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전설과 그 류형

 

 

고대국가의 성립과 시조왕의 기원을 밝힌 대표적인 설화는 고조선을 세운 시조왕 단군왕검에 대한 전설이다.

단군전설은 환웅신화를 연원설화로 변화시킴으로써 단군이 우리 민족의 원시조로서 실재한 인물이지만 단군신화에서 보는바와 같이 《신》적인 인물로 신성화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밝혀주신바와 같이 단군이 신화적인 존재로 전해오게 된것은 오랜 세월 우리 조상들이 원시조인 단군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고 그에 대한 여러가지 신비로운 전설을 많이 지어낸것과 관련되여있다.

우리 조상들은 단군이 우리 민족의 원시조이고 첫 계급국가인 고조선의 창건자이기에 《하늘신》의 아들로, 지어는 원시로 거슬러올라가 천강신화의 주인공 환웅의 후예로 신성화하였다.

말하자면 쑥 한묶음과 마늘 스무쪽을 먹고 100날동안 해빛을 보지 않고 사람으로 변신한 웅녀와 환웅사이에서 태여난 《하늘신》의 아들로 신성화하였던것이다.

단군전설은 시조왕의 출생담을 《하늘신》과 결부시켜 기이하게 엮어줌으로써 군자로서의 단군의 위풍과 그 성업을 격조높게 전설화하고있다.

단군왕검은 산수가 수려하고 천지가 밝은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이름을 처음으로 《조선》이라 하였다.

백성들이 군자, 수장으로 받들고 찬양한 박달임금은 알맞는 도읍지와 지역을 골라가면서 정사를 밝게 펴나갔다.

하기에 전설에서 보는바와 같이 단군은 1 500년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빛내였으며 그후 아사달에 들어가 《산신》이 되였다고 전하고있는것이다.

이 전설자료는 《삼국유사》에 극히 간단하게 력사기록적으로 제시되여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환웅신화와 이어진것으로 하여 단군왕검의 신묘한 위풍과 군자, 제왕으로서의 비범성이 잘 드러나있다.

고조선국가성업과 함께 나라이름을 맑은 아침의 나라 《조선》으로 정하고 1 500년동안 다스렸다고 한것이나 시조왕으로서 오랜 세월 밝고 선한 정치를 펴가면서 나라를 빛내였다는것은 그것을 잘 말하여준다.

뿐만아니라 도읍지를 여러번 옮긴것으로 전설화된것도 고조선국가의 관할구역과 통치령역이 부단히 넓혀진것과 관련되며 후에 다시 아사달에 들어가 《산신》이 되였는데 그때 나이가 1 908살이였다고 전설적으로 맺어준것도 단군왕대가 세기를 이어 단일혈통으로 세세년년 장구하게 계속되여왔다는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것은 《제왕운기》의 다음과 같은 전설자료를 보더라도 충분히 설명된다.

《단군은 조선땅에 의거하여 왕이 되였다. 때문에 시라(신라), 고례(고구려), 남북옥저, 동북부여, 예, 맥은 모두다 단군의 후손들이다. 1 038년을 다스리다가 아사달에 들어가 <신>이 되고 죽지 않았다.》

기록에서 명백히 보여준바와 같이 단군은 첫 고대국가인 《조선》을 세운 시조왕이다.

그리고 그 왕대를 이어나온 세나라는 물론이고 동북부여, 예, 맥도 단군의 후손이며 단군왕대를 이어온 나라 및 지역이다.

이것은 단군을 원시조로 하여 한혈통을 이어오면서 우리 민족의 력사가 흘러왔다는것을 말하여준다.

단군이 1 50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든가(《제왕운기》에서는 1 038년간) 그 나이가 1 908살이였다고 기사화된것은 모두가 단군이 세운 고조선을 이어 우리 나라 력사와 민족의 혈통이 하나로 이어져왔다는것을 전설화하기 위하여 12세기이후 력사가들이 단군의 나이와 통치년대를 추상하여 밝힌것이라고 볼수 있는것이다.

원래 력사기록자들이 처음부터 단군을 신화화하여 내려온 구전자료에 기초하여 《고기》나 구《삼국사》에 기사화된것을 그후 《삼국유사》에 제나름으로 가공하여 옮겨놓은것만큼 그것은 년대나 지명에서 정확성을 가늠하기 어려울뿐아니라 고대전설이라는 견지에서 놓고보더라도 그런 여지를 주지 않을수 없었다.

단군전설은 기이한 출생담과 함께 고조선건국위업에 대한 여러가지 설화적내용을 적지 않게 남기였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그 유산이 얼마 남지 못하게 된것은 오랜 세월 구전화되는 과정에 류실되고 그마저 제때에 문헌상 고착되고 기사화되지 못한데로부터 13세기에 와서 《삼국유사》에 그것도 빈약하게 기록된것과도 관련된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단군과 관련된 자료가 이미 고구려의 후신인 발해에서 수집, 복원된 《단기고사》에 실려있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단군의 건국위업과 왕대와 관련된 사료와 함께 일부 전설자료가 기록되여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찾아볼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기이한 출생담과 함께 고조선건국위업을 위한 단군왕검의 성장과정, 무예와 지덕을 익혀가는 과정에 생겨난 여러가지 지형, 명산, 지물전설들이 적지 않게 전하여온다.

지형지물과 관련하여 《삼국유사》에는 태백산이 나오는데 정리자는 이를 당시의 묘향산이라고 주석을 주었다.

후세사람들이 그 지물유적을 찾아낸데 의하면 신단나무터와 단군굴이 전하여오며 무예를 닦고 활을 쏘아맞힌 의자바위도 있고 근세사람들이 유적을 찾아보고 기록을 남긴 흔적도 있다.

또한 리승휴의 《제왕운기》에서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백악산 아사달》을 지금의 황해남도 구월산이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오늘까지도 단군이 정사를 보았다는 단군대와 말발자국이 새겨졌다는 《천주석》전설이 전하여온다.

평양성과 관련하여보면 단군릉이 안치되여있었고 성묘와 함께 개축공사도 하고 개천절에는 제례의식도 벌린것으로 하여 지형지물과 관련된 전설이 적지 않게 전하여온다.

특히 단군릉이 발굴되고 수많은 단군관계자료들과 전설들이 수집, 립증됨으로써 신화적인 존재로만 알려져있었던 단군왕검이 반만년전에 고조선국가를 세운 우리 민족의 원시조이라는것이 밝혀지게 되였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단군이 1 500년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다시 《아사달》에 돌아와 《산신》이 되였다고 하였는데 그 지명의 유래도 밝혀지고있다.

현재 평양시 강동지구에 있는 단군릉으로부터 동쪽으로 얼마간 떨어진 곳에 로적가리모양의 산이 있는데 그 이름을 《아달산》, 그 아래마을을 《아달동》이라고 불러왔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산의 이름을 《아사달》로 불러오던것이 오랜 세월을 거쳐 내려오는 과정에 《아달산》으로 되지 않았겠는가 하고 예측도 한다.

아달산기슭에는 사철 마르지 않는 맑은 샘이 있는데 이것을 《아달샘》이라고 부른다.

단군은 무술을 닦다가도 목이 마르면 이 샘물을 마셨으며 기린마를 타고 무예를 익히며 고비산을 넘나들다가도 쉴참에는 이 샘터를 찾았고 여기에서 하늘을 날으는 기린마도 길들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단군이 어린시절 물고기를 낚으며 목욕도 자주 했다는 《단군호》도 있으며 단군이 산을 뛰여넘어 바위우에 발자국을 냈다는 바위터도 있다.

우리 민족의 원시조이며 고조선의 건국자인 단군과 그의 성업에 대한 자료는 비단 전설에서만 볼수 있는것이 아니라 중세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장구한 기간 많은 문인들이 남긴 시와 산문, 력사기록들을 통하여서도 알수 있다.

그러므로 고조선의 건국시조인 단군왕검에 대한 전설은 반만년동안 전해오면서 우리 민족이야말로 단군을 원시조로 하여 한피줄을 이어온 단일민족이며 평양을 중심으로 이 땅에서 장구한 기간 력사를 빛내이고 찬란한 문화를 발전시켜온 민족이라는것을 자랑스럽게 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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