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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동왕자와 락랑공주
호동은 고구려의 8대왕인 대무신(大武神)왕의 두번째 왕비에게서 난 아들이다. 락랑공주는 고구려와 린접한 소국 락랑왕 최리의 무남독녀이다. 호동과 락랑공주의 사랑과 락랑국의 신비한 북과 나팔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에는 《삼국사기》 권14에 간략된 내용으로 기사화되여오다가 그후에 전설적내용을 보다 확대하여 야담사화집, 명인전기, 전설집들에 소개되여 내려왔다. 호동은 총명과 슬기, 지략으로 명성이 높았던 대무신왕을 닮아서였는지 날 때부터 얼굴이 환하고 아름다왔으며 자라면서 활을 잘 쏘았고 창과 칼을 쓰는데서도 급이 높은 무장들도 당하지 못하였다. 어느해 봄날 고구려에서는 년례행사로 하는 사냥경기를 소국의 가까이에 있는 락랑언덕에서 하게 되였다. 이 사냥경기는 본질상 무술경기로서 고구려의 상무기풍을 과시할뿐아니라 말타기와 활쏘기, 창과 칼을 잘 쓰는 용맹한 무장들을 등용하고 위세를 떨치게 하는 시험경기이기도 하였다. 하기에 고구려에서는 국왕은 물론이고 문무관리들과 5부의 장병들이 다 참가하였으며 맞은편 락랑소국의 왕과 문무관리, 장졸들도 참가하여 구경군들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사냥경기가 끝날무렵이였다. 하늘에 기러기 두마리가 높이 떠서 경기장쪽으로 날아오고있었다. 그것을 본 대무신왕은 누가 저 기러기를 쏘아 무장다운 솜씨를 보이겠는가고 하였다. 왕의 어명이고 더구나 왕앞에서 솜씨를 보이는 일인지라 날아가는 기러기를 맞추어 떨구지 못하면 큰 졸경을 칠가봐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있었다.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하자 왕이 손수 솜씨를 보여주려고 활을 가져오라고 하는 순간 한 젊은 무사가 말을 달려 앞으로 나서며 《제가 떨구어보겠나이다.》 하고는 달리는 말우에서 활을 쏘아 기러기 한마리를 떨구었다. 그러고보니 그는 궁술에 유명한 왕자 호동이였다. 대무신왕이 떨어지는 기러기를 보고 만족하고있을 때 맞은편에서 달려나온 젊은 무사가 다른 한마리의 기러기를 쏴떨굼으로써 두마리의 기러기는 동시에 경기장 한복판에 떨어졌다. 그래서 두 젊은 무사가 맞힌 기러기를 안고 대무신왕앞에 바치였는데 그들은 다름아닌 왕자 호동이와 남복을 한 락랑공주였다. 왕자 호동과 락랑국 공주에 의하여 이날 사냥경기는 절정을 크게 장식하였으며 그것이 인연이 되여 그들의 가슴속에는 사랑이 움트게 되였다. 그후 왕자 호동은 락랑공주가 그리웠던지 말을 몰아 사냥나갔다가 락랑국경계선을 넘게 되였다. 이때 자기 령역을 돌아보던 락랑왕이 호동을 살펴보다가 묻는 말인즉 《그대의 용모를 보니 보통사람이 아니고 어데선가 한번 본것 같이 느껴지는데 혹시 고구려의 왕자가 아닌가?!》고 하였다. 호동은 더는 숨길수 없는지라 《그렇소이다.》 하고는 사냥에 정신을 팔다나니 국경을 넘어온것도 알지 못하였다고 슬쩍 둘러대였다. 일설에는 호동이 사랑에 취하여 락랑국지경을 넘어섰다고도 하고 다른 일설에서는 서쪽침략자들이 고구려를 치려고 자주 몰려오기때문에 주위의 소국들을 통합하여 지원병을 얻어내기 위하여 갔다고도 한다. 그 력사적사실이 어떠하든 호동을 만난 락랑국 왕은 자기의 외동딸과 짝을 무어줌으로써 고구려와의 화친이라는 그늘아래 힘을 키우고 외세와도 련합하여 령토를 넓힐 야심으로부터 그들이 가까워지는것을 방임해두었다. 왕자 호동은 락랑공주와 인연을 맺고 달포가량 말을 타고 국경을 넘나들며 사냥도 하고 락랑국의 신비한 북과 나팔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였다. 사랑으로 정든 시간과 날은 빨리도 지나가 한달이 되여 호동은 왕궁을 떠나게 되였다. 그는 부왕의 승낙을 받고 혼례식을 인차 거행하기로 공주에게 약속하고는 말을 달려 고구려로 돌아왔다. 그후 얼마 안되여 고구려왕궁에서는 서쪽으로부터 밀려드는 침략세력을 막기 위하여 소국들을 장차 통합하기로 하고 당면하여 이웃소국들의 병력지원을 받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고구려 대무신왕은 이 통고를 락랑국에 사신을 파하여 알리려고 했다. 왕자 호동은 그 통고를 가지고 락랑국에 갈수가 없었다. 만약 간다면 락랑공주를 정식으로 안해로 맞기 위한 결혼식차로 가야겠는데 청병차로 가기에는 너무나도 큰 차이와 오해가 가로막아나섰다. 락랑국 왕은 사신으로부터 통고를 받자 왕자 호동을 의심하면서 분명 내탐하러 온것이 틀림없다고 단정하고 병력지원을 요구한것은 락랑소국을 병합하여 통치하려는 야심이라고 판단하고 단호히 거절해버리였다. 그는 우리에게는 적이 침노하면 저절로 소리내여 울리는 신비한 북과 나팔이 있으니 두려울것이 없다고 하면서 국난에 대처할 준비를 갖추게 하였다. 한편 고구려의 왕자 호동은 락랑국 왕이 병력지원을 거절하고 싸우려 하니 오해를 가시고 사연을 밝히기 위하여 락랑공주에게 밀서를 보내고 자신이 수하장졸들을 거느리고 락랑국으로 향하였다. 락랑공주는 호동의 비밀편지를 받고 그가 락랑국으로 입성하면 북이 울려 부왕은 고구려국 병정들의 침노로 알고 군사를 내몰터이니 그것부터 미리막아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북과 나팔을 간수한 병기고 다락에 다가갔다. 파수병이 막아나서자 공주는 부왕께서 살펴보라고 하였다면서 거침없이 다락에 올라가 품에서 칼을 꺼내여 북을 째놓고 나팔주둥이를 잘라버리였다. 때는 야삼경이라 락랑왕이 불안속에 잠을 들지 못해 왕궁 병기고주위를 돌아보다가 다락에 이르렀는데 웬 녀자가 북과 나팔을 마사버리는지라 생각할 사이도 없이 한칼에 쓸어눕히였다. 그리고 녀자의 얼굴을 살펴보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자기의 외동딸이 아닌가. 너무도 놀라와 다시 얼굴을 들여다보았건만 틀림없었다. 필경 호동과 내통하였다고 생각한 락랑왕은 분노로 하여 사시나무떨듯 하였다. 호동은 이런 참사가 있은줄도 모르고 새벽이 되자 길을 떠나 여러 장졸들과 함께 락랑국 궁성에 입성하였다. 락랑국 왕 최리는 아무런 방비책도 없이 있다가 왕자 호동의 일행앞에 꿇어앉아 소국을 고구려에 바친다고 눈물이 글썽하여 되뇌였다. 호동왕자는 너무도 그 정상이 가긍하여 최리왕의 두손을 맞잡고 일으켜세우며 은닉된 그 사연의 진실을 밝히였다. 그러나 이미 저세상에 간 공주가 어떻게 살아날수 있으며 사랑이 되찾아질것인가. 호동은 자기 왕궁에 돌아와 부왕에게 최리왕이 락랑국을 고구려에 바친다는것을 아뢰고 공주를 잃은 슬픔속에 날을 보내였다. 부왕은 나이도 퍼그나 있는지라 날파람있고 무술에도 당할자가 없는 호동에게 왕위를 넘겨줄 의향을 여러번 비쳐보였다. 대무신왕의 원비가 후실왕비의 소생인 호동을 시기하여 호동이가 락랑공주를 꾀여서 부왕으로부터 참사를 당하게 한데다가 방자하여 자기 침실에 뛰여들어 릉욕하려 하였다고 부왕에게 말했다. 대무신왕은 그 말을 믿고 서자의 본색이 여기에서 드러나는가보다 하고는 호동을 불러내여 죄를 물으니 그 화가 자기 어머니에게도 미칠가 두려워 항소도 하지 않고 곧 칼을 물고 엎어져죽었다. 이리하여 원비의 꾀임에 들어 호동은 자기 아버지의 칼에 맞아죽은것이나 다름없게 되였다. 결국 왕태자자리는 원비의 소생인 해우(해애루)에게 옮겨지게 되였다. 이렇듯 왕자 호동과 락랑공주는 다같이 부왕의 칼에 맞아죽는 비극적인 애사를 남기였다. 후세사람들은 그들이 저승에 가서라도 다하지 못한 깨끗한 사랑을 나누라고 락랑언덕에 령구도 없는 큰 묘 두개를 만들어놓고 제를 지내였는데 일러오기를 이 고개를 눈물없이 지날수 없다 하여 《눈물덕》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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