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사연을 안고있는 바위전설

 

함경북도 청진에서 30리 떨어진 바다기슭에 있는 《애기바위》는 지주의 린색함과 불의에 대하여 단죄고발하고 있다.

먼 옛날 이 고장에 린색하기 그지없는 지주가 살았다고 한다.

고간에는 작인들로부터 빼앗아낸 수많은 곡식이 가득 차있었건만 그 누구에게도 꾸어주지 않았고, 지어 동냥온 아이들에게조차 밥 한술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대지주이지만 린색하고 고약하기로 소문이 크게 났다.

어느 하루 산에서 내려온 한 승려가 지주집에 찾아들어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를 청하느라고 념불을 외워댔다.

한참 목탁을 두드리며 념불을 외웠으나 아무 인적기도 없더니 한참후에야 지주령감이 안에서 소리치기를 《매번 찾아드니 성화로다. 오늘은 아무것도 줄것이 없으니 다른 집에나 가보구려.》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러나 승려는 떠나지 않고 목탁만 계속 두드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지주는 와락 방문을 열고 나오더니만 《줄것이 없다는데 왜 가지 않고 념불질이야. 정 가져가고싶으면 이거나 가지고가라.》 하고는 외양간에 들어가 소똥을 한삽 떠서 승려의 시주배낭에 처넣었다.

아무 말도 없이 지주집마당을 나온 승려가 다음마을로 떠나가는데 갑자기 등뒤에서 《여보세요 스님, 잠간 계세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애기업은 한 녀인이 달려나오고있었다.

그는 쌀 한바가지를 떠가지고 따라오면서 《스님, 부디 노엽게 생각지 마시고 시주를 받아주옵소서.》 하였다.

누구인가고 물은즉 지주집 며느리인지라 고약하기 그지없는 그 집안에도 례의를 아는 어진 녀인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각근히 사례하고난 승려는 녀인에게 다음과 같은 사연을 알려주었다.

《래일 정오경부터 집울타리안에서 난데없는 물이 솟아나기 시작할텐데 이때 이것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아이를 업고 곧장 뒤산으로 오르시오이다. 그러되 뢰성벽력이 천하를 들었다놓아도 뒤를 돌아보아서는 절대 안되니 그리 아소이다.》 하고 신신당부하는것이였다.

며느리는 승려의 말을 듣고나서 이상스레 여기기는 하였으나 설마 하는 생각에 스쳐지나고말았다.

그런데 정말 다음날 정오가 되자 그 승려의 말대로 앞뜰에서 물이 솟구쳐오르기 시작하였다.

그제야 바빠맞은 며느리는 승려가 시킨대로 어린애를 둘쳐업고 보따리를 꿍져이고는 뒤산으로 급히 올랐다.

그가 산중턱쯤에 올랐을 때 뒤에서 갑자기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 한 요란한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그 녀인이 승려의 당부를 잊어버린채 얼결에 뒤를 돌아보는 순간 고래등같은 자기 집과 시아버지인 지주령감이 순식간에 물속에 잠겨버리는 광경이 눈에 띄였다.

며느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으악-》 하고 비명을 질렀는데 그 소리와 함께 그만 바위로 굳어지고말았다.

어린애를 업고 뒤를 돌아보는 모양의 《애기바위》는 이렇게 되여 생겨나게 되였다고 한다.

지주집은 잠간사이에 물에 잠기고 보일듯말듯 하던 지붕마저 바위로 굳어져버려 후날에 사람들은 이를 두고 《기와바위》라고 부르며 지물전설화하였다.

《권선징악》의 리념을 반영하고있는 이 전설 역시 당대 인민들의 지향과 결부되여있다.

따라서 애기를 업은채 뒤를 돌아보는 모양의 《애기바위》를 보고는 동정의 마음을 가지게 되지만 물속에 잠겨있는 《기와바위》를 보고는 지주에 대한 저주와 함께 그 멸망상을 통쾌하게 감득하게 된다.

《각시바위》전설도 앞에서 본 전설과 같이 기구하고 구슬픈 사연을 담고있는 전설의 하나이다.

함경남도 북청지방의 백사장을 따라 솔섬쪽으로 가면 바다가 한복판에 흰 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옛날 이곳 바다가마을에 소작살이를 하는 늙은 부부가 살고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아들이 없고 다 자란 외동딸이 있었다.

그는 늘 바다가에 나가 미역과 조개 등을 잡아다가 늙은 부모를 봉양하였는데 그러던중 어머니가 급병에 걸려 몹시 앓게 되였다.

외동딸은 바다가에 나가 고기를 두루 걷어들여 팔아가지고 이웃에 있는 의원집에 가서 약을 지어왔으나 별로 크게 효험이 없었다.

그래서 맥이 풀려 걱정하고있던차에 웃마을 황지주가 소작인령감네 마누라가 몹시 앓고있다는데 내가 가만있을수 있는가 하면서 《병문안》을 왔다.

찾아온것만으로도 너무 놀라워 식구들모두가 불안해하는데 지주는 지금까지 쓴 약이 효험이 없으면 이웃고을에 이름난 명의가 있으니 병증세나 알아가지고 래일 거기 가서 약을 지어오자고까지 《살뜰하게》 말하는것이였다.

소작인령감과 딸이 약값을 마련할 방도가 없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있는데 지주는 그럴줄 알았다는듯이 약값은 걱정할것이 없다면서 쌀 한섬과 돈 30냥쯤 마련해놓고 기다리겠으니 딸애를 래일 아침 늦지 않게 자기 집에 보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기가 함께 말파리를 타고가서 의원에게 병자의 상태도 말하고 약도 지어오도록 하자고 하면서 이들의 난처한 형편을 각근하게 《념려》해주는것이였다.

처녀는 지주령감의 말이 어쩐지 의심쩍었지만 어머니의 병부터 고쳐드리는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이튿날 지주집에 찾아갔다.

지주는 반갑게 맞아주며 과시 효녀답다고 칭찬하고 어서 말파리에 오르라고 하였다.

지주령감은 말파리에 쌀 한섬을 싣고 호주머니에서 돈 몇냥을 꺼내보이면서 어머니의 병을 고치려는 너의 효성이 그렇게 지극한데 내 마음이 어찌 동하지 않을수 있겠는가고 하였다.

그리고는 너도 나이찬 처녀니만치 내가 나서서 잘사는 집 자식에게 혼처를 구해주던가 아니면 부자집 민며느리로 들어가게 해줄터이니 시집을 가서도 효녀된 도리와 이 늙은이의 성의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능청스럽게 말하였다.

처녀는 지주령감에게 말만 들어도 정말 고맙다고 사례를 하였다.

그러자 지주는 우리 두집은 서로 허물없는 사이인데

쑥스러워할거야 있느냐고 하면서 가까이 와서 앉으라고 손을 잡아끌며 《다정스레》 굴었다.

이어 명의라고 하는 사람의 집에 찾아 들어가니 주인은 지주어른께서 어떻게 왕림하셨는가고 기뻐하더니 병증세를 자세히 듣고나서는 명약이라고 하면서 한달분의 약첩을 지어주었다.

처녀가 집에 당도하여 약첩을 펼쳐보이니 아버지는 이젠 어머니의 병을 고치게 되였다면서 기뻐하였고 어머니도 약봉지를 만져보며 그 《인정》에 눈물까지 흘렸다.

그후 한 보름가량 그 약을 썼더니 효험이 나타났다.

이때라고 생각한 지주령감은 돈이 좀 비싸도 명의의 약을 써야 한다며 위세를 돋구었다.

그러나 처녀는 지주령감의 그 선심이 어쩐지 꺼림직하여 아침부터 저녁늦게까지 바다가에 나가 미역이나 조개를 잡아 몇푼이라도 벌어서 약값을 물어주려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지주령감이 나타나서 자기네 집 배를 타고 함께 나가자고 하는것이였다.

처녀는 굳이 만류하며 자기 혼자 나가겠으니 우리 집 일때문에 너무 마음쓰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자 지주령감은 성을 벌컥 내면서 《내가 약값을 내랄가봐 그러느냐? 배도 없이 너 혼자 바다에 내보내기 민망스러워 그러는거다. 배를 타고나가면 장대와 낚시걸개로 미역뿐아니라 고기도 잡을수 있으니 좀 좋으냐. 어서 배를 타거라.》 하고 말하였다.

처녀는 지주령감의 성화에 못이겨 배를 타고 바다가 멀리에 나가 생각과는 달리 적지 않은 참미역과 함께 고기도 낚았다.

어느덧 점심때가 되였는지라 배를 돌리자고 하니 《점심걱정은 하지 말아라. 여기 보따리에 푸짐히 싸왔다.》고 하면서 갖가지 음식과 술병까지 꺼내놓았다.

그래서 바다 한가운데서 《오찬》이 벌어지게 되였다.

지주령감은 바다에서는 속을 덥히는데 술이상 없다고 하면서 여러잔 연거퍼 마시고는 너도 한잔 마시라며 술을 따라주는것이였다.

처녀가 걱정이 되여 《이러면 안되오이다.》 하고 사양하자 《바다에 나오는것은 이 멋에 나오는줄 너는 모르는 모양이구나.》 하며 술을 먹이려고 다가서는것이였다.

처녀가 술잔을 마다하자 그러면 네가 마신셈치고 내가 마시마 하고는 두석잔 더 마시였다.

취기가 오른 지주는 이제는 놀아볼가 하더니 징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처녀에게 달려들었다.

처녀가 더듬질하는 지주의 손을 뿌리치며 반항하자 지주는 《은혜도 모르는 발칙한 년같으니. 오늘 재미를 보고 시집보내준다고 내 말했지. 그것도 모르겠느냐?!》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성이 독같이 올라 달려드는 지주와 필사적으로 반항하는 처녀가 서로 밀치고닥치고 싱갱이질을 수십번을 거듭하는 과정에 작은 쪽배는 뒤흔들리며 고패질하다가 그만 훌렁 뒤집어지고말았다.

아무 인적기도 없는 바다 한가운데서 뒤집어진 배는 한많은 사연을 묻어둔채 멀리로 떠내려갔다.

그날 밤 뢰성벽력을 치며 폭우가 정신없이 쏟아지더니 바다가에 흰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났다.

하루사이에 귀한 외동딸을 잃은 작인부부는 바다가의 흰바위를 바라보며 너무도 원통하여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그후부터 사람들은 바다가의 흰 바위가 박로인의 외동딸이 각시차림을 하고 솟아오른것이라 하면서 그 바위를 《각시바위》로 이름지어 부르며 거기에 깃든 기구하고 구슬픈 사연을 전설로 전하였다.

《절부암》전설도 그중의 하나이다.

함경남도 홍원군소재지에서 북쪽으로 10리가량 가면 외로이 우뚝 솟은 산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 산을 《사랑산》 그리고 바다와 접한 이 산의 동쪽절벽의 바위를 《절부암》이라고 불러온다.

여기에는 소작농의 안해가 지주의 회유와 강박을 이겨내고 죽음으로 절개를 지켜낸 눈물겨운 전설이 깃들어있다.

옛날 이 고장에 송씨성을 가진 지주가 있었는데 자기네 소작인인 박서방의 안해가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서 늘 눈독을 들이고있었다. 그러나 자기 남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녀인인지라 어쩌지 못하고 오랜 궁리끝에 박서방을 없애버리기로 작정하였다.

송지주는 박서방을 크게 생각해서 시키는 일이라면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가서 소작지의 형편을 알아오라고 시켰다. 속심인즉은 가는 배길에서 그를 바다에 처넣어죽이려는것이였다.

그리고는 박서방이 갔다오면 후히 값을 치를테니 그리 알라고 하면서 그사이 집안일도 제가 직접 보살펴주겠노라며 안심시켜 떠나보냈다.

송지주는 박서방이 떠난지 며칠후에는 쌀과 여러가지 먹을것을 가져다주고 살림살이가 말이 아니라고 《걱정》도 해주며 저녁늦게까지 눌러앉아 박서방 안해의 동정을 살피며 유혹의 기회를 마련해보려고 꾀하였다.

어느덧 박서방이 떠난지도 달포가 되였다.

안해는 지주가 자주 드나들며 치근거리는것이 편안치 못하여 매일과 같이 뒤산에 올라가서 동해바다의 배길을 굽어보며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맥이 진하여 집에 돌아오면 지주가 와앉아서는 반갑게 맞아들이며 이제 올 날자도 되였으니 걱정말라고 안심시키고는 점차 흉심을 드러내보였다.

박서방의 안해는 지주에게 랑군이 돌아오기 전에는 집걱정을 할것이 없으니 발길을 하지 말아달라고 오금을 박았다.

지주는 내 집안일로 박서방이 먼길을 떠났으니 《걱정》하지 않을수 없다면서 이제는 돌아설 때가 퍽 지났는데 무소식이니 아무래도 사람을 띄워서라도 알아봐야겠다고 짐짓 생색을 내였다.

박서방의 안해는 더욱 조바심이 나서 아침부터 뒤산에 올라 배길을 살펴보며 마음의 위안을 찾다가 저녁늦게야 집으로 돌아오군 하였다.

그런데 며칠후 그날도 뒤산에 올라가 온종일 배길을 살피다가 맥없는 걸음으로 집에 들어서는데 송가가 난처해하는 기색으로 부축해주며 마음을 굳게 다잡으라고 하고는 남편이 제주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잘못되였다고, 이런 기막힌 일이 또 어데 있겠는가고 하였다.

박서방의 안해는 며칠째 불길한 예감을 안고 뒤산에 올라 배길을 굽어살피며 기다렸건만 바다의 원혼이 되여 시신조차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두고 너무도 억이 막히여 통곡하다가 실신하여 쓰러졌다.

지주는 같이 오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오지 못하였다니 타고난 천명으로 여기고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달래이다가 죽은 사람이야 이제 어찌 하겠는가, 살아갈 걱정은 말라고, 내가 제 집안사람처럼 돌봐줄테니 나를 믿고 이젠 울음을 거두라고 박서방의 안해를 《위로》하였다.

졸지에 남편을 잃은 안해는 너무도 억이 막혀 며칠째 식음을 전페하고 자리에 누워있었다.

날마다 찾아와서 위로하는체 감언리설을 늘어놓던 송지주는 어느날 드디여 본심을 드러내며 박서방의 안해를 겁탈하려들었다.

박서방의 안해는 더는 참을길이 없어 《이 개같은 놈아, 생사람을 꼬여내여 저승길에 보내고도 성차지 않아 유부녀를 겁탈하려드느냐?》 하고는 놈의 면상을 빨래방망이로 후려치고는 그달음으로 뒤산에 올랐다.

그리고는 사랑의 정에 넘쳐 하염없이 동해바다배길을 바라보면서 《여보, 나도 당신있는데로 가요.》 하고는 절벽아래로 몸을 던지였다.

그후부터 사람들은 박서방의 안해가 매일과 같이 올라와 동해바다배길을 지켜보며 남편을 기다리던 그 산을 《사랑산》이라고 불렀으며 절개를 지켜 바다에 몸을 던진 절벽의 바위를 가리켜 《절부암》이라고 일러왔다.

설악산에는 《울산바위》전설이 있다.

먼 옛날 울산땅에는 그 생김이 하도 기묘하여 울산의 자랑으로 일러온 큰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때엔가 금강산의 풍치를 더 아름답게 만들려고 금강산의 산신령이 온 나라의 기묘한 바위들을 금강산으로 불러들이는 령을 내려 울산바위도 길을 떠나게 되였다.

그런데 남달리 덩지큰 몸을 뚱기적거리며 가다보니 날자를 지키지 못하게 되였다.

울산바위가 겨우 설악산기슭까지 당도하였는데 금강산 산신령으로부터 온갖 기묘한 바위들이 모여들어 금강산이 만물상을 이루었으니 이제는 오지 않아도 되겠다는 통지를 받게 되였다.

난감해하던 울산바위는 자기가 떠나온 울산땅으로 되돌아가기에 앞서 엎어진김에 쉬여간다는 격으로 잠시 설악산에 머물렀다.

그런데 쉬면서 둘러보니 설악산도 과시 절경이라고 말할만 하였다.

그래서 울산바위는 기왕 떠났던바에는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것도 좋을듯싶어 그냥 여기에 남기로 결심하였다.

이때부터 울산바위는 설악산의 기묘한 바위로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그러던차에 울산고을에 어리석기 짝이 없는 원이 새로 부임하게 되였다.

그는 울산고을의 산수를 유람하던중 한 량반으로부터 경치좋고 기묘한 울산바위가 설악산밑에 옮겨앉아 절경을 이루고 거기에 신흥사가 새로 세워져 사람들이 많이 찾아든다는 소리를 듣게 되였다.

우직한 원은 만약 그것이 울산바위가 분명하다면 거기 승려들에게서 바위값이라도 받아낼 작정을 하였다.

아전들을 앞세우고 신흥사에 나타나 주지를 불러내여 값을 치르든가 울산에 도로 갖다놓으라고 강박하였다.

늙은 주지는 처음 당하는 일이라 벙벙하여 아무 대답도 못하고있는데 지혜로운 한 젊은 승려가 앞으로 나서며 《저 바위가 울산땅의것이라면 당장 옮겨가시는것이 어떻소이까. 그 바위가 차지하는 둘레가 오리도 넘어 옮겨가면 낟알을 심어먹어도 일거량득이니 어서 가져가주사이다.》라고 말하였다.

말문이 막힌 고을원은 난처하여 아전들과 한참동안 쑥덕공론을 하더니 《좋다, 끌어갈테니 너희들은 새끼를 태운 재로 저 바위를 묶어놓아라. 그러면 한달후에 와서 끌어가겠다. 그리 알고 처신을 바로하라.》 하고 엄포를 놓고 사라져버렸다.

주지는 혹을 떼려다 붙인 격이 되였다.

이때 그 젊은 승려가 나서서 《주지님, 걱정마시오이다. 제가 탈없이 해내겠소이다.》 하였다.

그 이튿날부터 바위둘레를 묶을만 한 새끼를 꼬기 시작하였다.

새끼를 다 꼰 다음에는 진한 소금물에 그것을 적시고 말린 다음 들깨기름에 적시여내여 바위둘레를 따라 돌아가며 묶어놓고 거기에 불을 달아놓았다.

불은 새끼줄을 천천히 태우고 재는 소금과 함께 바위돌에 들어붙어 제법 재가루로 큰 바위를 묶어놓은것처럼 되였다.

어느덧 한달이 지나 울산고을 원이 아전을 데리고와

보았는데 틀림없이 새끼줄을 태운 재로 그 큰 바위를 묶어놓은지라 부처님이 한 소행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당장 급살을 맞을가봐 《됐다, 됐어.》 하며 꽁지가 빳빳해서 달아났다고 한다.

그후로부터 설악산이 더 유명해지고 기묘한 울산바위가 멎어선 지물전설도 생겨나 세세로 전하여오게 되였다.

내금강의 명경대를 지나 령원골에 들어가면 《령원암》 터자리곁에 《미출암》이라고 불리워오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깃들어있다.

옛날 가난한 농군이 이 심심산골에 들어와 화전도 일구고 승려노릇도 하면서 시주쌀을 걷어들여 살아가려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그러자니 암자 겸 쓰고살 집부터 지어야 했다.

그런데 혼자 하다보니 일은 고되고 날은 덧없이 흘러갔다.

마을로부터 100여리가 넘는 산골이라 그는 집에서 마련해가지고온 식량도 다 떨어지고 나중에는 풀뿌리와 솔잎을 씹으면서도 근근히 집터를 계속 닦아갔다.

이젠 낟알을 구경한지도 오랜지라 기력이 쇠진하여 졸고 앉아있는데 꿈에 백발로인이 나타나서 그 지성이 기특하여 쌀을 보내주니 그옆에 있는 바위에 가보라고 일러주는것이였다.

꿈에서 깨여난 그가 이상하게 여기면서 미심결에 그 바위를 찾아가니 싸락싸락하는 소리가 들리는것이였다.

그곳을 살펴보니 쌀알이 작은 구멍에서 몇알씩 떨어지는데 그가 하루 먹을수 있는 량은 넉넉히 되였다.

그래서 암자도 짓기 전에 쌀걱정을 하지 않게 되였고 미출암과 더불어 이름난 승려가 되였다.

그가 죽은 후 한 욕심많은 승려가 암자를 차지하게 되였는데 쌀이 적게 나온다고 그 쌀구멍을 크게 헤집어놓았더니 쌀이 다시는 나오지 않고 불길한 징조만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자리에는 빈터만 남고 다시는 암자가 세워지지 않은채 《미출암》전설만 전해오게 되였다는것이다.

《미출암》전설은 다른 고장에서도 변종으로 윤색되여 전하여지는것이 있다.

옛날 평안도의 어떤 산골의 가난한 농민이 산에 올라 칡뿌리를 캐다가 지쳐서 큰 넙적바위우에 주저앉아 잠시 쉬고있을 때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데선가 싸락싸락하는 소리가 나서 일어나 살펴보니 희한하게도 바위에 뚫려진 조그마한 구멍에서 쌀알이 조금씩 떨어져내리고있었다.

그래서 농부는 매일 그것을 받아다가 쌀밥을 지어먹으며 살게 되였다.

한입 건너 두입 건너 퍼져간 신기한 미출암이야기는 지주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였다.

농부의 뒤를 몰래 좇아 쌀바위가 있는 곳을 알아낸 지주는 다음날 정대를 가지고 또다시 쌀바위를 찾아갔다.

몇알씩 떨어지는 쌀알을 받는것으로는 성차지 않았던 욕심많은 지주는 쌀이 콸콸 쏟아져나오기를 바래서 정대로 쌀구멍을 크게 넓혀놓았다.

그 순간 갑자기 터져나온 흙탕물이 삽시에 주변을 메워버리는통에 지주는 그만 빠져죽고말았다고 한다.

이 변종전설도 탐욕스러운 마음을 가진자는 지주와 같이 천벌을 받기마련이라는것을 교훈적으로 시사해준다.

《부채바위》전설도 탐욕자를 징계한 전설의 하나이다.

옛날 평양성 함구문근방에 《부채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하나 있었다고 한다.

여름이 되면 바위밑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고 반대로 겨울이 되면 훈훈한 바람이 불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바위를 《부채바위》라 부르며 절기에 따라 바위주변에 모여앉아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소문이 갑자기 새로 부임해온 평양감사의 귀에 들어가게 되였다.

그가 아전에게서 그 소리를 듣고 하늘소를 타고 나가보니 정말 소문과 같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나왔다.

과시 명당자리라고 생각한 감사는 거기에 감영과 함께 자기 집을 나란히 지으려고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다음날부터 감영을 짓기 위한 인부를 모집하느라 복닥소동을 일으키고 공사를 벌려놓았다.

신비한 부채바위우에 세워지게 될 감영을 그려보며 흥에 뜬 감사는 바위밑을 바싹 파서 주추돌을 놓으라느니 뭐니 하고 훈시질까지 해가면서 인부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이때 한 인부가 바위돌밑을 파면서 돌부리를 힘껏 내리치는 순간 센 바람이 솟구쳐나오더니 옆에 섰던 평양감사를 날려보내여 대동강복판에 떨구어버렸다.

평양감사는 부채바위에 집을 짓고 살아보려다가 땅신의 노여움을 사서 생벼락을 맞고 죽어버렸다.

그래서 감영을 짓는 놀음은 그만 걷어치우게 되였다. 이튿날 감영사람모두가 그 장소에 달려가보니 부채바위밑에 큰 웅뎅이가 생겨나고 바람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후 사람들은 새로 부임해온 욕심사나운 감사때문에 부채바위를 잃어버리게 되였다고, 그런 놈은 천벌을 받아 싸다고 저주하면서 다시는 볼수 없는 부채바위에 대하여서는 전설로만 전해오게 되였다고 한다.

량강도 운흥군 심포리에서 강기슭을 따라 7리가량 내려가면 깎아세운듯 한 바위가 있는데 그 중턱에 임금 왕(王)자가 멀리서도 보이게 크게 새겨져있다.

사람들은 옛적부터 이 바위를 《장수바위》라고 불러왔는데 여기에는 사연깊은 전설이 깃들어있다.

옛날 이 산간마을에 한 농군이 살고있었는데 그의 억대우같은 셋째아들은 외적을 막고 마을사람들을 해치는

놈들을 일격에 요정낼 결심을 품고 매일같이 아침저녁이면 이 바위밑에 와서 장수다운 용맹을 키우고 병법을 익혀나갔다.

원래 그가 이 산간마을에서 태여날 당시 이상한 기운이 뻗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울음소리는 멀리 10리밖에까지 들리였고 뒤산의 바위들도 흔들거렸다고 소문이 났다.

그가 크자 동네아이들은 모두 그를 따랐다.

그러자 웃마을 지주아들은 그를 시기하여 범접해보려다가 혼쌀이 나서 울며 집에 와서는 고약하기 그지없는 제 애비에게 일러바치군 하

였다.

지주는 산전이나 뚜지며 사는 가난한 농군아들이 자기 아들도 몰라본다고 언질을 잡아 혼쌀을 내주려고 하였다.

그런데 체격이 억대우같고 힘 또한 장사같아 감히 맞서지 못하고 그의 일거일동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던차에 그가 아침과 저녁 지어 밤중에도 그 바위밑에서 무술을 익히고 힘을 키워간다는 소문을 듣고 남몰래 가보니 그 기상이 관군의 어느 장수도 당해낼것 같지 않았다.

흉심을 품은 지주는 그 장사청년이 관가를 치고 재물과 권력을 다 차지하려고 몰래 밤마다 훈련하며 반변기도를 꾀하고있다고 고을 사또한테 일러바치였다.

사또는 지주와 가까운 사이이고 신세도 많이 져온지라 그의 말이 거짓인줄 알면서도 제꺽 호응해나섰다.

사또는 관군에서 제일 힘센 장정 여러명을 골라 그 장사청년을 붙잡아오게 하였다.

그리고 도망갈가 두려워 형틀에 묶어놓고 문초를 들이댔다.

《네 이놈, 반역을 꾀하여 밤마다 무슨 짓을 하였느냐? 바른대로 털어놓지 않으면 죽여버릴테다.》 하며 욱박질렀다.

장사청년은 스스럼없이 《국란이 일어나면 외적을 치고 나라와 백성을 구원하려고 무예를 닦았소이다.》 하고 명백하게 말하였다.

그러자 사또는 《태평세월에 무슨 국란이냐? 나라와 임금도 믿지 못하고 혼자서 가만히 무술을 닦으니 이는 역모를 하려는 반역자임이 분명하다.》 하고는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 사정을 보지 말고 치라고 하였다.

형리들이 번갈아 몽둥이를 안기였으나 그때마다 다 꺾어져나갔다.

장사청년에게 끝내 죄상을 인정시키지 못하게 되자 사또는 그의 아버지를 잡아다 곤장을 안기며 이래도 죄를 인정 못할테냐고 고함을 질렀다.

장사청년은 자기는 어떻게 처벌해도 좋으니 아버지만은 내보내달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사또는 《네놈이 죄를 인정하기는 하는구나. 애비를 달구니 그래도 효자구실을 하고 죽을셈인 모양이지.》 하고 비웃으며 범잡은 포수마냥 우쭐댔다.

사또는 장사청년을 쇠바줄로 묶어놓고 칼로 목을 치게 하였다.

이때 장사청년이 한번 용을 쓰니 쇠바줄이 일시에 끊어지고 칼은 두동강이 나서 떨어졌다.

사또는 당장 그 장사청년의 손에 잡혀죽을것만 같아서 겁에 잔뜩 질린 눈을 희번덕이며 반역죄는 일가족속을 멸족시키게 되여있으니 그 애비부터 쳐죽이라고 고함을 쳤다.

사태가 이렇게 번져지자 장사청년은 눈물을 쏟으며 나라를 위해 이 한몸을 바칠 마음으로 열심히 무술을 닦았지만 오늘 이 지경이 되였으니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겠다고 하고는 형리를 불러 겨드랑밑의 살가죽을 겨릅대로 찌르라고 대주었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시체와 함께 붉은팥알 한개를

같이 묻어달라.》고 유언하였다.

형리가 왜 팥알을 함께 묻어달라고 하는가 묻자 장사청년은 외적이 침노하면 그 팥알이 천병만마가 되여 칠것이니 내가 죽어서도 원을 풀려고 그러는것이라고 하였다.

사또는 너무도 무서워 이미 달아나버렸다.

형리가 하는수없이 겨릅대로 장사의 겨드랑밑을 찔렀더니 그 장사는 이내 쓰러졌다.

장사는 마지막숨을 모아 바위중턱에 다가서더니 붉은 피를 뿌리며 굳어져버렸는데 후에 그자리를 살펴보니 임금 왕(王)자가 새겨졌더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장수가 되려던 청년의 혼이 깃든 이 바위를 《장수바위》라고 불러 전설화하여 전하였다.

구월산의 사황봉으로 곧추 올라가면 깎아지른듯 한 층암절벽이 있고 그우에 네모난 방과 같이 생긴 큰 바위가 있는데 이를 《갑옷바위》라 한다.

옛날 구월산기슭 한 마을에 어릴 때부터 기상이 용맹하고 비범한 소년이 살고있었는데 청년기에 이르러 그는 산으로 들어가 도술을 익혀 나라의 훌륭한 장수가 되여보겠노라고 다짐하고 집을 나섰다 한다.

그 청년은 구월산 사황봉 층암절벽우에 있는 네모난 바위방을 집으로 삼고 밤낮을 이어 무술을 닦고 도를 틔워나갔다.

그래서 고요한 밤이면 그 청년이 무술을 익히며 칼을 쓰는 소리가 그 이웃마을에까지 들리였다고 한다.

그의 부모들은 집을 떠난 아들생각이 날 때면 늘 사황봉 층암절벽을 멀리서 바라보군 하였다.

해가 바뀌여 어언 3년세월이 흘렀는데 북변으로부터 외적이 침노하여 나라의 젊은 장정들이 의병에 떨쳐나서게 되였다.

그래서 청년의 부모들과 마을사람들이 사황봉의 층암절벽우를 기대어린 눈길로 바라보는데 때마침 그 청년이 도사로부터 갑옷을 받아입고 서있는 모습을 보게 되였다.

출전에 앞서 갑옷을 입고 멀리 산아래의 부모님과 마을사람들을 굽어보는 그 청년의 모습은 출전소식을 전하려는상싶었다.

그후 청년의 생사여부에 대하여 전해지는 이야기는 딱히 없으나 사람들은 그때부터 그 청년이 도사로부터 갑옷을 받아입고 서있던 바위를 두고 《갑옷바위》라고 부르며 전설화하였다고 한다.

명산 칠보산에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한 장수가 라한암까지 마중나온 안해를 으스러지게 끌어안고 정을 나누며 떨어질줄 모르다가 그만 바위로 굳어졌다는 《부부바위》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여러해동안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싸움에서 용맹을 떨친 장수가 무공을 크게 세우고 고향으로 돌아오느라고 내칠보에 들어섰다.

원래 그는 청년기에 칠보산에 들어가 무술을 익혔다. 도술까지 쓰는 장수로 되자 도사는 그더러 이젠 장가를 들고 오라고 산아래마을에 있는 집으로 내려보냈었다.

그가 안해를 맞이한지 3일만에 북변에 외적이 침노하였다. 그는 그길로 싸움길에 나서서 용맹을 떨치고 고향으로 향했다.

 싸움에서 승리하였다는 기쁜 소식이 전하여지자 장수의 새색시는 매일과 같이 라한암가까이에 가서 장군이 돌아올 산굽이길을 살펴보며 서있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안해는 그렇게 밤낮으로 그려오던 랑군이 산마루에서 고향마을을 굽어보고있는 모습을 띄여보게 되였다.

안해는 의젓한 그 모습이 너무도 반가워 큰소리로 랑군을 부르며 달려가 그 품에 부끄럼도 잊고 덥석 안기였다.

승전장수는 이게 정말 내 안해인가고 으스러지게 껴안았고 안해는 자기대로 손더듬질하며 오륙이 성성하여 무사히 돌아왔다고 기쁨에 겨워하며 떨어질줄 몰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뜨거운 정을 속삭이는 상봉의 이 순간을 영원히 새겨놓으려는듯 서로 으스러지게 끌어안은채 그들은 바위로 굳어져버렸다고 한다.

함경남도 단천지방에는 북방으로부터 침노한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도술을 쓰며 산을 넘나들던 장수가 산중턱바위에 뛰여내릴 때 찍혀진 발자욱이 새겨져있다는 바위에 대한 전설이 있다.

금강산(외금강) 신계골을 지나 옥류동으로 들어서는 어구에도 《장수발자욱》이 찍힌 바위가 있는데 여기에는 한 평범한 청년이 장수의 힘을 키워 괴물을 죽이고 처녀를 구원한 의로운 행적을 전하는 전설이 깃들어있다.

옛날 신계동골안에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다.

거기에는 봉녀라는 마음씨 착한 처녀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그 이웃에 바우쇠라는 총각이 눈먼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처녀와 총각은 생활처지도 같고 외진 산골에서 집살림을 맡아하느라고 산에도 같이 올라 산나물과 땔나무도 같이하였는데 그 과정에 서로 위하는 마음이 커져 사랑하는 사이가 되였다.

그러한 때 마을에는 자주 괴물이 나타나 사람을 해치는지라 치성터를 만들고 처녀를 제물로 바치면 화를 면할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두해째 제를 지냈는데 단출한 마을이다보니 이제 남은 처녀라고는 봉녀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처녀를 구원하기 위해 억대우같은 바우쇠는 장수힘을 키우기 위해 금강산의 도사를 찾아갔다.

백성들의 재난을 막기 위해 도술을 배우러 찾아왔다고 하니 도사는 그 마음을 귀히 여기여 매일 아침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도술을 련마시켰다.

원래 도가 트자면 몇년은 실히 걸려야 하지만 바우쇠에게는 그럴만한 시간적여유가 없었다.

도사도 그의 억대우같은 체질과 남다른 각오로 보아 1년안으로 장수로 키워낼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에게 도술을 배워주기 시작하였다.

바우쇠는 들어온 며칠후부터 발에 10근 무게의 돌을 달고 20근의 철퇴를 휘두르며 열두고개를 넘나들면서 무예를 닦았다.

그리고는 쉴참에 이 골에만 있다는 《장수샘》을 량껏 마시군 하였다.

한해도 저물어 다음해 봄이 되여 그는 도사에게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기쁜 마음으로 마을에 내려왔다.

그런데 그날이 바로 사월초파일이라 신계동가까이 치성터에서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발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살펴보니 괴물에게 처녀를 바치는 치성제를 지내고있었다.

바우쇠는 혹시 봉녀가 잡혀가는것이 아닌가 하는 섬찍한 예감이 들었다.

그 순간 머리에 뿔이 돋은 흉측한 괴물이 검은구름속에 몸을 감추고 치성터로 날아드는것이였다.

장수힘을 키운 바우쇠는 이때라고 생각하고 힘껏 날아올라 치성터옆 바위에 쿵하고 내려섰다가 달려드는 괴물을 향하여 섬광이 일도록 장검을 휘둘러 목을 쳤으나 떨어지지 않는지라 재차 목을 친 다음 다른 손에 들고있던 철퇴로 그놈의 뿔달린 대가리를 힘껏 휘둘러쳤다.

그제야 괴물은 한번 크게 울부짖다가 피를 토하며 대가리와 몸체가 동강이 나서 땅에 떨어져 죽어버리였다.

치성터에 모였던 사람들이 모두 달려가 제물로 바쳤던 처녀를 안아일으켰는데 그는 정신을 잃은채 깨지 못하였다.

한편 괴물을 죽여버린 장수를 살펴보니 그는 다름아닌 바우쇠였다.

모두 너무도 기뻐 《얘, 봉녀야! 바우쇠가 왔다. 그가 괴물을 쳐없애고 너를 구원했구나.》 하며 안타까이 부르는 소리에 봉녀가 간신히 눈을 떴다.

바우쇠는 너무도 감개하여 봉녀의 손을 잡고 《내가 왔소. 이 바우쇠가 왔단 말이요.》 하고 소리치고는 그를 끌어안았다.

그리하여 다시는 치성터에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놀음이 없어지고 바우쇠가 괴물을 칠 때 생겼다는 발자욱은 바위로 굳어졌다고 전하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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