룡의 보은과 결부된 《설암리》, 《만석동》전설

 

우리 나라 지명전설에는 상징적인 동물인 룡을 지역이나 지물과 결부시켜 신성화하여 이름을 붙이고 그 행적과 길흉을 설명한것 또한 적지 않다.

룡은 구름과 비를 다스리는 신비롭고 가상적인 존재로서 주로 물과 련결되여있다.

《룡왕》이라는 말도 바로 물을 다스리는 《신》이라는데서 온것이다.

설암리와 만석동도 저 하나의 영화보다 온 마을의 행복을 위하는 착한 마음에 대한 룡의 보은과 관련하여 생겨난 고장이름이라고 한다.

평양성밖 대동강 건너편에 설암리라고 부르는 동네가 있었는데 그 동네이름에는 이런 전설이 깃들어있다고 한다.

옛날 이 마을에 설씨성을 가진 가난한 총각이 신을 삼고 새끼를 꼬아 팔아서 살아가고있었다.

어느날 그는 장마당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 어부가 대동강에서 잡았다는 큼직한 잉어를 보게 되였는데 이상하게도 그 잉어는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잉어가 측은하게 생각된 마음착한 총각은 신을 판 돈으로 그 잉어를 사서 대동강에 도로 놓아주었다.

그런데 그날 밤 총각의 꿈에 룡왕이 나타나 하는 말이 낮에 총각이 구원해준 잉어가 바로 자기 아들이였다고 하면서 살려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하는것이였다.

룡왕의 초청으로 룡궁으로 간 설씨총각은 륭숭한 환대를 받았다.

총각과 헤여지는것을 몹시 서운해하던 룡왕은 자기 아들을 구원해준데 대한 사례로 무엇이든 요구만 하면 다 들어주겠다면서 그에게 어서 소원을 말하라고 하였다.

부귀영화를 누릴수 있는 행운이 눈앞에 놓여졌으나 마음씨착한 총각은 그 순간 마을사람들을 먼저 생각하였다.

해마다 장마철이면 물란리로 하여 당하는 평양사람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대동강물줄기를 돌려주었으면 한다고 설씨총각이 간절히 청하자 룡왕은 저 하나의 리익보다 마을사람들의 행복을 위하는 그의 갸륵한 마음에 크게 감동되였다.

그날 밤 룡왕의 조화로 큰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니 대동강 건너편으로 흐르던 물줄기가 온데간데 없어지고 넓은 벌판으로 변하였으며 그대신 모란봉에 깎아지른듯 한 청류벽이 생겨나고 그밑으로 새로 강줄기가 생겨났다.

 이렇게 물길이 돌려져 대동강이 모란봉기슭으로 흐르게 됨으로써 평양사람들은 큰물피해를 입지 않게 되였고 이때로부터 설씨총각의 착한 마음씨를 찬양하여 그가 살던 동네를 《설암리》로 부르게 되였다고 한다.

《만석동》전설은 한때 쓸모없이 버려져있던 땅이 해마다 룡의 보은으로 곡식을 만석씩 걷어들이는 살기 좋은 옥답으로 전변된 내용을 담은 전설이다.

옛날 황해도지방에 한 농군이 살고있었다.

그가 사는 지방으로 말하면 원래 메마른 지대여서 농토로 많이 쓰이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는 활을 잘 쏘는 재간을 가졌으나 벌방인지라 사냥도 크게 할것이 없어 메마른 땅을 뚜지며 늘 농사걱정을 하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백발로인이 꿈에 나타나서 하는 말인즉 《나는 우물에 살고있는 청룡인데 심술궂은 황룡이 내가 사는 곳을 빼앗으려고 하니 큰 걱정이로다. 래일 날이 흐리면 그놈이 싸움을 걸어올터인데 그때 나를 도와 황룡을 꼭 쏘아달라.》고 하였다.

농군은 꿈이 하도 이상하여 이튿날 활을 가지고 슬그머니 우물가로 가보았다.

아니나다를가 검은구름이 몰려오더니 정말로 두마리의 룡이 나타나서 싸움을 벌리는것이였다.

그가 두 룡이 맞붙어 돌아가는통에 황룡을 구별할수 없어 주춤거리면서 쏘지 못하고있는데 구름이 걷히고 룡들이 그만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그날 밤 농군의 꿈에 백발로인이 다시 나타나서 은혜를 후히 갚을테니 이번에는 꼭 쏘아달라고 하면서 래일 자기가 싸우다가 땅으로 곤두박힐테니 그때 분별하여 황룡을 맞혀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어디론가 가버리는것이였다.

날이 밝은지 이슥하여 구름이 몰려오더니 또 청룡과 황룡의 싸움이 벌어졌다.

농군은 제일 굵은 화살을 메워 겨누고있다가 청룡이 땅에 내리꽂힐 때 황룡을 면바로 쏘아 꺼꾸러뜨렸다.

이어 구름이 흩어지더니 날이 개였다.

그날 밤 또다시 나타난 백발로인이 농군의 은혜에 사례하면서 소원하는바를 말하라고 하였다.

농군은 천성이 어진 사람인지라 이 근방의 황무지를 논으로 풀면 옥답으로 만들것 같으니 가까이에 물줄기가 있었으면 하는것이 소원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백발로인은 그것이 소원이라면 내 할바를 다하여 래일 저녁부터 물길을 뽑아올리겠노라고 하였다.

아니나다를가 다음날 저녁부터 구름이 몰려와 번개치고 우뢰가 울더니 억수로 비가 쏟아져 청룡이 있던 우물물이 철철 넘쳐나면서 메말랐던 황무지를 적시며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되여 이 고장 농사군들은 버림받던 황무지를 논으로 풀어 해마다 만석의 곡식을 걷어들이게 되였다.

그때부터 이 고장이름을 《만석동》이라고 부르게 되였으며 청룡이 살던 우물을 《룡정》이라고 부르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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