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목, 섬과 관련된 전설

 

우리 나라에는 강과 함께 여울목에 대한 전설도 적지않다.

먼저 《백은탄》전설을 보기로 하자.

멀고먼 옛날 평양 모란봉꼭대기에는 언제 그 누가 만들었는지 알수 없으나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크고 웅장한 은종이 있었다고 한다.

이 종은 평양성의 보배로운 신비한 종이였다. 한것은 외적들이 쳐들어올 때면 이 은종이 미리 징조를 알리여 저절로 울리군 하였기때문이였다.

은종은 그 소리가 매우 은근하면서도 아름다와 평양성의 자랑으로 되고있었다.

이처럼 신비롭고 보배로운 은종에 대한 소문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한입두입 건너 멀리 이웃나라들에까지 널리 퍼지게 되였다. 하여 이웃나라 사신들이 평양성에 올 때면 먼저 모란봉에 있는 은종부터 찾아보았고 지어는 우정 은종을 구경하자고 몇만리밖에서도 찾아들 오군 하였다.

이렇게 소문이 나고 많은 사람들의 경탄과 부러움이 높아갈수록 은종을 탐내는 나라들이 또한 많아지게 되였다.

어떤 나라에서는 많은 보물과 바꾸자고 하였고 어떤 나라에서는 위협을 하면서 팔라고 하다가 나중엔 은종을 빼앗아가자고 수만의 군사를 출동시켜 덤벼들기까지 하였다. 그때마다 평양성사람들은 은종을 통해 미리 놈들의 기도를 알고 만단의 태세를 갖추었다가 덤벼드는 놈들을 물리치군 하였다.

그러나 놈들의 침입이 한두차례도 아니고 수십차례 거듭되다나니 성벽도 무너지고 사람들도 지쳐서 평양성이 위태롭게 되였고 은종을 지켜내기도 힘겹게 되였다.

이리하여 평양성사람들은 모여 의논하던 끝에 은종을 안전한 청류벽밑 대동강물속에 숨겨놓게 되였다.

그뒤 놈들이 다시 기여들지 못하게 타격을 안기고 성벽도 예전대로 튼튼히 구축한 다음 은종을 다시 모란봉꼭대기에 올려놓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청류벽밑 대동강물속에 숨겨두었던 은종이 온데간데 없어졌다.

모두 떨쳐나서 대동강을 샅샅이 훑어보며 은종을 찾아 헤매던 평양성사람들은 련광정앞 덕암소에서 커다란 검은 룡이 은종을 물고 대동강을 따라 하류쪽으로 내려가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그 검은 룡은 서해바다 한가운데 둥지를 틀고있는 룡이였다.

평양성사람들이 이 검은 룡에게서 은종을 빼앗아내자고 북과 징을 울리고 고함을 치며 창과 칼을 던지면서 결사적으로 싸웠건만 소용이 없었다.

바로 이때 주암산쪽에서 대동강물결을 헤가르며 집채같은 붉은 룡이 달려내려오더니 검은 룡을 덮쳤다.

붉은 룡과 검은 룡의 대격전이 벌어진 대동강안은 흰 물보라로 가득찼다.

3일이나 걸린 이 대격전끝에 참패를 당한 검은 룡이 마침내 붉은 피를 토하며 대동강물우에 둥둥 떠내려갔다.

승리한 붉은 룡은 은종을 물고 대동강을 거슬러올라 원래 숨겨두었던 자리에 놓았다.

이날 평양성사람들은 은종을 찾게 된 기쁨과 은종을 빼앗아낸 붉은 룡의 공적을 축하하여 주암소곁에서 큰 축하연을 차리였으며 붉은 룡에게 은종을 맡기는것이 좋겠다고 락착짓고 은종을 그대로 청류벽밑 대동강에 두자고 하였다.

이리하여 륙지로 덤벼드는 놈들은 평양성사람들이 쳐없애고 강물로 덤벼드는 놈들은 이 붉은 룡이 막아내여 보배롭고 신비한 평양의 은종은 영원히 평양성사람들의것으로 되였다고 한다.

후세에 이 이야기를 전해오면서 릉라도와 반월도사이를 그때 은종을 두었던 여울이라는 뜻에서 《백은탄》이라고 불러왔다고 한다.

자랑많고 전설많은 대동강은 《왕성탄》, 《오탄》전설도 안고있다.

왕성탄은 릉라도 웃쪽 여울이다.

이 여울을 《왕성탄》이라고 불러오게 된 사연은 이러하다고 한다.

고구려시기 어느 한해 여름에 외래침략자들이 불의에 평양성을 공격하여왔다.

동대원벌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침략자들이 달려들자 평양성사람들은 일시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그렇게 많은 침략자들이 뜻밖에 달려들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만단의 방비책을 세우지 못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침략자들은 벌써 평양성을 점령하려 강으로 들어서려고 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에 갑자기 먹장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뒤덮더니 대줄기같은 비를 퍼부었는데 삽시에 대동강물이 범람하여 침략자들이 강을 건늘수 없게 되였다.

《하늘도 우리를 돕는구나!》

평양성사람들은 이렇게 환성을 올리며 노한 강물이 침략자들을 막아주는 기회를 타서 싸움준비를 서둘렀다.

군사와 장정들은 창과 칼, 활을 쥐고 성에 올라 자기 자리를 차지하였고 로인들과 녀인들은 창과 칼을 벼리기도 하고 군량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대동강에 큰물이 난 사흘사이에 평양성사람들은 침략자들의 공격을 물리칠 만단의 준비를 갖추었을뿐아니라 적들에게 호된 반격을 안길 준비도 다 갖추어놓았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서 비는 그치였으나 여러날이 지나도록 범람하던 대동강물은 찔줄 몰랐다.

이렇게 되자 평양성안의 군사와 인민들의 마음은 초조해졌다.

그것은 강건너 적들이 홍수로 평양성을 공격할수 없게 되자 물이 찌기를 기다리느라고 무장을 풀어놓고 동대원벌의 농가들에 달려들어 소와 돼지를 마구 끌어다가 매일 밤낮으로 잡아먹으며 돌아쳤고 그와 함께 놈들에게 피해를 당하는 인민들의 원성소리가 날을 따라 높아졌던것이다.

이러한 소리를 들으며 놈들의 추태를 바라보는 평양성안의 군사와 인민들의 증오와 복수심은 더욱 끓어번지였다.

성벽에서나 성안의 곳곳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강물이 왜 찌지 않을가?》

《놈들이 저렇게 해이된 틈을 타서 쳐야 하겠는데 …》

모두 강물이 찌지 않아 안타까와하고있을 때 백발의 한 로인이 나타나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그건 평양성근방에 외적들이 더러운 발을 들여놓게 한데 대한 대동강의 노여움이 풀리지 않아서이라네. 그 노여움을 풀어주어 물이 찌게 하자면 한 젊은이가 강에 뛰여들어 용서를 빌어야 할걸세.》

이 로인의 말은 삽시에 온 성안에 퍼지였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으랴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 말을 반신반의하며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였다.

바로 이때 한 젊은이가 성벽우에 우뚝 올라서서 여러 사람들을 향하여 웨쳤다.

《여러분! 외적을 칠 길이 열린다는데야 어찌 한목숨을 아끼겠나이까. 제가 외적을 평양성가까이 기여들게 한 죄를 빌터이니 이제 외적을 칠 길이 열린다면 내 몫까지 싸워주기 바라나이다.》

그 젊은이는 평양태생 왕손이라는 군사였다.

그는 말을 마치고 사람들이 막아나설 사이도 없이 범람하는 대동강물에 뛰여들었다.

왕손이 대동강물에 몸을 던지자 천지가 진동하면서 신비하게도 물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잠간사이에 강바닥우에 돌다리가 드러났다.

평양성의 군사와 인민들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제히 함성을 올리며 강을 건너 적진에 돌입하여 침략자들을 무찔렀다.

물이 찌는줄도 모르고 해이된채 진탕치도록 처먹고 곤드라졌던 외적들은 평양성의 군사와 인민들의 창칼에 맞아 칼도마우에 놓인 고기처럼 모조리 죽탕을 당해 동대원벌의 밑거름신세가 되고말았다.

이 싸움이 있은 뒤부터 평양사람들은 사랑하는 고향마을을 지키기 위하여 한목숨을 서슴없이 바친 고구려군사 왕손의 위훈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그가 몸을 던진 여울을 《왕손탄》이라고 불러왔는데 후세에 전해오면서 《왕손》이 《왕성》으로 그 음이 변하여 《왕성탄》이라고 불리워지게 되였다고 한다.

《오탄》은 까마귀여울이란 뜻인데 대동강 양각도 웃쪽에 있는 여울이다.

임진조국전쟁때 왜적은 평양성을 치기 위해 대동강건너편에 몰려왔는데 배를 찾으니 한척도 없었다.

할수없이 얕은 여울을 찾아 건느려고 살피고있는데 난데없이 한마리의 까마귀가 물우에 내리더니 드러난 강바닥을 따라 걸어가는것이 아닌가.

적장은 날이 어두워 밤이 깃들자 그 여울목에 군사를 들이밀어 건느게 하였다.

이때 갑자기 아래로부터 밀물이 밀려들어 파도를 일구며 적병모두를 수장해버리였다.

이어 강에 뛰여들려고 하던 놈들도 평양성으로부터 날아오는 불화살에 맞아 쓰러지고말았다.

그후부터 까마귀까지도 왜놈군사를 골탕먹인 여울목이라 하여 《오탄》이라는 지물전설이 생겨나게 되였다.

대동강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섬인 릉라도는 그 아름다움에 있어서 평양의 자랑이며 모란봉의 부벽루와 최승대에서 한눈에 안겨오는 절승경개이다.

전설에 의하면 릉라도는 먼 옛날에 성천땅 비류강의 한가운데 있던 섬이였다고 한다.

땅이 류달리 기름져 오곡이 잘되고 주변고장들에 왕가물이 들어도 이 섬에서만은 푸르싱싱한 남새를 거두어들일수 있어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이것을 알게 된 욕심많은 성천부사는 섬사람들에게 매해 과중한 조세를 부담시키고 그들이 거둔 곡식과 남새를 사정없이 빼앗아갔다.

성천부사의 등쌀에 견디기 어려워 섬사람들의 원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갔다. 차라리 섬이 성천경내를 벗어났으면 하는 이들의 소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어느해 여름 폭우가 쏟아지고 큰 장마가 나더니 섬이 통채로 뒤흔들리고나서 정말 어디론가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정처없이 아래로 흘러가던 섬은 평양의 모란봉기슭 청류벽앞에 와서 멈춰섰다.

섬사람들은 이제는 악착한 성천부사의 손에서 벗어났다고 환성을 올렸으며 더우기 모란봉의 아름다운 경치와 더불어 자기들의 섬이 대동강복판에 자리잡게 된것을 기뻐하였다.

한편 섬이 없어진 신기한 조화에 어리둥절하였던 성천부사는 장마가 끝난 후 소문을 따라 평양으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와본즉 정말 섬이 대동강에 박혔는지라 다짜고짜로 섬에 뛰여들어 당장 조세를 내라고 호통을 쳤다.

섬의 평양이사를 그리도 기뻐하던 섬사람들은 또다시 성천부사의 착취를 받게 되였으며 오히려 멀리 성천까지 곡식이며 남새 등을 상하지 않게 날라가야 하는 과중한 부담을 짊어지고 갑절 더해진 고통을 당해야 하였다.

탐욕스러운 성천부사밑에서 시달릴대로 시달린 섬사람들은 조세를 바쳐도 평양감영에 바치게 해달라고 평양감사에게 청원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이 섬에 눈독을 들이던 평양감사가 마침이라 생각하고 성천부사에게 섬을 이관하라고 통지를 띄우자 성천부사는 섬이 본래부터 성천땅이니 평양감영에 넘기는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고 항의하였다.

성이 독같이 오른 평양감사는 《정 섬을 평양감영에 넘기지 않겠다면 오늘중으로 섬을 성천관내로 옮겨가라!》는 최후통첩을 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섬을 바줄에 매여 끌어갈수도 없고 난감해진 성천부사가 아무 말도 못하고 씩씩거리던 끝에 평양의 모란봉에 올라 섬을 다시 바라보니 능수버들 휘늘어진 섬의 모습이 대동강 푸른 물결과 어울려 마치 비단필처럼 안겨오는것이 과시 장관이였다.

감탄과 탄식을 련발하던 성천부사는 아름답기로 이름난 모란봉과 더불어 섬이 절승경개의 쌍벽을 이루었은즉 이를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알알한 가슴을 쓸며 성천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이때부터 섬은 평양성의 땅으로 되였으며 실실이 늘어진 버들이 구슬같은 맑은 물우에 비낀 모습이 마치 비단필을 풀어놓은듯이 아름답게 안겨온다는 의미에서 릉라도라고 불리우게 되였다고 한다.

이처럼 여울목에 깃든 전설들 역시 당대 현실과 력사적사실 그리고 인민들의 리념과 선악관계를 반영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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