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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국과 삼성혈전설
탐라국은 먼 옛날 제주도땅에 세워진 우리 나라 소국의 하나였다. 탐라국은 세나라시기 중기까지만 하여도 린접한 신라, 백제와 정식 국가적인 접촉과 련계를 가지고있었으며 소국에 따르는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탐라국 삼성혈전설은 제주도땅속에서 세개의 구멍 즉 삼성혈이 생겼고 세 《신인》형제가 여기에서 나와 처음으로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게 되였으며 그무렵 바다건너로부터 떠내려온 나무궤안의 돌함에서 세 처녀가 나와 세 《신인》과 배필을 뭇고 각각 도읍을 정하여 씨족을 번성시켰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탐라국전설은 섬소국의 형성과 세 《신인》의 연원을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알에서 까나오는것으로 신비화한것이 아니라 땅속구멍에서 나오는것으로 전설화함으로써 지물, 지혈의 유래와 직접 결부시켜 땅의 《신인》배출을 신성화하고있다. 탐라국전설은 《고려사》 권57에 당시 시점에서 취사선택되여 기사화되여있다. 그 내용을 추려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탐라는 남해바다에 있는 섬인 제주도를 말한다. 옛 기록에 의하면 태고적에는 여기에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후 어느때인가 세명의 《신인》이 탐라의 주산인 한나산의 북쪽산발에 있는 굴구멍에서 나왔다고 한다. 세 《신인》중에서 맏이를 량을나라 하였고 둘째를 고을나, 셋째를 부을나로 불렀다. 세사람은 처음으로 이곳에 나타난것만큼 산간벽지를 다니면서 사냥을 하였고 그 가죽으로 옷을 해입고 고기를 낚아먹으며 살아갔다. 어느 하루 동쪽바다가에 붉은 진흙으로 봉한 나무궤 하나가 떠와서 닿았다. 세사람이 즉시 달려가 그 궤를 열어보았더니 그안에는 돌함과 자지색옷에 붉은 띠를 두른 사자가 있었다. 이어 돌함을 열어보니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함께 송아지 그리고 오곡종자도 있었다. 사자는 이들에게 말하기를 《이 세 처녀들은 저의 나라 왕의 딸이온데 왕의 말씀인즉 서해가운데 산이 있어 거기에 <신>의 아들 세사람이 나와 장차 나라를 세우려 하는데 배필이 없으므로 자기의 세 딸을 데리고가라고 하였으니 바라옵건대 그들로 배필을 삼으시고 대업을 성취하시옵소서.》 하고는 어느새 구름을 타고 날아가버렸다. 세 《신인》은 나이순서에 따라 세 처녀를 안해로 맞아들이였다. 세 《신인》은 샘물이 달고 땅이 비옥한 곳을 골라 도읍을 정하였는데 량을나가 사는 곳을 제일도, 고을나가 사는 곳을 제이도, 부을나가 사는 곳을 제삼도라고 하였다. 세 《신인》은 맏형인 량을나를 대왕으로 천거하고 두 동생은 신하가 되여 탐라국을 세우고 세 도읍을 통솔하며 정사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기름진 땅에 오곡을 심고 농사를 지으면서 망아지와 송아지, 집짐승들을 길렀는데 날이 감에 따라 부유하고 씨족이 번영하게 되여 산수가 수려한 살기 좋은 고장이 되였다고 한다. 그후에 전하는데 의하면 당대 제주도에서 사는 량씨, 고씨, 부씨가 다 그 세 《신인》의 후손들이라고 한다. 이처럼 탐라국설화는 시조인물의 기원을 천강이나 란생이 아니라 땅에서 솟아나오는 <신인>으로 비범화하고있으며 삼성혈이라는 지물적인 전제를 주면서 전설화하고있다. 이것은 건국설화적인 시조왕전설에서는 비범한 인물이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알에서 까나오며 룡의 겨드랑이 아니면 명산의 바위 혹은 땅이 갈라지면서 솟아나오는것과 같은 신비한 풍물, 지물적인 희한한 배경속에서 시조왕의 기원을 신화전설적양상으로 채색하여 보여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일반적으로 시조왕과 관련된 건국설화는 원시사회에서 창조되였던 신화와 함께 그 창조경험과 형식을 물려받아 고대국가의 형성과 그 시조왕의 기원을 신비화, 신성화하기 위하여 신화적외피를 씌운데로부터 연원된 설화형식이다. 그러므로 중세초 봉건국가 시조왕전설도 고대건국설화류형에 속하며 발생기전설이 신화와 결합되거나 그 계속으로 이어지면서 신화적외피를 입은것이라고 볼수 있다. 물론 이 설화류형은 신화적인 외피를 쓰고있다 하더라도 비범한 군주의 기원을 신비화하였을뿐 신화에서와 같이 인물과 생활을 비현실적인 신화적환상으로 개작하여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중세초 첫 봉건국가의 성립과 그 시조왕에 대한 건국설화는 신화로부터 전설에로 이행하던 고대설화의 계승발전의 력사적단계를 구획지어준다고 할수 있다. 뿐만아니라 신화로부터 전설에로의 설화발전의 합법칙성, 원시신화와 고대설화와의 양상적차이, 그후 계승적련관관계를 더욱 뚜렷이 밝혀준다고 볼수 있다. 중세초에는 시조왕전설과 함께 지역별로 되는 성씨의 조상을 밝혀보는 인물전설들도 적지 않게 창조되였다. 례하면 금함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을 금자를 붙여 김알지라 하였는데 그것이 신라 경주김씨의 시조라고 하였거나 탐라국설화에서 보는바와 같이 땅에서 솟아오른 세 《신인》의 성자에 따라 제주도의 량씨, 고씨, 부씨의 후손들이 생겨나게 되였다고 전하고있는데서 찾아볼수 있다. 특히 성씨와 관련된 조상유래전설은 나라와 지역별에 따라 많은 경우 시조왕전설과 밀접히 결부되여있다. 고구려의 시조왕 고주몽의 성씨를 따서 고구려라는 국명이 생겨났고 고씨의 후손들이 그 성자를 이어가게 되였다. 신라의 박씨의 경우도 혁거세가 박과 같이 둥근 알에서 나왔다 하여 박자성을 따서 박혁거세라고 불렀으며 석씨도 석탈해왕의 성씨를 따른것이다. 성씨와 관련된 전설은 시조왕과 씨종족, 성씨의 계보와 유래를 다같이 밝혀주고있다는데서 일정한 사회력사성을 가진다. 시조왕전설은 중세초 이후시기에도 왕대에 따라 적지 않게 창조되였지만 앞에서 본 전형적인 전설양상과는 달리 력사기록과 함께 인물전기식체질을 가진것들이 적지 않으며 전설을 섞어가면서 서사화한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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