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소행을 반영한 전설
강원도 김화군소재지에서 건너다보면 높은 산봉우리가 안겨오는데 그것이 오성산이고 그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선녀봉》이라 부르는 봉우리가 있다. 먼 옛날 오성산의 깊은 산골에는 인가가 모두해서 다섯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한씨성을 가진 녀인이 남매를 데리고 근근히 살고있었는데 그만 몹쓸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몸져눕게 되였다. 오누이는 어머니의 병을 고쳐드리려고 갖가지 약초를 뜯어다 달여 대접하였으나 아무런 효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 마을의 한 늙은이가 하는 말이 《모연실》이라 불리우는 버섯을 따다 쓰면 나을것 같은데 워낙 산중깊은 벼랑턱 선바위우에 그것도 어두울 때에만 솟아나있는 약재여서 구하기가 조련치 않다고 하는것이였다. 이 말을 듣고난 오누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달음으로 산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헤매고나서 어두워질무렵 눈물이 글썽해진 녀동생이 뒤따라오던 오빠를 향하여 《모연실을 찾았어요.》 하고 울먹울먹해서 소리쳤다. 소나무 한그루가 비껴선 깎아지른듯 한 벼랑중턱에서 석자정도 떨어진 곳에 버섯 같은것이 하나 피여있는것을 먼저 발견하였던것이다. 오누이는 서로 떠밀어주고 당겨주며 높은 벼랑턱우에 간신히 올라섰다. 벼랑중턱에는 한사람이나 겨우 몸붙일 자리밖에 없어 둘중 어느 한사람이 내려가서 모연실을 따야 하였다. 한참 궁리하던 끝에 녀동생이 자기가 몸도 가벼우니 오빠가 한팔을 잡고 버티고있으면 자기가 내려가 능히 한손으로 딸수 있을것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용단을 내리고 녀동생이 벼랑에 몸을 드리우고 손더듬하였으나 모연실은 잡히지 않았다. 어두운 밤인지라 볼수는 없고 손더듬질만 하고있으니 오빠는 맥이 진하여 찾지 못하겠으면 올라오라고 소리쳤다. 이 순간 손이 미끄러지면서 오누이는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한씨는 밤새껏 자식들이 오는가 하여 발자욱소리에 귀기울이다가 날이 새자마자 집을 나섰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산골짜기를 훑어가던 한씨가 벼랑아래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가지런히 누운채 숨을 거둔 오누이의 기막힌 정상이 한씨의 눈에 안겨왔다. 한씨는 너무도 기가 막혀 오누이의 이름을 번갈아 부르며 눈물을 쏟았다. 천만다행으로 아들은 어머니의 눈물이 입술에 떨어지자 숨을 돌리며 깨여났건만 딸은 종시 깨여나지 못하였다. 어머니는 딸의 시체를 붙안고 골안이 떠나갈듯이 《하늘도 무심하지. 모연실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딸애를 앗아간단 말이냐.》 하고 땅을 치며 통곡하다가 아들과 함께 까무러쳐 그자리에 쓰러지고말았다. 모자의 애끊는 그 곡성이 천궁에까지 미쳤는지 바위우로 구름이 몰려오고 안개가 서리더니 한참후에 벼랑우에 선녀가 앉아있는 모양을 한 바위가 생겨났다. 한씨모자가 깨여나 살펴보니 딸애의 시신이 없어지고 그애의 모습이 비낀듯 한 바위 하나가 솟아나있고 한씨의 손에는 딸애가 따려고 그렇게 애썼던 모연실이 쥐여져있었다. 이를 전해듣고나서 동네사람들은 딸애의 지극한 효성에 하늘도 감동되여 딸을 선녀로 변모시켜 봉우리에 세워준것같다고 하였다. 그때부터 이 봉우리는 《선녀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모연실을 달여먹고 병이 깨끗이 나은 한씨는 딸애의 생각이 날 때마다 오성산의 이 《선녀봉》을 찾군 하였다고 한다. 천선대는 하늘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금강산 만물상구역의 한복판 높은 곳에 있는 기묘한 전망대를 말한다. 천선대는 하늘선녀들이 하늘로 올라갈 때 얼굴치장을 하였다는 선녀화장호며 만병에 특효가 있다는 《천계화》에 대하여서도 전설속에 함께 전하고있다. 옛날 금강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 마을에 효성이 지극한 처녀가 늙은 홀아버지와 함께 살고있었다.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살릴 방도를 모색하며 산골짜기에서 약초를 캐던 처녀는 날이 어두워져 길을 잃고 헤매이다가 바위우에서 깜빡 쪽잠에 들게 되였다. 그런데 꿈에 백발로인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천주봉에서 뻗어내려오다가 뭉턱 잘리운것처럼 된 곳에 가면 하늘선녀들을 만날수 있는데 그들에게서 하늘나라 꽃을 얻어다가 아버지에게 그 향내를 맡게 하면 알 도리가 있을거라는것이였다. 깨고보니 꿈이였지만 처녀는 신선이 알리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만폭동쪽으로 걸음을 다우쳐 어느 벼랑가에 이르렀다. 깊은 밤인지라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한순간 두려움도 갈마들었으나 앓고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용기를 내여 한치한치 벼랑을 톺아오르던 처녀는 그만 맥이 진하여 발을 헛디디면서 벼랑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말았다. 날이 샐무렵에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한마리의 큰 범이 처녀를 업어다가 벼랑꼭대기에 눕혀놓고 사라졌다. 처녀는 여전히 의식을 잃고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동이 트고 해가 떠오르더니 풍악소리와 함께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처녀가 누워있는 벼랑우에 내렸다. 처녀가 있는줄 알리 없는 선녀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웃고 떠들면서 경치를 즐기려다가 문득 쓰러진 처녀를 발견하게 되였다. 선녀들은 남다른 곡절을 가진듯싶은 인간세상처녀를 위해 벼랑중턱의 돌확에 고인 맑은 물을 떠다가 얼굴도 씻어주고 《천계화》의 향내도 맡게 하였다. 마침내 정신을 차린 처녀가 주위를 둘러보니 난생처음 보는 아릿다운 아가씨들이 근심어린 눈길로 자기를 지켜보고있는것이였다. 결국 여기가 꿈에 백발할아버지가 말하던 선녀들의 놀이터임이 틀림없었다. 여기로 오게 된 사연을 묻는 선녀들앞에 처녀는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선녀들은 속세사람들은 오르기 어려운 여기까지 오른것을 보니 처녀의 지극한 효성을 하늘대왕도 보살펴준것이라고 하면서 천궁에서도 100년에 한번씩만 핀다는 그 귀한 《천계화》를 처녀에게 선뜻 내주었다. 한달음에 집으로 돌아온 처녀는 선녀들이 준 《천계화》로 아버지의 병을 깨끗이 고쳐드렸다. 그후부터 외금강 만물상 한복판의 높은 곳에 자리잡은 여기 전망대를 선녀들의 내림터라고 하여 《천선대》라고 불렀다. 그리고 선녀들이 내려와 놀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갈 때 얼굴치장을 하던 곳이라고 하여 천선대 중턱에 있는 맑은 물이 고인 2개의 둥근 돌확을 《선녀화장호》라고 부르게 되였다고 한다. 《치악산》전설은 꿩의 보은과 관련된 전설이며 꿩이 보은하고 죽은 산이름을 꿩과 결부시켜 《치악산》이라고 부르게 되였다는 이야기를 담고있다. 옛날 령동지방에 활을 잘 쏘는 젊은 무사가 살고있었다. 그는 몸이 우람차고 힘도 장사였는데 활을 잘 쏘아 명궁으로 소문이 났다. 그래서 사냥이나 하며 안일한 락을 누리기보다는 서울에 올라가 무예를 닦아 무장이 될 꿈을 안고 길차비를 하고 적악산에 올랐다. 그런데 숲속에서 꿩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달려가보니 큰 구렝이가 꿩을 휘감아죽이려 하고있었다. 그래서 즉시 활을 당겨 구렝이를 쏘아죽였더니 꿩은 날아올라 젊은 무사의 머리우를 한바퀴 돌며 감사하다는듯 울음소리를 내다가 산정으로 날아가버리였다. 무사는 기쁜 마음으로 산을 오르다가 날이 어두워지는지라 잠시 쉬며 인가가 없는가 하여 살펴보았는데 멀리 풀숲에서 불빛이 보였다. 그래서 불빛을 찾아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니 한채의 움막집 같은것이 나타났다. 마당가에 들어서서 주인을 찾으니 허리가 별로 길어보이는 녀주인이 나왔다. 지나가던 길손인데 하루밤 묵어가려고 한다고 말하자 선선히 승낙하며 웃방으로 안내하였다. 깊은 산중에 녀인이 혼자 사니 이상한 생각도 들었으나 밤중에 떠날수도 없고 하여 행장을 풀어놓았다. 이윽고 저녁상을 들여왔는데 음식맛이 별스러워 몇술 뜨고 내보내였다. 녀주인은 손님의 동정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나가버렸다. 젊은 무사는 잠이 오지 않아 이 생각, 저 생각 굴리다가 새벽녘에야 깊은 잠에 들었다. 그런데 꿈속인듯 가슴이 답답하여 눈을 떠보니 큰 구렝이가 자기 몸을 칭칭 감고는 혀를 날름거리면서 노려보고있었다. 《나는 네가 오기를 기다렸다. 내 남편을 쏘아죽이려 하였으니 원쑤를 갚으려 한다. 내 남편이 활에 맞기는 하였으나 죽었는지는 알수 없다. 만약 살았다면 새벽에 저 산우의 빈 사찰에서 세번 종소리가 울릴것이니 그때까지 놓아줄수 없다.》 이렇게 말하고난 구렝이는 어디 맛을 좀 보라는듯 무사의 허리를 꼭 조여댔다. 그제야 젊은 무사는 이 암구렝이가 자기가 낮에 꿩을 구원해주기 위해 죽인 그 구렝이의 짝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암구렝이의 조임속에서 빠져나가기는 틀린것이고 행여 《천신》이 도와 새벽종소리를 울려주지나 않을가 하는 허망한 희망밖에 없으니 실상은 죽은 몸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날이 밝자 어데선가 《뗑-》 하고 종소리가 울려왔다. 젊은 길손은 긴장이 풀리며 《후-》 하고 숨이 나갔다. 그러자 암구렝이가 하는 말이 종이 세번 울려야만 살려준다고 하는것이였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가 두번째 종소리가 《뗑-》 하고 울리더니 세번째 종소리는 약하게 《뗑-》 하고 울리다가 멎었다. 암구렝이는 그제야 자기 짝이 살아있다고 생각했던지 살려준다면서 다시 그런짓을 하면 따라가며 죽여버리겠다고 엄포를 놓고는 풀어주었다. 젊은 장수는 낮에 자기 활에 맞아죽은 구렝이가 살아있을리 없는지라 허둥지둥 산정으로 올라가 빈 사찰에 종이 달려있는 곳을 두루 살펴보았다. 그런데 웬 일인가? 종밑에 자기가 낮에 구원해준 꿩이 쓰러져있었다. 꿩은 종을 치느라고 부리가 다 뭉그러졌고 마지막에는 종을 머리로 쳤는지 온통 피자박이 되여 그 형체조차 알아보기 어려웠다. 젊은 무사는 그제야 그 꿩이 암구렝이에게 잡힌 자기를 지켜보고있다가 새벽에 세번 종소리가 나면 놓아준다는 소리를 엿듣고 필사적으로 날아올라 종을 울려 은혜를 갚고 죽었다는것을 짐작하게 되였다. 무사는 날짐승이지만 그 소행이 고맙고 눈물겨워 사찰의 남향터에 묻어주고 떠나기 아쉬운 걸음으로 서울길에 올랐다. 그후 이 사실이 전하여져 전설화되면서 꿩이 묻혀있는 본래의 《적악산》을 《치악산》이라고 고쳐부르고 꿩의 보은전설을 해를 이어 전해오게 되였다. 《취적산》전설도 아름다운 산천을 지켜 도벌자들과 맞서싸운 젊은 부부의 기특한 소행을 산이름과 결부시켜 전하고있다. 옛날 경상북도의 어느 한 산기슭에 피리를 잘 부는 송서방이라는 부부가 살고있었다. 그들은 이 산에서 밭을 일구어 살아가면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피리를 불며 서로 위로하였다고 한다. 그들부부는 시킨이는 없었어도 나서자란 아름다운 산천의 귀중함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도벌자들의 침해로부터 산림을 굳건히 지켜갔다. 그러던 어느날 도적떼들이 달려들어 산을 돌아보던 송서방을 쳐넘기고 그의 집에 달려와 안해까지 해치려 하였다. 안해는 겁탈하려드는 산적두목을 도끼로 쳐죽이기는 하였으나 련달아 달려드는 산적무리를 혼자서 더는 당해낼수가 없었다. 안해는 마지막으로 피리를 불어 산에 알리고는 그만 숨지고말았다. 그후로 이 산에서는 흐린 날이나 정적이 깃든 불길한 밤이면 죽은 원혼이 서로 화답하는 소리이런듯 피리소리가 들려오군 하였다. 그리고 큰 나무를 도끼로 찍으면 어데선가 큰 바위돌이 굴러내려와 나무를 베는 사람을 쳐죽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림을 지키다가 불행을 당한 송서방의 부부원혼이 도벌하는 산적패를 징벌하는것이라고 하면서 누구든 함부로 이 산에 들어가 나무를 찍어선 안된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어떤 승려가 그 불쌍한 원혼을 위안할 목적으로 사찰을 지어 위로하였는데 그후부터는 구슬픈 피리소리가 더는 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산마을사람들은 송서방부부의 소행을 두고두고 전하려고 그 산이름을 그후부터 《취적산》이라고 전하여오게 되였다는것이다. 전설은 악을 징계하고 선을 찬양하는 인민적인 리념에 맞게 가공된것으로 하여 산이름도 특색있게 지물전설화하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