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좌관 을두지
을두지는 28년에 외적이 고구려에 침노하여왔을 때 왕을 보좌하여 꾀로 적들을 감쪽같이 속여넘김으로써 스스로 물러가게 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의 행적과 관련된 이야기는 《삼국사기》 권14에 실려있다. 그후에 적지 않은 명인전과 야담, 사화전설집들에서 왕을 보좌한 충신의 전설로 전하여오고있다. 고구려가 당시 주변의 여러 소국들을 항복시켜 령토를 넓혀나가며 위세를 돋구자 이웃의 오랑캐들은 위험을 느끼고 선손을 쓰려고 고구려에 쳐들어왔다. 대무신왕은 여러 신하들을 어전에 불러내여 공격과 방어에 대한 계책을 어떻게 꾸미면 좋겠는가를 물었다. 이때 우보 송옥구가 먼저 아뢰기를 《이는 적장이 자기 사리사욕을 채울 목적으로 군사를 모집하여 내몬것이 분명하오이다. 적들의 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의기가 없어 패할 징조이니 우리 지역의 험한 지세에 의거하여 불의에 습격하면 적을 반드시 깨뜨릴수 있는가보오이다.》고 하였다. 그러자 좌보 을두지는 한참 생각을 굴리다가 아뢰기를 《적들은 자기들의 력량과 군세가 강하다고 보고 먼저 쳐들어오는것이니 힘으로 하기보다는 꾀로써 물리칠수 있을가 하나이다.》고 하였다. 왕은 되묻기를 《꾀로 치려면 어떻게 한다는 말이냐?》고 하였다. 그러자 을두지는 대답하기를 《지금 외적의 군사가 멀리 나와 싸우고있으나 그 군세를 알수 없는지라 성문을 굳게 닫고있다가 적군이 피로하여 군세가 저락될 때를 기다려 일시에 나가 치는것이 옳을가 하나이다.》고 하였다. 왕은 을두지의 말이 그럴듯하여 성안에 군사를 이끌고 들어가 성문을 굳게 닫아매고 적들이 다가서지 못하게 화살을 날리고 군세를 돋구었다. 그러나 적들이 포위를 풀지 않는지라 성안에는 먹는 물과 식량이 떨어져갔다. 지어 왕궁의 뜰안의 못마저 점점 바닥이 드러나 관상용으로 기르던 잉어까지 죽을 형편이 되였다. 왕은 성안을 한바퀴 돌아보고나서 을두지에게 군사들도 지치고 물마저 부족하여 더 지탱하기 어려우니 어찌하면 좋은가고 안타까이 하소하였다. 을두지는 적정을 꿰뚫어본지라 다시 방안을 제기하였다. 《적장은 아마 우리 성내가 암석지대이기에 물이 나는 샘이 없다 하여 오래동안 포위하고 말려죽이려고 물목까지 막고있으니 이제 저에게 말라가는 저 못에 있는 잉어 몇마리를 주신다면 제가 능히 혼자서 나가 적군이 물러가게 하겠나이다.》고 하였다. 왕은 너무도 생각밖의 제기인지라 반신반의하면서도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을두지는 펄펄 뛰는 잉어 몇마리에 맛좋은 술 몇병을 가지고 성밖으로 나가 적장에게 안내하라고 적장졸들에게 소리쳐 알리였다. 적장의 움막에 다달은 을두지는 기상이 도도하나 말은 유연하게 이르기를 《우리 대왕이 성밖을 내다보군 하다가 먼길에 고생하는 대장을 차마 보기 민망하여 보내는것이니 인사로 받아주기 바라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제 집안에 있는 사람은 쌀걱정, 물걱정을 모르건만 멀리 외지에 와 오래동안 성을 지켜주는 수많은 군사들이야 푸짐히 먹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니 고생이 한두가지가 아닐텐데 긴절히 요구되는것이 있으시면 스스럼없이 말하시오.》라고 하였다. 적장은 을두지가 가져온 펄펄 뛰는 산 잉어를 보니 성안에 큰 샘과 못이 있는것이 분명한지라 물목을 막아 말려죽이려던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깨닫게 되였다. 그래서 을두지와 대번에 허물없는 사이가 된듯 술을 한잔 부어마시고나서 이렇게 자기 심정을 털어놓았다. 《우리 황제가 나의 우둔함을 생각하지 않고 나로 하여금 군사를 출동시켜 대왕의 죄과를 추궁하라 하기에 고구려국경을 넘어와서 열흘이 넘도록 성을 포위하고 어찌할바를 몰랐더니 그대들이 오히려 걱정하여 후히 대접하려 하고 언사도 공손한지라 내가 황제에게 그대로 아뢰지 않을수 없다.》 하고는 드디여 군사를 이끌고 물러갔다. 이렇게 을두지는 기발한 지혜로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고 싸우지도 않고 적들을 스스로 퇴군케 하였으니 대무신왕은 그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였으며 충신보좌관으로 슬하에 두고 정사를 의논하군 하였다. 그런것으로 하여 을두지의 사적도 대무신왕실록편에 기사화되게 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