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

 

연개소문장군에 대하여 전기형식으로 처음 서사화한것은 《삼국사기》 권49 렬전9에서였다.

그외 고구려본기에 더 구체화되여있다.

그의 이름은 《개소문》이라 하고 성씨는 《천》(泉) 또는 《연》(淵)이라고 하였는데 력사적으로 보면 《연》으로 전해오고있다.

이름은 《개소문》으로 서사화되여오는데 일부 주변나라에서는 《개금》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그는 부러운것이 없는 세도집출신이였으나 다른 량반선비들처럼 명승유람 같은것으로 허송세월한것이 아니라 체력을 단련하고 꾸준히 무술을 익혀나갔다. 하기에 어렸을 때부터 같은또래는 물론 군인이나 무관들도 그와 감히 맞서지 못하고 그 용맹을 은근히 두려워하였다.

연개소문이 15살이 되였을 때 총명한데다 무예에 정통하고 장수다운 기질을 가지고있어 사람들은 그가 장차 큰 사람이 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평시에도 항상 몸에 5개의 칼을 차고다니였으며 위엄스러운 한마디 호령소리는 천사람이 실색할 정도였다.

이러한 때에 아버지가 사망하여 고구려의 관습대로 그의 직위를 세습받게 되였다. 그런데 딱하게도 백성들과 관원들이 자기를 너무도 무서워하는지라 연개소문은 군중을 향하여 《내가 직무에 림하여 불가한 일이 있으면 내쫓아도 한이 없사오니 나의 세습을 허락하여주십사.》고 하였다. 그리하여 연개소문은 아버지가 하던 일을 맡아하게 되였다.

당시 영류왕과 신하들이 외세의 압력에 굴복하여 비겁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것을 목격한 연개소문은 분격하여 이를 반대해나섰다.

그러자 왕과 그 측근신하들은 위험을 느끼고 구실을 찾아 그를 외적을 막기 위한 장성을 쌓는 일에 내보내여 감독하게 하고는 기회를 보아 그를 없애버리기로 작정하였다.

연개소문은 옛 부여성으로부터 발해만에 이르는 1 000여리에 걸쳐 장성을 쌓는데 군졸들과 인민들을 동원시켜 성벽으로 고구려의 광활한 령토를 요새화해나갔다.

장성을 쌓는 과정을 통하여 그의 비범한 수완과 위세에 더욱 위험을 느낀 간신들은 그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그 밀모가 연개소문의 귀에 들어오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사대주의에 물젖어 외세에 굴종하는 고관대작들을 쳐없앨 결심밑에 장수들과 군사들을 총집합하여 성벽 남쪽에서 열병식을 거행하는 한편 큰 연회를 차려놓고 정부의 대신들과 문무백관들을 청하여 간신과 역모자들이 다 모여들게 하였다.

그리고는 주연이 한창 성대히 벌어지고있을 때 장사, 군사들을 동원하여 반대파대신 100여명을 처단하고 이어 영류왕을 페위시켰다.

연개소문은 영류왕의 조카를 왕위에 앉히고 자기는 막리지가 되여 군권을 총장악하고 국력을 다져나갔으며 군률을 세우고 외래침략기도를 살펴나갔다.

그는 천리장성을 쌓아가는 공사를 계속 다그치는 한편 이웃나라의 침략에 대처할수 있게 식량을 저축하고 무장장비를 개선하였으며 군영을 굳건히 다져나갔다.

연개소문이 비범무쌍한 장군으로 등장하고 정치외교에서도 강경한 대응과 기묘한 전략으로 맞서나감으로써 당시 고구려는 넓은 지역을 차지하게 되였다. 또한 군대는 장군으로부터 병졸에 이르기까지 궁술과 말타기, 창과 칼쓰기에 능숙한 정예대군으로 준비되였다.

하기에 당시 백성들은 물론이고 이웃나라들에서까지 연개소문이 적을 응시하면 불화살이 날아가고 손을 한번 휘두르면 온 세상 땅이 들썩하였다고 하였다. 특히 외래침략자들의 여러차에 걸친 침공을 성난 호랑이처럼 달려나가 보기좋게 짓뭉개놓은 다음부터 그 나라 백성들속에서는 울며 보채던 아이들까지도 《연개소문이 온다.》고 하면 울음을 뚝 그쳤다는 전설이 전하여졌다고 한다.

연개소문의 군장다운 지략과 당당한 위세는 외적을 막아내고 고구려의 강성위세를 높이 떨친데서 더욱 풍성한 전설적화원이 마련되였다.

연개소문은 외적이 큰 병력으로 쳐들어오리라는것을 미리 짐작하고 백제와 동맹하여 신라가 외세와 통하는 주요 도로와 지역을 불의에 쳐서 장악하였다.

그러자 놈들은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여 장악한 그 땅을 반환할뿐아니라 신라를 다시는 치지 말라고 강박하였다. 그러자 연개소문은 즉시에 사신을 잡아 굴속에 가두어버렸다.

연개소문에 의하여 사태가 이렇게 번져지자 외래침략자들은 고구려의 강성위세에 승패를 가늠할수 없었으나 무려 네차례에 걸쳐 수백만의 병력과 수백만금의 군비를 써가면서 침략의 길에 나섰다.

연개소문은 외적들이 출병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성에 령하여 방비를 철벽같이 하게 하고 많은 병력과 군량을 배치하고 물샐틈없이 방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외래침략자들의 움직임을 손금보듯 살피며 일망타진할 묘책을 세우고 군세를 더욱 강화해나갔다.

고구려군사와 외적과의 첫 전투는 료동성에서 벌어지게 되였다.

륙해군 수십만의 대군이 서쪽에 이르러 료수를 도하하려다가 고구려 방비군의 저항을 받고 우회하여 도하한 다음 료동성을 공격하여왔다. 고구려군은 길목에 잠복하고있다가 적병이 들어오는족족 포위망을 좁혀 맹렬하게 공격하여 적들을 아연실색케 하였다.

적들은 성벽이 견고함을 간파하고 장기적인 포위섬멸전술을 쓰면서 련속 병력을 대대적으로 증파하는 한편 계속 성안으로 불화살을 날려보냈다. 그러나 성안에서 날아오는 불화살과 돌총벼락에 살상자만 늘어나자 안시성을 칠 계략을 꾸미고 장졸들을 내몰았다.

연개소문은 적들이 료동성으로부터 이전하고있다는것을 간파하고 많은 병력을 파하여 안시성을 철벽으로 지키게 하고 북부에 있던 병력으로 적군의 배후를 역습공격하게 하였다.

적들은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이미 꾸몄던 계책인 정면충돌을 피하고 교란작전을 벌리자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책략도 고구려군의 배후기습작전으로 통할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적들은 안시성의 가까이에 큰 흙산을 쌓고 그것을 거점으로 하여 성안을 먹어보려고 꾀하였다.

그러나 성안의 고구려군사들은 련속 기세를 올리며 흙산꼭대기로 바라오르는 적군을 향하여 징과 북을 요란히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수천대의 화살을 련속 날려보냈다.

화살에 맞은 적들이 꼭대기에서부터 무리져 굴러내리는통에 흙산이 무너지면서 밑에서 기여오르던 놈들까지 몽땅 묻어버리였다.

그때 성안에서 싸우던 고구려군사들이 일제히 돌격해나와 적군을 수수대 베듯 쓸어눕히자 살아남은 놈들은 황황히 도망쳐버리였다.

정말로 통쾌한 광경이였다.

고구려에 침입하였던 외래침략자들은 연개소문의 주도세밀하고 령활무쌍한 지략과 고구려군사들의 위력에 의하여 수치스러운 패배를 당하고 격퇴되였다. 그후에도 적들은 침략의 야망을 버리지 않고 여러차에 걸쳐 거듭 고구려를 침략해왔으나 그때마다 패하고말았다.

이처럼 외적의 거듭되는 침공을 통쾌하게 물리치고 고구려의 강성위세를 높이 떨친 연개소문은 뛰여난 지략과 용맹, 용병술을 지닌 고구려장군으로 전설화되여 후세에 길이 전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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