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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유격대의 《색, 계》와 공화국헌법 63조
중국 젊은 혁명가들의 《색, 계》
이완감독의 영화 《색, 계》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동시에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을 함께 읽은 사람들이라면 량자사이에 비교와 대조를 아니 느낄수 없을것이다. 영화의 주된 배경은 일본통치하의 중국에서 갓 대학생인 왕 치아즈(탕웨이)가 스파이가 되여 일본군앞잡이인 양조위를 죽이기 위해 미인계를 써서 그에게 접근한다는것이다. 1930년대 상해를 배경으로 하여 전개되는 장면들은 동만의 항일유격대의 력사적배경과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생길수 있는 적장을 살해하기 위한 미인계 등도 모두 평범해보이는 배경이다. 그러나 이완감독이 이런 평범함속에서 예술성을 살려내려 한것은 바로 《색》과 《계》사이에 쉼표(,)를 찍었기때문이다. 다시말해서 영화의 제목 《색, 계》에서 보는바와 같이 색(色 lust)과 계(戒 caution)사이는 쉼표(,) 하나로 련결돼있다. 마침표 (.)가 아니고 콤마이다. 즉 색과 계사이가 단절도 아니고 련결도 아닌 애매한 관계, 이것이 이 영화의 생명력을 살려내고있다. 신인녀배우 탕웨이와 로련한 양조위 두사람이 열연하는 이 영화는 《한국》에서 지방공연에서 성공하여 서울의 대형극장에는 늦게 재등장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내가 이 영화를 본것은 1월초 《대한극장》에서였다. 혁명이라는 《계》와 인간의 본능이라는 《색》사이가 그렇게 단절도 련속도 아니라는것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현대와 탈현대사이에서 중국의 젊은 남녀들이 고민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있다. 색과 계가 마침표면 현대이고 쉼표면 탈현대라는, 그러나 그렇게 쉽게 단정할수 없는것을 보여주는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탕웨이가 끝까지 혁명에 충실하고 조직내의 남자친구를 끝까지 사랑하려 했지만 양조위의 성적매력과 자기를 마음깊이 사랑하여 다이아몬드 6카라트를 선물하는 진정어린 그 마음앞에 그만 《계》를 어기고만다는 이 영화는 탕웨이의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잘못이였는지는 쉽게 단정할수 없다. 탕웨이는 자기 남자친구에게 양조위의 성적에네르기가 자기의 심장속을 파고들 때에는 자기자신도 조직이 내린 명령을 감당할수 없을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색》과 《계》의 경계선이 어딘지 자신도 몽롱해진다는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녀자친구를 미인계의 제물로 바친 이 젊은 혁명아도 탕웨이의 말앞에 침묵할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영화화한것이다. 탕웨이는 결국 양조위의 명령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양조위의 슬픈 눈빛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서로의 정체를 알았을 때 양조위는 탕웨이를 끝까지 지키지 않았으며 탕웨이가 형장에서 뒤를 돌아보는 장면은 《색》과 《계》가 콤마로 련결되는것을 상징하는것이 아닐가? 이 영화의 이런 내용을 두고 지금 네티즌들가운데는 두사람에게 다 《색》과 《계》를 적용하여 누가 누구의 《색》과 《계》를 이기고 졌나를 론쟁하고있다.
북의 예술영화 《생의 흔적》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줄곧 회고록에 나오는 조선의 항일유격대안에서 활동한 녀성유격대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고 북의 예술영화 《생의 흔적》을 《색, 계》와 대조해보기도 했다. 회고록 1권은 김일성주석의 길림시절에 관한 기록들이다. 여기에 김주석이 리광수의 소설 《혁명가의 안해》를 읽은 독후감얘기가 나온다. 김주석의 길림시절은 마치 영화 《색, 계》의 배경과 아주 같아보인다. 중국과 조선이 일본에게 주권을 강탈당하고 이를 다시 찾으려는 젊은이들이 모여 소설도 읽고 토론회도 갖고 연극도 한다. 김일성주석은 항일유격대를 창건한 다음 부대를 인솔하여 남만으로 가는 도중 무송에 잠간 들렸을 때에 이 소설을 읽었다고 회고하고있다. 김주석은 독후감에 대하여 《소설 <혁명가의 안해>는 한 공산주의자가 병치료를 하고있을 때 그의 안해가 남편의 병치료를 해주러 다니는 의학전문학교 학생과 치정관계를 맺는 추잡한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서 공산주의자들을 모독하고 공산주의운동을 헐뜯는 사상으로 일관되여있었다.》(1권 214∼215페지)고 적고있다. 김주석의 이러한 평가는 《계》로서 《색》을 억제하지 못한 혁명가의 안해에 대한 질책인것으로 리해된다. 김일성주석의 이러한 소설평에 대하여 탈현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자기나름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여기서 김주석의 말은 《색》과 《계》사이를 강한 마침표로 련결시키려는듯이 들리기때문이다. 김주석이 분명히 지금 이완감독의 영화를 본다면 여전히 공산주의에 대한 모독 그리고 추잡한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볼것인지도 궁금하다. 리광수가 《색》과 《계》사이를 쉼표-콤마로 처리하고있는것이 이완감독의 처리와 같다. 헐리우드풍의 전형적인 예술성이다. 아마도 이런 콤마처리하는따위의 영화를 아무리 개방이 되였다 하더라도 현재 중국본토에서 만들기에는 시기상조 같다. 평양에서는 더욱 그럴것이다. 1980년대에 《탈출기》에서 녀주인공의 젖가슴을 처음 로출시킨것도 그 당시엔 큰 사건인것을 보면 혁명이란 《계》앞에 《색》은 아직 개방을 보류해야 할 대상인것 같다. 이러한 《계》에 대한 강조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별로 달라진것이 없어보인다. 2003년 3월 《로동신문》의 다음사설은 이를 잘 반영하고있다. 《우리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심장을 뜨겁게 불태우는 숭고한 인생관을 지닌 혁명가들에게서 그 대답을 찾게 된다. 혁명가에게 있어서 보람없이 보낸 백날, 천날보다 혁명을 위하여 심장을 불태우며 산 하루가 더 값있고 귀중하다. 예로부터 약을 100첩 써야 할데 99첩을 쓰고 한첩을 쓰지 못한다면 약효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것처럼 사람도 당에 충실하다가 하루나 반나절, 그보다 어느 한순간이라도 반역하면 결국 그 사람은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반역자로 되고만다.》 회고록속에는 탕웨이같이 녀성으로서 항일혁명에 뛰여든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7권에는 《녀투사들의 혁명절개》라는 절을 따로 마련하였다. 김정숙, 리관린, 한영애, 안순화, 조옥희, 한주애, 리계순, 장길부 등 … 항일혁명녀투사 최희숙에 대하여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서 일본군에게 두눈을 빼앗기고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웨치자 이에 질겁한 일본《토벌대》들은 혁명가의 심장이 어떻게 생겼기에 그처럼 지독한가를 보자고 하면서 그의 심장을 도려냈다고 적고있다. 회고록에 등장하는 유격대원가운데 가장 처참한 죽음의 장면이 바로 최희숙의 죽음일것이다. (7권 256페지) 탕웨이가 변절아닌 변절을 하는 장면과 대조가 되면서 나는 극장을 나오면서 조선녀성들은 그렇지 않을것이지 하고 혼자말을 해보았다. 그러나 현대평론가들은 작품성은 역시 《색》과 《계》는 쉼표로 련결되여야 한다고 할것이다. 그렇다면 북의 예술적작품성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것인가? 사실주의문학예술로 취급하고말것인가? 아니면 그이상인가? 예술영화 《생의 흔적》은 김일성주석이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영화가운데 하나이다. 전투근무수행중 전사한 남편의 넋을 이어 어느 한 농장에 진출하여 영웅안해의 신분을 숨기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서진주의 삶을 다룬것이 《생의 흔적》이다. 영웅의 안해로서 한 남자를 끝까지 사랑하고 동시에 남편이 사랑한 조국을 위해서 한생을 사는것이 진정한 《생의 흔적》을 남기는것이라는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서진주의 대중연설에서 《나는 두개의 사랑하는 님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고있습니다. 하나는 죽은 나의 남편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남편이 사랑한 조국입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람이 진정으로 생의 흔적을 남기자면 자기가 살고있는 사회와 집단을 위해 한생을 바치는것입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죽은 남편의 무덤에 찾아가지 않는데 대해 주위사람들로부터 변심했다는 오해를 감내하면서 농장에서의 로동을 통해 남편의 령혼이 사랑한것을 사랑하는것, 그래서 개인과 집단이 같아지는것이 생의 흔적이 된다는것이다. 김일성주석이 《생의 흔적》을 보면서 자신께서는 아직까지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보기는 처음이라고, 이 영화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정확한 대답을 주었다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저런 영화는 나오지 못한다고, 조선에 저런 훌륭한 녀성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고, 인간의 한생을 아주 잘 그렸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고 전한다.
무장소조투쟁방식의 한계
회고록에는 어디에도 미인계를 써 적장을 살해하려는 장면을 읽을수 없다. 우리 민족사에 새겨진 일제와의 싸움방식을 세가지로 볼수 있다. 첫번째는 무장소조활동 또는 개인테로의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대규모전면전을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이상 량자의 장점을 보합한것으로 중대, 대대규모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적을 공격하고 후퇴하는 등 유격전의 방식이다. 첫번째 테로방식은 김구 등 민족주의독립운동가들이 하던 방식이다. 이는 안중근, 윤봉길, 리봉창같이 개인 혹은 소규모의 테로조직을 만들어 일제의 요인을 저격하고 건물 등을 파괴하는 방법이다. 두번째 방법은 그 당시 여건상 거의 불가능한 방법이다. 대규모군대를 인솔해다니자면 그들을 먹이고 입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때문이다. 나라를 잃은 마당에 당장 소대규모의 병력을 재우고 입히기도 어려운 사정이였기때문이다. 여기서 세번째 방법을 택한 부대가 바로 《김일성항일유격대》라 하는것이다. 후에는 항일련군 등으로도 불린다. 영화 《색, 계》에서 사용한 미인계를 이 세가지가운데 하나로 구태여 분류하면 소조방식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한 개인이 적의 우두머리를 처치하는 방식말이다. 김일성항일유격대는 이런 방식에 가치를 별로 부여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장투쟁방식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기때문이다. 집단을 떠난 개인에게 그렇게 신빙성을 둘수 있느냐의 문제인것이다. 즉, 만약에 개인이 탕웨이같이 《색》과 《계》사이의 경계가 분명해지지 않는 순간에 도달했을 때에는 적보다는 아군에 더 큰 피해를 줄수 있기때문이다. 결국 탕웨이의 순간적인 변절이 그만 조직의 성원들을 모두 죽음으로 내몰고말았다. 그래서 김일성사령관이 유격대방식을 취한 리유는 개인이 전체라는 즉 개(個)와 전(全)사이의 소통없이는 개인의 도덕성이나 의지에 높은 점수를 줄수 없다는것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문제이기때문이라고 본다. 금세기에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로는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인간의 본성과 그 운명》이 일러진다. 개인인간은 원죄에 물들어있기때문에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본성을 아무리 깊이 들여다보아도 거기서는 건질것이 없다는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가 자본주의인간관을 극복하지 못한것은 개인과 사회집단과의 력동적관계성을 보지 못했기때문이다. 사서삼경가운데 하나인 《시경》에서도 인간의 본성은 희미하고 위태롭다고 했다. 그래서 이완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개인으로 있을 때 얼마나 걷잡을수 없는가를 보는것이 더 타당할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성선도 아니고 성악도 아니다. 정다산은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한마음안에서 서로 소송을 한다고 하여 인성 자송론(自訟論)을 주장하였다. 개인으로서 인간의 본성이 이렇게 불안정한 리유는 인간이란 개인이면서 동시에 전체이기때문이다. 그래서 인간개인의 본성을 론하기 전에 인간의 개(個)와 전(全)의 관계를 먼저 론하여야 한다. 북헌법 63조에 지적되여있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는 바로 이 점을 반영한것이라 본다. 개인이 철저하게 자기 개인을 사회나 당 등 집단과 일체화시키는 기제장치가 안되여있는 한 개인적인 인간본성은 그것이 《색》과 《계》의 사이이든, 권력과 계의 사이이든, 재물과 계의 사이이든 확고할수 없다는것이다. 그래서 주체사상은 개인과 전체의 관계설정을 제일목적에 두고 이를 헌법에까지 반영하고있다. 개와 전이 조화가 된 인간을 우리는 메타인간(meta-man)이라 부른다. 집단주의사회에서 개개의 존재는 독자적이지만 집체적존재이다. 이를 생명유기체라고 한다. 어떤 생명체이든지 이런 유기체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길만이 개인으로서 존재를 확인하는 길이다. 이런 리론적배경과 함께 북의 영화예술뿐만아니라 사회전반을 리해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개와 전의 관계는 사(私)와 공(公)의 관계이기도 하다. 멸사봉공(滅私奉公), 이것은 유교의 가장 큰 덕목가운데 하나이다. 유교에서 녀자와 아이를 소인이라 한것은 녀성과 아이들은 쉽게 색과 돈의 유혹에 빠질수 있기때문에 이 두 존재에겐 공공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개와 전의 조화의 담지자, 즉 대인 혹은 군자는 남성의 몫이다. 대인이나 군자는 계로서 색을 억제할줄 아는자이다. 사생취의(捨生取義), 살신성인(殺身成仁)할수 있는것은 모두 남성군자상으로나 가능하다. 녀자는 처음부터 색을 억제할수 없는 색의 노예로 보는것이 전통유교륜리였다. 어떤 면에서 이완감독의 이 영화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반영하는것 같지만 사실은 이런 유교륜리의 경계선상을 넘지 못하고있다고 결론지을수도 있을것이다. 이런 녀성에게 혁명의 계를 맡긴것자체가 잘못이라는듯이 말이다. 이 얼마나 구시대적인 발상인가? 이런 결론과 함께 나는 북의 예술을 돋보게 된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속에는 남성들 변절자는 여럿이 등장해도 녀성유격대원의 변절이야기는 없다. 더 나아가 김일성사령관은 1936년 4월 항일유격대내에 박록금을 중대장으로 하는 녀성중대를 편성한다. 고려사의 설죽화, 조선조의 행주산성녀인들, 진주의 론개, 평양의 계월향의 례를 들면서 조선녀성들의 강인한 힘의 례를 든다. 18살 처녀 김수복과 그의 짝패처녀는 일본경관을 빨래방치로 쳐죽이고 무기를 빼앗았고 재봉대책임자 박수환도 역시 빨래방치로 적병을 까눕히고 무장을 빼앗아냈다. 김정숙, 김확실, 박록금은 탁월한 사격수들로서 김일성사령관을 사선의 위기에서 여러번 직접 구출하기도 한다. 특히 김정숙녀사의 사격솜씨는 유명하다. 김일성사령관이 위험에 처했을 때에 김정숙녀사는 한몸으로 이를 막아내였다. 김일성사령관은 개인영웅담으로 이어지는 테로운동의 한계를 일찌기 알고있었다. 《도덕적인 개인과 비도덕적사회(Moral Man Immoral Society)》라는 신학자 R. 니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개인의 도덕성이 사회의 도덕을 보장하는것은 아니라는것을 알았기때문이라 본다. 그래서 김일성사령관은 개인의 도덕적힘이든 능력이든 그것에 그렇게 큰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 상해를 중심으로 한 림시정부의 개인테로방식이 결국 그 지구력을 상실할수밖에 없었던 리유가 바로 인간의 본성때문이라고 보는것이 옳을것이다. 그래서 미인계를 포함한 요인암살같은것이 강한 폭발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개와 전의 변증법적통일을 이루지 못할 때에 그 의미를 상실하고만다. 여기에 《색》과 《계》의 관계설정은 《개》와 《전》의 관계설정을 먼저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는것이 회고록에 흐르고있는 일관된 주장이다. 개적자아에서 녀성들을 집단적자아로 무어낸 녀성중대편성은 이런 의미에서 각별하다 아니할수 없다. 회고록 제5권 13장 4절은 특히 녀성중대편성이야기와 녀성유격대원들의 피눈물어린 일화들로 가득차있다. 《항일혁명은 그 모든 액운과 부조리의 근원을 송두리채 쓸어버리는 폭풍이였으며 이 나라 녀성들을 혁명의 길로 인도해준 세기적인 사변이였다. 조선의 녀성들은 펜이 아니라 선혈로써 대지우에 자기의 새 력사를 쓰기 시작하였다.》(5권 69페지) 녀성들이 개인이나 가정의 존재의 한계령역을 뛰여넘어 군복을 입고, 군화를 신고, 군모를 썼을 때에 그리고 허리에는 수류탄을 차고 어깨에는 개인소총을 메고 나섰을 때에 이 땅의 녀성은 새로운 존재로 의식이 다시 태여나는것을 경험하였던것이다. 차광수는 우리 민족의 강인한 모계사회전통을 거론하면서 녀성참군은 그들자신의 요구일뿐아니라 시대의 부름이라는걸 알아야 한다고 력설하였다. 이러한 조선녀성들은 《개》가 《전》으로, 《전》이 《개》로 재귀적작용(recursive operation)을 하면서 항일유격활동 전기간의 경험과 새로운 자아를 안고 조국으로 입성했던것이다. 그래서 해방후 곧 북은 바로 남녀평등권법령을 발포할수 있었다. 이에 대하여 북의 어느 한 글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오랜 세월 정치적무권리와 사회적질곡으로 온갖 불행을 겪어온 녀성들의 지위와 역할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안아온 력사적사변이였다. 주체적인 녀성운동사상과 업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끝없이 빛내여나갔다. 녀성동맹안에 당의 령도체계를 철저히 세울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녀성운동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혔으며 녀성들속에서 혁명화, 로동계급화를 다그쳐 모든 녀성들이 혁명과 건설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자라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었다.》
정치생명유기체사상과 녀성
실로 녀성을 개인적자아에서 사회적 그리고 집단적자아로 무어내여 녀성중대를 독자적으로 편성한것은 모택동부대에도 호지명부대에도 없었던 김일성항일유격대의 독자적인 모습이였다. 현대군부대에서도 간호병, 위생병, 행정병 등 특수병과에서만 녀군부대가 허용될 정도이다. 미국도 이라크전에서 최초로 중동에 녀성전투부대를 파견했을 정도이다.(홍동근, 176∼177) 우리는 부쉬가 어느 녀전사의 무용담을 조작해 선전하다 망신당한 일을 기억할것이다. 그러나 회고록에는 이런 녀전사들의 무용담이 장마다, 절마다 나온다. 이는 최근에 발생한 문명사적근원을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다. 만약에 차광수가 지금 살아있다면 최근 중국 료하류역에서 발굴된 소위 홍산문화는 황하강류역의 앙소문화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대규모녀신전이 나온 사실에 놀랐을것이다. 바로 고조선이 존재했던 지역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환인, 환웅, 단군까지도 모두 녀성들이였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있는 실정이다. 차광수가 살아있었더라면 해방후 고고학자가 되였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에 리광수의 《혁명가의 안해》나 이완감독의 《색, 계》는 이미 개인주의화한 자본주의시대의 녀성상, 그리고 성을 인간의 본질로 파악한 프로이드의 세계관이 그대로 반영된 전형적인 헐리우드판작품임에 분명하다. 우리는 바로 프로이드가 가져다준 세계관속에서 살고있기때문에 이런 작품을 두고 《작품성》이 뛰여나다고 한다. 그래서 북의 예술영화를 이에 대비하여 《색》과 《계》에 마침표(.)를 찍고있는것으로 단정하고싶어한다. 《생의 흔적》은 전형적인 사회주의문학의 전형, 즉 사실주의예술이라 할것이다. 나는 북의 예술을 볼 때마다 우리 미래세계가 지향하고있는바, 개와 전이 조화된 전체가 하나를 위하여, 하나가 전체를 위해 사는 기제장치가 그 어느 사회보다 잘 되여있는 문화예술이라고 본다. 메타인간을 예견하고있는 작품들로 평가하고싶어 한다. 다시말해서 색과 계 그리고 개와 전이 쉼표와 마침표가 함께 이어지는 세미콜론(;)으로 구태여 명명하고싶은 문학이라 평가하고싶다. 색과 계의 관계는 결코 개와 전의 관계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기때문이다. 인간은 정치적인 생명유기체적관계로만 파악될수 있다는것이 북의 헌법 63조의 정신이고 주체사상의 인간관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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