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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공 아비지와 이사달
아비지는 백제의 이름난 건축가이다. 7세기 중엽 신라의 선덕녀왕은 황룡사에다 9층탑을 세우면 이웃나라들이 투항해온다는 승려들의 말을 듣고 백제에 사신을 보내여 건축가 아비지를 초청해오도록 하였다. 당시 백제에서는 건축과 건축기술, 특히 탑건축술이 매우 발전하고있었다. 초청을 받은 아비지는 신라에 도착하여 곧 설계를 하고 9층탑건설에 착수하였다. 아비지는 200여명의 장공인들과 더불어 3년동안에 9층탑을 완공해야 하였다. 탑은 평면상으로 보면 4각형이고 밑단과 몸체, 탑머리로 이루어진 9층짜리 목조탑으로 예상되여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아비지가 신라에 와서 탑기둥을 세우려고 하던 날 밤에 꿈을 꾸게 되였는데 거기서 자기의 본국인 백제가 망하는 형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가 마음에 꺼리여 한동안 일손을 놓고있는데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더니 어둠속에서 한 로승이 나와 기둥을 세우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신》의 뜻인줄 알고 탑건설을 계속하게 되였다는것이다. 9층탑은 목조탑이지만 당시로서는 탑체가 크고 웅장한데다가 4각형으로 탑층을 9층까지 쌓아올려야 하니 소문난 장공인들도 손을 대기 어려워하였다. 설계가 나오고 건설이 시작되자 귀신도 탄복할만 한 아비지의 일솜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건축장공인들은 모두 그가 시키는대로 일을 다그쳐나갔다. 645년, 드디여 황룡사9층탑이 훌륭하게 완공되였다. 7세기 우리 나라의 건축예술과 기술의 발전면모를 잘 보여주는 황룡사탑은 당시 목조건축으로는 가장 높은 건물이였다. 9층탑이 세워진 후 신라는 그것이 자기 나라의 번영을 상징하는것이라고 하면서 보물처럼 여기고 자랑하여왔다. 이때부터 신라에는 세가지 보물이 국보로 간직되였는데 그것이 바로 진평왕의 옥띠, 황룡사의 장륙불상 그리고 아비지가 쌓은 9층탑이다. 신라는 이 세가지 보물이 나라의 위세를 떨치게 하고 번영을 안아다주기를 기대하였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신라의 세가지 보물은 그후 신라의 국력쇠퇴와 더불어 보물로서의 가치를 차츰 잃어버렸고 나중에는 제대로 보존조차 못하는데 이르렀다. 진평왕의 옥띠는 고려에 귀순한 신라의 마지막왕 경순왕이 왕건에 게 가져다바친 후 그 행처를 알지 못하며 장륙불상은 외래침략자들에 의하여 불타버렸고 9층탑도 밑단과 주추돌만 남고말았다. 황룡사의 9층탑은 그 건설의도가 미신적이고 허황하였으나 그 높이(225자)와 층수, 건축양식이 동방에서 으뜸이였던것으로 하여 지금은 비록 흔적밖에 남지 않았어도 명장공 아비지의 이름과 함께 전설화되여 전해졌다. 이사달은 고구려의 안학궁을 세울 때 신기한 적자색벽돌을 만들어내여 이름을 날린 궁노이다. 당시 조정에서는 고구려의 위세를 돋구려고 안학궁을 요란하게 세우되 궁전바닥에 산호마루를 깔기로 하였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그렇게 많은 산호를 구할수 없어 산호벽돌을 구워서 깔기로 하였다. 이 벽돌을 구울 일이 벽돌구이로 가장 우수한 재주를 가지고있던 궁노 이사달에게 맡겨졌다. 이사달은 대대로 궁중에 소속되여있던 노비로서 아버지의 벽돌구이재간을 이어받아 서른살이 넘도록 총각으로 있으면서 벽돌만 구워왔던것이다. 산호벽돌을 만들라는 분부를 받던 날 궁궐토목공사를 맡은 감독관이 이사달에게 하는 말이 이 벽돌을 만들어내면 소원을 풀어줄것이나 만약 만들어내지 못할 경우에는 살기를 바라지 말라는것이였다. 이사달은 노비에서 벗어나려던 소원이 풀리게 되리라는 기쁨보다는 자기의 재주로 한번도 만들어본적이 없는 산호벽돌을 만들어낼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으로 하여 두려워졌다. 대를 이어오며 갖가지 벽돌을 구워냈지만 산호벽돌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지라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생사가 걸린 어명이니 어쩔수 없고 새로운 벽돌을 만들어내고싶은 생각도 있어 이사달은 그 이튿날부터 산호벽돌을 구워내기 위한 일에 온 정력과 지혜를 바쳐나갔다. 이사달은 우선 산호벽돌을 굽는데 적합한 흙을 찾아 곳곳을 다니며 여러종을 모아들였다. 다음에는 산호빛을 낼수 있는 칠감을 얻기 위해 며칠을 산판과 벼랑길을 훑었다. 그리하여 수십가지 벽돌을 련이어 구워냈다. 그러나 다 성차지 않아 흙과 칠감을 계속 바꾸어가며 간난신고끝에 마지막으로 구워낸것이 산호빛을 거의 닮은 적자색벽돌이였다. 그사이 세월이 퍼그나 흘러 벽돌을 내놓아야 할 시각이 다가왔다. 하루는 궁궐 감독관리가 이사달을 찾아와서 산호벽돌을 내놓으라고 하기에 마지막에 구워낸 적자색벽돌을 보이며 산호빛을 닮았다고 하였다. 감독관리는 아직 산호빛을 다 내지 못하고있는 적자색벽돌을 보고 그것을 어찌 산호벽돌이라고 할수 있겠는가고 호통치고는 그가 산호벽돌을 만들어내지 못한것으로 어전에 알리였다. 그러자 엄한 형벌이 내려졌다. 지금껏 산호벽돌을 만들지 못한것은 불길한 징조일뿐아니라 궁궐건설을 해치려는 의도가 숨어있으니 다른 궁노와 제작공에게 교훈이 되도록 엄벌에 처하라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이사달은 억울하게도 사형수가 되여 형장에 끌려가게 되였다. 이사달은 한생 벽돌을 구워왔건만 산호벽돌을 만들어내지 못하여 죽게 되였으니 내가 마지막으로 만들어낸 적자색벽돌을 안고 원한많은 세상을 하직하리라 마음먹고 벽돌 한장을 가만히 몸에 품고 사형장으로 나갔다. 사형집행을 위하여 사형수(이사달)를 비끄러매려 하는데 몸에 무엇이 감추어져있는지라 집행관이 희귀한 보물인듯싶어 어서 꺼내놓으라고 하였다. 그제야 이사달은 《내가 이 벽돌때문에 죽게 되였으니 먼저 이 벽돌을 칼로 쳐서 깨여주사이다. 그런 다음 내가 죽겠으니 그것을 내 눈앞에서 보게 해주오이다.》고 하였다. 사형집행관은 사형수의 마지막소원이라 《그러면 그것을 꺼내들어라.》 하고는 칼을 높이 들어 내리쳤다. 그런데 큰 칼은 불이 번쩍 일며 두동강이 나 꺾어져 떨어졌다. 사형수 이사달이 굳세게 잡고있는 적자색벽돌은 아무런 금도 가지 않고 쥐여져있었다. 그래서 칼을 바꾸어 다시 힘껏 내리쳤는데 이번에도 칼이 두동강이 나 꺾어지고 이사달은 눈을 감은채 벽돌을 꼭 잡고있다가 그만 기절해 쓰러졌다. 그제야 사형집행관은 이 신기한 벽돌의 내막을 임금에게 아뢰여 사형을 중지하고 이사달을 궁궐에 안내해갔다. 집행관은 임금과 그 신하백관이 모인데서 그 사연을 눈앞에서 보는듯이 아뢰였다. 《적자색벽돌은 불빛을 번쩍 내며 큰 칼을 두동강내고도 끄떡없는 벽돌이옵니다. 그러니 어찌 산호벽돌에 비기오리까. 큰 보물벽돌이라 아뢰옵니다.》고 하였다. 왕은 너무도 대견하여 빨리 그 신기한 적자색벽돌을 궁궐바닥에 깔아 붉은 빛이 완연하게 하라고 어지를 내리였다. 이리하여 이사달은 넓으나넓은 궁궐바닥에 깔 적자색 벽돌을 밤낮없이 구워내야 하였다. 이렇게 궁궐을 완성하고나서야 이사달은 처음의 약속대로 궁노의 신분에서 벗어나 놓여나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백발로인이 된지라 노비신세에서 벗어나 평민들처럼 가정을 꾸리고 살고싶던 소박한 소원마저 가슴에 묻어버린채 궁궐밖에 나가 홀로 살다가 한많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눈물겨운 이 사연의 주인공 이사달의 이름과 함께 적자색벽돌은 전설로 남아 후세에 이어지면서 사람들속에 오래동안 전하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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