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거세와 알영, 석탈해와 김알지

 

 

혁거세와 알영에 대한 설화는 신라봉건국가의 건국시조왕과 그 왕후의 래력을 심히 신성화한 신화적외피를 입은 전설의 하나이다.

당시 서라벌사람들은 봉건소국의 시조왕의 래력을 신비화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일어난 번개불이 땅에 드리우고 백마 한마리가 꿇어앉아 성인 제왕을 맞이하듯 절하는 가운데 혁거세가 보라빛알에서 나오는것으로 란생신화적으로 전설화하였다.

왕후 알영도 계룡의 겨드랑이(혹은 그 배속)에서 나온것으로 룡생신화적으로 전설화하였다.

혁거세와 알영에 대한 전설은 오랜 세월 전하여오다가 그후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취사선택되여 기사화되였다.

현존하는 두 문헌에 올라있는 력사기록적인 내용은 비슷하나 《삼국유사》에 실린것은 전설의 원형을 보다 잘 살린것이라고 할수 있다.

아래에 그 번역문을 일부 생략하여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전한 지절원년 임자 삼월 초하루날에 6부의 조상들이 각기 자제들을 데리고 모두 알천기슭에 모여서 의논하기를 <우리들이 우로 군주가 없이 백성들을 다스리고있으므로 백성들이 모두 방종안일하여 제 맘대로 하니 어찌 덕있는 사람을 찾아서 임금을 삼고 나라를 세우며 도읍을 설립치 않을것이랴!> 하였다.

이에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밑 우물곁에 이상스러운 기운이 마치 번개불같이 땅에 드리우고 거기에 백마 한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시늉을 하고있었다.

그곳을 찾아가보니 보라빛알(혹은 푸른빛 큰 알) 한개가 있고 말은 사람을 보자 울음소리를 길게 뽑으면서 하늘로 올라가버리였다. 그 알을 깨여보니 모양이 단정한 아름다운 어린 사내애가 나왔다.

놀랍고 이상하여 아이를 동천에 가 목욕을 시켰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밝게 빛났다.

그래 그 이름을 혁거세왕이라 하고 왕위의 칭호는 <거슬한>(혹은 거서간)이라 하니 그때 사람들이 다투어 치하하기를 <이제 천자가 내려왔으니 마땅히 덕있는 녀인을 찾아서 배필을 삼아야 할것이다.> 하였다.

이날에 사량리 알영우물에서 계룡이 나타나서 왼편 겨드랑이로부터 한 계집아이를 낳으니(일설에는 룡이 나타나 죽었는데 그의 배를 가르니 계집아이가 나왔다고 함.) 용모가 아주 아름다왔다. 그러나 그의 입술은 마치 닭의 부리와 비슷하여 월성 북쪽 내물에 가서 목욕을 시켰더니 그 입부리가 퉁겨져 떨어졌다. 이로 인하여 그 개울이름을 《발천》이라고 하였다.

궁실을 남산 서쪽기슭에 짓고 두 신성한 아이를 받들어 길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나왔는데 그 알은 박과 같았다. 나라사람들이 바가지를 <박>이라 하므로 그의 성을 박(朴)이라고 하였으며 계집아이는 그가 난 우물이름으로 이름을 지었다.

두 성인의 나이가 열세살이 되자 남자는 위에 올라 왕이 되고 녀자는 왕후로 되였다.

나라이름을 서라벌 또는 서벌이라 하고 혹은 사라 또는 사로라고도 하였다.

처음에 왕이 계정에서 났으므로 계림국이라고 하였다.

일설에는 탈해왕(脫解王)이 김알지(金閼智)를 얻을 때 흰닭이 숲속에서 울었으므로 나라이름을 고쳐서 계림(鷄林)이라 하였다고 한다.

후세에 드디여 신라(新羅)란 국호를 정하였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계림국의 건국설화는 혁거세전설로부터 시작하여 그후 신화전설적인 양상을 띠고 탈해왕에 이어지고 알지에 와서 끝을 보게 된다.

혁거세전설에서 왕이 계정에서 난것으로 하여 계림국이라고 하였고 일설에는 탈해왕때 김알지를 얻을 시각 흰닭이 숲속에서 울었기때문에 나라이름을 고쳐서 계림이라 하였다고 전설화한것은 그 계승관계를 여실히 말해준다.

혁거세전설은 계림국(신라)의 왕전설로서 중세초 봉건국가의 성립과 군주를 내세우려는 서라벌사람들의 소망을 란생신화적인 형식에 담아 군주가 보라빛알에서 나오는것으로 하여 그 이름도 밝은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에서 혁거세왕이라고 불렀다고 전하고있다.

전설은 혁거세의 연원을 기이하게 엮어주기 위하여 신비로운 지물적환경을 주고 란생신화적인 방식으로 전개해나갔다.

그러면서 군주의 신비로운 연원을 민심과 결부시켜 하늘이 내리는 덕으로 설화화하고있는것이다.

전설에서는 서라벌사람들이 알천기슭에 모여 군주를 맞이하게 되는 신비한 정국과 하늘의 계시로부터 얻어지는 신령스러운 알에서 천자가 태여나는것으로 신성화하고있다.

군주가 하늘의 계시를 받고 연원되였다고 보는것은 양산밑에 있는 우물에 이상한 기운이 미친것이 다름아닌 하늘로부터 번개불이 땅에 드리운것이고 신비한 알을 인도하고 마중하여 제시해준 백마는 다름아닌 하늘의 사도로서 하늘에서 내려왔다가 알에 절하고 울음소리를 내면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버렸다는데서 잘 알수 있다.

원래 군주나 명인이 알에서 나오는 란생신화적인 전설은 고대와 중세초에 이르기까지 보편화된것으로서 그모두가 하늘의 계시로부터 연원되거나 아니면 천제의 후손으로 알에서 까나오는것으로 일관되여있다.

주몽이나 혁거세, 수로에 대한 전설은 다같이 천강신화적양상에 란생신화적형식을 결합한 시조왕전설이며 부여의 금와왕전설도 그 양상에서는 상통하다고 볼수 있다.

혁거세전설도 이야기의 발단과 연원의 지물적인 정황, 말에 의한 인도 등은 우와 상통한것이다.

이것은 세나라시기 인민들의 리념과 시조왕전설창조에서 공통한 민족적인 설화구성방식을 가지고있었다는것을 여실히 말하여준다.

혁거세전설에서 특이한것은 왕후 알영에 대한 전설을 겸하여 전개하고있을뿐아니라 거의 같은 양상으로 끌고나가면서 계룡의 겨드랑이(혹은 배속)에서 계집아이성인이 나오는것으로 전설화하고있는것이다.

전설은 신화적외피를 입은 신라봉건국가의 건국설화로서 그 시조왕과 왕후의 연원을 란생 또는 룡생신화적양상에 담아 신비화하여 전설화하였다.

실제사실적인 지물과 력사관계속에서 건국설화적인 내용을 끄집어내고 전개하고있지만 두 성인의 래력에 대하여서만 신화적인 외피를 입고있다.

따라서 이 설화도 례외없이 중세초 봉건국가성립에 대한 전설이지만 원시신화와 직접 이어지는 고대건국설화인 시조왕전설과 형식상 비슷한 양상과 전개방식을 가지게 되였다고 할수 있다.

석탈해와 김알지의 설화도 신화적외피를 입은데서는 앞의 전설과 대동소이하다.

석탈해와 김알지전설은 양상과 구성방식에서 중세초 시조왕전설과 흡사하며 그 출생담 역시 신비한 래력을 가진것으로서 하늘에서 내려보낸 알이나 황금빛궤에서 나오게 된다.

또한 신비한 재주와 지혜를 가지고있는것으로 하여 왕위에 오르거나 성씨의 조상으로 된다.

앞에서 본바와 같이 혁거세전설에도 계림국과 관련하여 탈해왕, 김알지의 신비한 래력에 대하여 거들고있으며 설화의 연원과 전개방식도 거의 비슷하게 주고있다.

이로 하여 두 전설은 다같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사화되였다.

석탈해도 혁거세와 같이 신비한 연원을 가진 알에서 나올뿐아니라 룡의 호위를 받으며 남해로부터 가락국수역을 거쳐 계림국령역에 이르러 산수좋은 곳에 정착하였다가 지혜가 출중한것으로 하여 부마로 선출되고 나중에는 왕위에 오르는것으로 전설화되여있다.

전설에 의하면 탈해는 남해의 룡성국 룡왕의 후예로서 당시 부왕이 다른 나라의 왕녀를 왕비로 삼았는데 오래동안 자식을 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기도를 드렸더니 7년만에 큰 알을 낳게 되였다.

대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묻되 <사람으로서 알을 낳음은 고금에 없는 일이니 이것은 또한 불길할 징조라.> 하고 궤짝을 짜서 거기에 알과 함께 여러가지 보물과 노비들을 넣어 바다에 띄우면서 축수하기를 <인연있는 땅에 가닿아 나라를 세우고 가문을 이루거라.>고 하였다.

붉은 룡이 배를 호위하면서 닿은 곳이 계림국 동쪽 하서지촌 아진포였다.

이때 포구에서는 한 로파가 바다쪽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런데 바다가운데에는 원래 바위가 없었는데 거기에 까치가 모여들어 울어대고있는것이였다.

로파가 배를 저어 가보니 웬 배 한척이 있었고 그우에 큰 궤짝이 놓여있었는데 길이 20척, 너비는 13척이나 되였다.

배를 끌어다놓고 길흉을 알지 못하여 하늘에 대고 맹세한 다음 조금 있다가 열어보니 거기에는 용모가 단정한 사내아이와 갖가지 보물 그리고 노비 등이 가득 들어있었다.

사내아이를 데려다 이레동안 음식을 먹였더니 그때에야 말하기를 자기는 본래 룡성국의 사람이라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을 알리는것이였다.

그리고는 지팽이를 쥐고 노비 둘을 데리고 토함산(경주부근 동쪽산)에 올라 돌로 집을 만들고 7일동안 묵으면서 성안에 살만 한 곳이 있는가 살펴보았다.

마침 한 봉우리가 초생달모양으로 생긴 곳이 있어 지세가 가히 오래 거처할만 한 곳이라 하여 내려와 찾아가보니 이미 다른 사람(포공)이 집을 쓰고 살고있었다.

그는 꾀를 써서 그 집터자리가 할아버지때부터 쓰고살던 곳이라는것을 그에게 증명해보임으로써 관가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이 사실로 하여 당시 남해왕은 탈해가 지혜가 있는 사람임을 알고 맏공주를 주어 부마로 삼았다. 이리하여 그는 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성씨를 까치 작(鵲)에서 새 조(鳥)를 떼여버린 석(昔)자로 하고 이름은 궤속에 있던 알에서 나왔다 하여 탈해라고 불렀다.

이처럼 석탈해왕전설은 기이하게도 알에서 태여나서 까치들이 바다의 배우에 이상한 궤짝이 놓여있다는것을 알리는듯 울어예는 신비한 지물적인 정황속에서 출현하며 계림국에 정착하였다가 나중에는 왕위에까지 오르는 탈해왕의 래력을 반영하고있다.

전설은 특히 성씨와 명함도 기이한 연원과 결부시켜 전설적으로 풀이하고있는데서도 혁거세전설과 상통한 양상을 보여주고있다.

석탈해왕전설이 혁거세의 연원과 비슷한 양상을 띤 전설이라면 김알지의 출생담에 대한 전설도 같은 형식과 양상에 의거하여 계림국 김씨의 조상전설로 만들어졌다는것을 알수 있다.

김알지의 출생담은 혁거세전설의 마지막부분에서 이야기 된바와 같이 탈해왕때에 그를 성인(왕세자)으로 얻게 되였는데 기이하게도 수림속에서 닭이 요란스럽게 울어댄데로부터 나라이름을 고쳐서 계림이라고 하였다는데로부터 연원되였다.

김알지의 출생담에 대한 전설은 《삼국유사》 권1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전한다.

탈해왕때 어느날 밤에 있은 일이였다. 보라빛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에 드리우고 구름속에는 황금빛궤가 나무가지에 걸려있었다.

이어 궤짝으로부터 빛이 뿜어나오고 나무가지아래에서 흰닭이 홰를 치며 울고있었다.

이 사연을 왕에게 아뢰였더니 왕이 직접 닭이 울어대는 숲속에 거동하였다. 궤짝을 열어보니 그속에 사내아이가 누워있었는데 일어나 왕앞에 정좌하였다.

마치 혁거세의 옛 사적과 같았으므로 사내아이라는 말에 따라 알지라고 이름을 지었다.

왕이 알지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는데 새와 짐승들이 뒤를 따르며 기뻐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왕이 좋은 날을 택하여 알지를 태자로 책봉하였으나 그는 사양하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그가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씨로 하였는데 신라의 김씨는 알지로부터 시작되였다 한다.

이처럼 김알지도 탈해와 같이 신비한 궤짝에서 나왔다. 그리고 지물적인 정황과 연원의 신비성에 있어서도 혁거세전설과 비슷하다. 양상적으로도 서라벌 계림국의 왕대를 이어가는 전설류형이며 그 발전계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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