령과 고개에 깃든 여러가지 전설

 

우리 나라에는 이름있는 명산과 함께 높은 령마루, 수많은 고개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길거나 짧거나 제나름의 사연들이 전설화되여 깃들어있다.

례하면 철령이나 마천령, 후치령과 아호비령 등은 그 이름들에 험한 지세와 관련한 전설이 반영되여있으며 력사에서 일러오는 치술령이나 단발령, 온정령이나 박달령은 큰 령마루는 아니지만 전설적인 일화를 안고있는것으로 하여 널리 알려져있다.

그런가 하면 크고작은 수많은 고개들에도 사연많은 전설들이 깃들어있다.

고개마다에 깃들어있는 전설은 상대적으로 볼 때 그 내용이 보다 전개되였거나 기사화되여 내려오는것은 많지 못하고 지명전설화된것이 다수를 이룬다.

여기에서는 그중 력사적으로 기사화되여온 몇가지 고개전설만을 살펴보려고 한다.

《소우개》전설은 지주의 동물적인 야욕을 풍자한 전설이다.

황해남도 은률군에서 서남쪽으로 내려가면 송화군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 있는데 여기에 길게 뻗어간 고개길을 두고 《소우개고개》라고 한다.

옛날 은률땅에 한 지주가 살았는데 한생 주색에 빠져 지냈는데 늙도록 그 방탕한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있었다.

지주집에는 머슴살이를 하는 처녀와 총각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진 구박과 고역속에서 의지하고 위해주는 과정에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되였다.

머슴처녀가 숙성해지면서 머슴총각과 눈이 맞아돌아가는것을 안 지주령감은 머슴총각이 일하다가 후치를 부러뜨린것을 언질로 삼아 아예 집에서 내쫓아버렸다.

하는수없이 총각은 처녀에게 인차 자리를 잡고는 꼭 데려내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는 보따리를 싸가지고 지주집을 떠났다.

봄이 가고 여름이 되였으나 총각에게서는 아무런 기별도 없었다.

안타까움과 걱정으로 날을 보내던 머슴처녀는 궁리끝에 지주령감에게 청하기를 어머니의 병이 위중하다는데 고개너머 자기 집에 며칠간 다녀오도록 말미를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지주령감은 나도 네 어머니를 본지 오래되고 상론할 일도 있으니 나와 함께 가자고 하면서 래일 떠날 길차비준비를 잘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튿날 머슴처녀는 할수없이 지주령감과 함께 길을 떠나게 되였는데 고개마루에 오르자 지주령감이 좀 쉬여가자고 하였다.

그리고는 머슴처녀에게 가까이에 와 앉으라면서 하는 말인즉 《조그마할 때 너를 우리 집에 데려왔는데 령고개를 오르면서 뒤에서 보니 제법 몸매가 다 잡혔더구나.》고 하였다.

그리고는 후에 좋은 짝을 붙여줄터이니 어디 한번 안아보자며 처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제야 지주의 본심을 알아차린 머슴처녀는 활랑거리는 속을 다잡으며 너무 서두르지 말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령감님의 소원이 정 그러시다면 마음을 돌려보겠소이다. 그런데 새파란 처녀를 다루자면 황소같은 힘이 있어야 할텐데 그런 힘이 있겠소이까?》

그러자 지주는 《내가 늙기는 했어도 그런 일에서는 소같은 힘을 쓸수 있구말구! 얼마든지 있지.》라고 하였다.

머슴처녀는 《그럼 좀 우습기는 하지만 이 고개밑으로 소처럼 네발걸음으로 내려갔다가 또 네발걸음으로 올라와 보시오이다. 그러면 지주어른의 용력을 믿고 소원을 풀어드리리오이다.》고 하였다.

그 소리를 들은 지주는 오만상을 찌프리다가 예상외로 선선히 나온 처녀의 태도에 기분이 뜨고 야욕에 불타던 나머지 《까짓거, 누가 보는이도 없는데 그거야 못하겠니? 내 이제 제꺽 내려갔다 오마.》 하고 흰소리치고나서 소처럼 네발걸음을 하며 고개길을 엉기엉기 내려갔다.

머슴처녀는 고개밑에 지주가 다 내려가도록 지켜보다가 돌아서려고 하는 순간 《늙은 령감이 겁탈하려고 달려들어요.》라고 목청껏 소리치며 고개길의 반대쪽 아래로 내리뛰였다.

고개밑에서 다리쉼을 하던 길손들이 그 소리에 놀라 올려다보니 어떤 늙은 령감이 새파란 처녀를 쫓아 허겁지겁 고개길을 달려오는 어이없는 광경이 안겨왔다.

여러 장정들이 지주령감을 붙들어 소나무에 매여놓고 다 늙은게 대낮에 처녀를 겁탈하려드는가고 하며 뭇매를 안기고나서 이 고개 귀신이나 되라고 욕을 퍼붓고는 가버렸다.

결국 지주령감은 산신의 제물로 된셈이 되였다.

지주령감이 죽으면서까지 소울음소리를 낸것이 그후 이웃마을에 널리 퍼져 이 고개를 《소우개고개》라고 부르게 되였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늙은 지주의 망동에 대하여 《소가 웃다가 꾸레미가 터질노릇이다.》고 조소한데로부터 《소가 웃다》는 말이 변화되여 《소우개고개》라는 고개이름이 생겨났다는 설도 전해진다.

고개전설에는 효도와 관련된것도 적지 않은바 《효양고개》전설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있다.

효양고개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깃들어있다.

때는 불교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 퍼지던 먼 옛날이였다.

옛날 전라도의 어느 산골에서 사는 한 젊은이가 일찌기 집을 떠나 불경공부를 하며 사찰들을 돌아다니다가 금강산에 이르게 되였다.

산수가 수려하고 절승인 금강산의 여러곳을 돌아보던 그는 발연소골에 이르러 사위를 굽어보다가 맞춤한 곳을 하나 선택하고나서 몇해를 신고한 끝에 《발연사》라는 사찰을 일떠세웠다.

그후 그는 고향땅에 가서 늙으신 부모들을 모셔왔으나 사찰에서 함께 살수 없어 고개너머 안새미골에 집을 잡아드렸다.

그러던중 늙으신 아버지가 세상을 뜨게 되자 홀로 남은 어머니를 자기가 봉양하게 되였다.

그는 깊은 산속에서 마을로 내려와 시주를 받으러 돌아다니다가는 어머니를 봉양하러 쌀을 조금씩 가지고 20리나 되는 고개길을 매일 오르내리였다.

그러던중 늙은 어머니가 몸져눕게 되자 그는 어머니에게 더운 밥을 해드리느라고 끼때마다 어김없이 이 고개를 넘나들었다.

그래서 이 사찰의 승려들과 금강산 아래마을사람들은 그 승려의 효도를 찬양하여 그가 매일 넘나들던 고개를 《효양고개》라고 전하여왔다.

《삼국유사》 권4의 기록에 의하면 옛날 발연사의 앞산 고개너머로 어머니를 봉양하러 동냥하며 다니는 승려(진표률사)의 효성에 부처도 감동되여 매일 한되의 쌀이 흘러나오는 바위인 《재미암》을 그에게 주었다는 허구적인 일화도 전하여온다.

《효양고개》전설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도 전해진다.

옛날 금강산부근의 어느 한 마을에는 어렸을 때부터 이름도 없이 그저 《김서방 아들》이라고 불리우는 한 소년이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고있었다.

소년의 아버지인 김서방은 흉년이 들어 지주집소작료를 다 물지 못한탓으로 겨울동안 머슴을 살았었다.

그런데 욕심많은 지주는 김서방을 제 집에 데려다두면 하루 세끼씩 밥을 먹여야 하는것이 아까워 그에게 마치 인심이나 쓰듯이 말하였다.

《자넨 우리 집 머슴이 아니니까 잠도 제 집에서 자고 밥도 제 집에서 먹으면서 우리 집일은 낮에만 와서 하면 되겠네.》

그바람에 김서방은 매일 굶다싶이 하면서 지주집의 힘든 일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지주는 메돼지사냥을 가면서 몰이군노릇도 하고 짐군노릇도 해야겠다고 하며 그를 데리고 나갔다.

그날 온종일 높은 산, 험한 벼랑을 톺아오르며 뛰여다니느라고 맥을 다 뽑은 김서방은 잡은 메돼지를 지고오다가 너무도 허기져서 비척거리던 끝에 그만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져 비참하게 죽었다.

그러나 지주는 그의 가족들에게 안됐다는 인사말 한마디 없이 도리여 김서방때문에 아까운 메돼지만 잃고말았다고 줄욕을 퍼부었다.

그뿐아니라 김서방 아들이 아직 농사일을 할 나이가 못되였으므로 어른이 된 다음에 보자고 하면서 부치던 땅마저 빼앗아버렸다.

그후 김서방의 아들은 하는수없이 앓는 어머니를 위해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밥구걸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김서방의 아들은 어머니에게 자기가 사찰에 승으로 들어가서 밥을 얻어오겠다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굶어죽으면 죽었지 너를 사찰에 승으로 보낼수 없다고 하였으나 이미 굳힌 아들의 결심을 돌려세울수는 없었다.

김서방 아들은 이튿날 지금의 효양고개 남쪽 양지바른 곳에 움막집을 지어 어머니를 모셔다놓고 발연사로 들어갔다.

그날 저녁이였다. 자기의 몫으로 밥 한사발을 받은 김서방 아들은 사찰에서 심부름을 하는 로인에게 사연을 이야기하고 그 밥이 식기 전에 집을 향해서 뛰기 시작했다.

오솔길조차 변변히 없는 고개를 넘어 십리나 잘되는 거리를 얼마나 빨리 달려갔던지 집에 당도할 때까지 밥이 식지 않았다.

소년은 어머니에게 인사를 올리고 식사를 권하고나서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다시 고개길을 향하여 뛰여갔다.

사찰에 이르니 그가 없어진것을 방금전에야 알게 된 주지가 노발대발하여 고래고래 소리치고있었다.

《그놈이 밥 한그릇을 처먹고 도망갔는데 왜 상기도 멍청히 서있는거냐. 당장 찾아오지 못할가!》 하고 있는 힘껏 목청을 돋구는 그 호령소리에 천정이 다 무너져내릴것 같았다.

소년은 겁이 더럭 났다. 무슨 큰 벼락이 떨어질것만 같아 그길로 돌아설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먹지 못해 병이 난 어머니의 해쓱한 얼굴이 밟혀오고 게다가 자기때문에 욕을 먹고 수고하게 될 로인을 생각하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큰 마음을 먹고 조용히 문을 열고 방안에 들어섰다.

주지는 두눈을 부라리며 덮치듯이 소년의 덜미를 잡아끌어다가 부처앞에 꿇어앉혀놓고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 부처님께 마음속으로 빌라고 하였다.

그는 억울하고 분하였다. 자기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부처님앞에 속죄하라는것인가? 그 까닭을 알수 없어 조용히 눈만 감고있었다.

얼마 꿇어앉아있지 않았는데도 허기져서 그런지 오금이 쑤시고 무릎이 저려들어 정말로 참기 어려웠다.

그러나 소년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다만 래일 저녁부터는 어머니에게 좀 늦게 밥을 대접하더라도 승려들이 잠든 뒤에 집으로 가리라 생각했다.

그러자 분한 마음도 다리의 아픔도 다 사라지고말았다.

곁에서 그때까지 소년의 거동을 지켜보고있던 주지는 그의 얼굴에 나타난 변화를 알아보고 이젠 옳게 뉘우쳤다고 여기고 잠자리에 눕는것을 허락하였다.

소년은 그후 3년세월을 하루같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리지 않고 어머니에게 밥을 날라갔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에도 꽃이 핀다고 어느덧 어머니의 병은 씻은듯이 나았다.

어느날 밤 어머니는 아들이 3년간이나 자기의 병구완을 위하여 주지가 시키는 일을 다하면서도 피곤도 배고픔도 잊고 넘나들었을 고개길이 어떤 길인지 보고싶어 한걸음 두걸음 더듬어 올라갔다.

그의 온몸에선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고 숨이 하늘에 닿는듯싶었다. 아들이 이렇게 멀고 험한 길을 야밤삼경에 넘어다녔단 말인가 하는 아픈 생각이 자꾸만 가슴에 파고들었다.

어머니가 고개마루까지 올라섰을 때였다.

웬 까까머리총각이 배앞에다 그릇을 받쳐들고 그 높은 고개를 달음박질하여 올라오고있었다.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니 그가 다름아닌 자기 아들이였다.

어머니는 《얘야!》 하고 소리치며 막 달려내려가서 아들을 부둥켜안았다.

《얘야, 내가 눈을 감기 전엔 다시는 이 고개를 넘을 생각일랑 말아라. 어서 집으로 가자!》

《괜찮아요. 어머니!》

아들은 어머니를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그런데 이날따라 이 고개에 올라온 사람들이 여럿이 있어 이 광경을 보게 되였다.

무척 감동이 된 그들은 소년의 효성을 진심으로 치하하였으며 그때부터 지금껏 이름없던 이 고개가 《효양고개》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내용의 전설로는 《범바위고개》전설을 들수 있다.

옛날 구월산부근의 어느 한 마을에 한 녀인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있었다.

그의 본가집은 큰 바위고개너머에 있었는데 거기에는 늙은 친정어머니가 외동딸인 그 녀인을 시집보내고 홀로 살고있었다.

하루는 그 녀인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친정집이 있는 동네사람들이 친정어머니가 딸을 너무 보고싶어하던 나머지 병에 걸렸으니 얼른 다녀가라고 기별을 띄웠던것이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슬하에서 자라난 녀인에게는 어머니가 앓는다는것이 청천벽력같이 놀라운 소식이였다.

녀인은 큰 바위고개를 넘어야 할 며느리의 신상을 념려하는 시어머니를 안심시키고나서 친정집을 향해 길을 떠났다.

홀로 앓고계실 친정어머니생각으로 정신없이 발걸음을 다우쳐 고개길을 넘던 녀인은 끝내 범과 맞다들렸다.

녀인은 무서움도 잊고 눈물을 흘리며 범에게 《제발 날 놔주렴. 우리 어머니가 급병에 걸려 돌아가시게 되였다니 내가 장례나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잡아먹으면 안되겠니? 네 산중의 대왕일진대 나의 이 마지막소원을 부디 들어주렴.》 하고 애원하였다.

녀인이 말을 마치고나자 범은 동정이 갔던지 꼬리를 저으며 가까이로 다가오더니 제 잔등에 어서 타라는 시늉을 하는것이였다. 그리고는 바위산을 일곱번 넘더니 평평한 덕에 내려놓았다.

녀인은 범이 자기를 잡아먹으려는가고 생각하였는데 범은 그에게 산삼밭을 가리켜보이는것이였다.

그제야 사연을 안 녀인은 고마움으로 하여 눈물이 글썽해졌다.

얼마후 녀인은 산삼을 몇뿌리 캐여가지고 다시 범을 타고 친정집마을어구에 왔다. 범은 녀인을 내려놓고 산중으로 사라졌다.

친정어머니는 이 밤중에 어떻게 고개길을 넘어왔는가고 하며 죽을 길을 헤쳐온 딸을 붙안고 눈물을 흘렸다.

녀인은 그러는 어머니의 앞에 산삼을 내놓으며 범을 타고온 사연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사람들은 범도 헤아려본 며느리의 효도를 찬양하여 녀인의 시집과 친정집사이에 가로놓인 큰바위고개를 《범바위고개》라고 불렀고 구월산의 범은 사람을 해치지 않는 범이라고 전해왔다.

전설은 환상적으로 가공되기는 하였지만 효성스러운 녀인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인것으로 하여 오늘까지 전해지고있다.

류몽인의 《어우야담》에는 괴이하고 환상적으로 꾸며진 《여우고개》라는 지명전설이 실려있다.

기록에 의하면 한강에서는 남쪽이고 청계에서는 북쪽으로 되는 곳에 큰 고개가 하나 있는데 이것을 《여우고개》라고 불러왔다고 한다.

옛날 어떤 길손이 이 산고개를 지나다가 한 오막살이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뚝딱거리는 소리가 나기에 이상스러워 들여다보았더니 백발로인이 나무를 깎아 소대가리가면을 만들고있었다.

길손이 그것을 만들어 무얼하는가고 물으니 백발로인

의 대답이 쓸데가 많다는것이였다.

그리고는 다 만든 소대가리가면을 길손에게 내밀며 심심한데 장난삼아 이것을 한번 써보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길손이 소대가리가면을 받아 머리에 쓰자 이번에는 옷을 벗고 소가죽옷을 입어보라고 하였다.

단지 놀음거리로만 여긴 길손이 로인의 말대로 소가죽옷을 입었더니 백발로인은 비죽이 웃으면서 《이젠 벗어보시오.》 하였다.

길손은 아무리 벗으려고 애를 써도 벗을수 없어 결국은 한마리 소가 되여버렸다.

이튿날 로인이 그 《소》를 타고 장마당에 나가니 마침 봄갈이가 림박한 때라 저저마다 사려고 하였다.

소가 된 길손은 《나는 소가 아니라 사람이요.》 하였으나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고 이 《소》가 자꾸 영각소리를 지르는게 아마도 집에 새끼를 떼두고 와서 그러는가 하였다.

로인은 어떤 농사군에게 《소》를 팔면서 무우밭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지 소가 무우를 먹으면 죽을수도 있다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소》를 눅게 산 농사군은 이를 한갖 우스개소리로 흘려들었다.

팔려온 《소》는 다음날부터 밭갈이에 끌려나갔는데 후치를 잘 끌지 못하니 그 주인이 채찍을 후려치며 몰아갔다.

소가 된 길손은 《나는 진짜 소가 아니라 사람이요.》 하고 안타까이 소리쳤으나 주인은 알아듣지 못하고 또 채찍을 안기며 몰아갔다.

하루종일 시달림을 받고 저녁이 되여 집으로 끌려왔는데 그 집 아이가 무우를 씻어 바가지에 담아가지고 들어오는것이 보였다.

무우를 본 길손은 령감이 한 말이 생각나 죽을 생각을 하고 입으로 그 바가지를 쿡 받았더니 무우가 땅바닥에 쏟아졌다.

소가 된 길손은 때를 놓칠세라 얼른 무우 두어개를 먹어치웠다.

순간 길손의 머리에서 나무로 만들었던 소대가리가 떨어져나가고 소가죽이 벗겨지면서 벌거숭이사람으로 되여버렸다.

너무도 괴이한 광경앞에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하여 서있던 집주인이 사연을 묻기에 길손은 늙은 여우가 백발로인으로 변신하여 못된짓을 한데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그래서 그 고개길 오막살이에 달려가보았더니 《백발로인》은 없고 베 두필만이 남아있었다.

사람들은 그후에 여우가 조화를 부리면서 못된짓을 하던 이 고개를 《여우고개》라고 부르게 되였다.

《어우야담》의 저자 류몽인은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마지막에 자기의 비평을 첨부하여주고있다.

《이 말이 비록 허황하기는 하지만 현실을 잘 풍자하고 인간생활의 원리를 잘 보여주고있다. 세상사람들이 시국의 혼란을 당하여 나가야 할 응당한 길을 잃고 사특한 길에 빠지는자가 많다. 결국 불의한 사람에게 팔리여 부리움을 당하고 손님이 소로 된것을 비록 천만마디로 자기 변론을 하나 사람들은 반드시 믿지 않나니 슬프구나.》 하였다.

류몽인이 비평한바와 같이 《여우고개》전설은 비록 허황하지만 당시 혼란된 시국과 현실을 비유적으로 풍자하고있으며 심각한 교훈을 준다.

전설에서는 여우(령감)와 같이 교활하고 남을 속여 사람을 소와 같이 부려먹거나 팔아먹는자들을 풍자단죄하고 있으며 아무리 진실을 호소하여도 들어주지 않는 현실에 대한 은유적인 비판과 함께 길손과 같이 《귀》가 크고 분별할줄 모르는 사람은 속히워 봉변을 당하기마련이라는 교훈을 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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