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모수신화와 이어진 주몽전설

 

 

고구려 시조왕인 주몽은 천제의 아들 해모수를 아버지로 하고 룡왕의 딸 류화를 어머니로 하여 알에서 태여난 비범한 인간세계의 수장으로 전설화되였다.

전설은 주몽의 출생으로부터 시작하여 성장과정에 타고난 장수의 기질을 갖추었으며 금와왕의 위구와 모해를 박차고 남쪽에로의 진출과 고구려건국위업의 수행 그리고 국력을 강화하고 비범한 위세로 비류국의 송양왕을 항복시키는 등 정사를 펴나가다가 왕위를 태자에게 이어주고 하늘로 올라간것으로 전하고있다.

주몽에 대한 건국설화적인 내용은 오래동안 구전으로 내려오다가 414년에 건립된 광개토왕릉비문에 반영되였으며 그후 중국의 《삼국지》, 《위서》 등에도 기록되였다.

현재 전하는 설화는 구《삼국사》에 기록된 내용이 기본으로 되여있다. 물론 그후에 편찬된 《삼국유사》에도 실려있지만 그 전문을 밝혀주지 못하고있다.

리규보는 당시까지만 하여도 찾아볼수 있었던 구《삼국사》의 사료에 기초하여 서사시 《동명왕편》을 창작하고 그 작품뒤에 구《삼국사》의 동명왕 본기를 참고자료형태로 첨부해주었다.

아래에 그 내용을 번역문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 녀자는 품안에 해빛이 비쳐들어 이로 인하여 임신하게 되였는데 신작 4년 계해 4월에 주몽을 낳았다. 주몽은 울음소리가 대단히 우렁차고 골격과 풍채가 뛰여나고 기이하였다. 처음 태여날 때에 그는 왼쪽겨드랑에서 한개의 알이 되여 나왔는데 그 크기가 닷되들이만 하였다.

금와왕이 괴이한 일로 생각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새알을 낳는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 하고 사람을 시켜 마구간에 가져다 버리게 하였다. 그러나 말들이 그것을 밟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깊은 산속에 가져다 버리였다. 그랬더니 온갖 짐승들이 모두 보호해주었다. 구름이 낀 흐린 날에도 그 알우에는 항상 해빛이 비치였다. 그제야 왕은 그 알을 가져다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어 기르게 하였다.

알은 마침내 터지더니 그속에서 한 사내아이가 나왔다. 그는 나서 한달이 차기 전에 벌써 말을 잘하였다.

그는 어머니에게 <파리들이 눈에 와붙어 잘수가 없사오니 어머님께서는 활과 화살을 하나 만들어주옵소서.> 하였다. 어머니가 갈대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주었더니 그는 제 혼자서 물레우에 앉은 파리들을 쏘아 꼭꼭 맞히였다.

부여에서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고 하였다. 주몽은 자라면서 재주와 기량을 더욱 겸비하게 되였다.

금와왕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언제나 주몽과 같이 사냥을 하며 놀았다.

하루는 왕자와 그의 하인 40여명이 겨우 사슴 한마리를 잡는 동안에 주몽은 많은 사슴을 잡았다. 그래 왕자는 이를 시기하여 마침내는 주몽을 나무에 비끄러매놓고 그가 잡은 사슴을 빼앗아가지고 돌아왔다. 주몽은 이때 나무를 뿌리채 뽑아버리고 돌아왔다.

태자 대소는 왕에게 아뢰기를 <주몽은 비상히 용맹한자로서 사람들이 대단히 우러러보니 만약 일찍 처치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것이오이다.>고 하였다.

금와왕은 주몽에게 말을 먹이도록 하고 그의 마음을 시험해보기로 하였다.

주몽은 속마음에 원한을 품고 자기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천제의 손자로서 남의 말을 먹여주고있으니 살아도 오히려 죽은것만 못합니다. 남쪽땅으로 가서 나라를 세울 생각이 있사오나 어머니가 념려되여 그것도 제 임의로 하지 못하고있습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가 말하기를 <나도 이 일로 하여 밤낮 마음을 썩이고있다. 내 듣기에 멀리 가고저 하는자는 반드시 준마에 의거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내가 그런 말을 골라주리라.> 하였다. 목장으로 가서 긴 채찍으로 마구 내리치니 말들이 모두 놀라서 달아나는데 한 붉은 말은 두길이 넘는 울타리를 넘어뛰였다.

주몽은 그것이 준마임을 알고 남몰래 바늘을 그 말의 혀밑에 꽂아두었다. 그랬더니 그 말은 혀가 아파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몹시 파리해졌다.

이때 금와왕이 목장에 나와 돌아보는데 말들이 모두 살진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그 파리해진 말을 주몽에게 내주었다.

주몽은 이렇게 말을 얻어가지고 혀에 꽂은 바늘을 뺀 다음 잘 먹이였다.

주몽은 이무렵 어진 세사람과 남몰래 벗으로 사귀고있었는데 그들은 오이, 마리, 협보라는 사람들이였다.

그는 드디여 남쪽땅으로 떠나 엄체수라는 곳에 이르렀다. 강을 건느려고 하였으나 배가 없었다. 그는 추격하는 군사들이 따라잡을가봐 근심되였다.

주몽은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크게 한숨 지어 말하기를 <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이라 지금 란을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나니 하늘과 땅은 그대의 자식을 불쌍히 여겨 속히 다리를 놓게 해주소서.> 하고 빌었다. 그리고 활로 물을 치니 어느덧 고기와 자라들이 물우에 떠올라 <다리>를 지었다.

그리하여 주몽은 마침내 그 강을 건너갈수가 있었다.

얼마 안있어 추격하는 병사들이 따라왔으나 그들이 강가에 이르자 고기와 자라들이 곧 흩어지여 이미 <다리>우에 올라섰던자들은 몽땅 물속에 빠져죽었다.

주몽은 부여국을 떠나올 때에 어머니와의 리별이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이때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이 어미때문에 마음을 쓰지 말라.> 하고 다섯가지 곡식종자를 싸서 주며 그를 떠나보내였다. 주몽은 그때 생리별을 하는 마음의 괴로움으로 하여 그만 보리종자를 가지고오는것을 잊어버리였다.

그는 강을 건너 큰 나무밑에서 쉬게 되였다. 이때 한쌍의 비둘기가 날아왔다.

주몽은 그 비둘기들을 보고 말하기를 <바로 저것은 어머님이 보리씨를 보내온것일것이다.> 하고 활을 당겨 그를 쏘니 한 화살에 두놈이 맞아떨어졌다.

그리하여 부리를 열어 보리씨를 꺼낸 후에 물을 비둘기몸에 뿌려주었다. 그랬더니 비둘기들은 다시 살아나서 하늘로 날아가버리였다.

그후 그들은 지형이 좋은 곳을 찾아 도읍을 정하였는데 산천은 울창하고 준엄하였다.

주몽이 스스로 왕위에 올라 석차(좌석의 차례)를 표시하니 군신의 지위가 대략 정해지였다.

이때 비류왕 송양이 사냥을 나왔다가 주몽왕의 용모가 범상치 않음을 보고 그와 마주앉아 <내가 해변구석에 외따로 살기때문에 한번도 훌륭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하였더니 이제 그대를 만나니 어찌 다행하지 않겠는가!> 하고 감탄하면서 <그대는 어떤 사람이며 어데서 왔느냐?>고 물었다.

주몽이 대답하기를 <나는 천제의 손자요, 서쪽나라의 왕인데 감히 묻거니와 그대는 누구의 뒤를 이었는가?> 하였다.

송양이 대답하기를 <나는 신선의 후예인데 우리는 여러 대에 걸쳐 왕노릇을 하여왔다. 이 지방은 땅이 적어서 두 왕이 땅을 나눌수도 없고 또 그대는 나라를 세운지도 얼마 되지 않으니 나의 속국이 됨이 어떠한가?>고 하였다.

이 말에 대답하여 주몽은 <나는 천제의 후예인데 그대는 신의 자손도 아니면서 굳이 왕을 칭하니 만약 나에게 귀속치 않는다면 반드시 하늘이 벌을 줄것이다.>고 하였다.

이때 송양왕은 주몽이 자주 천제의 손자라 일컫는 말에 속으로 의심을 품고 그 재간을 시험해보고저 하며 말하기를 <그대는 나와 더불어 활쏘기를 겨루어보자.> 하고는 먼저 백보안에 그려놓은 사슴의 그림을 쏘았다. 그러나 그 화살은 사슴의 배꼽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거꾸로 매달리고 말았다. 이때 주몽은 사람을 시키여 옥지환을 백보밖에 걸어놓게 하고 쏘았다.

옥지환은 맞아서 산산이 부서지고말았다. 그때에야 송양이 크게 놀랐다.

주몽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나라살림이 처음 시작이므로 아직 북, 나팔 등과 의식을 갖추지 못하여 비류국사자가 오고갈 때에 내가 왕으로서 례를 갖추어 맞고보내고 하지 못하니 그들이 나를 업수이여긴다.>고 하였다.

부분노라는 신하가 왕에게 아뢰기를 <제가 임금을 위하여 비류국의 북을 빼앗아오겠습니다.> 하였다.왕이 <남의 나라에 간직된 물건을 네가 어떻게 가져오겠느냐?>고 물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이는 하늘이 준 물건인데 어찌 뺏아오지 못하겠습니까. 대왕이 부여국에서 곤난한 지경에 계실 때에 그 누가 능히 여기에 오시리라고 생각했겠습니까? 대왕이 천만위험한 지경에서 분투하시여 해동국에 이름을 떨친것은 오직 천제의 명에 의하여 된것이니 이제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시겠습니까?> 하였다.

그리하여 부분노 등 세사람이 비류국으로 가서 북을 빼앗아가지고 왔다.

주몽왕은 누가 와서 보면 저들의 북과 나팔이라는것을 알가봐 색갈을 검게 하여 아주 오랜것처럼 하였더니 송양왕이 와봤으나 감히 다투지 못하고 돌아갔다. 송양왕이 나라를 세운 선후차에 의하여 속국을 결정하자고 하므로 주몽왕은 궁실을 지을 때에 썩은 나무로 기둥을 세웠다. 그리하여 마치 천년이나 된듯이 보이였다. 송양왕이 와서 보고 감히 도읍의 선후를 다투지 못하였다.

주몽왕이 서쪽으로 사냥을 갔을 때 흰 사슴을 붙잡았다. 그는 그 사슴을 해원(지명)에 거꾸로 매달고 주문을 외우기를 <하늘에서 큰비가 쏟아져내려 비류왕의 도성을 모조리 잠기게 하지 않으면 나는 결코 너를 놓아주지 않으리라. 재난을 면하려거든 네가 하늘에 호소해라.> 하였다. 그 사슴이 슬피 울어 그 소리가 하늘에까지 울리니 장마비가 이레를 쏟아져 송양의 도성이 몽땅 물에 잠기였다. 송양왕이 흐르는 물을 가로질러 새끼줄을 늘이고 오리발을 타고나오니 백성들도 모두 그 줄을 쥐고 매달리였다.

주몽이 그때 자기의 채찍으로 물을 그으니 물이 순식간에 찌여버리였다.

6월에 송양왕이 나라를 바치고 항복하였다. 7월에 검은 구름이 골령에 일어 그 산속의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다만 수천명 사람들의 소리만 들리는데 큰 역사(공사)를 시작한듯 하였다.

주몽왕이 말하기를 <하늘이 나를 위하여 성을 쌓는다.>고 하였다. 이레만에 운무는 흩어지고 그쪽에 성곽과 궁전이 저절로 솟아올랐다. 왕이 하늘을 향하여 배례하고 그곳에 들어가 살았다.

9월에 왕이 하늘로 올라간 후로 다시 내려오지 아니하니 그때 나이는 마흔살이였다.

태자는 왕이 남기고 간 구슬채찍을 룡산(지명)에 장사지내였다.》

주몽전설은 이처럼 태자 유류에 대한 이야기를 첨부하여 마무리짓고있다.

주몽전설은 고구려인민들속에서 널리 전하여진 시조왕전설이다. 이 전설은 해모수신화와 접합되여 주몽을 《하늘신》과 《바다신》의 후예로 신성화하고있으며 오래동안 구전화되여오는 과정에 편폭이 커지고 지역적으로도 넓은 범위에서 전파되여 이웃나라 문헌에는 물론 고구려인민들속에서도 누구나 다 아는 전설로 전파되였다.

리규보는 처음으로 시조왕전설을 가지고 서사시 《동명왕편》을 썼을뿐아니라 그 서문에서 《동명왕에 대한 신기한 이야기는 세상에 널리 전파되여 아무리 어리석고 몽매한 사람이라도 이 이야기만은 할줄 안다.》고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주몽전설은 첫시작부터 해모수신화의 계속으로 란생신화형식으로 주몽의 출생과 래력을 밝혀주고있다.

전설의 기본내용을 이루는 부분은 세가지의 생활력사적인 사건들로 이어져오다가 마지막부분에서 태자 유류를 찾게 된 후일담을 첨부시키고있다.

전설의 첫 부분에서는 주몽의 출생과 성장을 신비하고 비범하게 전설화하면서 천제의 후예이며 인간세상에서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군자로서의 용맹과 재능, 무예와 사냥솜씨를 사실적으로 드러내보인다.

다시말하여 당시 부여에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고 불렀다는 《주몽》의 이름자체로부터 시작하여 금와왕의 일곱 아들과의 대비속에서 그의 사냥솜씨와 무예의 비범성을 생활적으로 세부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사실적으로 전설화하여주고있다.

전설의 두번째 부분에서는 금와왕으로 하여금 주몽의 비범성에 불안과 위구를 느끼고 그에게 말을 먹이는 일을 시키는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 주몽의 남쪽땅에로의 진출과 고구려건국위업과정이 밝혀져있다.

특히 그 과정에 있은 비범하면서도 감동적인 사건적세부도 재미나게 엮어주고있다.

이 부분에서는 우선 금와왕이 태자 대소의 참소를 받고 주몽에게 말을 먹이는 일을 시키면서 그 마음을 시험해보기로 한 대립관계의 발단이 주어져있다.

주몽은 금와왕과 그 아들들의 행실(사냥하여 잡은 많은 사슴을 빼앗고 주몽을 나무에 비끄러매놓은것)과 속마음(후환이 있을가봐 죽이려 하는것)을 이미 꿰뚫어보았고 장차 자기에게 미칠 화가 어떤것인가를 잘 알고있었다.

주몽은 말을 먹이는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마음속에 원한을 품고 살아왔다.

하기에 금와왕과의 대립관계는 주몽으로 하여금 큰뜻과 웅건한 포부를 품게 하는 전제로도 되였다.

그리하여 전설에서는 주몽이 남쪽땅으로 진출하여 나라를 세울 생각을 어머니에게 토로하는 등 그다음의 전설적연원이 밝혀지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또한 주몽이 준마를 마련한 다음 남몰래 어진 세사람(오이, 마리, 협보)과 함께 나라를 세울 뜻을 품고 드디여 남쪽땅으로 향하는 과정에 있은 신묘한 사건과 일화들을 흥미있게 엮어줌으로써 건국성업의 행로를 크게 장식하고있다.

이 부분에서는 또한 남쪽땅에 와서 도읍을 정하고 건국위업을 자랑스럽게 성취하는것으로 한단락 매듭지어주고있다.

주몽일행은 구려땅에 이르러 지형이 좋은 곳을 찾아 도읍을 정하였는데 산천은 수려하고 울창하였으며 산세는 성벽처럼 험준하였다.

주몽은 스스로 왕위에 올라 군신의 자리순서를 표시해주니 그 등급이 명백해지고 새 왕조가 나라형성과 함께 태여나게 되였다.

주몽은 《고》씨성을 따서 《구려》에 붙여 나라이름을 《고구려》라고 불렀다.

전설은 이처럼 고주몽의 남쪽땅에로의 진출과 첫 봉건국가 고구려창건을 력사적사실과 결부시켜 재미나게 엮어주고있다.

전설의 셋째 부분에서는 주몽왕이 주위에 있는 소국들을 항복시켜 고구려의 위력과 강성을 떨치게 하는 군자로서의 지략과 정사를 비류국 송양왕과의 관계속에서 사건적으로 펼쳐보여주고있다.

전설은 우선 주몽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송양왕을 만나 활쏘기재주겨루기를 하여 상대를 누르고 그 비범성을 과시하는것을 방불하게 보여준다.

전설은 또한 재주겨루기에 이어 주몽왕이 나라를 세운지가 퍽 오래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한 술법을 써서 송양왕으로 하여금 고구려에 위압되게 하는 내용을 흥미있게 펼쳐보인다.

주몽왕이 나라를 갓 세우다보니 의식에 쓸 북과 나팔 등이 없었으므로 그것을 몰래 앗아내여 고색티가 나게 칠하여 아주 오랜것으로 보이게 한것이라든가 궁실을 지을 때 썩은 나무를 골라 기둥을 세우게 함으로써 마치도 왕조가 1 000년이나 되는듯이 보이게 하여 송양왕으로 하여금 감히 도읍의 선후차를 다투지 못하게 한것은 그 례이다.

전설은 또한 눈가림식만으로는 송양왕을 굴복시킬수 없다는것을 간파한 주몽왕이 신묘한 술법으로 홍수를 내여 그로 하여금 어쩔수없이 항복하게 하는것을 주술적으로 펼쳐보인다.

송양왕은 주몽이 천제의 후예이며 온갖 신묘한 재주와 지략을 겸비한 천하의 대왕임을 알고 나라를 바치고 항복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더욱 커지고 번성하게 되였다고 사건적매듭을 지어주고있다.

전설은 마지막결속부분에서 주몽왕이 하늘(천상)로부터 큰 도성과 함께 화려한 궁전을 하사받고 정사를 크게 펼치다가 나이 사십이 되여 하늘로 올라간 후 다시 내려오지 않았다고 함으로써 전설은 시작과 그 마무리도 환상적으로 신비화하고있으며 중세초 시조왕전설의 신화전설적인 양상을 보다 확연하게 드러내보여준다.

전설은 이렇듯 주몽의 비범한 출생으로부터 시작하여 출중한 무예와 장수의 기질을 타고난 인간으로의 성장과정, 건국위업을 위한 남쪽땅에로의 진출과 왕위에 올라 신묘한 재주와 위세로써 주위의 소국들을 항복시켜 국권을 넓히고 강성번영케 한 고구려 시조왕의 생애전반을 포괄하여 편폭이 크게 일대기전기형식으로 엮어주고있다.

하기에 리규보는 당시에 있었던 구《삼국사》에 기사화되여 내려온 주몽전설의 내용을 보고 크게 감동되여 운문형식으로 장편서사시 《동명왕편》을 처음으로 자랑차게 시화함으로써 고구려 시조왕의 비범성과 위용, 건국위업을 널리 소개하여 전설과 함께 서사시유산으로 길이 남게 하였던것이다.

주몽전설은 설화발전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편폭이 큰데다가 인간관계설정과 이야기줄거리전개에서 째인 구성력을 가지고있을뿐아니라 천자다운 비범한 인물상을 거창하게 창조하고있는데서도 설화의 높은 형상수준과 유산적가치를 남김없이 과시하고있다.

전설은 또한 주몽의 기이한 출생과 함께 비범한 술법과 재주, 신통력을 가진 천자로서의 웅건한 위용에 대하여서도 여러 측면에서 다각적으로 부각시켜주고있다.

이처럼 전설은 고주몽의 시조왕으로서의 즉위와 고구려국가성립을 중심으로 하여 이야기줄거리를 전생애사적으로 펼쳐가면서 다양한 생활, 일화와 세부들을 신비하고 흥미있게 전개해나감으로써 고대의 시조왕전설과 체질상 비슷한 중세초 시조왕전설의 신비한 양상적, 건국설화적특성을 잘 보여주고있다.

주몽전설의 후일담으로 이어지는 태자 유류의 소년시절과 그가 주몽왕을 찾아오게 되는 사연을 담은 전설도 시조왕전설과 같은 양상을 띠고 비범화되여있다.

아래에 서사시 《동명왕편》에 주석형태로 첨부한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유류는 어려서부터 새를 쏘는 일을 즐겨하였는데 하루는 한 녀인이 물동이를 이고오는것을 잘못 보고 동이를 쏘아 구멍을 뚫어놓았다. 그러자 그 녀인은 성이 나서 <애비없는 놈의 자식이 내 물동이를 깨뜨렸다.>고 욕지거리를 하였다.

유류가 매우 부끄럽게 여겨 작은 진흙덩어리를 활촉에 묻혀 다시 쏘니 뚫어졌던 동이의 구멍이 메꾸어져 본래대로 되였다.

집에 돌아온 유류는 어머니에게 <우리 아버지는 누구인가요?> 하고 물었다.

어머니는 유류가 아직 어린 나이기에 웃는 말로 <너는 아버지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유류는 울면서 <사람에게 아버지가 없으면 장차 무슨 낯으로 남들을 대하겠소이까.> 하며 죽으려 하였다.

그때에야 어머니는 크게 놀라며 <아까 한 이야기는 우스개소리였다. 너의 아버지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인데 부여국의 신하로 되는것을 원통스럽게 생각하여 남쪽땅으로 피해가서 거기서 처음으로 나라를 세웠다. 네가 가서 찾아뵙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유류는 <아버지가 임금이 되였는데 아들은 남의 신하로 있으니 비록 내가 재조는 없으나 어찌 부끄럽지 않겠소이까.> 하고 대답하였다. 이에 어머니가 하는 말이 <너의 아버지가 여기를 떠날 때에 하신 말씀인즉 <내가 어떤 물건을 일곱 고개와 일곱 골짜기가 진 돌우의 소나무사이에 감추어두니 이를 찾아내는자는 바로 내 아들일것이다.>고 하였다는것이였다.

그때로부터 유류는 산골짜기로 다니면서 그 물건을 계속 찾았으나 얻어내지 못하고 피로에 싸여 매번 지쳐 돌아왔다. 어느날 유류는 자기 집기둥에서 이상하게도 슬피 우는 소리를 듣게 되였다. 그래서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 기둥은 돌우에 세워진 소나무기둥이였는데 일곱 모가 난것이였다. 그제야 유류는 해석하기를 <일곱 고개와 일곱 골짜기라 한것은 일곱 모가 난 주추돌을 말한것이요, 돌우의 소나무란 이 기둥을 말한것이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기둥을 더듬어보니 구멍이 나있었는데 거기에서 부러진 칼 한동강이 나왔다.

유류는 너무나도 기뻐서 그것을 가지고 고구려로 달려갔다. 그리고 찾아낸 칼 한동강이를 주몽왕에게 바치였다. 왕이 자기가 가지고있던 칼 한동강이를 꺼내여 맞붙이니 피가 흘러나와 하나로 이어지는것이였다.

주몽왕이 유류에게 말하기를 <네가 정말 나의 아들이라면 어떤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있느냐?>고 하였다. 그에 응하여 유류는 몸을 하늘로 솟구쳐올라 바라지(벽웃쪽에 낸 자그마한 창)를 타고앉아 해를 맞히여 신기한 재주를 보이였다. 그러자 왕은 크게 기뻐하고 태자로 삼았다.》

이러한 내용은 《삼국사기》에 실린 기사내용과 비슷하나 전설화되여있는 정도는 훨씬 높이 전개되여있다.

이처럼 고구려건국설화를 대표하는 주몽전설은 오래동안 전승되여오다가 구《삼국사》에 기사화되고 리규보의 장편서사시 《동명왕편》에 편폭이 크게 시화됨으로써 동명왕의 전생애사를 폭넓게 전개하여 보여줄수 있게 되였다.

특히 강성한 고구려를 창건하고 그 위세를 널리 떨친 시조왕 고주몽의 신묘한 술법과 지략, 군자다운 위풍을 생동하게 보여줌으로써 해모수신화와 이어지게 된 중세초 시조왕전설의 신비한 래력과 그 양상적특성을 더욱 뚜렷이 드러내보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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