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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에 이름을 남긴 봉건충신전설
력사문헌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렬전에는 당시까지 나라에 크게 알려진 수많은 충신들의 전기가 실려있다. 그것이 민간에서도 전설화되여 사화, 야담, 전설 등 이름을 붙인 여러가지 명인집과 사화야담전설집들이 나왔다. 여기서는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고 봉건충신으로서의 행적이 뚜렷한 몇사람의 인물전설만 선택하여 취급하려고 한다.1
국상 을파소
을파소는 성격이 강직하고 정의로우며 지혜가 출중한것으로 하여 고국천왕의 신임을 받고 국상으로까지 승진하였으며 고구려봉건국가의 강화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전설화된 인물이다. 을파소의 전기사화적내용은 《삼국사기》 권45 렬전5에 실려 내려오다가 그후 여러가지 명인전, 야담사화, 전설집에 인물전설로 전하여졌다. 을파소는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와 무술을 련마하는것을 즐겨하였고 성격이 굳세고 강직하였다. 그는 대가 바르고 정직하며 과단성있고 지혜로웠을뿐아니라 연나부출신의 이전 대신인 을소의 후손인것으로 하여 출신도 나무랄데 없었으나 정계에 나서지 않고 촌에 박혀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있었다. 당시 고구려의 안팎의 정세는 매우 복잡다단하였다. 밖으로는 외적이 침략하려고 기회만 엿보고있는데다가 안으로는 신대왕후의 친척들이 권력을 독차지하고 남의 토지와 주택, 재산까지 마구 빼앗아 백성들의 원망을 자아냈다. 고국천왕이 신대왕후의 친척이며 연나부집권세력인 좌가려 등을 처형하려 하자 이 권력패당들은 반역을 모의하고 191년에 반란을 일으켰다. 나라는 소란해지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고국천왕은 이 난국을 평정할만 한 현명한자들을 골라 천거하라고 령을 내리였다. 이때 동부에 있는 안류가 정사를 맡아할만 한 인재라며 천거되였다. 안류는 왕앞에 꿇어앉아 아뢰이기를 《저는 용렬하고 지혜도 없고 어리석은지라 중대한 나라정사를 맡아하기 어려우나 압록곡에 사는 을파소라는 현자는 류리왕때 대신을 한 을소의 후손인데다가 성질이 굳세고 지혜가 많을뿐아니라 모든 일에 막히는데가 없어 전하를 받들어 능히 정사를 보살필수 있사오이다. 다른 사람은 그에 따를수 없으니 안될줄 아오이다.》고 하였다. 고국천왕은 을파소를 당장 불러오게 하고는 어떻게 다스리면 나라가 안정될상싶으냐고 물었다. 을파소는 왕이 자기를 믿고 묻는지라 정사를 펼치는데서 도움이 될수 있다고 생각되는 문제를 털어놓았다. 《옛글에도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라 하옵고 백성들이 안정되여있어야 나라도 평온하고 번성한다 하였거늘 몇몇 권신들이 남의 토지를 빼앗고 남의 자녀를 노비로 삼아 사치와 방탕을 일삼으니 이것이 어찌 정사를 어지럽히고 백성을 도탄에 몰아넣는것이 아니옵겠습니까. 지금 문벌귀족들이 저들이 권력을 계속 독차지하려 하니 이것이 내란의 싹일뿐더러 외환을 불러오는 근본화근이오니 이를 막고 수도를 국내성에 옮기며 연나부는 부수도로 함이 어떠하리까?》고 하였다. 고국천왕은 을파소의 의견을 다 듣고나서 너무도 흡족하여 《충신다운 건의로다!》 하고는 그를 가까이에 두고 정사를 바로잡을 결심으로 그에게 중외대부와 우태의 관직과 벼슬을 주면서 국정을 안정시키라고 하였다. 얼마후 을파소는 왕이 자기를 믿고 높은 벼슬자리를 하사하였지만 문벌귀족들의 전횡때문에 그 직무로써는 도저히 왕의 신임과 기대를 감당해낼수 없기에 다시 왕을 찾아가 아뢰였다. 《신의 노둔한 재질로써는 전하의 어명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청컨대 어질고 지혜있는 사람을 골라 더 높은 벼슬을 주시며 그로써 위업을 이룩하게 하옵소서.》 왕이 놀라운 눈길로 을파소를 내려다보니 이마에 구슬땀이 솟아 방울방울 떨어지는지라 감히 말하기 어려운것을 했다는 짐작이 들었다. 그의 간청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진정을 터놓는 충신다운 진정을 알게 된 왕은 그를 최고관직인 국상으로 임명하고 나라의 정사를 도맡아 성의껏 국정을 안정시키라고 하였다. 을파소가 국상으로 임명되자 연나부출신의 관리들은 임금이 시골선비의 달콤한 말을 곧이듣고 국상을 시켰다느니, 을파소가 꾀가 있어 왕을 업어넘겼다느니 하며 시비질하였다. 고국천왕은 이 사실을 알고 국상 을파소의 지시에 복종하지 않는자는 귀천을 막론하고 일족을 가차없이 베여 화근을 없앨터이니 모두들 명심하라고 하였다. 을파소는 봉건적통치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악질관료들의 수탈행위를 엄하게 다스렸다. 이와 함께 쌀이 떨어진 백성들에게 정기적으로 국가곡식을 꾸어주는 진대법(국가적고리대)을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고 국력이 강화되였다. 을파소는 국상으로 천거되여 고구려의 정사를 맡아보면서 왕을 충실히 보좌하여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 고구려의 위세를 떨치게 한 충신국상으로 널리 알려지고 전설화되였다.
물론 그가 실시한 《진대법》이나 국정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사는 본질적인
시대적제한성을 가지고있으나 민심을 얻고 나라의 안정과 위세를 돋구는데서는 일정한 기여를 한것이라고 볼수 있다. 하기에 《삼국사기》는
충신국상 을파소의 행적을 고국천왕의 실록과 함께 렬전에 담아 전하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