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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설화의 형태상분류와 양식의 시대력사적인 분화발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문학의 력사는 그 내용의 변화발전과정인 동시에 형태를 비롯한 형식들의 변혁과정이였다.》 인류의 유년기에 최초의 이야기문학으로 발생한 설화문학으로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예술산문과 소설문학 등 모든 형태에 따르는 문학의 발전력사는 그 내용의 변화발전과정인 동시에 형태를 비롯한 형식들의 변혁과정이며 다양한 양식들의 분화발전과정이였다. 오랜 세월 력사적으로 인민대중속에서 창조되여 전하여오는 풍부한 민족설화유산을 전면적으로 수집발굴하여 형태, 양식별로 정연하게 묶어세우며 그에 대한 연구사업을 심화시켜나가는것은 인민적인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옳바른 태도로 될뿐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맞게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고 철저히 구현해나가는데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된다. 력사적으로 보면 설화의 개념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분화발전과 형태, 양식에 대한 똑똑한 리해와 연구가 없었거나 부족한것으로 하여 민족설화유산을 묶어내는데서도 제나름의 표제를 달고 양식상구별도 석연치 못하게 정리해낸것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는 수집정리하는 사업에서도 양식의 생리와 형태, 양상적특성에 맞게 하지 못함으로써 그것이 전설인지 민화인지 아니면 재담이나 소화, 우화나 동화인지 분간할수 없게 하고있으며 전설집, 야담집, 사화집 등으로 묶어내는것이 보편적이였다. 물론 중세까지는 설화의 개념이 형성되지 못하여 그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질수 없었기에 제나름의 표현을 쓴것이 불가피하였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근대이후 해방전까지만 하여도 적지 않은 설화집들이 묶여졌지만 형태, 양식별로 갈라보고 체계성있게 묶어세워보려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다보니 한 표제(전설집 혹은 야담집)안에 각이한 설화양식들이 뒤섞여 묶여지게 되였다. 이것은 적지 않게 당시 설화문학에 대한 깊은 리해가 없이 설화집을 먼저 묶어내기 시작한데다가 형태, 양식에 대한 연구가 따라서지 못하고 문예학적으로도 활성화되지 못한것과 많이 관련되여있다. 설화문학을 다루려면 인민창작적인 구전문학의 본성부터 파악하여야 하며 민족설화의 형태, 양식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리해를 가져야 한다. 특히는 윤색하는 경우조차도 설화의 형태, 양식에 대한 파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설화재료에 기초하여 창작된 예술산문이라면 몰라도 설화라고 표제화하고 수집정리자의 이름도 밝혀주는 조건에서 양식의 생리와 형태적특성에 맞게 정리하는것이 아니라 서사산문식으로 재구성하거나 개인창작물처럼 다루는 경향이 발로되고있는것과 관련된다. 자기의 창작이라면 몰라도 인민설화라고 표제화하고 그렇듯 창발적인 허구를 넓혀나간다면 오히려 좋은 맛을 주기보다 의도와는 달리 인민창작유산을 왜소화하거나 믿을수 없게 만들며 당대 인민들의 리념이나 력사도 옳바로 볼수 없게 한다. 물론 이것은 전통적인 민족설화를 수집정리하는데서 나서는 인식부족과 관련된 하나의 편향이라고 볼수 있으며 다변종성을 가진 설화문학을 다루는데서 흔히 보게 되는 근시안적인 태도라고 해야 할것이다. 설화의 수집정리에 대한 구체적인 세칙과 함께 형태, 양식에 대한 분류와 그 연구를 더욱 심화시켜야 설화유산을 민족문화의 력사적발전과 함께 옳게 수집정리할수 있을뿐아니라 설화의 생리와 형태, 양식의 분화발전의 합법칙성에 맞게 비교적 석연하게 분류하여 묶어세울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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