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저장군 김덕령

 

전라도 광주의 석저촌에서 나서자란 김덕령은 장수다운 기질과 용맹을 한몸에 지니고있었다. 그는 임진조국전쟁시기 석저장군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였는데 왜놈들은 그를 두고 돌밑에서 나온 장수, 바위돌을 가르고 나온 장수이기에 그처럼 비범하고 능란한 도술적인 재주를 피운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석저장군이 나타났다는 말만 들어도 공포에 질려 벌벌 떨었다.

민간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묶어놓은 《임진록》에서는 김덕령이 어려서부터 용력이 뛰여나고 지략이 무쌍하더니 성장후 우연히 산중에 들어가 한 도사를 만나 돌짬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며 도술을 익혔는지라 그 용맹과 술법이 당시로서는 누구도 범접할수 없는 큰 장수로 일러왔다고 하였다.

그는 원래 어려서부터 용맹하고 날래여 고기를 물고 달아나는 개를 쫓아가 붙잡아서 태를 쳤는가 하면 말을 타고 달리다가 굽인돌이길목에서 날아올랐다가 되돌아오는 말잔등우에 내려앉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릴 때에는 다락의 지붕우에 누워있다가 처마끝을 타고 다락속으로 들어가는 재주도 자주 부리였다.

한때 그가 진주의 말목장에 있는 사나운 말이 자주 뛰쳐나와 곡식밭을 못쓰게 한다는 말을 듣고 한달음으로 달려가 말고삐를 잡아채며 말잔등에 오르니 말도 장수를 알아보았는지 금시 순해졌다고 한다. 또한 사나운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달려가 호랑이가 큰 입을 벌리며 달려들 때 창으로 턱주가리를 찔러 땅에다 멨다꽂으니 범은 꼬리만 흔들거리다가 죽어버렸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왜놈들이 린접고을에 쳐들어왔다.

그때 그는 불행하게도 아버지(《임진록》에는 아버지로 되여있고 다른 전기기록에는 어머니로 되여있다.)가 세상을 뜬 때여서 상제로 조객을 맞아들이며 장례를 치르고있었다.

그가 아버지의 장례나 치르고 의병에 떨쳐나서리라 다짐하고있던 참에 왜병들이 산너머 마을에 쳐들어왔다고 모두들 아우성을 쳤다.

그는 상제이지만 가만히 앉아있을수 없어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잠간 산에 올라가 형세를 살펴보고 오겠다고 하였다. 산마루로 치달아올라 이웃마을형세를 살펴보니 적들이 마을의 부녀들을 군영에 끌어다놓고 희롱하고있었다.

덕령이 분기를 참지 못하여 적진으로 날아들어가 적장앞에 불쑥 나타나니 적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길 없어 눈만 휘둥그래져 서있었다.

적장은 수비장에게 외인이 침입하는것을 경계하지 못했다고 대노하여 책망하고는 네가 무슨 재주가 있기에 창검이 수풀처럼 지켜선 진중에 당돌하게 들어왔는가고 덕령에게 호령질하였다. 그러자 덕령은 《네가 수문장을 책망하였지만 나의 재주는 귀신도 측량치 못하거늘 하물며 수문장따위가 어찌 알리오. 네가 나의 재주를 보려거든 래일 오시(정오)에 다시 올것이니 자세히 보라.》 하고는 바람같이 사라졌다. 적장은 크게 놀라며 조선장수는 《천신》이 분명하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그가 래일 다시 오겠다고 하였으니 진의 4개 대문을 굳게 닫고 경계를 강화하라고 령하였다.

덕령은 전날에 한 말대로 오시에 적장앞에 나타나서 《너의 진중에 정묘한 조총이 있거든 장졸모두가 나를 향하여 쏘게 하라. 그러면 나의 재주를 능히 알리라.》고 하였다. 하여 일제히 조총을 발사하니 소리는 귀청을 째는듯 울리였건만 덕령은 간데온데 없었다. 모두가 귀신도 곡할 일이라고 대경실색해있는데 덕령이 또 나타나 《또 나의 재주를 보려거든 래일에 올것이니 너의 장졸들의 투구우에 흰기를 만들어 꽂아두라.》고 하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음날 역시 경계를 물샐틈없이 하고 진중의 구석구석을 살피고있는데 갑자기 광풍이 불어치며 진을 진동시키는지라 이제려니 하는데 덕령이가 크게 웃으며 소리치기를 《너희들 머리우에 꽂았던 흰기가 있는가 보라!》고 하여 본즉 어느새 날아나버렸는지 하나도 남은것이 없었다.

덕령은 당황망조한 적장을 보고 《이것은 남의 나라를 침노한 오랑캐무리들이 망할 징조를 예고하는것이다. 이놈아, 네 나를 어찌 당할소냐. 너의 쥐무리 같은것을 쓸어버리기는 여반장이라. 아직은 나의 재주를 약간 보인데 불과하거늘 죽기가 두렵거든 빨리 물러가라.》 하고는 한번 광풍을 일으켜놓고는 사라졌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임진록》에 실린 전설적인 이야기이다.

덕령은 부모의 장례를 치르고는 곧 전쟁터에 나갈 행장을 하고 이웃에 사는 힘장사 최담령과 더불어 의병을 불러일으켜 싸움준비를 다그쳐 호남지방의병대의 군세를 강화해나갔다.

그는 언제나 적진에 육박하여 불의적인 기습타격을 들이댐으로써 적들은 《석저장군》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 어느때인가는 그가 적진이 밑에 도사리고있는 산마루에 단신으로 올라 량팔에 죽은 호랑이를 한마리씩 들어 흔들어보이면서 장수가 왔노라고 소리치자 적들은 《석저장군》이 진격해온다고 아우성치며 불질도 못해보고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그리고 허리량쪽에 백근이 넘는 철추를 하나씩 차고 불의에 적진으로 기습육박해들어가 적들을 일망타진하였다고도 한다.

김덕령의병장에 대한 전과와 위세가 크게 소문이 나자 한때 왕세자가 전주에 내려와 그 용맹을 시험해보고 《호익장군》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담양부사도 김덕령의 지혜는 제갈량과 같고 용맹은 나는 범이나 독수리에 못지 않다고 하였다.

김덕령은 장수힘을 가진데다가 지략이 출중하고 용감무쌍하여 도처에서 적들을 전률케 하였으며 싸우는 전국의 의병들을 크게 고무하였다.

당시 홍의장군으로 이름을 날린 곽재우도 그에게 보낸 답장에서 그의 지략과 위훈을 찬양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장군은 원쑤를 치고 나라를 건질 재주를 지니고 나라를 위하려는 충의를 떨쳐 어려운 시국에서 거사를 하였으니 하늘로 머리를 두고 입으로 밥을 먹는 사람이라면 그 소문을 듣고 모두다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며 왜적을 치고 나라를 건져낼수 있게 되였다고 여기고있소이다. 그러니 하늘이 재난을 보살펴서 도와준것이 아니오리까.

곽재우는 장군의 위엄에 대한 소문을 들은 뒤로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사오며 발꿈치를 들고 만나뵈울 날을 기다렸소이다.》

이렇듯 김덕령의병장에 대한 소문과 그를 전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는 컸다.

김덕령의병대의 위세가 한창 높아지고있을 때 왕은 관찰사 윤두수에게 령하여 김덕령이 군사를 거느리고 거제도에 웅거하고있는 왜적을 쳐없애게 하라고 하였다. 이때 이곳 적정을 꿰뚫고있던 의병장 곽재우가 도원수 권률장군에게 왜적을 따라 배를 몰고 들어가면 필경 상서롭지 못할것이라고 아뢰여 권률장군이 진출을 그만두라고 하였으나 덕령장군은 그냥 배를 몰아 거제도에 이르렀다. 륙지에 오르려 하니 조총알이 비발치듯 날아와 끝내는 병력손실을 입고 되돌아오게 되였다. 이때부터 그는 신임을 잃기 시작하였는데 그후에는 의심까지 받게 되였다.

이태후 가을 홍산토적인 리몽학이 군사를 일으켜 반역을 꾀한 사건이 일어나자 덕령의병장은 그것을 평정하러 달려갔으나 이미 반란은 수습되고 리몽학은 붙잡힌 상태였다. 그렇게 되여 진으로 되돌아온 그는 예상외의 사건에 말려들게 되였다.

그것인즉 반역자 리몽학을 붙잡아 가두어넣고 일련의 문서장들을 뒤져보았는데 거기에 김덕령의 이름도 적혀있었다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억울하게도 역적모의혐의자로 잡혀 서울로 호송되게 되였던것이다.

《임진록》에서는 이와 달리 김덕령이 지략이 뛰여나고 용맹이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나라에 외적이 침노하였는데 출전하지 않고 부모의 몽상을 지켜섰을뿐아니라 때로는 적진영에 왕래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형리들에게 붙잡혀 호송된것으로 서술되여있다.

그 《죄상》이 어디에 기초하였든지간에 그는 《반역》의 혐의를 받고 호송되여 의금부로 끌려오게 되였다.

그는 역적모의를 한 《반역죄》를 실토하라고 따지고들며 곤장을 안기는자들앞에서 무죄를 주장했지만 끝내 사형당하고말았다.

석저장군으로, 지략있고 용맹무쌍한 의병장으로 왜놈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던 애국명장의 시신이 그의 고향에 와닿자 마을사람들은 물론 김덕령휘하 의병대 장졸들까지도 너무도 억울하고 분하여 그의 《역모죄》라는것이 간계에 의한 거짓이라고 조정에 항소하였다.

뒤늦게야 억울한 루명을 쓰고 죽은 김덕령에게 《충장》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임진록》에는 그의 죽음과 관련하여 좀 다르게 전설화되였으나 애국명장으로서의 기개와 충정은 엇비슷하게 서술되여있다.

그는 죽기에 앞서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

《충신과 효자는 하늘이 죽이옵거늘 한갖 형장으로 죽이려 하옵시니 인력으로 어찌 죽일수 있으오리까? 미구에 또 왜란이 있사올것인데 그때에 참여치 못하는것이 원통하오이다. 부득불 죽이시려 하옵거든 만고 효자, 충신 김덕령이라 현판에 새겨 정표하여주옵시면 신이 죽사오리다.》

이렇게 되여 김덕령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가 임진조국전쟁에서 발휘한 명장다운 지략과 위훈은 전설로 전해지고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