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의 포괄범위와 기본징표

 

설화는 인민대중이 생활과정에서 보고 들었거나 생각하고 원하는것을 재미나게 이야기형식으로 펼쳐가는 과정에 생겨났다.

다시말하여 자연과 사회현상에서 관심을 끄는 사실과 사건, 대상에 대하여 해석과 설명을 가하는 과정에 그들의 미학정서적요구를 반영하여 구술산문, 구전화된 이야기문학으로 발전하였다.

자연과 사회를 변혁개조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과 생활이 있는 곳에는 노래와 춤이 있고 흥미있는 이야기거리도 생겨나기마련이다.

인민대중이 력사를 창조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과정에 생겨나는 흥미있는 이야기거리는 그모두가 당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사건과 사실, 미적대상과 관련된것이다.

이것은 그 목격자들과 체험자들에 의하여 발설되고 한입두입을 거쳐 구전화되는 과정에 대중의 미학적요구에 맞게 가공되고 다듬어지면서 문학적이야기로 번져가며 나중에는 구전산문인 설화문학을 낳게 하였다.

인류최초의 설화형식인 신화도 원시인들로서는 전혀 가늠도 할수 없는 불가사의한 자연현상, 하늘과 땅에서 벌어지는 신비하고도 엄혹한 사변(천체의 운동, 번개와 우뢰, 태풍과 폭우, 홍수와 화산폭발, 맹수의 침입 등)들을 목격하고 그것을 초인간적인 《신》의 작용으로 신비화하여 해석한데로부터 생겨났다.

다시말하여 주위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신비한 현상들을 다 《신》의 조화로 보고 이를 구전화하는 과정에 천지개벽신화, 인류기원신화, 자연정복신화, 원시제천의식과 공동체생활을 반영한 갖가지 신화들이 나오게 되였다.

오늘날에 와서는 그것이 너무나도 유치하고 허황한 환상적인 이야기이지만 극히 낮은 의식상태에 있던 당시 원시인간들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관심사로 된 화제거리였으며 《신》의 힘을 빌어 엄혹한 자연 및 생활환경을 극복하려는 소박한 념원의 반영이였다.

고대에 이르러 종족집단의 큰 관심사로 된것은 첫 고대국가의 성립과 시조왕의 출현에 대한 기이한 연원을 해석하고 전설화하는것이였다.

이리하여 설화문학에서는 처음으로 국가성립에 대한 건국설화와 시조왕의 연원을 설화적으로 해석한 시조왕전설과 함께 고대국가의 생활면모를 밝히는 새로운 이야기형식인 전설이 나오게 되였다.

중세에 들어와서도 초기봉건국가성립에 대한 건국설화와 함께 시조왕, 명인들의 인물전설들이 련속 창조되였으며 사회생활의 방대하고 폭넓은 령역에서 력사적사변과 사실, 사건에 대한 이야기와 풍문, 설담 등이 발설되여 구전화되는 과정에 인민설화의 보물고를 풍부화하였다.

또한 민화(민담)와 야담, 재담과 소화, 우화와 동화 등 다양한 분화도 가져오게 되였다.

그러므로 시대력사적으로 사회발전과 함께 풍부화되여온 설화는 폭넓은 생활령역을 대상으로 하여 부단히 새로운 내용을 담으면서 형식과 그 표현을 세련시켜나감으로써 양식발전은 물론 인민적유산의 우수성과 방대성을 잘 보여주었다.

물론 이야기문학유산은 류실된것도 적지 않지만 12세기 이후에 력사기록책이나 전기, 패설, 잡기, 총화, 한화, 야담, 인문지리지, 견문록형식의 문집들에 서사적으로 고착되는 과정에 구전산문과 서사산문이 다같이 발전하여왔다.

이로부터 인민대중에 의하여 창작된 설화와 개인창작적인 예술산문의 한계선을 명백히 긋는 문제, 그 유착관계를 보다 선명하게 밝혀주는 문제가 나선다.

물론 이 문제는 얼핏 생각하면 다같이 민족문학이고 이야기문학이라는데로부터 별치않은것으로 여길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인민대중에 의하여 창작된 설화문학과 개인창작적인 예술산문이 서사적으로 문집들에 고착되는데 따라 서로 혼돈시하고 그 체질과 한계선을 모호하게 하거나 그 소속을 이전시키는것과 같은 결과가 빚어질수 있는것으로 하여 더욱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이다.

력사적으로 보면 오랜 세월 구전화되여 내려온 신화와 전설, 사화와 야담, 민화와 재담, 우화와 동화 등을 수집발굴하여 설화집으로 묶어냈거나 이야기체로 정리하여 서사적으로 고착시켜놓은것들은 인민설화로서의 한계와 그 소속이 비교적 명백하다고 볼수 있다.

특히 중세말과 근대이후 구전문학과 민속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학문적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수집발굴사업이 따라서게 되여 야사, 전설, 민담들을 묶은 설화집들이 적지 않게 나왔다.

그 대표적인것만 보아도 《조선야사》, 《조선사화집》, 《조선야사선집》, 《조선전설집》, 《조선민담집》, 《조선신화전설집》, 《조선기담전설》, 《팔도재담집》, 《전설야사집》 등 수십권에 달하며 신문과 잡지, 인문서들에 소개된것도 수없이 많다.

해방후에도 북과 남, 해외에서 각이한 이름을 단 조선설화집들이 련속 출판보급되였다.

설화집들에서는 력사적으로 인민들속에서 전하여오는 구전산문을 수집발굴하였거나 지난날 수집되여 일부 문인들이나 편찬자들에 의하여 서사적으로 고착되여온것도 설화적체질에 맞는것을 취사선택하여 구술형식의 이야기체로 정리하였다.

사화나 패설류도 력사적으로 구전화되여온 인물이나 력사적사건, 풍물과 지물에 대한 유래를 일화와 섞어가면서 구전설화적으로 엮어주고 정리함으로써 인민창작적인 설화로서의 품격을 갖추고있다.

따라서 구전설화의 포괄범위와 그 령역이 비교적 한정되여있으며 수집발굴자, 편찬자의 주석과 표식도 명백히 드러나있다고 볼수 있다.

이와는 달리 목적의식적인 연구와 수집사업이 진행되지 못하였던 중세까지를 포함한 이전시기에는 구전설화가 제때에 서사적으로 고착되지 못하여 류실된데다가 력사기록책이나 개인문집, 각종 패설집과 잡기록, 견문록들에 묶이여지면서 그 소속과 포괄범위가 불명확한것들도 적지 않았다.

지어 어떤 경우에는 전통적으로 구전설화로 명백히 일러온것도 편찬자의 예술산문령역에 소속시키는 페단까지 있었다.

그러므로 력사기록책에 편찬수록된것을 따져놓고보면 결국 그 편찬자가 작자로 오인되였거나 패설류, 잡기나 견문록에 수록된것도 그 수록자, 편찬자의 서사산문으로 인식되게 하는것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구전설화에 기초하여 개인창작적인 예술산문, 소설까지 나오는 경우도 많다. 례하면 판소리 6마당중에서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끼타령》 등은 다 구전설화에 바탕을 두고 구전화되는 과정에 흥미있는 설창(說唱)형식이 도입되여 판소리로 생겨났으며 판소리대본을 만들어 다듬고 물려주며 세련시켜나가는 과정에 약간씩 다르게 윤색되고 그것이 굳어지면서 국문소설로도 완성되였다.

개인창작적인 예술산문에는 그 창작자의 뚜렷한 몫이 있어야 할뿐아니라 수집정리자, 편찬자의 령역을 넘어서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전하여오는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전달자)까지를 념두에 두고 서사적인 예술산문의 령역으로 이전시키려고 한다면 인민창작과 개인창작을 혼탕시키는것은 물론 인민창작적인 구전설화의 개념과 징표도 흐려지고만다.

특히 오늘에 와서 구전화되여오는 설화들을 전면적으로 수집발굴하여 여러가지 이름으로 활발하게 묶어내는 조건에서 재미있게 윤색하고 지어는 《소설화》까지 하는 경우조차도 그 필자는 수집정리자, 편찬자의 위치에 놓여있게 된다.

그러므로 설화의 포괄범위와 한계선을 옳바로 긋자면 설화가 안고있는 인민적성격과 함께 그 징표에 대하여 명백하게 밝혀주어야 한다.

설화에는 실지 있었거나 있을수 있는 이야기로부터 연원되는 생활의 진실성과 함께 그들의 념원과 지향이 반영되여야 한다.

설화는 항간의 사실적인 이야기로부터 연원되는것만큼 거기에는 생활의 진실이 담겨져있으며 대중속에서 구전화되는 과정에 인민의 지향과 념원이 반영되게 된다.

력사적으로 보더라도 인민들속에서 창조되여 전해오는 이야기들은 력사적인 사실과 사건, 인물과 지물, 풍물에 기초하여 설화로 창조되고 구전화과정에 인민의 지향과 념원을 반영하면서 예술적으로 가공되고 문학적으로 완성되게 된다.

설화문학은 처음엔 사실적인 이야기로부터 출발하지만 구전화과정에 사람들이 자기들의 념원과 지향에 맞게 보태고 다듬게 됨으로써 생활의 진실과 대중의 념원을 반영한 문학적이야기로 재구성되고 인민성을 체현하면서 보다 완성되게 된다.

설화발생의 연원이 어찌되였든간에 그것이 인민들속에서 전승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대중의 지향과 미학적요구에 맞게 가공되고 예술적으로 재구성되게 된다.

원래 재구성되지 못한 이야기는 인민들속에서 오래동안 전하여질수 없을뿐아니라 인민적인 설화문학으로 발전할수 없다.

그것은 춘향이나 심청이에 대한 이야기가 커다란 공감을 안고 대중적으로 전하여지는 과정에 보태지고 재구성되여 설화문학으로 이루어졌을뿐만아니라 그것이 설창형식의 판소리대본을 거쳐 다듬어지고 문학화되여 서사적으로 고착됨으로써 소설로 완성되게 된데서도 뚜렷이 찾아볼수 있다.

심청이에 대한 실재한 이야기는 황주 도화동에서 외동딸로 태여난지 얼마 안되여 어머니를 잃고 장님인 아버지 심봉사의 손에서 동냥젖을 얻어먹고 자라난 그가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해 남경장사군들에게 팔려 물귀신의 제물로 임당수에 빠져죽는것으로 끝난다.

인민들은 효성이 그토록 지극하였던 심청의 죽음을 두고 애통하게 여기여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에 자기들의 절절한 소망을 담아 환상적으로 가공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죽었던 심청이는 련꽃속에 싸여 환생하게 되며 왕비가 되여 궁중맹인잔치에서 아버지와 만나 감격적인 상봉을 하는것으로 이야기가 극적으로 꾸며지게 되였다.

말하자면 심봉사가 죽었던 심청이를 다시 만나니 생시인지 꿈인지 분간하기 어려워 어디 보자고 하는 순간 눈을 뜨게 함으로써 인민들의 소원과 지향이 실현되게 하였던것이다.

뿐만아니라 이 이야기는 구전화과정에 흥미있는 설창형식에 의거하여 판소리대본으로 세련되고 서사화되여 인민창작적인 국문소설에까지 이르게 되였다.

여기로부터 출발하여 설화문학의 기본징표의 하나는 그 어떤 감동적인 이야기라 하더라도 구전화과정을 거칠 때만이 인민적인 설화로 완성될수 있다는것이다.

력사적으로 보면 그 발전단계에 따라 수많은 사회적사건과 사실,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존재하게 된다. 이 모든 사실과 사건들은 모두 이야기를 안고있지만 그것들이 다 전하여지거나 구전화되는것은 아니다.

인민대중에게 주목되는 현실적인 사건과 사실만이 그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로 꾸며질수 있고 거기에 교훈으로 될만 한 생활적인 인자가 깃들어있어야 대중속에 널리 퍼져나갈수 있다.

영웅적사변이나 아름다운 소행으로부터 발설되는 이야기는 언제나 전해지기마련이며 그 과정에 민심을 반영하여 가공, 확대되면서 인민적기지가 발양되고 세련되게 된다.

지역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오래동안 대중속에서 전하여오는 이야기일수록 민심을 뚜렷이 반영하게 되며 그 가치와 생명력도 클뿐아니라 설화문학적인 완성에로 지향되게 된다.

구전화되여 내려온 설화를 직접 수집정리하여 신화, 전설, 민화, 야담 등으로 표제를 달고 묶어낸것들은 우렬은 있으나 설화적인 소속과 명암이 비교적 뚜렷하여 그 한계선상에서 달리 론의될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앞에서 본바와 같은 패설류, 잡기류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구전화되여온 정도를 가늠할수 있는것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것도 적지 않다.

이런 연유로 하여 구전설화와 개인창작산문을 구별짓기 어렵거나 지어는 소속을 이전시키는것과 같은 결과도 빚어지게 되는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기준점은 그것이 구전화되여온 이야기인가 아닌가에 있다.

구전화되여온 이야기일 때에는 례외없이 인민대중속에서 생겨나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거쳐 가공되며 인민들의 지향과 리념을 담게 된다.

뿐만아니라 실화적인 범위를 벗어나 설화적인 감화력을 가지고 세련되게 되며 그것으로 하여 오랜 세월을 거쳐 구전화되면서 인민들의 사랑속에 시대와 력사, 지역을 넘어 광범위하게 전파보급된다.

오늘 세계적인 범위에서 민족설화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광범히 류포되고 커다란 감화력을 가지게 되는것도 인민적지혜를 발양시켜 설화적으로 세련시키고 완성시켜나간 구전화의 생활력이거나 그 소산이다.

그러므로 인민들속에서 구전화되여온 이야기인가 아닌가 하는것이 인민설화를 특징짓는 기본징표의 하나로 되는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리치이다.

설화문학의 기본징표의 다른 하나는 그것이 길고짧음에 관계없이 완결된 정연한 이야기줄거리를 가지고있어야 한다는것이다.

정연한 줄거리가 없는 이야기는 사건적으로, 다시말하여 서사적으로 펼쳐질수 없다.

이야기거리가 있어야 대중의 관심속에서 화제에 오르게 되며 구전화과정에 구술산문으로서의 줄거리를 가지게 된다.

이야기거리가 없는 말은 군중의 관심을 끌수 없으며 설사 그들의 입에 올랐다가도 인차 사그라지는 소문에 불과하다.

물론 항간에서 떠돌아다니는 풍문이 광범한 범위에서 구전화되는 과정에 설화적인것으로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이때에도 거기에는 설화적인 이야기거리가 담겨져있거나 구전화과정에 보태여져 전개시켜나갈수 있는 생활소재적인 바탕이 있어야 한다.

례를 들어 조재삼의 《송남잡식》(松南雜識)에는 한때 호남지방에서 있은 이야기라고 하면서 쓰기를 남원부사의 아들 리몽룡과 신분이 《천한》 춘향(춘양)이 서로 극진히 사랑하였다고 한다.

서울에 올라간 몽룡을 기다려 수절하던 춘향이 새 사또의 손에 죽은 후 이 지방에서는 3년 흉재가 들어 사람들이 아우성쳤다는 풍문이 돌아갔다는것이다.

여기에서 말한 풍문은 벌써 소식이나 소문의 범위를 벗어나 설담으로 전하여질수 있는 이야기거리를 안고있다.

다시말하여 신분상 엄격한 차이로 하여 리몽룡과 춘향사이의 사랑이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 극적인 이야기거리를 안고있기에 실지 사실과는 달리 구전화과정에 정연한 이야기줄거리를 가진 설화문학으로 형성될수 있었다.

설화는 인민대중이 창조한 문학적이야기인것만큼 자연 및 사회현상에 대한 해석과 설명이 문학적으로 되여야 할뿐아니라 시작과 끝이 있는 이야기로 완결되여야 한다.

그래야 인민대중의 지향과 미학적요구에 맞게 이야기가 재미있게 될수 있으며 전하는 과정에 보태여지고 다듬어지고 전개되여나가면서 째인 이야기줄거리를 가진 설화문학으로 완성될수 있다.

원래 설화는 대중속에서 구술되는 이야기문학으로 형성된것만큼 그것이 짧은 이야기나 긴 이야기나 할것없이 다 줄거리를 타고 전개되며 전후사연이 맞물려 하나의 줄기를 이룬다.

설화중에서 길이가 짧은 지명전설 같은것도 이야기의 발단과 전후사연, 그 맺음이 명백히 제시되여있어 짧지만 문학적이야기로 완결되여있는것이다.

《만석동》전설, 《계정리》전설, 《설암리》전설, 《강선리》전설과 같은 지명전설은 짧으나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있으며 지명을 그렇게 부르게 된 유래와 전후사연이 이야기로 맞물려져있다.

이것은 설화문학이 소설과 같이 성격의 문학, 묘사의 문학인것이 아니라 이야기줄거리문학, 사실적인 내용과 사건적인 이야기를 구술하는 문학인것과 관련된다.

여기에서 이야기줄거리문학이라는것은 문학의 설화성을 말하는것으로서 문학적이야기를 기이하게, 재미있고 흥미있게 엮어나가는 구술적인 문학을 말한다. 이야기를 재미나게 구술적으로 엮어나가자면 정연한 이야기줄거리를 타야 하며 시작과 끝이 있게 기승전결로 이끌어주고 맺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고서는 어떤 이야기도 재미있게 펼쳐나갈수 없다. 원래 설화문학이라는 말자체가 설명과 해설로 엮어지는 구술산문인것으로 하여 이야기줄거리문학이라는 말과 통한다.

여기로부터 이야기줄거리를 어떻게 꾸며내고 엮어나가는가 하는데 설화구성의 비결이 있으며 이야기문학, 설화문학의 징표의 하나가 있게 된다.

력사적으로 이야기문학의 가장 초기형태라고 할수 있는 신화에서조차 이야기는 비교적 정연한 줄거리를 가지고있으며 력사기록과 달리 야사체로 문학화되여있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해모수신화에서 뚜렷이 볼수 있으며 그것을 이어 전개된 주몽전설에서 더욱 뚜렷이 찾아볼수 있다.

설화문학의 또 다른 하나의 징표는 그것이 구전화되여오다가 서사적으로 고착된 이야기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구술형식의 이야기체로 되여야 한다는것이다.

인민들속에서 창조된 재미있고 뜻이 깊은 보다 가치있는 설화들은 민간이야기군들에 의하여 선택되여 이야기보따리속에 모아지게 되며 그것이 다시 항간에 류포되면서 흥미있게 다시 구연된다.

이야기군들이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마을과 지역을 돌아다니며 구연하는 과정에 이야기가 더욱 세련되고 완성되였을뿐아니라 군중의 흥미를 끌기 위한 요구로부터 구연형식도 바뀌여지면서 점차 이야기에 노래가 섞여들어가게 되였다.

이리하여 이야기와 노래를 다같이 이야기줄거리상에서 끌고나가는 설창형식의 판소리가 새롭게 생겨나게 되였으며 독연형태로 진행되는 구술형식의 설(說)과 창(唱)이 결합되여 배우의 연기행동으로 실현되게 되였다.

판소리대본도 설화적인 구연방식과 노래적인 창형식이 조화롭게 배합되여 필사본으로 완성되게 되였다.

또한 6마당으로부터 12마당으로 종수를 늘이고 발전시키는데 따라 판본들이 세련되여 나중에는 국문소설에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구전설화는 발생당시부터 인민대중속에서 재미나고 흥미있는 문학적이야기를 대상으로 하여 그것을 구술하는 형식으로 창조전승된것만큼 구술, 구연형식의 이야기체로 되여있다. 여기로부터 서사산문과 구별되는 문체상차이도 생겨났다.

설화는 이야기체로 엮어지는 구술형식의 구전산문이다. 구술자는 설화의 창조자이자 전승자로 되며 듣는 사람 역시 후에는 전승자이자 창조자로 되게 된다.

이리하여 설화는 인민대중에 의하여 구전화과정에 집체성이 실현된 구술산문체문학으로 발전하게 되였다.

대중에 의하여 구전화되는 과정에 이야기문학으로 완성되였다는것과 구술되는 과정에 설화체 즉 이야기체의 구술산문으로 형성되였다는것은 다같이 개인창작적령역에 속하는 서사산문과 구별되는 구전설화의 기본징표의 하나로 된다.

그러므로 구전설화를 수집정리하거나 력사적으로 내려오는 사기류와 인문지리지, 패설집이나 잡기, 견문록들에 실려있는 설화를 찾아낼 때에는 구술산문으로서의 이야기체의 징표에 대해서도 간과하지 말고 재음미하여 심중히 처리하여야 한다.

물론 서사적으로 고착된 각양각색의 이야기와 잡문이 그 소속과 래력관계가 밝혀져있지 않거나 누가 들려주었거나 그자신이 한 말이라고 하여 전승자와 창작자를 제나름으로 손쉽게 규정해서도 안될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구술산문이나 서사산문을 다같이 이야기문학에 속한것으로 방임해둔다면 구전설화의 징표에 대하여 론할 필요도 없게 된다.

특히는 구전설화로부터 출발하여 개인창작적인 예술산문, 나아가서는 소설에 이르는 호상 침투와 련관관계가 복잡하면서도 발전상에서는 하나의 서사적방식으로 관통되여있는것으로 하여 그의 기본징표와 위치, 소속관계를 옳게 밝히는 문제가 나선다.

여기에서도 구전설화의 본질적인 징표를 옳게 밝혀주어야 그것이 비록 개인문집에 서사화되였거나 패설집이나 잡기류에 실려있다 하더라도 예술산문이나 초기소설양식과 구별되게 할수 있으며 더우기는 제나름의 규정이나 소속이전을 막을수 있다.

오늘 세계적으로도 해당 나라, 민족별로 자기 고유의 민요집과 함께 설화집들이 각양각색으로 여러가지 이름과 표제를 달고 련속 묶여져나오고있는 조건에서 설화의 한계선을 똑똑히 긋고 그 개념으로부터 시작하여 본질적인 속성과 표징, 그 포괄범위와 분류에 이르는 전반적인 령역에서 더욱더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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