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이 설레인다장군님 오신다고!

 

《민생단》문제는 국제주의와 민족주의를 함께 그리고 동시에 바라보는 안목이 없는 그 누구도 풀수 없는 성격의것이였다.

회고록전반에 흐르고있는 주요내용의 하나는 김일성사령관의 국제주의와 민족주의의 량면성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민생단》혐의자들을 조금만 동정을 해도 마녀사냥의 겨냥이 되는 마당에 이 혐의자들을 변호한다든지 심지어는 갇혀있는 이들을 일거에 풀어 해방시킨다는것은 자기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할수 없는 일이였다.

김일성주석이 1935 2월말∼3월초 다홍왜회의(일명 동만당단특위 련석대회)에 달려가 담판을 지은것은 이미 앞에서 소개하였다. 이번은 마안산으로 달려가 《민생단》혐의로 잡혀있던 아동단원들을 모두 풀어 한품에 안고가는 그 장엄한 행진에 관한 기록을 소개하려 한다. 회고록에 담겨있는 수많은 장면가운데 가장 멋있고 감격적인것으로 여겨진다. 이날을 기억하여 아마 《밀림이 설레인다》(리범수 작/유명철 곡)가 지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실로 그날은 백두밀림이 설레였고 밀림의 긴긴밤은 밤새도록 노래하였다. 그리고 마안산은 만주벌 눈바람아 이야기하라, 만고의 이런 영웅이 또 있느냐고 울음울었다. 회고록에 적혀있는 그이상의 표현을 할수 없어서 애쓰다 결국 그대로 여기에 전재할수밖에 없었다.

  

《밀림이 설레인다》

 

1936년 초봄 아직 마안산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었지만 밀림은 설레기 시작하였다. 마안산밀영에는 《민생단》혐의로 몰려 이름도 얼굴도 없는, 그래서 인격이 없는 어린 아동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있었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마안산 서쪽밀영에서 좌경분자들이 <민생단>보따리를 뒤적거리고있을 때 새봄의 눈석이조차 시작되지 않은 마안산 동쪽밀영의 음달밑에서는 수십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병마와 기한에 떨며 울고있었다.(4 354페지)

이 소식이 김일성장군이 이끄는 유격대에 알려진것은 4월 상순이였다. 유격대일행이 온다는 소식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백두밀림은 파도쳐 설레기 시작하였다. 김일성장군이 다가오고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밤부터 낮까지 끝없이 밀림은 설레였다.

김일성사령관의 유격대일행이 밀영에 도착하자마자 제일먼저 달려나온 아동들은 《장군님!》 하고 부르며 앞을 다투어 귀틀집에서 쏟아져나왔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밀영의 하늘에 부딪쳐 은방울처럼 굴러가는 아이들의 웨침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불길처럼 확 타오르는 격정에 온몸과 마음을 송두리채 내맡기며 아이들앞으로 바삐 걸어갔다. 저 아이들, 저 아이들이다. 적에게 맞아죽고 찔려죽고 불타죽은 부모형제들의 원쑤를 갚으려고 천산만악과 림해설원을 지나 천신만고의 가시덤불길을 헤치며 혁명군을 따라온 아이들, 바로 저 아이들이 철조망없는 수용소와도 같은 이 몰인정하고 을씨년스러운 산중에서 <민생단>련루자의 억울한 감투를 쓰고 겨우내 설음속에서 우리를 기다려온 아이들이다.(4 364페지)

당시 마안산에는 조선인민혁명군의 한 부대에 의하여 건설된 밀영이 있었다. 이 마안산밀영에는 유격구가 해체되면서 갈데올데없이 문전걸식하다 찾아온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온 아이들을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유격활동에 부담이 된다고 귀찮게 여기면서 돌봐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아이들을 《민생단》원 련루자로 몰아 박해하였다.

이를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인민의 리익우에 초혁명적인 <원칙>의 구호, <계급성>의 구호를 올려세우고 대중을 우롱하고 학대하는데 습관된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좌경기회주의자들은 혁명군의 짐이 된다고 하면서 아이들을 외면하였다. 그 아이들이 가까이에 있으면 적들에게 밀영의 위치가 드러날 위험성이 있다고 자기들만의 보신을 위한 소왕국을 따로 짓고 깊은 수림속에 들어가 별거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 수림언저리에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그 이붓아버지 같은 사람들은 아이들이 엄동설한에 풀뿌리를 우려먹으며 기한에 떠는것을 보면서도 쌀 한토리 가져다주지 않았고 의복 한벌 해입히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련민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 아이들의 상처에 고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는 사람들, 아이들의 언손과 언 볼을 입김으로 녹여주는 사람들, 아이들이 귀엽다고 쓰다듬어주는 사람들, 아이들이 설음에 겨워 울 때 함께 붙안고 우는 사람들은 례외없이 <민생단>명부에 오르고 박해를 받았다.(4 364365페지)

이 아이들을 돌본 녀성유격대원이 바로 김정숙녀사였다. 김정숙녀사는 자기 몫으로 돌아오는 밥을 먹지 않고 남겨두었다가 이 아이들에게 밤에 몰래 먹이군 하였다. 김정숙녀사는 해방후 그때를 기억하며 자주 눈물을 흘리군 하였다 한다. 조국에 돌아온 이 아이들은 이미 장성하였지만 김정숙녀사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런데 남쪽에서 혹자들은 이를 김정숙우상화라 한다. 진실은 만주벌 눈바람과 백두밀림만 알고있다. 밤은 노래한다. 무엇이 거짓인가를. 마안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이 산만이 진실을 알고있을것이다.

 

밀림이 설레인다 폭풍처럼 분노에 설레인다

 

눈덮인 마안산밀림은 폭풍처럼 분노에 설레였다. 좌경사대주의자들은 이 아동들에게 조금의 동정의 련민을 보내면 《민생단》으로 몰아 가차없이 처단해버렸다. 윤창범이 죽은 후 대리련대장이며 명사수인 김락천은 아동단원들을 데리고 마안산으로 들어오다가 아이들의 헐벗은 몰골을 보다 못해 련대후방부 일군들이 간수하고있던 군복천으로 그들에게 옷을 해입혔다.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련대장에게 감사를 드리였다. 그러나 이런 선행으로 하여 김락천은 《민생단》의 모자를 쓰고 처형되였다. 아이들을 동정하는것이 죄가 되고 랭대하는것이 오히려 공으로 되는 이 밀영에서는 참다운 인간적향취, 공산주의적향취를 느낄수 없었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주먹을 부르쥐고 내앞으로 밀물처럼 육박해오는 수십쌍의 눈물에 젖은 눈동자들은 인간성을 저버리고 초보적인 인간적도리마저 저버린자들의 죄상을 낱낱이 고발하고있었다.(4 365페지)

《나는 아이들의 옷차림에 주의를 돌리였다. 옷이란 명색뿐이였지 사실 그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나 다름없었다. 불에 타고 찢겨지고 닳아떨어진 그들의 옷은 옷이라기보다도 차라리 넝마나 걸레짝에 가까운것이라고 말할수 있으리만큼 람루하였다. 수개월동안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주림과의 싸움을 부단히 벌려온 아동단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백지장처럼 창백하였다.(4 366페지)

《그런데 혁명을 하겠다고 이 산중에까지 따라온 아이들에게 어떻게 <민생단>의 껍데기를 함부로 뒤집어씌워놓을수 있단 말인가. 그래 그 모지락스럽고 얄미운 인간들한테는 저 아이들이 <민생단>이 아니고 <민생단>일수도 없다는것을 판단할 능력조차 없으며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돌보아줄 한가닥의 자비심이나 동정심마저 없단 말인가. 인간해방을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할 결심이라고 맹약한 사람들이 인간중에서도 가장 연약하고 자립성이 약한 어린이들을 어쩌면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방임해둔단 말인가.(4 367페지)

 

밀림이 설레인다 폭풍쳐 설레인다/ 백두의 밀림이 폭풍쳐 설레인다/ 수령님품에 자란 억만의 대오처럼/ 대지를 뒤덮으며 장엄하게 설레인다(《밀림이 설레인다》 3절중에서)

 

밤이나 낮이나 끝없이 설레인다!

 

밀림은 고발한다. 몸속에 피 한방울 없는 좌경사대주의자들을 고발한다. 《어른은 아이의 아버지》인것을,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저 자칭 공산주의자들은 혁명할 자격이 없다고 고함친다. 저런자들이 공산주의자들이라면 저런자들과는 혁명은커녕 한상에 밥도 같이 먹지 않을것이라 다짐한다. 이것이 바로 김일성사령관이 다른 공산주의와도 스스로 차별화하는 진정한 주체사상의 유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아이들이 없는 세계는 태양이 없는 세계>라고 한 명언속에는 후대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격조높이 고동치고있는가.(4 368페지)

《인류가 기억하고있는 동서방의 모든 위인들은 누구나 다 후대들에 대한 사랑을 미덕중의 미덕으로 간주하여온 아이들의 진정한 벗이였고 스승이였고 어버이였다.

그런데 귀족도 아니고 부르죠아지도 아닌 마안산의 주인들, 입만 벌리면 인간성을 운운하고 인간해방을 념불처럼 외우는 이 밀영의 공산주의자들은 어찌하여 아이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는단 말인가!

《나는 치미는 분노를 걷잡을수 없었다. 혁명 그자체를 생명보다도 더 신성시해온 어린것들의 깨끗한 신념이 망울채로 저렇게 무참히 짓밟힌다는것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일이였다. 나는 저 아이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사람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저 어린것들이 처창즈에서 어른들과 함께 어떻게 기아를 이겨냈고 내도산에서 인민혁명군을 도와 어떻게 주먹밥을 날랐고 어떻게 철야보초를 섰는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다. 아이들이 엮어온 그 개개의 자서전은 소설의 줄거리처럼 내 머리속에 죄다 선명하게 새겨져있었다.(4 369페지)

큰 아이들의 겨드랑이밑에서 비에 젖은 햇병아리처럼 온몸을 오들오들 떨며 언 손으로 무르팍의 살을 가리고 서있는 백초구출신의 아홉살내기 리오송의 경력만 보아도 마안산의 아이들이 겪어온 천신만고의 준엄성을 능히 판단할수 있을것이다. 그 아이는 벌써 처창즈에 있을 때 집단적인 아사를 체험하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리오송도 배가 고플 때마다 동면중의 개구리를 잡아먹든가 봄파종을 한 밭들을 돌아다니며 씨종자를 파먹었다. 김정숙녀사는 그때에도 처창즈현장에서 이 아이들과 같이 있었다. 하도하도 먹을것이 없어서 처창즈일대의 식물이든 동물이든 살아있는것은 다 잡아먹었다고 한다. 처창즈산하의 풀뿌리를 후벼잡고 흘린 눈물은 강물이 되여 흘렀다.

리오송의 아버지도 처창즈에서 아사로 인생을 마쳤다. 오송이가 밭에서 보리이삭을 잘라다가 거스러미를 비벼없애고 줌에 채 차지도 않는 낟알을 아버지의 입에 놓아드리였지만 죽음을 막아내지 못하였다. 리오송은 어린 누이동생과 함께 초근목피로 보리고개를 넘기다가 내도산으로 철거하는 인민혁명군을 따라 처창즈를 떠났다. 그러나 그도 김락천의 처남이라는 리유로 《민생단》혐의를 받고있었다.

 

밀림이 설레인다 폭풍처럼 설레인다

 

백두의 밀림이 폭풍쳐 설레인다. 대지를 뒤엎으며 장엄하게 설레인다. 손명직을 단장으로 하는 14명의 아동단원들은 내도산으로 가는 수백리 로정에서 조직생활을 통하여 부단히 련마해온 백절불굴의 투지와 혁명에 대한 충실성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앞에서는 허리를 치는 눈무지와 가파로운 산고개들이 길을 막아나서고 뒤에서는 《토벌대》의 무리들이 발목을 물고 늘어졌다.

행군의 첫날에 먹을것은 바닥이 나고말았다. 배고프면 솔잎을 뜯어 씹든가 눈빵을 빚어 그것을 한입씩 떼먹으면서 허기를 달래군 하였다. 강냉이떡 한개를 가지고 14명이 한끼를 굼때는 날은 그래도 잘 먹는 날이라고 할수 있었다. 밤에 야숙을 할 때마다 손명직, 주도일, 김태천을 비롯하여 체통이 큰 상급반 아이들은 10살미만의 나이어린 아동단원들을 엄지닭처럼 품고 앉아 몸으로 바람을 막아주며 잠간씩 눈을 붙이고는 교대로 주변을 감시하군 하였다. 이들은 여기서 동지애를 길렀으며 조국이 해방된 후에도 이때에 안은 동지애는 동포애로 변하였고 민족애로 승화되였다. 《우리 민족끼리》가 결코 한갖 관념에서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죽어도 혁명군을 따라다니다가 죽겠다고 언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이 깊은 산중에까지 찾아온 아이들, 부자집 아이들이 자개를 박은 밥상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풍청거릴 때 우등불옆에서 가랑잎을 덮고 쪽잠을 자면서도 광복된 조국을 그려온 이 아이들에게 죄가 있다면 과연 무슨 죄가 있겠는가. 이 귀여운 꽃봉오리들에게 금의옥식은 마련해주지 못할망정 왜 수수한 광목옷같은것이야 못해입히며 콩죽같은것이야 못해먹이겠는가.

회고록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얘들아, 얼굴을 들어라. 너희들이 헌옷을 입고있는건 너희들의탓이 아니다. 어서들 이리 오너라!>

나는 두팔을 크게 벌리면서 아이들앞으로 다가갔다.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수십명의 아이들이 올망졸망 나를 둘러싸고 엉엉 소리를 내며 목놓아울었다.

나는 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병실로 들어갔다. 며칠째 병에 걸려 침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는 네댓명의 아이들이 모포도 없이 방 한쪽구석에 쪼그리고 누워있었다. 무슨 병인가고 물었으나 아이들은 하나같이 대답을 피하였다. 밀영을 지키고있던 대원들도 골병이라고만 하였지 정확한 병명은 대주지 못하였다. 그것이 마음속의 병이라는것을 아는 사람은 박포리밖에 없었다. 아무 죄도 없는 청옥같은 아이들에게 <민생단>이라는 표쪽을 달아놓았으니 무슨 병을 앓는다고 대답하겠는가.

나는 전령병을 불러 배낭에서 모포를 꺼내라고 하였다. 그것은 왕청시절에 일본군수송대를 치고 로획한 나의 단매모포였다. 그 한장이나마 앓고있는 아이들에게 덮어주면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것 같았다. 나의 의도를 알아챈 대원들이 저마다 자기의 모포를 꺼내느라고 부산스럽게 배낭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포들을 임자들의 앞으로 밀어놓았다.(4 371372페지)

 

대지를 뒤엎으며 장엄하게 설레인다

 

《나는 오늘 여기서 혁명가의 가치관을 두고 다시한번 심각한 음미를 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가 무엇때문에 혁명을 시작했고 지금도 무엇때문에 만난을 무릅쓰고 혁명을 계속하고있는가. 우리는 그 무엇을 파괴하고싶어서가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기때문에 혁명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다. 온갖 불의와 페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 인간적인것을 옹호하며 인간이 창조해낸 모든 부와 아름다움을 지켜내기 위하여 우리모두가 이 저주로운 세상을 향해 반기를 든것이 아니겠는가. 학대받는 계급에 대한 동정이 없고 망국의 설음속에 울고있는 민족에 대한 련민이 없고 가난과 무권리속에서 헤매는 부모처자들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곤난을 하루도 참아내지 못하고 따뜻한 온돌방으로 돌아갔을것이다.(4 372373페지)

《후대들은 계급의 꽃이고 민족의 꽃이며 인류의 꽃이다. 이 꽃을 잘 가꾸는것은 공산주의자들의 신성한 임무이다. 후대들을 어떻게 키우는가에 따라 혁명의 장래가 결정된다. 혁명은 한세대에 끝나는것이 아니라 여러대를 두고 완성되게 된다. 오늘은 우리가 혁명을 담당한 주인으로 되고있지만 래일은 저애들이 자라서 혁명을 떠메고나가는 주력군으로 될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선혁명에 끝까지 충실하기 위해서는 혁명의 피줄기를 이어갈 후비대를 튼튼히 키워야 한다. 더구나 저애들은 우리의 전우들이 남기고간 유자녀들이 아닌가. 우리는 그 전우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도 저 아이들을 아끼고 따뜻이 돌보아주어야 하는것이다.(4 373페지)

 

밀림의 긴긴밤아 이야기하라

 

《나는 지금이야말로 어머니가 림종을 앞두고 나에게 유산으로 남긴 그 20원을 소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였다. 금전이 없이는 도저히 뚫고나갈수 없는 역경에 처했을 때에만 쓰라고 당부하시던 20원이였다. 손끝에 피가 나도록 삯일을 하여 한푼두푼 힘겨웁게 벌어들인 로력의 열매였다.

나는 어렸을 때 돈을 모르고 살았다. 우리 아버지는 한평생 자식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학습장이나 연필을 사는것도 어머니에게 맡기고 나를 상점이나 장마당같은데 드나들지 못하게 하였다. 어려서부터 돈맛을 알기 시작하면 사람이 자라서 수전노가 되고 조국도 모르고 민족도 모르는 속물로 될수 있다는것이 돈과 관련된 아버지의 지론이였다.(4 377페지)

《나는 어머니의 풍랑세찬 일생이 몇장의 지전으로 압축된것 같은감을 느끼며 그 돈을 소중히 받아안았다. 20,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호신부와 같은것이였다. 그 돈을 품고있으면 배고프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항상 내곁에 계시면서 온몸과 넋으로 나를 지켜주는것 같았다. 내 개인을 위해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쓰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던 20원이였다. 가능하다면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의 표적으로 영원히 남기고싶었던 돈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준엄한 현실은 이 결심을 여러번 뒤흔들어놓았다. 나는 그 돈을 쓰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뺐다하며 동요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우리에게는 돈을 쓰지 않으면 안될 정황이 수없이 생기였다.(4 380페지)

《그 돈으로 헐벗은 아동단원들에게 옷을 해입힌다면 어머니도 기뻐하실것이다. (어머니, 이 돈을 가지고 어머니의 곁을 떠난지도 네해가 되였습니다. 그동안 딱한 고비를 여러번 겪으면서도 장래를 생각해서 그럭저럭 보존해왔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이 20원을 소비해야 할것 같습니다. 세상에 살붙이가 하나도 없는 저 불쌍한 아이들에게 옷을 해입혀야겠습니다. 장차 이보다 더 험한 고비가 있을수 있으리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마음먹고 택한 결심이니 어머니도 지지해주십시오. 아이들을 류달리 좋아하는 저의 성미를 어머니야 잘 아시지 않습니까.)

멀리 토기점골의 차디찬 산등성이에 홀로 누워계시는 어머니를 향해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뇌이였다.(4 381페지)

 

밀림에 차고넘쳐 소리높이 설레인다!

김일성사령관은 《어버이》라고

 

《사실 20원이 무슨 큰돈이기야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때 후련한 심정을 금할수가 없었다. 이렇게 한 다음에 우리는 마안산을 떠나갔다.

새옷을 입고 기뻐서 어쩔줄 모르던 밀영의 아이들이 모두 따라가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나는 여러 사람의 반대를 물리치고 아이들의 그 청을 쾌히 받아들이였다. 나이가 너무 어려서 우리를 따라다닐수 없는 유년기의 아이들과 병든 아이들 약간명을 내놓고는 대부분이 남하하는 우리 대오와 함께 간고한 장정의 길에 들어섰다. 유격전으로 동분서주하는 혁명군이 10대의 아이들을 집단적으로 데리고다닌다는것은 일종의 모험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비록 유격전의 력사에 없고 상식에 어긋나는 처사라 하더라도 아이들을 데리고다니면서 불길속에서 단련시켜 그들전부를 강철같은 인간들로 키우려고 결심하였다. 제일 힘든것은 진대나무를 넘고 강을 건느는것이였다. 그래서 우리는 싸움할 때와 행군할 때 아이들을 보호할데 대한 분공을 따로 주었다. 우리 대원들은 실로 아이들을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였다. 진대나무는 안아넘기고 강물은 업어건늬였으며 적들의 총알은 몸으로 막아주면서 그들을 자래웠다.

그때 나를 따라 백두산지구로 나왔던 아이들은 그후 빠짐없이 혁명군에 입대하였고 가렬처절한 유격전을 통해 훌륭한 군정간부들로 성장하였다. 종군이 허락되지 않아 얼마간 대첨창밀영에 가있던 9살내기의 리오송까지도 손장상의 전령병으로 복무하다가 후에는 장백에 나와 나의 전령병으로 되였다. 1939 5월에 우리가 부대를 이끌고 무산지구로 진공할 때 그의 나이는 겨우 12살이였다. 그는 물이 깊어 강을 건느지 못하였다. 그래서 내가 그를 안고 강을 건네주었다. 그때 그렇게 병아리처럼 품에 안아 키운 아이들이 지금은 우리 당과 국가와 군대에서 핵심적역할을 수행하고있다.

마안산에서 헐벗은 아이들을 보고 울분을 참지 못했던 그때의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나는 조국이 해방되면 어떻게 하나 아이들에게 국가가 무료로 옷을 해입히는 제도를 세워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전쟁으로 파괴되고 령락된 나라를 재건하던 1950년대 후반기에 벌써 우리는 국가가 옷을 지어 공급하는 력사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안산에서의 고뇌를 체험한 조선공산주의자들만이 창조할수 있었던 하나의 기적이였다. 우리는 해마다 아이들의 옷을 해입히는데 수천수억원의 돈을 지출한다.(4 382383페지)

그래서 한홍구교수는 《민생단》사건이 남긴 《트라우마는 주체사상, <어버이수령>과 인민들간의 독특한 혈연적뉴대관계, 자주로선, 정치적생명론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것이라 본다.

2004년 개천절행사로 평양에 가 우리 일행은 보통강호텔에 머물렀다. 호텔에는 다른 호텔과 달리 노래방이 있었다. 우리가 《아침이슬》을 부르고 북 도우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곡을 한곡 불러달라고 하니 《장군님 찬 눈길 걷지 마시라》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 노래말은 다음과 같다.

 

1. 눈오는 이 아침 우리 장군님/ 그 어데 찾아가십니까/ 찬눈을 맞으며 가시는 길에/ 이 마음 따라섭니다/ 이 땅의 눈비는 우리가 다 맞으리니/ 장군님 장군님 찬 눈길 걷지 마시라

 

2. 우리를 잘살게 하여주시려/ 수령님 한생 맞으신 눈/ 오늘은 장군님 헤쳐가시니/ 이 가슴 젖어옵니다/ 충효를 다하여 맡은 일 더잘하리니/ 장군님 장군님 눈바람 맞지 마시라

 

3. 장군님 찬눈비 맞으시면서/ 험한 길 더는 걷지 않게/ 날마다 기쁨을 드리는 길에/ 이 한몸 바치렵니다/ 우러러 바라는 간절한 소원입니다/ 장군님 장군님 부디 안녕하시라

 

마치 교회에서 찬송가 71장을 부르는듯 한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진정성을 의심도 하였다. 노래말그대로 한 정치지도자에 대하여 이렇게도 진정어린 생각을 가질수 있을가 하고 의심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정치인들은 다 사기군들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회고록은 정확한 답을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노래말이 차라리 모자랄 정도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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