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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모수신화와 그 련관
우리 나라 신화유산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해모수신화이다. 이 신화는 《신》의 활동무대가 하늘과 부여땅인것으로 하여 후시기 신화로 예상된다. 신화는 편폭이 크고 확대되여있을뿐아니라 신화적으로 완결되여있다. 신화는 시조왕전설과의 련계와 접착관계도 다변적이고 해부루, 금와 특히는 주몽(동명왕)을 천제의 후손으로 신성화하기 위하여 신화와 전설이 어떻게 결합되였는가 하는것을 잘 보여준다. 해모수신화는 구《삼국사》의것이 후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극히 빈약하게 반영되였으며 리규보에 의하여 서사시 《동명왕편》에 옮겨졌다. 뿐만아니라 《제왕운기》에도 부분선택하여 기사화되였다. 구《삼국사》에 실려있었다는 해모수신화의 부분번역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천제가 자기의 태자를 보내여 부여왕의 옛 도읍지에 내려가 놀도록 하였는데 그의 이름은 해모수라고 하였다. 그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에 오룡차를 탔는데 신하 100여명이 모두 흰따오기를 타고 그를 따랐다. 채색구름이 그우에 뜨고 음악소리가 구름속에서 울려퍼지였다. 그들은 웅심산에 와서 멎었는데 10여일이 걸리여 비로소 이 땅에 닿은것이다. 해모수는 머리에 새깃관을 썼고 허리에는 룡천검을 차고있었다. 해모수는 아침에는 지상에 내려와 정사를 돌보았고 저녁이 되면 하늘로 올라가군 하였다. 하기에 세상에서는 그를 천왕랑이라고 하였다. 성 북쪽에는 청하라는 강이 있었는데 거기에 하백의 고운 세 딸이 나와 놀군 하였다. 맏이는 류화라고 하였고 둘째는 훤화라고 하였으며 막내는 위화라고 하였다. 그들은 청하에서 웅심연에 나와 놀았다. 그 신비한 자태는 몹시 아름다왔고 몸에 찬 패물들이 서로 부딪치여 쟁그랑 소리를 내는데 그것은 마치도 한고(고사에서 나오는 산이름)의 녀신들과 같았다. 해모수가 마침 사냥을 나왔다가 그들을 보고 첫눈에 마음이 끌리였다. 그래서 좌우신하들에게 말하기를 <그를 얻어 왕비를 삼으면 가히 훌륭한 아들을 볼수 있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녀자들은 왕만 보면 곧 물속으로 들어가버리군 하였다. 이때 신하들이 이르기를 <대왕님께서는 궁전을 지어놓고 그 녀인들이 방안에 들어오는것을 기다리였다가 문을 닫으면 되지 않겠습니까?>고 하였다. 천왕이 그 말을 듣고 그럴듯하다고 여기고 말채찍으로 땅에 금을 그으니 구리궁전이 불시에 웅장하게 솟아났다. 방안에 세 자리를 마련해놓고 술항아리를 놓아두었다. 그러자 그 녀자들이 들어와 각각 자리에 앉아 서로 술을 마시며 즐기다가 매우 취하였다. 천왕이 세 녀자가 취하기를 기다렸다가 급히 달려나가 막아서니 둘째와 셋째는 놀라서 달아났으나 맏딸 류화만은 잡히고말았다. 하백이 대노하여 사신을 보내여 이르기를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나의 딸을 잡아두느냐.>고 질책하였다. 대왕이 대답하여 보내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인데 지금 하백의 딸과 혼인하려 하노라.>고 하였다. 하백이 또 사신을 시켜 전하기를 <그대가 만일 천제의 아들로서 나에게 혼인을 구하는것이라면 마땅히 중매를 시키여 할것이어늘 그러지 않고 이제 문득 내 딸을 잡아두니 어찌 그것이 례의에 어긋나지 않느냐.>고 하였다. 해모수가 부끄럽게 생각하고 하백을 찾아가보려고 하였으나 거기까지 가는수가 없었다. 그래서 방에 들어와 류화를 놓아주려고 하니 류화가 이미 해모수와 정이 깊었는지라 그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왕에게 권하여 말하기를 <오룡차가 있으면 하백의 나라에 능히 갈수 있습니다.>라고 아뢰였다. 그 말을 듣고 해모수가 하늘을 향하여 사정을 고하니 인차 오룡차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해모수와 류화가 그 차에 타니 갑자기 바람과 구름이 일면서 달리여 어느덧 하백의 궁전에 이르렀다. 하백이 례를 갖추어 그들을 맞아들이여 자리를 정한 후에 해모수에게 이르기를 <혼인에 관한 일은 천하에 도리가 있는것인데 어찌하여 례의를 어기여 나의 가문을 욕보이느냐.>고 하였다. 그리고나서 <왕이 천제의 아들이라면 어떤 신기한 재조를 가지고있느냐?>고 물었다. 해모수가 대답하기를 <시험해보면 알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하백이 집 앞뜰에 있는 물속에 들어가 잉어로 변하여 물결을 따라 노닐었더니 해모수는 수달이 되여 그를 잡았다. 이번에는 하백이 사슴으로 변하여 달리니 해모수는 승냥이가 되여 그를 좇았다. 또 하백이 꿩으로 변하여 공중으로 나니 해모수는 매가 되여 그를 붙잡았다. 그제야 하백은 그가 정말 천제의 아들이라는것을 알고 례를 갖추어 딸과 결혼케 하였다. 하백은 해모수가 자기 딸에 대한 사랑이 식지나 않았을가 근심하여 연회를 차리고 술을 갖추어 많이 권하게 함으로써 그를 크게 취하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딸과 함께 가죽주머니에 넣어서 오룡차에 태워 하늘로 올라가게 하였다. 그런데 오룡차가 물속에서 채 나오기도 전에 해모수는 술에서 깨여나 류화의 황금비녀를 빼서 자기가 들어있는 가죽주머니를 찔러 구멍을 내고 빠져나와 혼자서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하백은 크게 성이 나서 되돌아온 딸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 훈시를 따르지 않고 끝끝내 우리 가문을 욕되게 하였구나.> 하고는 좌우의 신하들에게 령하여 류화의 입을 잡아당기게 하였다. 그 입술이 훌쩍 석자나 늘어났다. 그다음 류화에게 노비 두사람을 달아서 우발수가에 내다버리였다. 이때 어부인 강력부추가 임금에게 아뢰이기를 <요 근래에 통발속에 든 고기를 훔쳐가는 놈이 있는데 어떤 짐승인지 잘 알수 없사옵니다.>고 하였다. 금와왕은 어부에게 그물을 쳐서 그것을 끌어내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물이 째여져버렸다. 다시 쇠그물을 만들어 끌어내였는데 그것은 고기가 아니라 사람이였다. 그 녀자는 돌우에 가앉았는데 입술이 길어서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세번이나 입술을 자르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말을 하는것이였다. 왕은 그 녀인이 천제의 아들의 왕비임을 알고 별실에 두어 살게 하였다.》 이상의 원문자료의 앞부분에 당시 부여왕이였던 해부루가 산천에 기도하여 《하늘신》으로부터 금빛개구리모양의 어린아이를 얻어 태자로 삼게 되는 전설적내용이 첨부되여있다면 이 신화의 후반부에는 《바다신》의 딸 류화와 이어지는 란생신화전설양상의 주몽전설이 결합되여있다. 이처럼 해모수신화는 환웅신화와 같이 천강신화형태로서 《하늘신》의 아들이 땅세계에 내려와서 정사도 보고 사냥도 하다가 저녁에는 하늘로 올라가는것과 같이 주술적힘을 과시하는 원시사회의 제 관계가 신앙적표상속에 환상적으로 반영되여있다. 신화에서는 우선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부여땅의 옛 도읍지에 내려와 정사를 펴가는 하늘왕의 위풍을 신비화하여 주고있다. 신화는 《하늘신》의 아들인 해모수의 《신》적인 위풍과 정사활동을 제시한 다음 원시사냥행위, 다른 씨족지역침투 등 《바다신》인 하백과의 관계, 맏딸 류화와의 인연관계, 주술적인 재주겨루기와 례법, 법도의 여러 생활령역을 전개하여 보여준다. 이 부분은 크게 두가지 내용을 안고있다. 첫 부분에서는 《바다신》의 딸인 류화와의 인연관계를 신비화하여 보여주고있으며 둘째 부분은 하백을 찾아가 재주겨루기를 하여 혼인승인을 받아내는것으로 신화화되여있다. 해모수와 관련된 천강신화는 편폭이 크게 전개되여있다. 다시말하여 하늘과 땅, 바다와 강의 넓은 무대에서 《신》의 활동세계가 펼쳐지며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바다신》 하백과 그의 딸 류화 등 《신》적인간형상과 그 관계가 원시신앙적표상에 기초하여 신묘하게 반영되여있다. 신화에는 우선 천제의 아들 해모수의 《신》적인 주인공형상이 잘 반영되여있다. 그는 땅으로 내려올 때 새깃관을 쓰고 허리에 룡천검을 찬 위엄있는 차림으로 오룡차를 타고 땅세상에 내려와 정사를 보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천왕신》으로 방불하게 그려져있다. 뿐만아니라 《하늘신》이 땅으로 내려올 때의 형상적인 위용을 신비롭고 황홀하게 신화적으로 채색하고있다. 그것은 흰따오기를 탄 100여명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채색구름과 함께 풍악소리 울리는 가운데 땅세상을 다스리려 룡천검을 차고 내려오는 해모수를 보고 세상사람들이 천왕랑이라고 불렀다는데서도 잘 표현되여있다. 신화에는 또한 《신》의 활동무대를 배경으로 하여 원시사회 및 생활의 제 관계가 폭넓게 반영되여있다. 그것은 청하의 웅심연을 배경으로 하여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바다신》 하백과 그의 세 딸, 그중에서도 류화와의 신묘한 접촉과 인연 및 혼례관계, 룡궁입성과 재주겨루기 등 원시씨족간의 침투와 교제, 사회적법제와 생활질서, 문물도덕관계가 구체적이면서도 다각적으로 반영되여있는데서 볼수 있다. 신화에는 또한 시대성과 함께 자연경제생활, 문물관계도 일정하게 밝혀져있다. 말하자면 원시후반기(청동기-구리궁전) 여러 씨족들의 농경에 따르는 지역적인 정착생활(해모수의 통치구역과 하백의 관할구역)과 수렵활동(해모수의 사냥진출과 사슴, 꿩, 매 등), 물고기잡이(어부와 그물, 잉어와 수달 등)와 같은 자연경제생활정형이 반영되여있다. 뿐만아니라 문물관계(새깃관과 의포전장, 비녀와 가죽주머니)와 주연(술항아리) 등이 세부적이기는 하나 생동하게 제시되여있다. 그렇지만 원시신화이면서도 부여땅을 배경으로 해부루, 금와와 린접시킨것이라든가 그후의 주몽전설과 련관시킨것 등은 구전설화적인 유착관계로부터 성립된것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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