기며 《쌀을 조금씩 덜어내여 모았다가 집으로 가져가자고 했지?》 하고 생트집을 걸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고약하게도 작은 쪽박을 주면서 종전만큼의 밥을 해내라고 하니 너무도 억울하여 눈물을 흘리며 되박을 바꾸어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그 쪽박이 그전 되박인데 실성하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못살게 굴었다. 나중에 그 착한 며느리는 꿈속에서까지 《되박을 바꿔주오.》 하는 헛소리를 치다가 끝내는 절명하고말았다. 그후로부터 이 산촌마을에는 아침, 점심, 저녁때마다 알지 못할 새가 나타나서 《되박 바꿔주.》 하며 연신 울어댔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긍한 그 며느리의 원혼이 새가 되여 작은 쪽박을 큰 되박으로 바꾸어달라고 범같은 시어머니를 저주하는 울음소리라고 하면서 그 새를 《쪽박새》라고 불러왔다고 한다. 전설은 봉건적사회관계의 가정세태생활을 통하여 악을 징계하고있으며 가난하고 불우함을 동정하고있다. 새들과 관련된 전설은 이외에도 적지 않다. 례하면 우에서 언급한 까치만 봐도 사람과 친근한 동물로서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소식이 온다는 전통적인 인식이 생겨나고 견우와 직녀의 상봉을 위하여 칠석날이면 하늘높이 날아올라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주는 의로운 날짐승으로 전설화되였다. 그리고 옛날부터 사람과 인연이 깊은 령리한 날짐승으로서 전란때면 전달병역할을 하던 비둘기는 오늘날 애완용새만이 아닌 평화와 안정을 상징하는 새로 세계적으로 공인되게 되였다. 따라서 전통적인 설화들에 비둘기에 대한 일화들이 적지 않게 나오며 그로 하여 기쁜 소식을 가져다 주거나 길할 징조를 표현한것이 적지 않다. 어떤 남녀간의 애정설화에서는 억울한 루명을 쓰고 옥에 갇힌 랑군에게 소식과 계략을 전해주어 나중에는 석방되게 하는 고마운 새로 전설화된것도 있다. 예로부터 전해내려온 수많은 이야기속에는 백학이 무리로 날아드는것을 보고 길할 징조라고 하면서 동리이름을 《백학동》이라고 지었다는 전설과 함께 흥부에게 보물박씨를 물어다준 제비처럼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 새들에 대한 전설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논밭의 나쁜 벌레를 잡아없애고 풍작을 안아다주는 왜가리들로 들끓는다고 하여 《왜가리동산》이라 불리우던 고장에 흉년이 들자 왜가리사냥을 일삼는 지주아들에게 《신》이 벼락을 내렸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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