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에 깃든 전설

 

우리 나라의 명산, 명승지마다에는 이름있는 못들이 많아 아름다운 풍치를 돋구어주며 오랜 력사적사실과 함께 지물전설적인 사연을 남기고있다.

못이름은 옛날부터 연(淵) 지(池), 담(潭) 등 여러가지로 불리워왔다.

조종의 산 백두산의 천지와 성산의 정기가 담긴 삼지연, 대성산의 사슴못과 잉어못, 개성의 박연, 구월산의 삼형제못과 달래소, 금강산의 상팔담, 한나산의 백록담 등의 못들이 안고있는 전설들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자강땅에는 도마봉이라는 높은 봉우리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는 움푹 패인 큰 못이 있다. 이것을 《운림지》라고 부른다.

옛날 도마봉의 못가옆에 산막이 한채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다른 고장에서 온 젊은이가 혼자 살고있었다.

산아래동네사람들은 그를 《퉁소선생》이라며 존경해왔다.

그의 본명은 운림이였다. 구름이나 밀림속을 좋아하여 그렇게 이름지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화창한 봄날이나 오곡백과 무르익는 가을의 달밝은 밤이면 못가의 바위우에 앉아 퉁소를 부는것을 락으로 삼았다.

고요한 달밤이면 그 퉁소소리가 산아래마을에까지 울려와 사람들은 산중에서 홀로 적적하게 지내는 그를 동정하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해 한가위날 달밤이였다. 그날도 은은한 퉁소소리가 멀리까지 울려퍼졌다.

그러던중 어데선가 《여보세요!》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운림이 머리돌려 소리나는 곳을 살펴보니 유령인지 사람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형체가 다가오는것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녀인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운림은 《당신은 누구요? 한밤중에 이 산속을 찾아드니 웬 일이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녀인은 숙였던 머리를 들고 미안해하는 어조로 《저는 집도 부모도 없는 혈혈단신으로 의지할데 없이 돌아다니는 몸이온데 오늘 밤 처량한 그 퉁소소리를 듣고 마음에 끌려 발길을 옮겨 여기까지 왔나이다. 방해가 되지 않으신다면 한 곡조만 더 듣고는 곧 돌아가겠나이다.》 하고 간청하였다.

운림은 한밤중에 찾아온 녀인의 간절한 소원인지라 구슬프고 처량한 인생살이를 하는 자기 심정을 담아 퉁소를 불었다.

녀인은 그 소리에 마음이 설레여 눈물을 머금고 운림을 지켜보며 서있었다.

운림은 한곡 더 불자고 하다가 녀인을 잡아두는것 같아서 이제는 돌아가보라고 하였다.

한동안 말없이 서있던 녀인이 용기를 내여 하는 말인즉 《저는 갈 곳이 없는 몸이오니 가엾이 여기시여 의탁하게 해주시면 일생을 모시고 지낼가 하옵니다.》라고 하였다.

운림은 처음엔 몹시 놀랐으나 이내 측은한 생각이 들어 그 녀인을 자기가 사는 초막으로 데리고왔다.

적막하던 운림의 초막에 청춘남녀의 화기로운 웃음소리가 넘쳐흘렀다.

운림은 기이한 인연으로 하여 청춘의 활기를 되찾게 되였다.

이렇게 한해가 지나가고 다시 봄이 왔다.

운림이 사랑스러운 안해와 함께 산전을 뚜지고 곡식을 가꾸어가니 예전보다 산천의 향수를 더욱 각별히 느끼게 되여 그들부부는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여름철에 들어서면서 비가 오지 않아 곡식은 물론이고 나무잎까지 누렇게 말라갔다.

안해는 걱정으로 속을 썩이던 나머지 얼굴색까지 까맣게 죽어갔다.

운림은 혼자 당하는 가물피해도 아닌데 너무 그렇게 마음쓰지 말라고 안해를 위로하였다.

하루는 운림이 시름끝에 깜빡 잠들었는데 꿈에 자기의 안해가 룡녀로 변신되여 나타나 하는 말이 《제가 못에서 나왔기에 가물이 들어 초목이 마르고 못의 물도 줄어드니 이것은 룡왕을 노엽힌 내탓이라 본고장으로 돌아가겠나이다. 그러되 부탁하고싶은것은 달밝은 밤이면 못가에 나와 님의 얼굴을 비쳐주시고 그 퉁소소리를 들려주옵소서.》 하고는 초막을 나서는것이였다.

운림은 《여보! 어디로 가는거요?!》 하고 소리치다가 꿈에서 깨여났다.

옆의 잠자리를 살펴보니 정말로 텅 비여있었다. 그길로 못가에 달려갔으나 아무런 종적도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며칠 련달아 줄비가 내려 가물이 가셔지게 되였다.

그럴수록 운림은 룡녀가 사무치게 그리워 못가에 나가 퉁소를 불군 하였다.

그러나 못에는 정적만 깃들고 룡녀의 얼굴을 찾아볼수 없었다.

달포가 훨씬 지난 어느 가을날 달밝은 밤에 여전히 퉁소를 불고 앉아있던 운림은 못속에서 뛰놀던 큰 고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여보!》 하고 운림은 저도 모르게 물속에 뛰여들었다.

그후로는 도마봉의 이 못가에서 은은히 울려퍼지던 퉁소소리가 더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래마을사람들이 달려와보니 못가에 퉁소와 운림의 신발만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후로 사람들은 도마봉의 이 못을 《운림지》라고 부르고 가물이 심할 때는 이 못가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왔다고 한다.

구월산의 《삼형제못》에는 삼형제장수총각과 하늘선녀 삼형제가 기이한 상봉으로 짝을 뭇고 련정을 속삭이며 행복한 날을 보냈다는 전설이 깃들어있다.

하늘선녀 삼형제가 구월산 오봉골에 내려와 목욕하고있는것을 처음으로 보게 된 장수 삼형제는 그들을 맞아들이기 위해 나무에 걸어놓은 선녀의 옷을 형제순에 따라 각기 감추려 하였다.

그런데 어느것이 누구의것인지 알수 없는지라 생각하던 끝에 선녀들이 목욕하고 하늘로 올라간 다음 첫 못을 기준으로 하여 그아래로 차례로 두개의 못을 더 파서 삼형제의 못이 되게 하였다.

그리고 산등성이에 숨어서 선녀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렸으나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삼형제장수는 자기들의 심정을 담아 하늘에 대고 청아하고 은은하게 피리를 불기 시작하였다.

이때 선녀들이 구월산을 굽어보며 내려왔다.

선녀들은 못이 셋으로 생겨난지라 산신의 은혜인줄 알고 형제순위로 각각 못 하나씩 차지하였다.

선녀들이 시원스럽게 목욕을 끝내고 날개옷을 찾아입으려는 순간 세 젊은이가 불쑥 나타났는데 각각 자기들의 옷을 쥐고 서있는것이였다.

선녀 삼형제는 놀랍고 당황하여 안절부절 못해하다가 그들과 통성하였으니 하늘세상의 계률을 어기여 더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풍치수려한 구월산골짜기에 눌러앉아 인간세상의 따뜻한 정을 체험하며 살았다고 한다.

전설은 하늘선녀와 구월산 삼형제총각의 련정관계를 환상적인 형식에 담아 《삼형제못》의 유래를 해석한것으로서 금강산의 팔선녀전설과 상통할뿐아니라 하늘선녀가 내렸다는 지물전설들에서 흔히 볼수 있는 상을 변형류전시킨것이라고 짐작된다.

황해남도 신천땅 반정리의 초입구에 있는 《장사못》에는 기구한 머슴장사의 눈물겨운 전설적인 사연이 깃들어있다.

옛날 이곳에 세력있는 한 량반이 살고있었다.

그에게는 두 남매가 있었는데 딸은 인물이 잘나고 글재주가 있어 나이가 차자 청혼이 끊기지 않았다.

그 량반은 다른 청혼은 다 물리치고 서울에 있는 한 재상의 아들을 점찍어두고있었는데 그 집안은 세력가이나 당사자를 놓고보면 좀 모자라고 불민한데가 있었다.

그래서 어느 하루 혼사에 앞서 딸에게 의향을 물어보았더니 딸은 아버지의 그 소리를 듣고 《권세와 재물은 사람에게 따라오니 사람을 먼저 보고 택해야 할줄 아오이다.》 하고 자기 소견을 아뢰였다.

그래서 량반은 말을 못하고 딸의 눈치만 살피고있었다.

이 량반집에는 집안이 못살고 일찌기 부모를 여의여 하는수없이 머슴살이를 하는 총각(룡길)이 있었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인데다가 동네에서 생기는 궂은일, 마른일 도맡아 보살펴주기에 모두들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 량반집 말이 굴레를 벗어던지고 달아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때 달리는 말을 비호같이 따라잡은 머슴총각이 갈기를 잡고 말잔등에 뛰여올라 정지시키는것을 지켜보고있던 량반은 《룡길이가 량반집 자식으로 태여났더라면 적어도 훈련대장쯤은 되고도 남음직한데 아깝게도 상놈의 자식이다보니 …》 하며 아쉬워하였다.

그래서 자기 집 머슴에 불과했지만 그를 상놈처럼 마구 욕질하거나 허술히 대하지 못하였다.

그래서였던지 그 집 아씨도 나이찬 룡길이를 천한 머슴으로 여기지 않았고 후원에 있는 초당에서 공부하다가는 심심하면 불러들여 글도 함께 외우고 롱담도 주고받으며 지내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해 봄날 저녁 처녀는 후원에 화창하게 피여난 꽃밭을 거닐며 흥에 겨워 즉흥시 한수를 읊었다.

그런데 꽃밭속에서 그 시에 화답하는 시구를 읊어대는 소리가 났다. 그래 《누구냐?》 하고 소리치니 《놀라지 마시오이다. 제 룡길이올시다.》 하며 억대우같은 총각이 나타났다.

아씨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그새 글공부를 많이 해서 이젠 제법 시로 화답하기까지 하는구나.》 하고는 신분상차이가 있는것을 은근히 아쉬워하였다.

그후로부터 이런 일이 자주 있게 되는 과정에 저도 몰래 애정이 싹터올랐으나 서로의 마음속에 숨겨둔채 내색없이 지내였다.

아씨는 룡길이가 장사같이 힘세고 잘 생긴데다가 겨드랑이에 비늘이 돋아있다는 소문도 들은바가 있어 그것이 사실이였으면 하는 마음도 생겨나게 되였다.

특히는 자기 아버지가 어느 하루 서울에 있는 재상집에 급한 심부름을 보냈을 때에도 하루길로 되돌아와 모두들 그가 진짜 장수감이라고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니 더 마음이 끌리였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룡길이가 초당에 아씨를 보려고 슬그머니 나타났다.

아씨는 검은 그림자가 문가에서 얼른거리는지라 작은 목소리로 《누구냐?》 하고 녀종이 온줄만 알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산같은 그림자가 다가서더니 《룡길이올시다.》라고 하였다.

그 소리에 아씨는 안심은 되였으나 밤인데 무례하게 이렇게 찾아드는가고 타일렀다.

그러자 룡길은 용기를 내여 토로하기를 《장사가 나매 룡마가 나고 군자가 나매 숙녀가 나는것은 정한 리치가 아니오이까.》 하면서 《저인들 후일에 장수가 못된다는 법이야 있겠소이까?》 하며 절절히 자기의 마음속 호소를 하는것이였다.

아씨는 그의 말에 아무 대답도, 그를 내쫓을 생각도 못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신분을 초월한 청춘남녀의 사랑은 나날이 깊어만 갔다.

그때로부터 달포가 훨씬 지난 어느날 달밤에 량반집 로친네가 잠이 오지 않아 후원을 거닐다가 초당에 이르렀는데 그전 같으면 글공부를 하느라고 불이 켜있을 초당이 잠잠한지라 초당문을 벌컥 열고 《벌써 자느냐?》 하고 물었다.

그런데 딸 혼자인줄 알았던 방안에서 웬 사나이가 바삐 뒤문으로 달아나는것이였다.

몸집이 우람진것으로 보아 머슴총각같애서 《저게 룡길이 아니냐?》 하고 딸에게 캐여물었다.

그 딸은 《룡길이가 여기에 들어올리 있겠어요.》 하고 어물쩍 넘겨버리였다.

로친네는 룡길이란 놈이 불칙한 마음을 먹고 뛰여든것이 틀림없다고 단정하고 다음날 아침 남편과 아들에게 이야기하였다.

아들녀석은 당장 그를 때려죽이겠다고 야단쳤다.

그러자 아버지가 하는 말인즉 《룡길이는 보통놈이 아니다.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달렸으니 잘못하다가는 도리여 화를 당한다.》고 하면서 잡도리를 잘하여 궁냥을 세우라고 하였다.

다음날 량반은 딸을 초당에 나가지 못하게 집 안채에 가두어두고 룡길의 동향만 살피였다.

룡길이는 아씨가 걱정되여 동태를 살피며 며칠밤을 뜬 눈으로 새우다가 그로부터 닷새되는 날밤엔 아주 깊은 꿈속에 들었다.

그러자 그 기미를 알아차린 하인들이 삽시에 달려들어 룡길이의 몸을 굵은 바줄로 칭칭 동여매고 련못가로 끌고나와 몸에 큰돌을 달아매여 물속에 던져버리였다.

룡길은 아씨를 다시 만나지 못하고 죽는것이 한스러워 물속에서 다시 솟아올라 《내가 죽으면 필경 아씨도 따라 죽을것이니 그 시체를 이 못에 던져넣어주사이다. 내 말을 어기면 이 집안에 큰 우환이 있을것이오이다.》 하고는 가라앉아버렸다.

룡길이 죽음을 당하자 못 한가운데서 큰 왕벌이 하늘로 날아올랐는데 너무도 기이하여 딸의 방에 가보니 그도 목을 매여 저세상에 가버렸다.

량반부부는 너무도 억이 막혀 자기들이 하지 못할짓을 한것을 후회하였으나 딸이 살아날리 없었다.

그런데 책상우에 종이 한장이 놓여있기에 얼결에 보니 자기도 룡길이와 같이 못에 던져달라는 딸의 마지막부탁이였다.

그후로 이 량반집가문에서는 딸애가 태여나면 15살을 넘기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때로부터 이 못을 《장사못》이라고 부르고 해마다 불우하게 생죽음을 당한 장사와 그 처녀의 원혼을 위한다면서 소대가리를 한짝씩 제물로 못에 던져주었다고 한다.

신천지방의 《장사못》전설 비슷한 기구한 사연을 담은 전설은 구월산 서쪽기슭의 자그마한 동네앞에 있는 달래소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옛날 이 고장에는 마가성을 가진 지주놈이 살았는데 호색한이다보니 첩을 여럿이나 두고도 자기 집 머슴처녀가 숙성하여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자 은근히 자기의 수욕을 채워볼 흑심을 품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자기 집 머슴총각과 늙은 마누라가 장에 가고 다른 사람들도 다 일보러 나가다나니 집안에는 머슴처녀와 자기 둘만이 남아있게 되였다.

이것을 더없이 좋은 기회로 여긴 지주령감은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시늉을 하면서 머슴 달래를 자기 방에 불러들이였다.

누워있던 지주놈은 아무래도 체한것 같다며 달래더러 배를 좀 주무르라고 하였다.

처녀가 섬찍하여 멍하니 서있자 지주놈은 달래의 손을 잡아 이렇게 문지르면 체한것이 내려갈것 같으니 어서 문질러달라고 재촉하였다.

달래가 지주놈의 강박에 못이겨 한참 문질러주자 지주놈은 《후―》 하고 숨을 내쉬고는 좀 나아지는것 같다면서 처녀의 손을 더 아래로 내리끌었다.

처녀가 너무도 무안해 손을 떼려 하자 이때라고 생각한 지주놈은 달래의 손을 꼭 잡고 《너도 나이찼으니 이 늙은것의 소원을 한번 풀어주려마. 그러면 우리 집 머슴총각하고 잔치도 차려주고 사랑방에 세간도 내줄테다. 알겠느냐?!》 하고는 달래를 끌어안으려 하였다.

그제야 지주놈의 흉심을 알아차린 달래는 그놈의 손아귀에서 겨우 빠져 마당가에 뛰쳐나왔는데 지주령감이 《게 서지 못할가!》 하며 쫓아나왔다.

달래는 질겁하여 앞벌로 달려갔으나 지주놈이 계속 뒤쫓아오는지라 《사람 살려요!》 하고 소리치며 못가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주놈은 실성한 놈처럼 독이 올라 당장 잡아죽이려 하니 달래도 너무 급하여 얼결에 못에 뛰여들었다.

못이 너무 깊어 달래는 몇번 솟구쳐오르다가 그만 영영 물속에서 나오지 못하였다.

달래가 소리치는것을 듣고 마을사람들이 달려왔을 때는 달래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사람들은 《이 악착한 지주놈아, 너도 죽어봐라.》 하고 연신 돌총을 놓아 지주놈을 꺼꾸러뜨리였는데 그때 던진 돌이 큰 무지를 이루었다.

그후부터 사람들은 달래가 빠져죽은 못을 《달래소》라고 불렀다.

전설은 보는바와 같이 머슴처녀의 기구한 운명과 함께 파렴치한 지주놈의 야욕을 단죄고발하면서 그런자들은 응당 죽어 마땅하다는것을 시사해주고있다.

이외에도 못에 대한 전설에는 의로운 룡이 복을 내리였다는것도 많지만 심술궂은 룡이 있어 비를 못내리게 하여 기우제를 지낸다면서 가난하고 못사는 집 애어린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기구한 사연을 전하는 전설들도 적지 않다.

못에 대한 전설들중에서 또 한가지를 간단히 보기로 하자.

고려시기 강감찬장군이 벼슬길에 올라 해주목사로 왔을 때 관가가까이에 있는 《부용당》의 못에서 여름밤이면 맹꽁이의 울음소리가 성가시게 들리여 그것을 그치게 해달라는 제소를 받은적이 있었다.

관가의 관리들은 무당에게 굿을 해서 멈추어보려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는 파수를 세워 계속 돌총을 놓게 하였건만 그것 역시 은을 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신묘한 술책을 지니고있는 강감찬장군만이 할수 있는 일이라며 간청하였던것이다.

강감찬장군이 《아무리 미물이기로서니 그렇게도 사람을 괴롭힌단 말인가.》 하고 엄하게 꾸짖으며 부적을 써서 던졌더니 그 숱한 맹꽁이가 일시에 벙어리가 되여 다시는 울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한낱 미물도 장군을 알아보고 울음을 그치였다는 전설이 전하여졌다.

그리고 리조때에는 감영의 남쪽문가까이에 있는 련못에 풍치를 돋구기 위해 돌기둥 25개를 박고 그우에 4칸짜리 다락집을 세웠는데 이것을 부용못의 루정이라는 의미에서 《부용당》이라 하고 그옆으로 8칸짜리 집을 련달아 지었다.

못우에 세워진 루정인지라 감영의 관리들은 쉴참에도 거기에 나와 바람을 쏘이였고 바둑도 두고 빈번히 놀이판을 벌리며 밤늦게까지 놀아댔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데서 그렇게 많은 개구리들이 모여들었는지 놀음판을 벌릴 때마다 일제히 울음소리를 터치며 항소하듯 요란스레 울어대군 하였다.

그래서 감영가까이에 있는 집들에서는 또 관리들이 놀음판을 벌린다고 생각하면서 개구리의 울음소리에 잠들수 없었다.

낮에는 일에 시달린 백성들이 밤에도 편히 쉴수 없어 감사를 찾아가 제발 개구리울음소리를 그치게 해달라고 제소하였다.

감사는 예전과 같이 놀음판을 벌릴 때마다 파수를 세우고 돌총을 놓게 하였다.

그때마다 개구리는 더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였다.

감사는 개구리울음소리로 백성의 원한을 사는지라 못을 당장 메워버리자고 하였다.

그러자 아전관리들이 하는 말이 그 큰 못을 메우자면 백성들을 끌어내여 부역을 시켜야만 할수 있는데 그것이 더 큰일이라고 하였다.

감사는 개구리들마저 우리를 원망하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고 탄식하며 묘책이 더는 없는가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그래서 일설에는 시부를 잘 지어 못에 숨어있는 룡도 움직이게 하였다는 문인을 데려다가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멈추게 하였다는 설도 있고 또한 신기한 주문을 외워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멎게 하였다는 설도 있다.

이처럼 《부용못》은 개구리울음소리와 관련하여 기이한 전설을 남기고있다.

환상적인 동물인 룡과 관련된 못은 적지 않은바 황해남도 《룡연》, 대성산의 《구룡못》과 함께 금강산의 명승을 자랑하는 《구룡연》전설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금강산의 《구룡연》은 천하절경이고 명산인 이 산을 지키고있는 아홉마리 룡이 살고있는 못이라 하여 소의 이름도 그렇게 지어 불렀다고 한다.

이 소와 관련하여 여러 전설이 전하여오지만 그중에서도 53불과 싸운 아홉마리 룡에 대한 전설이 유명하다.

이 전설들은 모두 환상적으로 꾸며진것이지만 우리 나라에 불교가 들어오게 된 시대상과 함께 중요하게는 천하절경 금강산을 자랑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전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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