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씨녀와 가실

 

이 전설은 설씨녀가 늙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수자리당번에 나가게 된 젊은 총각 가실이와 맺은 언약을 지켜냄으로써 끝끝내 다시 만나 백년해로하게 되는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있다.

설화는 《삼국사기》에 기사화되였으며 그후 여러 야담, 사화, 전설집들에 묶이워져 전설화되여왔다.

설씨녀는 신라의 률리라는 고장에서 늙고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사는 평백성집 딸이다. 그는 가난한 살림에도 그늘없이 아버지를 지성다해 모시는 효녀였다. 얼굴이 환하고 품행이 단정하고 얌전한 설씨녀를 뭇총각들이 넘겨다보며 사모하였으나 감히 범접하지 못하고 혼사말을 입밖에 내지도 못하였다. 그런 총각중에는 가실이라는 청년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해 설씨녀의 아버지가 늙었음에도 수자리 추가당번에 지목되여 집안에는 큰 걱정거리가 생겨나게 되였다.

설씨녀는 늙고 병든 아버지를 차마 멀리 보낼수 없고 그렇다고 하여 녀자의 몸으로 따라갈수도 없어서 안타까워하고있었다.

이때 사량부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설씨녀를 은근히 사모하고있던 가실이 그들을 돕기로 결심하였다. 비록 집안은 가난하였지만 가실은 의협심이 강하여 사람들속에서 평판이 좋은 총각이였다.

늙은이가 고된 군역을 어찌 치르랴 하는 동정심으로부터 가실은 설씨녀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내 비록 못살고 나약한 사나이라 할지라도 동정되는 마음을 걷잡을길 없으니 늙으신 그대 아버지의 병역을 대신하고저 한다.》

설씨녀는 가실의 진정이 너무도 고마와 아버지에게 그 사연을 알리였다.

설씨녀 아버지는 말하기를 《그대가 이 늙은것을 대신하여 수자리를 서주겠다니 미안한 마음 금할수 없다. 만일 그대가 싫지 않다면 나의 딸을 주어 사위로 삼으려 한다.》고 하였다.

혼례는 가실이와 설씨녀의 요청대로 3년간의 수자리살이가 끝난 뒤에 하기로 약조가 되였다.

가실의 소행에 감동된 설씨녀는 방안에 들어가 자기가 항시 얼굴을 비쳐보던 거울을 가지고나와 두쪼각을 내여 한쪼각을 가실에게 주면서 《이것을 신표로 삼아 잊지 않고 기다리다가 돌아오시면 맞추어보렵니다.》 하고는 리별이 아쉬워 눈물지었다.

가실은 그길로 집에 돌아와 자기가 기르던 말 한필을 끌고와서 설씨녀에게 넘겨주면서 《수자리살이에 말을 끌고갈수 없어 맡기고 가려 하니 잘 부리기를 바라오.》 하고는 길을 떠났다.

설씨녀는 3년세월을 기약하고 떠나는 가실을 바래워 오래도록 서있었다.

군영에 도착한 가실은 3년세월을 손꼽아가며 성실히 수자리살이를 하였으나 나라에 뜻밖의 변고가 일어나 교대당번을 보내주지 못하여 6년세월이 지나도록 돌아올수 없게 되였다.

기다림의 3년이 두번이나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니 필시 무슨 변고가 생긴것이 틀림없는지라 혼인기를 넘겨가는 딸을 두고 어쩔바를 몰라하던 아버지는 어느 하루 딸을 불러들여 이젠 기다릴바 못되니 다른 혼사자리를 정하는게 어떠냐며 달래였다.

설씨녀는 아버지의 심정을 모르는바 아니였으나 너무도 억이 막히고 울분이 치밀어올라 눈물이 글썽하여 자기 심정을 토로하였다.

《이 딸은 아버지의 군역을 대신해나선 가실과 이미 언약한 사이여서 그를 지금까지 기다려왔나이다. 그는 국경수자리에서 손에 병기를 놓지 못하고있으니 이는 범의 아가리가까이에 서있는것과 같은지라 늘 물리지나 않을가 일일각 념려돼오는데 신의를 버리고 약속을 잊으라고 하니 어찌 사람의 도리라 하오리까? 다시는 그런 말씀을 꺼내지 마시오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생사를 알길없는 랑군을 기다려 혼기를 놓치는 딸을 민망스레 생각한 아버지는 막무가내로 동리총각을 점찍고 혼인날자까지 받아왔다.

잔치날이 되여 설씨녀가 가실이 두고간 말에게 하소연하고있는데 6년세월의 애절한 심화끝에 복이 들었는지 군역을 교대한 가실이가 집마당에 들어섰다. 처음에는 너무도 몸이 수척하고 옷이 람루하여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딴 사람인줄 알았다. 그러나 설씨녀만은 묻고간 정이 두터웠던지라 알아보고 품에 간수해온 거울 한쪼각을 내놓았다. 가실이도 품속에서 반쪽의 거울을 꺼내여 맞추어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맞잡고 울음을 터치였다.

설씨녀의 아버지와 동네사람들은 천상배필은 사지에서도 죽지 않고 돌아와 상봉하기마련이라면서 눈시울을 적시며 크게 기뻐하였다. 그래서 좋은 날을 택하여 온 동네가 달라붙어 혼례를 차려주고 백년해로하게 하여 전설로 전하여지게 되고 《삼국사기》에 오르게까지 되였다.

전설은 평민출신 청춘남녀의 혼사이야기를 통하여 봉건통치배들의 반인민적인 병역제도와 그 취약성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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