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행적이 새겨진 《홍바위》, 《락화암》전설

 

의로운 행동과 관련하여 바위지물전설로 전하여오는것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홍바위》와 《락화암》은 널리 알려진것이라고 볼수 있다.

《홍바위》는 일명 《과부바위》라고도 전하여오는데 여기에는 홍씨과부의 애국적소행과 함께 그의 붉은 피가 뿌려져 붉게 보인다는 의미에서 《홍바위》라고 하였다.

《홍바위》는 옛날에 함경북도 무산지방의 동쪽으로 넘어오는 큰길옆에 놓여있던 바위이다.

리조때 두만강너머의 외적들은 빈번히 무산땅으로 넘어와 민가를 습격하여 량곡과 가축들을 빼앗아가고 부녀자들을 겁탈하였다.

홍씨는 외적의 침입으로 하여 남편과 귀여운 딸자식까지 잃고 과부가 되여 홀로 살면서 언제든지 꼭 복수하리라 마음먹고있었다.

그러던 어느해 가을 한가위날 산등성이에 올라가 남편의 묘를 본 다음 사위를 굽어보고있는데 100여명이나 되는 외적패당이 몰려오고있었다.

그는 급히 마을에 달려가 이웃집에 련락하여 관청에 알리게 하고 자기는 새옷을 갈아입고 그놈들이 넘어오는 산턱 길목을 지켜서있었다.

이어 외적패당의 우두머리인듯 한자가 홍과부가 깍듯이 손님을 맞는듯 하니 위세를 돋구며 《관청이 예서 얼마나 되는지 길안내를 하거라.》 하고 명령하듯 지껄였다.

홍과부는 관청기생처럼 허리를 굽히며 《멀지 않은 곳에 관청이 있으나 지금 쳐들어가기는 불리할줄 아오이다. 오늘은 관청의 병정들이 가을훈련을 끝내고 사기충천하여 한잔씩 하고 비호같이 날뛰오니 피를 적게 흘리려면 오늘 밤은 이 마을에서 편히 쉬고 래일 새벽에 단숨에 쳐들어가면 성공할줄 아오이다.》 하고 여쭈었다.

적장은 녀인의 말과 몸매를 살펴보니 얼굴이 절색이고 차려입은 옷을 보아도 기생노릇을 하는 녀자가 틀림없어 보여 그렇다면 대장부를 안내하라고 거드름을 피우며 뇌까렸다.

홍씨는 적장을 자기 집에 데리고 들어가 호위군졸과 함께 밤새껏 술을 《대접》하여 곤드라지게 하였다.

그사이에 홍과부의 통보를 받은 관군은 놈들이 든 마을을 에워싸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매복하고있었다.

밤새 술에 곯아떨어졌던 적장이 아침늦게 깨여 이 집 녀주인을 찾았으나 종적이 없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든 적장은 졸병들을 바삐 기상시켜 모아가지고 관청을 치러 길가에 나섰다.

그 순간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들더니 졸병들이 련속 쓰러졌다.

케가 글렀음을 직감한 적장은 졸병들이야 살든죽든 내버려두고 제 혼자 살 궁리로 황급히 말을 타고 달아나려 하였다.

집 뒤뜰에 숨어 적정을 살피고있던 홍과부는 적장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즉시 뛰여나와 적장을 부르며 나를 데리고가달라고 소리쳤다.

적장은 그 바쁜 가운데서도 홍과부의 동태가 수상한지라 그를 말에 태우고 산정의 바위터까지 말을 몰아대다가 말에서 내려 그를 깔고앉아 《네년이 나를 속였지?》 하고 눈을 부라리였다.

거짓웃음으로 적장의 탕개를 잠시 늦추어놓은 홍과부는 기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품속에 감추고있던 작은 칼을 뽑아내여 적장의 옆구리를 올리찔렀다.

급작스러운 봉변에 적장은 움씰하며 괴성을 지르다가 칼을 빼들더니 마지막힘을 다하여 홍씨부인을 내리치고는 몇걸음 못가서 꼬꾸라져버렸다.

홍과부의 몸에서 나오는 붉은 피는 흘러내려 바위를 푹 적셔놓았다.

홍과부의 애국적희생성으로 하여 이날 적들은 한명도 살아돌아가지 못하고 일망타진되였다.

그후로 사람들은 홍과부의 애국적위훈을 전하면서 그의 붉은 피가 스며든 붉은 바위를 《홍바위》라고 불렀다.

전설은 비록 녀성의 몸이지만 적과의 대결에서 능숙한 수완과 자기희생성을 발휘한 애국적녀인의 위훈을 길이 전하고있다.

《락화암》전설은 백제가 망한 기구한 운명속에서 왕실의 궁녀들이 외적의 롱락물이 되기보다는 죽기를 각오하고 높은 절벽우에서 강에 몸을 던진 력사적사실과 관련된 지물전설이다.

충청남도 부여군의 부여읍에 흐르는 백마강기슭에 그리 높지 않은 부소산봉우리가 솟아있는데 거기에는 백마강에 뿌리를 박은 벼랑이 있다. 그 벼랑이 바로 《락화암》이다.

《락화암》전설은 백제의 마지막왕이였던 의자왕의 음탕하고 방탕한 처사에서 생긴것으로서 정사에는 낯을 돌리지 않고 오히려 이를 걱정하여 상소하는 충신들을 옥에 가두어죽이고 국방을 돌보지 않으면서 부화방탕한 생활로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나라를 망하게 한것과 관련된 전설이다.

백제 의자왕의 그릇된 정사, 그로 하여 벌어진 기괴한 흉사, 음탕한 행위에 대하여 력사는 《삼국사기》 권28 백제본기6, 의자왕편에서 밝히고있다.

의자왕은 백제 무왕의 아들로서 즉위후 처음에는 국력을 강화하여 사람들로부터 《현군》이고 담력도 있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런데 점차 국정을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져 매일과 같이 궁중에서 잔치를 벌리고 음탕하게 놀아댔다.

그래서 밑의 대신들도 모두 걱정하고있을 때 좌평 성충이 참다못하여 왕앞에 엎드려 아뢰였다.

성충은 《이제 상감께서는 놀음을 그만하시고 나라의 정사를 살피시옵소서. 신라가 잃은 성을 빼앗고 보복하려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안으로는 흉작이 들어 백성들의 원성이 높으나 관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치부에 눈이 어두우니 대왕께선 어찌하여 이 국난을 멀리 하시오이까.》 하고 목숨을 내대고 간하였다.

왕은 《태평세월에 무슨 당치않은 소리를 하는거냐. 임금을 받들 대신 모함하려드니 역신의 변고로다.》 하고는 형리를 불러 당장 옥에 잡아가두어넣으라고 하였다.

옥에 갇힌 그는 림종을 앞두고 왕에게 전해달라면서 말하기를 《만일 다른 나라 군사가 오거든 륙로로는 침현(탄현)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며 수군은 기벌포의 언덕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험준한 곳으로써 방어하여야만 견딜수 있소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의자왕은 충신의 마지막말마저 귀등으로 스쳐버리였다.

그후부터 왕궁내에서는 괴이한 징후와 사변들이 해를 넘겨가며 련속 일어났다.

수많은 여우들이 떼를 지어 왕궁에 몰려들더니 흰 여우 한마리가 죽은 좌평의 책상우에 올라앉았고 우물과 사비강이 피빛으로 변하였으며 수만마리 두꺼비가 서울에 몰려들어 서울장안은 두꺼비천지로 되였는가 하면 갑자기 들이닥친 폭우로 사찰들이 무너졌다.

개 한마리가 강언덕에 나타나 왕궁을 향하여 짖어대더니 뭇개들이 서울장안에 모여들어 울부짖다가 없어진 일이 있은 후 어떤 귀신이 대궐안에 들어와서 《백제는 망한다.》고 크게 두번 웨치고 땅속으로 들어가매 왕이 이상하게 생각되여 땅을 파헤치게 하였더니 큰 거부기 한마리가 있었다.

그 거부기 등에 《백제는 둥근달과 같고 신라는 초생달과 같다.》고 씌여있었다.

왕이 무당을 불러 점을 쳐보라고 하자 무당이 하는 말이 달이 둥글다는것은 반드시 이지러진다는 뜻이고 초생달은 장차 커가니 번성한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왕은 노발대발하여 그자리에서 무당의 목을 쳤다.

그러자 옆에 섰던 약삭바른 신하가 새롭게 해석하기를 《둥근달은 성한다는 뜻이요, 초생달은 미약하다는 뜻인줄 아오이다.》라고 하였다. 왕은 그제야 마음이 후련하였다.

그러나 성충과 같이 진심으로 나라의 정사를 걱정하는 충신관료들과 아전들, 지어 백성들까지도 그 괴이한 사건과 벌어진 일들이 모두 흉사를 예언하는것이라고 짐작하고 왕의 처사를 민망스러워하였다.

이러한 때 신라가 외적을 끌어들여 련합군을 편성하고 백제를 침공하여 전국이 동란에 허덕이게 되였다.

예전과 같이 놀음판에 빠져있던 왕은 그 소식을 듣고서야 바빠맞아 어전회의를 열고 련합군을 막을 계책을 의논하였으나 묘안이 없었다.

그 어느 대신도 묘안을 내놓지 못하여 병정들을 출동시키지도 못한채 시간만 덧없이 흘러갔다.

그사이에 련합군은 물밀듯이 쳐들어와 백제땅을 타고 앉았다.

의자왕은 태자를 데리고 공주로 도망쳤으나 그냥 남아있던 3 000명의 궁녀들은 외적의 노리개가 될바에는 깨끗이 백마강에 몸을 던지는것이 낫다고 일치하게 생각하고 옛 놀이터였던 바위우에 올라 먼 하늘을 굽어보면서 연신 강에 몸을 던지였다.

사람이 떨어져죽은 바위라는 의미에서 《타사암》으로 불리우던 이 바위는 떨어져내리던 궁녀들의 모습을 꽃에 비기여 《락화암》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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