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태조 왕건전설

 

 

태조 왕건에 대한 전설은 선대 5대로부터 전설화된것으로 하여 매우 풍부화되여있다.

또한 태조가 태봉국 궁예와 후백제 견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것으로 하여 린접전설들도 그 일부는 억지로 꾸며졌거나 심히 비범화되여있다.

김관의는 《편년통록》에서 고려왕실의 기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주고있다.

옛날 호경이라는 사람이 《성골장군》이라고 자칭하면서 백두산으로부터 산천을 구경하다가 부소산 왼쪽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에 자리를 잡고 장가를 들어 살았다.

호경의 집은 부유하였으나 아들이 없었다. 그는 활을 잘 쏘기에 사냥을 업으로 삼고있었다.

어느 하루 마을사람 9명과 함께 평나산으로 매를 잡으러 갔다가 날이 저물어 내려올수 없어 모두 바위굴속에 들어가 자게 되였다.

그때 범 한마리가 나타나 굴앞을 막아나서며 큰소리로 울어댔다.

그들모두는 서로 말하기를 범이 우리를 잡아먹으려 하니 시험삼아 각자의 관을 벗어던져 범이 누구의 관을 무는가에 따라 그 임자가 범과 싸워보자고들 하였다.

그리하여 모두가 관을 던졌는데 범은 호경의 관을 물었다. 이리하여 호경은 범과 싸우기 위하여 결심품고 굴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범은 갑자기 없어지고 굴이 무너졌다. 그바람에 굴안의 사람들은 하나도 나오지 못하고 죽었다.

호경은 평나군에 그 사연을 보고하고 다시 산으로 가서 아홉사람의 장사를 지내주었다.

이때 먼저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더니 그 《신》이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본시 과부로서 이 산을 주관하고 있었더니 이제 다행히 당신(성골장군)을 만나게 되여 부부의 인연을 맺고 이 산을 다스리고저 하나니 우선 당신이 이 산의 대왕으로 되여주시기를 바랍니다.》고 하였다. 그 말이 끝나자 호경도 산신도 간데 없이 자취를 감추고말았다.

호경은 이와 같이 산신과 부부가 되였으나 옛 안해를 잊지 못하여 밤마다 꿈에 나타나 안해와 동침하여 아들을 보았는데 이름을 강충이라고 하였다.

강충은 생김새가 단정하고 근엄하며 재주가 뛰여났다. 그는 커서 부자집 딸에게 장가들었다.

한때 풍수를 잘 보는 사람이 당시 부소산 북쪽에 있던 부소군에 와서 이 지대의 산세를 살피고 형세는 좋으나 나무가 없음을 보고서 강충더러 이르기를 《만약 고을을 부소산의 남쪽으로 옮기고 이 산에 소나무를 심어 산등의 바위들이 보이지 않도록만 한다면 이곳에서 장차 삼한을 통일할 인물이 나올것이다.》고 하였다.

이에 강충은 군민들과 의논하여 부소산의 남쪽으로 이사를 하고 온 산에 소나무를 심었으며 고을이름도 송악군이라고 고쳐불렀다.

그후 아들 2명을 보게 되였는데 둘째아들이 보육이였다. 그가 바로 태조의 증조부였다.

보육은 성품이 얌전하고 지혜로왔으나 승려가 되여 지이산으로 들어가서 불도를 닦다가 나중에 평나산 북쪽기슭에 다시 돌아와서 살았는데 후에는 거처를 또다시 마가갑으로 옮겨가 살았다.

어느날 꿈에 곡령에 올라 남쪽을 향하여 오줌을 누었는데 그것이 조선천지에 가득차서 산천이 은바다로 변하였다. 이튿날 형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네가 반드시 천하를 다스릴 큰 인물을 보게 될것이다.》 하고는 자기 딸 덕주를 주어 안해로 삼게 하였다.

보육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둘째딸 진의는 얼굴도 곱고 재주와 지혜가 뛰여났다.

진의가 성년이 되여 막 꽃피여나고있던 어느날 그의 언니가 꿈을 꾸었는데 아버지(보육)가 꾼 꿈과 꼭같았다.

말하자면 오관산마루턱에 앉아 오줌을 누었더니 그것이 흘러내려 온 천하에 가득차는것을 보았다는것이다.

진의는 그 꿈이야기를 자기가 사겠다며 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되풀이하게 하고는 그것을 움켜서 몸에 품는 시늉을 세번 하고나서 마치 뜻을 이룬듯이 몹시 자부하였다.

진의는 그후에 우연히 한 성인을 만나 정분을 나누고 생남을 하였는데 그 이름을 작제건(전설적내용을 놓고보면 태조 왕건의 할아버지가 된다.)이라고 하였다.

작제건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용맹하였다. 그는 점차 재주가 늘어 륙예(례의, 음악, 궁술, 문장, 서예, 수학)를 다 잘하였고 그중에서도 글씨와 활재주가 뛰여났다.

나이가 16살 되였을 때 어머니가 성인이 두고간 활과 화살을 주니 크게 기뻐하였고 활을 쏘는데서 백발백중이였다. 이리하여 세상사람들은 그를 신궁(신과 같은 궁술을 가진 사람)이라고 불렀다.

궁술이 유명하여 작제건은 한때 부처의 탈을 쓰고 나타나 서해의 룡왕을 괴롭히는 늙은 여우를 활로 쏘아죽임으로써 룡궁에 안내되여 귀인으로서의 대접을 받았으며 룡왕의 딸을 안해로 삼게 되였다.

그는 룡왕으로부터 일곱가지 보물과 룡녀가 귀띔해준 신기한 돼지까지 받아가지고 룡녀와 함께 떠났다.

늙은 여우를 죽이고났을 때 룡왕이 장차 어떻게 하려고하는가고 묻자 작제건은 동방의 임금이 되는것이 자기의 소원이라고 하였었다.

그러자 룡왕은 동방의 임금이 되려면 건자가 붙은 이름으로 자손까지 3대를 거쳐야 한다고 일러주는것이였다.

작제건은 건자가 돌림자로 3대이면 손자벌대에 임금이 나오게 된다는것을 알고 자기가 살던 고장으로 돌아왔다.

《작제건이 서해 룡왕의 딸에게 장가를 들고 왔으니 실로 큰 경사로다.》고 하면서 개주, 정주, 염주, 백주 등 4개 고을과 강화, 교동, 하음 등 3개 현의 사람들이 모여와서 그를 위하여 영안성을 쌓고 궁실을 새로 지어놓았다.

작제건이 여기에 와서 산지 1년이 지난 어느날 룡궁에서 가져온 돼지가 우리에 들어가지 않고 길잡이를 하기에 따라가보니 송악산 남쪽기슭에 가서 눕는것이였다.

그곳으로 말하면 자기에게는 할아버지벌 되는 강충이 살던 옛터이고 풍수가 말한바와 같이 앞으로 삼한을 통일할 인물이 나올 명당자리였다.

그래서 그자리에 새 집을 짓고 살게 되였으며 룡녀는 집의 창밖에 우물을 파고 그 물길을 따라 서해의 룡궁으로 드나들었다.

룡녀는 4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 맏아들이 룡건이였다.

룡건(왕건의 아버지)은 체격이 큰데다가 큰 수염을 가졌으며 도량이 넓고 뜻이 깊었다.

그가 청년기에 이르러 어느 하루밤 꿈을 꾸었는데 한 미녀가 와서 안해가 되기를 원하기에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였다.

그후 송악산에서 영안성으로 가는 길에서 한 녀자를 만났는데 그 모습이 꿈에 보던 그 미녀와 꼭같았으므로 그와 혼인하게 되였다. 세상사람들은 그 미녀가 어데서 왔는지 알수 없어 몽부인이라고 불렀다.

룡건은 송악산 옛집에서 여러해동안 살다가 그 남쪽에 새 집을 지었다. 그런데 어느 하루 풍수를 잘 보는 한 도사가 나타나 그 집을 보고 《기장을 심을 터에 어찌 삼을 심었는가?》 하고는 가버리기에 몽부인은 그 말을 룡건에게 알리여 도사와 함께 산정에 올라 산수지맥을 살펴보게 되였다.

도사가 하는 말이 《이 땅의 지맥은 북방 백두산의 수모목간(水母木幹)으로부터 내려와서 마두명당(馬頭名堂)에 떨어졌다.》고 하면서 이제 36구의 집을 지으면 천지의 리치에 부합되여 명년에 반드시 슬기로운 아들을 보게 될것이니 그 이름을 왕건이라고 지어주라는것이였다.

룡건은 도사의 말대로 왕자가 태여날 명당자리에 새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달부터 몽부인이 태기가 있어 열삭만에 태조 왕건을 낳게 되였다.

왕건이 17살 되였을 때 도사가 다시 나타나 말하기를 당신은 하늘이 정한 명당터에서 났으니 삼국의 백성들은 당신이 구제하여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태조 왕건에게 군대를 지휘하고 진을 치는 법과 유리한 지형과 적당한 시기를 선택하는 법, 산천의 형세를 감득하는 리치 등을 가르쳐주었다 한다.

이처럼 《편년통록》에서는 당시까지 항간에서 태조 왕건의 출생담을 비범화, 신성화하기 위하여 선대 5대로부터 거슬러내려오면서 전설화한 비현실적이며 환상적인 이야기를 기사화하였다.

전설화된 《고려왕실의 세계》에서 보는바와 같이 종증조부인 호경이가 평나산에 매잡으러 갔다가 범을 만나 10명중에 자기 혼자만 살아남게 되고 산신과 부부가 되였다든가 보육과 그 딸의 꿈이야기와 그것을 산 화제거리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기이한 전설중의 하나이다.

또한 작제건이 궁술이 유명하여 서해 룡왕을 괴롭히는 늙은 여우를 쏘아죽이고 룡녀와 결혼하며 신귀한 보물을 가져오게 되였다는 이야기 그리고 집터와 관련하여 명당자리에서는 명인이 나오기마련이라는 풍수설 등은 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전설들에 수많이 배여있는 명인신비화에 대한 설화이다.

특히 도사가 나타나 우로는 천문을 보고 아래로는 시운을 살펴 명인, 왕자가 나올 명당자리를 정해주고 예언한것 등은 그모두가 시조왕이 하늘이나 천심이 알아서 내린것이라고 신성화하는데로부터 시조왕전설을 비범하게 꾸며낸데서 온것이다.

고려태조 왕건전설이 중세초 시조왕전설과 같이 천강이나 란생신화적인 외피를 쓰지 않았지만 여기에서는 시조왕전설에서 보편적으로 보게 되는 환상적수법이 강하게 작용하고있다.

그것은 당대 인민들이 시조왕을 비범한 인물, 천기를 타고난 명인으로 신성화한것과 관련된다.

고려태조 왕건의 출생과 관련하여 《고려사》 권1 《태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여있다.

《신성대왕의 성은 왕씨요, 이름은 건이요, 자는 약천이니 송악 남쪽저택에서 태여났다. 그때에 신기한 광채와 자기빛기운이 룡과 같은 형상으로 되여 방을 비치고 들에 가득차서 종일토록 서리여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지혜가 있고 룡의 얼굴에 이마의 뼈는 해와 같이 둥글며 턱은 모나고 낯이 넙적하였으며 기상이 탁월하고 음성이 웅장하였으며 세상을 건질만 한 도량이 있었다.》

정사인 《고려사》에서조차 태조 왕건의 출생의 정황을 황홀하고 기이하게 전설화하고있으며 그의 용모와 풍격을 룡에 비유하였는가 하면 해와 같이 둥글고 기상이 탁월하였다고 찬탄하여 기록하고있다.

왕건이 나서 비범한 장수로 이름을 떨치게 된 력사적시기는 후기신라가 분렬되여 서로 싸우던 시기였다.

견훤이 반란을 일으켜 남쪽땅에 웅거하여 나라의 이름을 후백제라고 하였다면 궁예는 북쪽에 웅거하여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의 이름을 태봉이라 하였다.

왕건의 아버지는 송악군 사찬(벼슬이름)으로 있었는데 자기의 고을을 궁예에게 바치니 그는 크게 기뻐하면서 그를 금성의 태수로 삼았다.

왕건은 송악에 성을 쌓고 궁예의 신임을 얻어 성주가 되였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20살이였다. 궁예는 왕건의 장수다운 위풍과 지혜를 간파하고 그에게 여러가지 군사적임무를 주었다. 그때마다 그는 매번 성공하였고 벼슬이 높아져 나중에는 여러 장수들의 우두머리까지 되였다.

왕건이 한때 해군대장군으로 임명되여 견훤이 직접 거느리고온 수많은 군사와 전함들을 용의주도한 전법으로 적은 수의 병졸과 배를 가지고 쳐부신 이야기는 궁예를 크게 놀라게 하였다.

견훤이 지휘하는 군사와 전함은 목포에서 덕진포까지 머리와 꼬리를 물고 늘어져있었으며 그 형세가 엄엄하고 공포에 떨게 하였다.

이때 왕건은 여러 장수들과 병졸들이 그 위세에 위압되여 근심하는 빛을 보이자 그들에게 《근심하지 말라. 전쟁에서 이기고지는것은 군사의 의지가 통일되여있는가 없는가 하는데 있는것이지 그 수가 많고 적은데 있는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한동안 형세를 살피다가 묘술을 꾸며냈다.

여러 장군들이 그의 말을 좇아 진격하다가 후퇴하는척하면서 바람방향을 리용하여 작은 배에 불을 달아 적진에 련속 보냄으로써 밀집된 적선들을 모조리 불에 태워버렸다.

왕건은 능숙한 지휘와 묘술로 후백제군과 신라군과의 싸움에서 늘 이김으로써 그 수하장수들은 물론 병졸들과 백성들도 그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의심이 많고 포악하기 그지없는 궁예도 다른 재상과 장군들이 조금만 비위에 맞지 않으면 그 즉석에서 죽여버리군 하였지만 왕건만은 크게 믿고 불안한 정국속에서도 그를 최고관직인 시중으로 봉하였다.

여러 장수들과 관리들도 한결같이 그의 위풍과 묘술, 지략에 감탄하여 우두머리로 받들었다.

왕건에 대한 믿음은 컸지만 그때만 하여도 궁예는 이상한 기미가 보여도 《반역》이라는 죄명을 씌워 하루에도 100여명씩 죽이군 하여 여러 장수들과 정승들도 해를 입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왕건에게 민심이 모아지고 피해를 보는 문무백관들이 그의 얼굴만 쳐다보며 근심어린 눈길들이 오고가자 의심많은 궁예는 어느 하루 왕건을 불러 성난 눈길로 한참 보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가 어제 밤에 사람들을 모아서 반란을 일으키려고 음모한것은 웬 일인가?》

왕건은 궁예의 독살어린 물음에 얼굴빛을 조금도 달리하지 않고 태연하게 웃으면서 말하기를 《어찌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하고 진정을 아뢰였다.

그러자 궁예는 발칵 성을 내면서 《그대는 나를 속이지 말라, 나는 능히 관심을 하기때문에 그것을 안다, 나는 곧 입정(불교에서 정신을 한곳에 집중하여 그 리치를 알아낸다는 수법)을 하여보고나서 그 일을 이야기하겠다.》며 눈을 감고 뒤짐을 지더니 하늘을 향하여 고개를 젖히는것이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있던 궁중관리가 옆에 서있다가 손에서 붓을 떨어뜨리고는 그것을 잡는체 하면서 왕건의 가까이에 와서 귀속말로 왕의 말대로 복종하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일러주었다.

왕건은 그제야 포악한 궁예의 비위를 거슬려서는 안된다는것을 깨닫고 《사실은 제가 모반하였으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고 응해나섰다.

그러자 궁예는 껄껄 웃고나서 《그대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할만 하다.》고 하면서 금은으로 장식한 말안장과 굴레를 주었다. 그리고는 《그대 다시는 나를 속이지 말라.》고 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궁중관리들의 마음이 왕건에게 쏠리게 되면서 궁예의 포악성은 더욱 드러났다. 마침내 새 왕조를 세우려는 기운이 바야흐로 용솟음치게 되였다.

왕건은 나이가 30살에 이른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그것인즉 바다의 한가운데 9층탑이 서있었고 그우에 자기가 올라가 앉아있는것이였다.

이런 몽사가 있은 후 어느 봄날 한 궁중관리가 하늘에서 내려보낸 백발도사인듯 한 사람에게서 옛날거울 한개를 샀다.

그런데 거울속으로 해빛이 일시에 비쳐들더니 가늘게 쓴 글이 읽을수 있을 정도로 은연히 드러나보였다. 여러 궁중관리들이 모여 그 글을 해석한데 의하면 다음과 같다.

첫 글줄은 하늘의 옥황상제가 진마(진한과 마한)에 아들을 내려보냈다는것이고 다음글줄은 뢰성이 진동하고 신령한 번개가 번쩍이는 가운데 두 룡이 나타났는데 하나가 《청목》에 몸을 감추었다면 다른 하나는 《흑금》의 동쪽에 행적을 드러냈다는것이였다.

다시말하여 《청목》은 송악군을 이르는 뜻이고 룡은 그 이름자를 가진 사람이 임금으로 되리라는 말이니 왕건을 의미한다는것이였다. 그리고 《흑금》은 궁예의 도읍지 철원을 의미하는데 그 행적만 드러낼뿐이라는것이였다.

그다음의 글귀는 《먼저 닭을 잡고 뒤에 오리를 칠것》이라고 되여있었는데 해석하면 임금이 된 왕건이 먼저 계림(신라)을 평정하고 다음에 물오리가 날아드는 압록강 연안까지 회복하라는 뜻이였다.

궁중관리들은 한결같이 이 글발이 시운을 밝힌 하늘의 뜻이라면서 왕건을 천자로 우러러따랐으며 궁예는 악행으로 하여 버림받고 반드시 멸하게 될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이렇게 시운이 터가던 어느날 기병장군 홍유와 그 수하 장수 4명이 비밀리에 야음을 타고 왕건에게 와서 그를 왕으로 추대할 뜻을 아뢰였다.

왕건은 굳이 거절하며 허락하지 않았으나 부인 류씨가 손수 갑옷을 들어 입히니 여러 장수들이 옹위하여 나오면서 큰소리로 방을 놓아 《왕공이 벌써 의기를 들었다.》고 하였다.

이때 그 소리를 듣고 분주히 달려나와 함께 참가한 사람들이 이루 헤아릴수 없이 많았다. 궁문에 와 북을 치며 왁작 떠들어대면서 왕건을 기다리는 사람만 하여도 만여명이나 되였다.

이 사실에 깜짝 놀란 궁예는 《왕공이 벌써 승리를 얻었으니 내 일은 다 글렀다.》 하고는 변복을 하고 북문으로 도망쳐 달아났다.

왕건은 새 왕조를 세우고 나라이름을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는 뜻에서 고려라 하였으며 수도를 철원으로부터 송악으로 옮기고 개주(개성)라 부르게 하였다.

왕건은 고려를 세운 다음 후삼국을 통합하는것을 국가의 기본과업으로 내세우고 국토통일에 있는 힘을 다 기울여 끝내는 력사상 처음으로 단일민족의 통일국가인 고려를 창건한 시조왕으로 되였다.

태조 왕건에 대한 신기한 왕대기와 사화들은 앞에서 본바와 같이 《고려사》에 첨부된 《편년통록》과 함께 태조의 왕력을 서술한 본문에 슴배여있다.

또한 그 이후 구전화되여온 갖가지 전설들도 적지 않다. 하기에 시조왕전설치고는 가장 풍부하게 기사화되여 내려온 전설로서 환상적으로 꾸며진것도 적지 않다.

이것은 왕건이 세나라를 병합하여 통일국가인 고려를 세운 시조왕이란데로부터 심히 환상적으로 가공되였으며 력사편찬자들까지도 그처럼 풍부하게 형상하였던것이다. 뿐만아니라 그가 궁예의 시중으로도 있었던만큼 그와의 린접전설과 후백제 견훤과의 전설적련관도 가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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