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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관련한 전설
자연풍물전설에는 동물이 사람과 기이한 《관계》를 맺는 이야기를 취급한것이 적지 않다. 맹수인 범도 의로운 행위를 도와나섰는가 하면 사슴이 총각이나 효녀에게 보은한 전설은 더욱 많다. 집주인이 위험에 처하였을 때 구원해준 의로운 개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화된것만 하여도 여러건이 된다. 꿩, 까치, 비둘기, 백학과 함께 잉어나 거부기, 게, 두꺼비 등도 사람과 관련된 전설들을 안고있다. 길짐승의 보은전설
《은혜갚은 사슴》전설은 리제현의 《력옹패설》에 실려있는것으로서 당시에만 하여도 이런 사실들이 적지 않은것으로 시사된다. 기사화된 전설에 의하면 고려건국초기에 있은 일이라고 한다. 수도의 교외에 서신일이라는 사람이 살고있었다. 어느날 그는 산에 올랐는데 화살을 맞은 사슴이 그의 앞으로 다급히 다가오는것이였다. 사슴도 그가 선한 마음을 가지고있는 사람인줄 알았던 모양이였다. 그는 재빨리 박힌 화살을 뽑아주고 사슴을 풀숲에 몰래 감추어주었다. 이윽고 사냥군이 쫓아왔으나 앞으로 뛰여간줄로만 알고 가버리였다. 그런데 이 일이 있은 날 밤이였다. 꿈에 한 신선이 나타나서 하는 말인즉 《오늘 당신이 목숨을 구원하여준 그 사슴은 바로 나의 아들입니다. 다행히 당신의 구원을 받아 생명을 보존할수 있었으니 그 은혜를 갚아야 할줄 아옵니다. 이후로 당신의 자손들은 복을 받아 대대로 나라의 재상이 될것이옵니다.》라고 하는것이였다. 당시 그는 80고령의 몸이였다. 하지만 그는 꿈에서 들은 신선의 말대로 정말 그 나이에 아들을 보게 되였다. 서신일의 아들이름을 서필이라고 하였는데 고려초 광종왕때 이름있는 정치활동가로 그의 벼슬은 대광 내의령에까지 이르렀다. 서필은 아들 서희를 보았다. 서희는 애국명장으로서 벼슬은 태보 내사령에 이르렀다. 서희장군의 아들 서눌은 벼슬이 3중 대광 내사령이였다. 리제현은 《력옹패설》에서 이 전설을 간략하여 전하면서 서신일이 구원해준 사슴은 신선의 아들이며 그가 선한 일을 한것으로 하여 《천신》의 덕으로 80살에 아들을 보고 그 자손들이 3대에 걸쳐 나라의 재상벼슬을 지내고 죽어서는 모두 종묘(왕의 묘와 함께 있는 특공신하의 묘)에 묻혔다고 밝히고있다. 전설은 필자가 밝힌것처럼 서신일이후 3대가 모두 재상벼슬을 하고 나라에 공을 세운 실재한 사실에 환상적인 외피를 씌운 제한성을 가지고있으나 의로운 소행을 찬양하고있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사슴의 보은설화에는 《달녀와 사슴》도 있다. 옛날 산촌마을에 지주의 머슴살이를 하는 《달녀》라는 소녀가 살고있었다. 지주는 머슴군뿐아니라 소작인들에게까지도 제놈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성이 독같이 올라 마구 손찌검을 하군 하는 무뢰한이였다. 어느날 머슴소녀 달녀가 산나물을 뜯어왔는데 어둠속에서 바삐 바구니에 주어넣다보니 박새풀 한잎이 섞여들어가게 되였다. 지주마누라는 그것을 발견하고 소란을 피우며 저년이 마을사람들과 작당하고 령감을 죽이려 하였다고 지주에게 일러바쳤다. 성이 독같이 오른 지주는 내가 죽기 전에 너부터 죽어보라며 달녀의 머리를 잡아끌어 기둥에 짓쪼아주고도 성차지 않아 발로 마구 걷어차서 얼굴에 피멍이 들게 하였고 나중에는 실명까지 시켰다. 지주집에서 쫓겨난 달녀가 산기슭에서 일찌기 돌아가신 부모님을 부르며 섧게 우는데 왜 우는가고 다정스레 묻는 귀익은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달녀가 산에서 나물을 뜯을 때마다 반겨주던 점박이사슴이 틀림없었다. 달녀는 지주에게서 화를 당하여 이젠 앞을 보지 못하게 되였다고 슬피 하소연하였다. 점박이사슴은 달녀를 달래면서 저기 향솔산에 가면 신기한 옹달샘이 있는데 그 물로 눈을 씻으면 꼭 앞을 보게 될것이니 너무 걱정말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달녀를 등에 태워 열두고개를 넘어 옹달샘에 내려놓고는 이 샘물을 마시고 상처난 자리도 씻으라고 대주었다. 얼마후 달녀는 상처가 깨끗이 나아지고 못 보던 눈도 환히 밝아져 예전같이 예쁜 소녀로 되였다. 사슴은 달녀의 병이 깨끗이 낫자 다시 등에 태워 열두고개를 넘어 산촌마을에 내려다놓았다. 마을사람들은 달녀가 몸이 깨끗이 나아 돌아온것을 보고 기뻐하며 그간 사연을 물었다. 달녀는 사실대로 다 말하고싶었으나 지주의 귀에 들어가면 사슴이 경을 칠것 같아서 다만 향솔산에 있는 약샘을 마시고 나아졌다고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그 약샘이 아니였다면 정말 어쩔번 했는가고 하면서 악착한 지주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어느새 달녀의 소식을 전해들은 탐욕스러운 지주는 자기도 그 신비한 약샘을 찾아내여 량껏 마셔보리라 속궁리하던 끝에 남몰래 약샘을 찾아 떠났다. 간난신고끝에 샘을 찾아낸 지주는 정신없이 들이키기 시작하였다. 욕심사나운 그놈은 달녀가 이 물을 정히 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했은즉 많이 마시면 그만큼 눈이 더 밝아질터이니 기왕이면 며칠 묵으면서 량껏 마시고 가리라고 마음먹었다. 약수터에 넙적 엎드려 약수를 마시느라 한참이나 꿀꺽거리던 지주는 숨이 가빠올라 벌렁 나가누웠다. 눈확이 서늘해지기에 정말 눈이 더 밝아지려는가 했더니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그만에야 지주의 눈알은 터져버리고말았다. 이처럼 전설은 선을 지향하는 민심을 반영한 풍물전설의 하나이다. 동물의 보은전설에는 《의로운 개》에 대한 이야기도 적지 않다. 지금 전설집과 력사기록에 남겨진 《의구총》(의로운 개의 무덤)만 하여도 평안도와 함경도의 여러곳에 있다. 《조선전설집》에서도 집주인을 자기의 죽음으로 구원한 의로운 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있다. 옛날 평안남도 룡강땅에 최씨로인이 살고있었는데 그는 귀여운 얼룩강아지 한마리를 기르고있었다. 고령의 나이에 동네돌이를 하거나 길을 떠날 때면 그는 늘 강아지를 동무삼아 데리고다니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로인은 장보러 가게 되였는데 이날도 얼룩배기 강아지가 따라나서기에 데리고 떠났다. 장을 다 보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배가 출출하여 객주집에 들어가 요기를 하면서 술을 한사발 청해 마셨다. 그런데 술맛이 좋아 한사발을 더 청하여 마시고 기분이 좋아 가지고갔던 줴기밥을 강아지에게 주면서 집으로 돌아가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인은 늙은 몸에 술을 과히 마신지라 몸가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산기슭 풀숲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강아지는 주인의 옆에 앉아 깨여나기를 기다렸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는데 먼발치에서 아이들이 불장난을 하다가 놓은 불이 가을철이라 삽시간에 주인령감이 누워있는데로 타들어왔다. 강아지는 너무도 급하여 끙끙거리면서 주인의 옷자락을 물어흔들며 깨우려 하였으나 깨여나지 못하자 옷자락을 물고 근방의 개울가로 끌고가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자 잔디우로 몸을 굴리면서 필사적으로 불을 끄기 시작하였다. (변종전설에서는 개울가에 달려가 온몸에 물을 묻혀가지고와서 끄려고 하였다고 했다.) 이렇게 되여 강아지는 털에 불이 달리고 기운이 빠져 더는 움직일수 없게 되였다. 로인은 옷에 불이 달려서야 깨여났는데 옆을 살펴보니 고이 길러오던 강아지가 불에 까맣게 탄채 쓰러져있는것이 아닌가. 로인은 자기가 과음해서 귀염둥이 강아지를 죽였다고 눈물을 쏟으며 강아지를 안고와 토성가까이에 정히 묻어주었다. 그후부터 사람들은 얼룩배기 강아지의 소행을 잊지 못하여 그 무덤을 《의구총》이라고 부르며 풍물전설화하였다. 이외에도 《의구총》은 경상북도 선산을 비롯하여 여러 지방에 있다고 한다. 함경북도 종성땅에도 역경에 처한 주인을 구원하고 죽은 개에 대한 풍물전설이 전하여온다. 옛날 인적이 드문 이 고장에는 땅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화전을 일구며 살아갔다. 한 화전민은 산에 맹수도 많고 산적패도 때때로 나타나는지라 령리하면서도 힘센 사냥개를 키워 산으로 오를 때면 늘 길잡이로 데리고다니였다. 어느날 깊은 산속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큰 곰이 나타나 주인을 해치려고 달려들었다. 주인이 너무도 급해맞아 숨을데를 찾고있는데 개가 달려나가 큰 곰의 목을 물고 필사적으로 싸우기 시작하였다. 주인은 혹시 주변에 사냥군이 없는가 하여 《곰이 여기 나타났다.》고 소리쳤다. 산짐승을 잡으려고 산에 올랐던 사냥군이 그 소리를 듣고 달려와보니 곰과 개가 필사전을 벌리는지라 주인이 말할 사이도 없이 총을 연방 갈겼다. 그통에 곰과 함께 개도 맞고 쓰러졌다. 주인의 서글픔은 이루 말할수 없었으나 이제 포수를 원망한들 죽은 개가 되살아날수는 없는 일이였다. 하여 그 개를 화전 한끝에 묻고 잊지 못해하였는데 그것이 전설로 전해지게 되였다고 한다. 범의 기이한 행동과 관련하여 력사적으로 전하여오는것은 《삼국유사》 권5에 기사화되여있는 《김현과 호녀》를 들수 있다. 《김현과 호녀》는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유일하다고도 할수 있는 호랑이이야기이며 대표적인 고대동물설화의 하나이다. 이 전설은 사람으로 일시 변신한 호랑이처녀와 김현이라는 청년이 사찰의 석탑을 돌며 복을 받기를 기원하는 민속의식에서 눈이 맞아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것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당시 서울장안에는 사나운 범들이 자주 나타나 사람을 해치며 소란을 피우는것이 걱정거리로 되였다. 김현은 석탑을 돌며 놀이하는 과정에 친숙해지고 정이 깊어진 그 처녀가 호랑이의 변신이라는것을 알지 못하고 정을 나눈다. 처녀가 거절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거처하는 산속의 집에 찾아가니 어미호랑이가 이들을 맞아주며 이제 세 아들호랑이가 오면 살생이 날텐데 어찌하는가고 걱정하였다. 호랑이처녀는 김현과 자기가 뗄수 없는 인연을 맺었다는것을 어미호랑이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그의 방조를 받아 김현이를 산속깊은 움속에 숨겨주었다. 뒤미처 집으로 돌아온 세 아들호랑이가 사람냄새를 맡고 요기감이 가까이에 있는것 같다고 기뻐 날뛸 때였다. 어디선가 《너희 범무리들이 사람의 생명을 심히 해치니 어느 한놈이라도 잡아내여 그 악행을 징계할지어다.》고 하는 준절한 호령이 울리였다. 그러자 세 아들호랑이와 어미호랑이는 벌벌 떨며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호녀는 김현에게 와서 온 가족이 징벌을 면할수 없게 되였으니 나는 다른 사람의 손에 죽기보다는 서방님의 칼에 맞아죽게 해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면서 《래일 내가 서울장안에 나타나 사람들을 놀래우며 소란을 피울테니 그때 나를 쫓아와 칼로 나를 찔러죽이고 조정에 바치면 후한 상과 함께 높은 벼슬을 줄것이오니 후에 저를 위해 사찰을 세우고 빌어주시오이다. 이것이 저의 간절한 소원이오이다.》라고 하였다. 김현은 말하기를 《우리 둘사이의 사귐은 정상이 아니지만 일이 이만치 되였음에 차마 어찌 제 <배필>의 죽음을 팔아서 한때의 벼슬을 요행으로 구할수 있으랴.》고 하였다. 그러자 호녀는 자기의 수명은 짧은것이 천명이고 사람들은 범을 잡으면 좋아할것이며 또 이것이 민심일진대 주저하지 말아달라고 말하였다. 다음날이였다. 맹호가 성안에 들어와 산지사방으로 날뛰며 소란을 피우는지라 감히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였다. 왕은 령을 내리여 범을 잡는자는 벼슬 2급을 줄테니 빨리 조처하라고 독촉하였다. 김현은 대궐에 들어가 소신이 범을 잡겠노라고 아뢰였다. 그는 칼 한자루를 차고나서서 범을 성밖으로 내몰아 숲속에 이르렀다. 그제야 범은 다시 처녀로 변하여 말하기를 내 발톱에 상한 사람들은 이 산속에 있는 흥륜사의 간장을 바르고 그 사찰의 종소리를 듣게 하면 인차 나을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난 호녀는 김현이 찬 칼을 뽑아 제스스로 목을 찌르고 범으로 죽어넘어졌다. 김현은 눈물겨웠으나 호녀의 소원인지라 죽은 범을 메고 장안에 들어가 장부됨을 조정과 만사람앞에 증명하였다. 그후 김현은 호녀와의 기이한 인연으로 벼슬길에 올랐으며 그의 소원대로 서천가에 사찰을 세우고 《호원사》라는 이름을 달아 호녀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전설은 호녀와의 기이한 인연관계를 당시 서울장안에 범이 나타났던 사실과 결부시켜 환상적으로 의인화하여 꾸며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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