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성전투와 김응서

 

무관출신의 애국명장 김응서장군은 임진조국전쟁시기 일시적으로 적들에게 강점되였던 평양성을 탈환하는 전투에서 적의 선봉장 소서비를 처단함으로써 큰 승리를 이룩하고 적들로 하여금 평양으로부터 남으로 패주케 한 명성높은 애국명장이다. 하기에 《임진록》과 그후의 명인전기와 사화집들에서는 계월향과 함께 김응서장군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전하고있다.

김응서는 1564년 평안도 룡강에서 아버지가 낮은 무관벼슬을 하는 가정의 아들로 태여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정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특별히 군사에 흥미를 가지고 놀이도 군사놀이를 즐겨하였다. 7살때부터 모래와 흙으로 성을 쌓고 풀잎으로 옷을 장식해입고 공방전을 벌리는 군사놀이를 자주 하였다. 13살때에는 병서를 얻어다 읽다가 패하는 대목에 이르면 벌떡 일어나면서 《이렇게 했으면 이겼을것인데!》 하고 아쉬워하며 자기딴의 계책을 세워보기도 하였다. 그는 국력이 쇠진하여 왜적이 자주 침입한다는 소리를 아버지로부터 듣고는 장차 큰 장수가 되려는 일념밑에 20살 되는 해에 무과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리진권관으로 임명되였다. 이때로부터 그는 무관으로 나라의 방위를 위한 일에 한평생을 다 바쳤다.

그는 량반들의 행동을 감독규찰하는 사헌부 감찰로 두번이나 임명되였으나 성격이 엄한데다가 문벌이 미천하고 평안도출신인것으로 하여 량반관료배들의 미움을 받고 면직되여 북방방어의 일선인 벽동아이만호로 내려가있다가 임진조국전쟁이 일어나기 두해전인 1590년에 고산진 병마첨절제사로 임명되였다.

1592년 왜적들이 평양성을 일시 강점하게 되자 그는 별장으로 룡강, 강서, 삼화, 증산 등 4개 지역의 인민들을 묶어세워 전투부대를 편성하고 평양서쪽 20여개소에 진지를 굴설하고 군세를 강화해나갔다.

그때의 형세는 평양성을 강점한 왜적들이 사면팔방으로 우리 관군과 의병대에 의하여 포위되여있는 상태였다.

김응서장군은 이런 형세하에서 적진의 내부형편을 상세히 알고 와해시킬 의도밑에 적장 소서비에게 잡혀 시중을 드는 계월향의 도움을 받아 적장 소서비의 목을 따냄으로써 적진에 큰 소동이 일어났을 때 포위망을 좁혀 일격에 쳐없애려는 전략을 세웠다.

《임진록》의 기록과 민간전설에 의하면 김응서는 이미전부터 계월향과 잘 아는 사이였다. 계월향은 사람이나 연을 통하여 적진의 형편을 늘 통보해주며 그와 련계가 깊었다고 한다.

어느날 김응서장군은 적진통보를 받고 경계가 삼엄한 평양성 적장진에 단신으로 어둠을 타고 은밀히 들어가 계월향을 만나 적장 소서비를 처단할 계책을 의논하였다. 그 사실을 《임진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있다.

《장군이 소서비의 소문도 자세히 듣지 못하옵고 이곳에 찾아오셨나이까? 장군이 력발산하는 재주를 가졌사오나 능히 소서비를 당치 못하려니 무삼 재주로 목을 베려 하나이까? 소서비의 용맹은 금세에 비할바 아니와 이놈의 전신에 쇠같은 비늘을 입혔사오니 숨을 내여쉬면 비늘이 자고 숨을 들여쉬면 비늘이 거슬려지는지라 칼로도 능히 베이지 못할것이요, 창으로도 찌르지 못할것이니 무삼 재주로 베이리까?

그러하온데다가 침실 사면에 모기장을 두르고 귀마다 방울을 달았사오니 조금만 다쳐도 소리가 진동하여 자는 잠을 깨고 방안에 층층으로 장막을 두르고 층장안에 또 큰 병풍을 둘러세워놓고 그안에 작은 병풍을 쳐놓고 그가운데 평상을 놓고 자리에 눕습니다. 좌우에는 등촉이 휘황히 비치고 머리맡에는 큰 검이 있고 발치에는 부수검이 세워져있사옵니다. 잠을 자되 삼경에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며 오경에는 눈으로 듣고 귀로 보며 그후에는 눈을 부릅뜨고 그제야 잠을 깊이 드니 장군이 무쌍한들 어찌 이런 곳으로 능히 들어가 거사하오리까? 만일 실수하면 대패할것이니 그런 망설을 마시옵고 수이 돌아가옵소서. 장군은 하루에 많아야 한말 밥과 고기 다섯근을 잡수신다면 소서비는 매일 삼시로 말밥에 황육(황소고기) 열근과 황소주 서말을 능히 하오니 이 일로 보아도 적수 아니오니 장군은 중한 몸을 돌보사 범의 입에 손을 넣지 마시고 무사히 돌아가시오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전설적인 과장으로서 적장 소서비를 비범화시켜놓고 그런 괴물을 용의주도한 지략과 용맹으로 통쾌하게 쳐없애는 김응서장군의 뛰여난 담력과 무장다운 기개를 더욱 돋구어주기 위한 요구에서 대비적으로 전설화한것이다.

김응서장군은 계월향의 말을 다 듣고 그에 화답하기를 《내 오늘 이곳으로 올제 생사를 결단하였나니 대장부 이때를 타서 국사를 힘쓰다가 설혹 힘이 부족하여 도적의 손에 죽은들 무삼 한이 있으리오. 너는 념려말고 먼저 소서비 잠들기를 기다려 솜으로 방울입을 막아 울리지 못하게 하고 바삐 나와 통기하라. 내 청양관(소서비의 거처지, 련광정부근)뒤에 몸을 숨겨 너 오기를 고대할것이니 너는 죽기로써 국사를 도모하라. 일이 잘되면 너도 살고 나도 살려니와 만일 실수하면 우리 둘이 다 죽으리라.》고 하였다.

계월향이 한참 생각을 가다듬다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장군이 이미 큰뜻을 정하고계시므로 소녀는 죽어도 한이 없사오니 정성껏 하오리다. 그런데 소서비의 발치에 세운 검은 신기하와 다른 사람이 문을 열면 절로 나와 그 사람을 치려 하오이다. 그런즉 검이 마주 나오면 검에 침을 뱉으시오이다. 그러면 도로 들어가 제자리에 설것이니 그때에 장군의 검은 버리고 그 검을 가지고 비늘이 거슬려오르는 짬을 타서 베이게 하옵소서. 만일 비늘이 잔 때에는 능히 베이지 못하오리다.》고 하였다.

김응서장군은 이젠 알았으니 내 일은 념려치 말고 들어가 대응을 잘하라고 다시 일러 보내였다.

그후 청양관으로 다가간 김응서장군은 문지기가 창검을 좌우에 세우고 잠들고있는지라 순식간에 그놈의 목을 베였다.

그리고는 뒤뜰의 바람벽에 붙어 계월향이 나오기를 기다리였다.

한편 소서비의 침실에 들어간 계월향은 그놈을 더욱 《살틀히》 대해주면서 독한 술을 연신 부어주어 취해서 곯아떨어지게 하였다. 그러고나서 월향은 살그머니 일어나 네귀에 달린 방울을 솜으로 틀어막고 대기하고있던 김응서장군을 손짓하여 불러들이였다. 김응서장군이 계월향을 따라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과연 그의 말대로 부수검이 마주 나오는지라 침을 뱉아 도로 들어가게 하였다. 그는 다시 손에 침을 뱉아 부수검을 억세게 잡아쥐고 모기장안으로 들어가 소서비의 비늘이 일어서는 틈을 타서 힘껏 내리쳤다. 이어 목을 베니 대가리가 눈을 부릅뜬채로 굴러떨어졌다.

목없는 소서비가 벌떡 일어나 머리맡에 세워둔 칼을 잡으려는 순간 김응서장군이 발로 차서 꺼꾸러뜨리고 방을 나서려 하는데 모기장이 넘어지면서 방울이 떨어져 크게 소리를 내였다. 그러자 파수를 서던 왜놈군사들이 홰불을 켜들고 일시에 달려들었다.

김응서장군은 미처 따라서지 못하는 계월향을 붙잡고 《죽어도 손을 놓지 말라.》고 하며 한손에 장검을 비껴들고 성문쪽으로 달렸다. 그런데 적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일시에 달려들었다. 김응서장군이 청룡검을 휘둘러 다가서는 적병을 연신 죽여버리고 성문에 이르렀을 때 왜서인지 계월향이 맥없이 쓰러지는지라 그를 급히 업고 성문을 빠져나왔다. 적병들은 더욱 바투 추격해왔다. 등에 업혔던 계월향은 자기를 내려놓아달라고 하고는 눈물이 글썽하여 《장군은 한시바삐 진으로 돌아가셔야 할 몸이니 저를 업고갈수 없소이다. 왜적에게 잡혀죽기보다는 저를 그토록 아껴오신 장 군의 칼에 죽기를 간절히 바라오니 저의 마지막소원을 들어주시오이다.》라고 간청하였다.

너무나도 절통하고 애절한 나머지 계월향을 안아 일으켜세우려던 김응서장군은 왜병들이 무리지어 달려드는지라 《이놈들, 장수의 칼을 받으라!》고 소리치며 달려나가 칼을 휘둘러 삼단베듯 왜놈무리를 쓸어눕혔다.

한편 장군의 칼에 죽기를 소원하던 계월향은 김응서장군에게 평양성의 복수를 부탁하며 몸에 품었던 비수를 꺼내여 자결하였다.

김응서장군은 애국녀걸의 죽음에 비통함을 금치 못해하며 진으로 급히 돌아와 제장들에게 적장 소서비의 처단과 와해상태에 직면한 적정을 통보하고 왜적무리들을 소멸할 계략을 세웠다.

김응서장군은 선봉대를 이끌고 함구문으로 성안에 쳐들어가 당황망조한 왜적들을 련속 족쳐댐으로써 평양성을 탈환하였다.

평양성전투의 승리로 하여 방어사로 등용된 그는 그후 패주하는 적들을 쫓아 경상도까지 진격하여 용장으로서의 위용을 떨치였으며 빛나는 전과를 거두었다. 그리하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임명되였다.

1597년 일본침략자들이 또다시 큰 규모의 병력으로 침략해오자 그는 이 땅에서 왜놈들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한 싸움에 나섰으며 다음해 8월에는 경상도 경산과 청도에 침입한 적병 1 000여명을 소멸함으로써 임진조국전쟁의 최후승리를 앞당기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김응서장군전설은 평양성전투, 특히는 적의 포악한 선봉장이였던 소서비를 계월향의 도움으로 신비롭고 용맹무쌍하게 처단하는 과정을 통하여 그를 명성높은 용장으로 더욱 비범화시켰다.

이 전설은 평양성전투의 실상과 임진조국전쟁과정을 리해하는데 일정한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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