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의장군 곽재우
곽재우는 경상도 의령군의 한 량반가정에서 태여났다. 곽재우는 일찌기 서당에서 공부를 시작하여 글짓기를 잘하였으며 시와 산문에도 능통하였으나 나이 40에 이르도록 유생으로 시골에 앉아 벼슬길에도 나서지 않고 글이나 짓고 유교경전이나 보며 그럭저럭 지냈다. 그러다가 본처가 사망하는 바람에 마음이 썰렁하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새로 리씨부인을 맞아들인 후로는 이웃들과 함께 글이나 짓고 술도 마시며 한가한 나날을 보내였다. 당시로 말하면 왜적들이 남해바다가에 달려들어 로략질을 자주 하며 민심을 소란케 하던 때였다. 새로 맞은 리씨부인은 나라의 형세가 산란한데 남편이 집안에 들어박혀 시나 읊고 술이나 마시며 허송세월하는것이 몹시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남편을 깨우쳐줄 결심밑에 친지들과 동네사람들의 핀잔을 무릅쓰고 《낮잠》으로 날과 날을 보냈다. 온 동네에 집안일은 돌보지 않고 《잠만 자는 게으른 아낙네》라는 비난의 소문이 파다하게 되자 안해의 《행실》에 격분한 곽재우가 어느날 그를 꾸짖으려들었다. 이때라고 생각한 리씨부인은 곽재우에게 안해가 게으르면 한집안의 꼴이 한심해지지만 장부가 술놀이에 빠지면 나라일이 기울어진다고 하면서 자기의 진정을 터놓았다. 술놀이로 세월을 보낼것이 아니라 국난에 대처할 힘을 키워야 사내대장부가 아니겠는가고 하는 리씨부인의 정당하고 사리정연한 충고앞에 곽재우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그후부터 곽재우는 동네청년들을 모아 두레놀이로부터 시작하여 말타기와 활쏘기, 칼쓰기련습도 하고 경기도 조직하면서 나라방비에 이바지할 무술을 닦아나갔다. 바로 이러한 때 임진조국전쟁이 터지고 남해로부터 왜병이 쳐들어와 소란을 피웠다. 곽재우는 동네사람들에게 깨우치기를 《이제 적병이 몰려들어오매 우리 부모처자가 장차 도적에게 사로잡힐지라 우리 동리에도 가히 싸울만 한 장정이 수백명이나 있으니 마땅히 일심으로 일어나 싸우면 얼마든지 고향땅을 지켜낼수 있을터인데 어찌 맨손으로 죽음만을 기다리고있으리오.》라고 하였다. 그가 불타는 애국의 마음으로 호소하고 군사를 모으니 수백명이나 모여들어 며칠사이에 큰 의병대가 무어지게 되였다. 곽재우는 군사들이 모아진데 따라 대오를 편성한 후 지휘체계를 세우고 창고를 내여 군량을 모아 저축해놓았다. 곽재우가 군률과 신호체계를 정연하게 세우고 의병대를 훈련시켜 적을 맞받아 드세게 답새기거나 퇴각하는것처럼 기만유인하여 복병을 대기시켰다가 일격에 포위섬멸하는 등 능란한 전술을 씀으로써 왜놈군사들은 붉은 옷을 입고 흰말을 탄 곽재우가 나타나기만 하면 《홍의장군》이 왔다며 《쥐구멍을 찾아》 숨어버리거나 도망칠 생각만 하였다고 한다. 홍의장군 곽재우가 왜적을 전률케 하자 리씨부인과 동네아낙네들도 떨쳐일어나 적을 칠 꾀를 꾸며냈다. 그들은 붉은 칠을 한 박통과 검은 칠을 한 박통에 각각 벌떼와 뱀들을 잡아넣고 집집에 놓아두었다. 텅 빈 마을에 달려든 적들은 워낙 략탈에 미친자들인지라 박통들이 그 무슨 보물통인가 하여 싸움질까지 해가며 욕심스럽게 끼고나오다가 통이 열려지면서 쏟아져나온 성난 벌떼들에게서 침질을 당하고 와글거리는 뱀들에게 물리워 아우성치며 기절해 자빠졌다. 이때를 기다리고있던 의병대 복병들은 일제히 진격하여 적들을 통쾌하게 족쳐댔다. 강건너편에서 이 사실을 알고 분통이 터져하던 적장은 골을 싸쥐고 강가를 싸다니던 끝에 얕은 물목을 발견하게 되자 졸병들을 시켜 밤에 몰래 건늘수 있게 말뚝표식를 해놓았다. 이런 정황을 보고받은 곽재우는 어둠이 깃들자 날랜 의병을 시켜 적들 몰래 말뚝을 물목이 깊은 곳에 옮겨 꽂아놓고 수많은 복병을 대기시켜놓았다가 놈들이 깊은 물에 들어서서 허우적거릴 때 불화살을 날려 통쾌하게 소멸하였다. 곽재우는 적들이 어느 린접고을에 나타났다는 정보를 받자 야밤에 의병대를 행군시켜 그곳 지형지물에 의탁하여 복병시켜놓았다. 그리고 새벽이 되자 진격의 신호로 되는 붉은 옷을 입고 말을 달려 아침준비가 한창인 적진으로 육박하였다. 적들은 《홍의장군》이 나타났다는 소리에 기겁하여 무기도 잡지 못하고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이때 곽재우는 《한놈도 남기지 말라!》는 추상같은 호령을 내려 왜적을 삼대베듯 쓸어눕혔다. 하기에 곽재우의병장이 지휘한 전투에서는 적장뿐아니라 그 졸병모두가 《홍의장군》이 나타났다는 소리만 들어도 감히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고 도망쳐 숨을 생각만 앞세웠다고 한다. 《홍의장군》으로 곽재우의 위세가 높아지자 그를 시기하고 지어 모해하려드는자까지 있었다. 특히 감사 김수는 도망쳤던 자기 죄가 두려워 곽재우를 시기해나섰다. 그러자 곽재우는 그자를 붙잡아 반역죄로 처단해버린다는것을 도안의 여러 고을에 통고하는 격문을 돌리였다. 그 내용을 보면 당시 곽재우장군의 위국충정과 반역행위를 한 관료들에 대한 규탄이 얼마나 예리하고 엄정하였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다. 《도안의 여러 의병들에게 통고하노라. 김수는 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큰 반역자이다. 법도를 따른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그의 목을 베야 할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감사의 과실은 입밖에 내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목을 베자고 말한단 말인가.>고 한다. 이는 한갖 감사만을 알고 임금은 모르는 말이다. 왜적을 맞아들이고 서울까지 내주어 임금으로 하여금 피난을 가게 하고 팔짱을 끼고앉아 나라가 망하는것을 기뻐하니 이를 어찌 감사라고 하겠는가. … 나라의 원쑤를 갚고 나라의 역적을 치는것이 바로 사리이다. 김수는 사리를 저버린지 오래다. 김수는 사리에 맞는가 안맞는가를 론의할 여지도 없는자이다. 먼저 반역자의 목을 베여 퇴각하라는 조서가 내리지 않도록 하고 임금의 수레를 모셔들이여 나라의 형세를 바로잡는것이 곧 사리에 맞는 일이다. 바라건대 여러 의병들은 이 격문의 취지를 알고 시골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먼저 김수가 있는 곳으로 모일지어다. 그리고 그의 목을 베여 임금이 있는 곳에 바치련다. … 만약 고을의 원으로서 나라가 처한 위험과 자기가 지켜야 할 의리를 생각지 않고 도리여 김수의 죄악을 숨겨주면서 자기 고을사람들로 하여금 의병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한다면 김수와 같이 처단하리라.》 격문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비록 봉건충신으로서의 제한성은 있지만 나라를 위한 싸움에 한몸을 다 바친 그가 역적에게 내린 선고가 얼마나 예리하였는가 하는것을 잘 말하여준다. 임진조국전쟁이 끝난 후 나라에서는 그의 공로를 크게 평가하고 벼슬길에 나서도록 함경감사의 직책도 봉하였으나 곽재우는 이미 몸도 늙었는지라 사양하고 산촌에 박혀 벗들과 시로 회포를 나누며 여생을 보내였다고 한다. 그의 문집으로 《망우당집》이 있는데 시 《회포를 읊노라》에서 당시 생활일단을 엿볼수 있다. 이 시에는 어제날엔 말을 몰아 싸움터에서 용맹을 떨쳤던 홍의장군이 한평생 의리와 절개를 숭상하고 배신과 역적을 증오하며 적들에게 가차없이 죽음을 선고하던 그 시절의 기상과 함께 늙어서도 산촌에 의지하여 깨끗이 살아가려는 심중이 반영되여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