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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우와 뉴유
밀우와 뉴유는 다같이 고구려 동천왕때 애국적인 무관들이였다. 밀우와 뉴유의 전설적인 소행은 《삼국사기》 권45 렬전5에 력사기록적으로 서사화되여 전하고있으며 그후 여러 명인집에 전설적으로 전해오고있다. 246년(동천왕 20년) 외적들이 불의에 고구려로 침공해왔다. 고구려군사는 동천왕의 지휘밑에 외적들을 쫓아 추격전을 벌리여 멀리까지 따라가며 족쳤다. 이런 때에 외적의 군사가 은밀히 우회하여 왕의 지휘처에 달려들었다. 이때 왕을 수위하는 사람들로는 밀우외에 몇명의 호위병밖에 없었다. 밀우는 형세가 너무도 위험천만하고 절박한지라 왕에게 아뢰옵기를 《제가 죽기를 각오하고 이를 막겠사오니 전하께서는 자리를 피하여 안전을 기하여주옵소서.》 하고는 결사대를 뭇고 적들과 필사적으로 싸워 적의 공격을 좌절시키고 심한 부상을 당한채 쓰러졌다. 동천왕은 산골짜기에 의지하여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방위진을 구축하는 한편 적진에 쓰러진 밀우를 누구든 빨리 구원해오라고 령하였다. 그러자 하부사람 류옥구가 쓰러진 밀우를 업어와서 왕앞에 내려놓았다. 왕이 너무도 기특하여 밀우를 자기의 무릎우에 눕혀놓았는데 한동안 잠자는듯 하던 그가 신기하게도 소생하였다. 왕은 평시에는 볼수 없었던 그런 충신병장이 살아난데 대하여 기쁨을 금치 못해하였다. 한동안 이렇게 숨을 돌렸으나 형세는 여전히 위급하고 난처하였다.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적을 막자고 해도 그러한 장소까지는 거리가 멀었고 주요성에 있는 군사를 불러내자고 하여도 이미 때가 늦었다. 《이제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왕은 신하들과 여러 장졸들을 둘러보며 신통한 계책이 없겠는가고 물었다. 그러나 급기야 변한 형세에 모두들 어떻게 대처했으면 좋을지 몰라 왕의 얼굴만 쳐다볼뿐이였다. 이때 한 신하가 임금앞에 나섰는데 그가 다름아닌 고구려 동부 용장 뉴유였다. 그는 왕에게 《형세가 불리하다고 우리가 어찌 헛되이 죽을수 있겠습니까. 저에게 한가지 계책이 있사오니 할수 있게 허락하여주시길 바라나이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 계책이란 대체 어떤것인가고 묻자 뉴유는 《특별히 요란한것은 아니오나 저에게 몇명이 먹을수 있는 큰 음식상을 준비시켜주면 될가 하오이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왕은 영문을 몰라 음식상을 차려가지고 어쩐단 말인가고 다시 물었다. 이에 그가 하는 말이 《그것을 가지고 적진에 들어가 <항복>을 청하러 온것처럼 하고 음식을 <대접>하다가 기회를 보아 적장을 처리하겠나이다. 그러면 적들속에서 일시 혼란이 일어날터이니 이 틈을 타서 대왕께서 군사를 출동시키면 역경을 순경으로 돌려세울수 있을것이오이다.》고 하였다. 왕은 잠시 침묵에 잠겨있다가 엎드려있는 뉴유를 일으켜세우며 그의 두손을 꼭 잡아쥐였다. 《그대의 희생을 절대로 헛되게 하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뉴유는 음식상을 가지고 적진으로 들어가게 되였다. 적진에 들어간 뉴유가 왕의 《친서》라면서 내놓은 편지에는 《하늘이 우리를 돕지 않아 싸움의 승패는 이미 결정된듯 하니 대장에게 변변치 못한 음식으로 인사를 전하며 항복을 받아주기 바랍니다.》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적장은 편지를 보고 그사이에 쫓기고 싸우면서 지친 몸, 허기진 배를 달랠수 있게 되였다고 흐뭇해하면서 어서 음식상을 펴라고 하였다. 이때 뉴유는 음식그릇밑에 감추었던 칼로 적장을 정통으로 찔러죽이고 자신도 희생되였다. 적진은 삽시에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때를 기다려 사방으로 조이며 은밀히 접근해오던 고구려군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적진에 육박하여 적병을 마구 쳐넘기였다. 불의의 기습으로 혼비백산한 놈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다가 맞아죽고 찔리워죽어 거의다 몰살당하고말았다. 왕은 승리한 군사를 거느리고 왕궁에 돌아와서 전공을 평가하기를 밀우와 뉴유의 공로를 가장 크고 첫째가는 위훈으로 삼으며 높은 관직과 함께 그 자식에게도 벼슬과 많은 량곡, 면포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고구려애국명장전설에는 이외에도 비천하여 《바보》로 불리워오던 온달이 공주를 안해로 맞고 고구려의 상무기풍을 따라배워 나라에 큰 전공을 세운 내용의 전설을 비롯하여 수많은 충신과 평민출신의 이름난 인물들이 전설화된것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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