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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의 형태상분류와 그 기준
설화는 흥미있는 이야기를 사건적으로 펼쳐가는 서사적방식에 의거하는 인민창작, 구전문학인것만큼 민요와 같이 감정의 질과 다양한 색갈, 선률적표현형식과 시가적구성방식, 양상적특질 등과 같은 요소들에 의하여 복잡하게 갈라지지 않는다. 설화는 본질에 있어서 이야기문학인것만큼 이야기의 시대력사성과 발설계기, 설화적연원, 생활소재와 이야기전개방식, 설화창조의 기본수법 등에 의하여 엄밀하게 기준을 세우고 갈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지난 시기 전통적으로 내려오면서 불러왔거나 류형별로 갈라보던것을 그대로 답습하여온것이 적지 않다. 례하면 근대이후에 와서 민속학령역으로부터 민속예술, 인민대중창작인 구전문학이 독자적인 연구대상으로 갈라져나오게 되면서 학문적인 연구와 함께 설화의 수집정리사업이 활발해지고 편의상 설화를 류형별로 묶어 출판하는 일들이 다양하게 벌어지게 되였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도 설화의 형태, 양식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희박한데로부터 야사(인민들속에서 전해내려오는 력사이야기)적인 이야기나 패설, 풍언, 한화, 잡기류들을 전례에 따라 야담, 야사집이나 전설, 민담, 사화, 사담집으로 두리뭉실하게 표제를 달고 각종 양식의 설화와 뒤섞어 묶어내게 되였다. 12∼13세기에 이르러 리인로의 《파한집》과 최자의 《보한집》, 리제현의 《력옹패설》이 묶여진 후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패설과 야담, 사화와 전설, 견문록, 잡기류들이 개인문집에 실려 각이한 이름과 표제를 달고 나왔다. 그러다가 17세기말∼18세기초에 이르러 개인문집에 들어있는 야사적인것을 추려 《대동야승》(大東野承)이라는 표제하에 130권으로 묶어냈으며 필사본으로 전해오던것을 근대에 와서 활자본으로 출판해내게 되였다. 이런 상태에서 야사적인것을 묶어서 출판하는 전례에 비추어 인민설화적인것을 선택하여 그 표제는 정확치는 않지만 《조선야담집》(1912년)과 같은 독자적인 설화집들이 묶여져나옴으로써 인민설화적인 명분과 그 한계를 비교적 명백히 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게 되였다. 또한 이후에는 민담이라는 표제하에 새로 수집한 자료까지 포괄하여 처음으로 양식상의 명명을 달고 《조선민담집》(손진태, 1930년)을 묶어내였다. 뿐만아니라 세나라시기 사화전설적인것을 위주로 하여 《조선사화집》(1931년)과 수집자료까지 포함시킨 《조선사담》(김소운, 1943년)이 나왔으며 《조선야사전집》(1∼5권, 1934년)이 출판되였다. 전설이라는 설화의 양식상명명을 달고나온것은 당시 조선의 8도에 산재한 구전설화를 수집하여 도별로 묶어놓은 《조선전설집》(리홍기, 1944년)이라고 볼수 있다. 이상의 몇가지 설화집만 보아도 설화의 형태, 양식상 명명이 각이한것은 물론이고 설정된 표제하에 묶어놓은 설화작품들도 포괄적이며 양식상한계가 주어져있지 않다. 설화집의 명명이 야사, 야담, 사화, 사담, 민담, 전설 등으로 두리뭉실하게 주어진데다가 각이한 양식들이 뒤섞여있었으며 사화집에는 신화와 전설적인것도 있었고 인물전기도 있었다. 민담집이나 전설집으로 표제화한 경우에도 민화나 전설을 위주로 하면서도 다른 양식들 즉 우화나 동화, 재담과 소화 등이 혼잡되여있었다. 물론 야사나 야담, 사화, 고담 등으로 명명한데 비하여 민담집이나 전설집으로 표제화하고 양식을 위주로 하여 묶어놓은것은 설화양식에 대한 리해가 점차 높아지고 설화생리에 따르는 구분지를 탐색하는 과정에 얻어진 일정한 성과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특히 재담이나 소화 같은것은 기발하고 해학적인것으로 하여 인차 그 생리가 다르다는것이 수집편찬자로 하여금 파악되였기때문에 재담을 위주로 한 《팔도재담집》(강의영, 1922년)이 묶이워질수 있었다. 이것은 설화집들을 형태별에 따라 묶어내려는 의도와 함께 구전문학과 그 종류, 형태, 양식(설화, 민요, 민간극놀이, 판소리, 속담과 수수께끼)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와 견문이 높아지고 보다 활발해진것과 관련되여있다. 해방직후에는 기존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다보니 종전부터 써오던 명명중에서 두리뭉실하고 포괄적이라고 생각되는것(야사, 야담, 옛말)은 없애버리고 형태, 류형별로 갈라진다고 볼수 있는것들을 독자적인 양식으로 명명하여 라렬소개하는 정도의 수준에 있었다. 실례로 《조선민족설화연구》(손진태, 1947년)만 보아도 여기에서는 설화양식에 대한 구분지를 명백히 세우지 못하고 그에 대한 해설도 없이 신화, 전설, 고담, 동화, 우화, 소화, 잡설 등으로 갈라주고있다. 책에서는 민족설화가 이런 양식들로 이루어진다는 아무런 해석도 주지 않았지만 여기에서 《고담》이라고 한것은 이전의 《민담》을 념두에 둔것으로, 《잡설》이라고 한것은 설화의 어느 양식에도 소속시키기 어려운것들을 몰밀어 두리뭉실하게 명명한것으로 볼수 있다. 따라서 양식상구분지는 밝히지 못하였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오면서 묶여진 설화의 류형, 양상적차이에 의거하여 나누어보려고 하였거나 설화의 체질상특성을 일정하게 파악하고 구전문학적견지에서 그 구분을 시도한것은 좋은것이라고 볼수 있다. 설화에 대한 양식상분류는 세계적으로 볼 때에도 나라와 민족마다 력사가 다르고 구전문학연구의 실태도 각이한것으로 하여 다종다양하다. 그러나 설화발전의 보편성과 형태, 양식형성의 합법칙성으로 하여 구분결과가 대체로 공통하며 크게는 신화, 전설, 민화로 갈라보는것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되고있다. 물론 구전문학에 대한 학문적연구와 함께 개별적인 형태, 양식에 대한 수집편찬과 대비적인 고찰이 심화됨에 따라 3분법에 의거해오던 적지 않은 나라들에서는 민화령역에 포괄적으로 소속시켰던 기지있는 풍자해학적인 이야기나 우스개스러운 이야기들을 재담과 소화로 갈라내는가 하면 교훈적인 우화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옛말을 동화로 구분하여보고있다. 그렇지만 학문적연구와는 달리 설화를 묶어내거나 소개하는 실천분야에서는 의연히 전통적으로 불러오던 사화, 사담, 야사, 야담과 함께 옛말, 야화 등 명명을 섞어가면서 설화집들을 출판발행하기도 한다. 이것은 학술적으로는 통하지 않지만 편집자들이 제나름의 리해에 기초하여 자유분방하게 묶어 출판한 사정과 관련된다. 지어 심한 경우에는 인민설화의 구분지도 잘 파악하지 못한데로부터 옛날책에 수집기사화된것을 개인(편찬자)의 예술산문으로 오인하는 일까지 있는것이다. 이러한 실태는 인민설화의 기본징표와 함께 양식에 대한 구분지를 명백히 하고 구체화, 과학화할것을 절실히 요구하게 되였다. 설화의 구분지는 설화창조의 시대력사성과 양식에로의 형성과정, 이야기의 생활무대와 주인공의 특성, 생활소재와 이야기전개방식, 그 꾸밈수와 환상적 및 허구적수법의 리용 등에서의 일정한 차이를 몇가지로 뚜렷이 보여주었을 때 즉 하나의 형태나 류형에 소속시킬수 없게 될 때 새로운 양식으로 갈라볼수 있는 기점으로, 기준으로 세워지게 된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도 설화를 크게 신화와 전설, 민화(민담)로 공인하고 3분법을 기정사실로 하고있는것은 우에서 본 분류기준에 맞게 매 양식들이 보편성, 타당성을 체현하고있기때문이다. 신화는 원시사회에서 발생한 첫 설화양식으로서 원시인간들의 신앙적표상에 기초하여 신적인 주인공과 활동무대를 설정하고 사회관계를 굴절시켜 반영하였거나 우주형성과 인간의 기원, 자연정복에 대한 소박한 인식과 념원을 환상적으로 표현하였다. 따라서 인류유년기에 형성된 설화에서는 생활무대와 주인공, 꾸밈수와 환상적수법 등이 《신》과 결부되여 원시신앙적표상속에 굴절되여 표현되고 리용되였다. 전설은 원시신화로부터 그 창조경험을 이어받아 나온 양식으로서 생활무대가 《신》의 환상세계로부터 인간세계로 펼쳐지고 인간과 그 주위생활과 사물현상의 유래를 밝히거나 해석하는 꾸밈수와 수법에도 중세기적환상이 다분히 작용하였다. 최초의 전설은 계급국가(노예사회)성립과 시조왕의 래력을 해석한 인물전설이였다. 인물전설과 함께 지물이나 풍물전설도 례외없이 그 래력과 유래를 밝히는데서, 이야기전개방식과 꾸밈수에서 비범성과 환상이 작용하며 설화적인 체질성을 가진다. 민화(민담)는 민간에서 나온 실재한 이야기가 전하여지는 과정에 보태여지거나 이야기군들에 의하여 허구적으로 꾸며진것으로서 생활세속적인 이야기문학의 넓은 령역을 포함하고있다. 설화의 형태, 양식에 대한 연구가 심화됨에 따라 민화에 포괄시켰던 각이한 양상의 민담들을 분류기준에 맞게 갈라보게 됨으로써 재담과 소화, 우화와 동화 등이 독자적인 양식으로 보다 구체화되였다. 물론 지난 시기에도 재담, 소화, 우화나 동화 등으로 양식상개념이 씌여왔고 또한 단독설화집도 묶여져나왔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소재와 이야기전개방식, 꾸밈수와 보편적인 수법에서 엄밀한 차이가 있다는것을 밝히지 못한데로부터 민화령역에 포괄시켰다. 지어 우화나 재담, 골계와 소화류는 사화에 소속시킨것도 적지 않으며 우화, 동화 등을 야담으로 묶어놓는것도 보편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재담과 소화, 우화와 동화를 독자적인 설화양식으로 분류하는것은 우에서 밝힌 구분지와 설화의 분화발전의 합법칙성에도 전적으로 맞는것이다. 물론 기지있고 풍자해학적인 재담과 소화는 체질상 비슷한것으로 하여 한데 묶어주어야 한다는 문제가 나설수 있지만 의인화되면서 풍자비판적인 교훈성을 추구하는 우화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여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환상적으로 끌고나가는 구전동화는 일찌기 풍부한 유산을 남긴것으로 하여 독자적인 양식으로 분류되여야 한다. 문제는 이상에서 분류한 설화양식외에 관습적으로 씌여오는 사화(사담), 야담(야사)에 대한 리해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것이다. 여기에서 명백히 이야기할수 있는것은 그것이 구전문학의 양식상분류기준에 따라 엄밀하게 명명된것이 아니라 설화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안고 두리뭉실하게 오래전부터 관습적으로 내려오면서 씌여져왔다는 점이다. 사화는 력사설화라는 의미에서 《삼국사기》에 수록된 전기설화적인것을 묶어내면서 쓰이게 되였다. 사담이란 의미도 력사이야기라는 뜻에서 쓰인것으로서 인민대중속에서 전하여진 력사설화라는 표징이 더 강하게 안겨오지만 묶이여진것을 놓고보면 사화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원래 사화는 력사적으로 실지 있은 이야기이지만 인민들속에 알려져 전해지면서 가공된것이 있는가 하면 궁중비사와 같은것이 문인, 저술자에 의하여 밝혀져 기록으로 전하여오다가 거기로부터 구전화되여 설화화된것도 있다. 따라서 사화전체가 인민창작적인 설화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사화집이 오래전부터 묶여져 내려오면서 보충가공되고 구전화된것으로 하여 력사설화의 통칭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사화는 구전문학의 양식상견지에서 따져보면 많은 경우 력사전설에 속한다. 례하면 종전 사화집에는 세나라시기 사화들이 적지 않으나 그것은 력사적인물, 왕들에 대한 전설에 속한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애국명장과 의병장들에 대한 사화도 인물전설이나 지물전설이 다수를 이룬다. 물론 사화는 력사설화라는 포괄적인 통칭인것으로 하여 여기에는 전설과 함께 다른 양식들도 섞여있다. 그러므로 구전문학의 설화양식으로서의 종으로 볼수 없을뿐아니라 학술적으로도 엄밀성을 띠지 못하고 씌여져왔다. 야담은 정사적인것에 대비하여 야사적인것으로 되여있는것만큼 설화분야에서는 주로 사화와 구별하여 씌여졌다고 볼수 있다. 말하자면 패설이나 잡설류에 속하는 도청도설이나 풍언과 같은 민담류를 념두에 두었다고 할수 있다. 야담이라는 표현을 쓴것은 《어우야담》이나 《청구야담》에서 처음으로 볼수 있는데 여기에는 패설이나 민담류들이 많이 실려있다. 해방을 전후하여 적지 않은 야담집들이 묶여졌지만 그것은 주로 사화와 구별하여 야담이란 표현을 썼다고 볼수 있다. 그러다보니 여기에서도 민담과 함께 다른 종의 설화들도 뒤섞여졌던것이다. 따라서 야담도 사화와 마찬가지로 구전문학의 설화양식으로서의 종이나 그 어느 한 형식으로 볼수 없으며 전통적으로 관습화되여온 개념에 불과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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