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람스펠드와 거짓말변명의 론리
부쉬의 거짓말목록
부쉬가 임기중에 만든 거짓말목록은 다음과 같다. 이 거짓말 한마디가 수천수만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이고보면 우리는 한 지도자의 진실과 거짓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1. 싸담 후쎄인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있다. 2. 싸담이 알 카에다와 유착돼있다. 3. 미군이 들어가면 이라크인들이 거리에 쏟아져나와 대환영을 할것이다. 4. 분쟁이 곧 끝날것이다. 5. 침공 6주후 임무완수라 쓴 기발아래서 《이라크에서 주요한 작전은 끝났다.》고 기자회견 6. 약속한 전비를 지금 훨씬 넘어섰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부쉬는 보수주의 칼럼리스트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내가 내린 결정이 옳은 결정이였음을 지금만큼 강하게 확신한 때는 없었다.》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촘스키나 그리핀교수 같은 학자들이 부쉬의 9. 11음모를 폭로해 궁지에 몰리자, 즉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자 전 람스펠드국방장관은 아래와 같은 교묘한 론리적주제를 들고나왔다. 나는 그의 론리학실력에서 랭소주의를 읽는다. 그래도 대국의 장관답게 람스펠드는 학교에 다닐 때에 론리학은 좀 공부한것 같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1. 알려진것을 아는것〔known knowns(kk)〕이 있다. 이는 우리가 알고있음을 알고있는것들이다. 2. 알지 못하는것을 아는것〔known unknown(ku)〕이 있다. 이는 알지 못한다는것을 아는것들이다. 3. 하지만 알지 못하는것을 알지 못하는것〔unknown unknowns (uu)〕이 있다. 이는 알지 못함을 알지 못하는것이다.
물론 람스펠드의 이 아리숭한 《아는것(known)》과 《알지 못하는것(unknown)》이란 두쌍을 조합시킨것은 자기 잘못을 변명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정치문제를 론리적인것으로 각색한 리유는 미국이 자행한 이라크전쟁은 세번째 《알지 못하는것을 알지 못한》(uu)것의 소행이라고 말하기 위함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알지 못하고 저지른 오유전쟁이라는것을 에둘러 시인하는것이다. 알지 못하고 일을 저지르고말았으니 용서를 구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람스펠드는 예수가 십자가우에서 림종직전에 남긴 7언가운데 하나를 외곡해가면서 거의가 그리스도교인들인 자국민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면서 위장용서를 구하고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의 람스펠드의 말가운데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의 위장된 론리의 오유를 간파한 사람은 정치학자가 아니고 차라리 슬라에보의 철학자 지젝이다. 삼척동자라도 두쌍을 조합했으면 4개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것 하나를 람스펠드는 고의적으로 제외하고있는것이다. 바로 람스펠드가 제외한 그 하나가 예수의 말, 네번째인 《아는것을 알지 못하는것(unknown known)》(uk)이다. 예수는 자기를 죽이려는자들을 향해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they do not know what they do(know)》(루가 23:34)라고 자기의 아버지 하나님에게 자기를 죽이는 저자들의 죄를 용서해주기를 빈다. 그리고 이 구절은 지젝의 저서명이기도 하다. 람스펠드는 2개 쌍의 조합의 4가운데 왜 이 하나를 빼고 말했을가? 그 리유는 간단하다. 이 네번째것이야말로 부쉬정부자신에게 해당하는 목의 가시와 같은것이기때문이다. 예수의 적들은 자기가 아는것을 알지 못한것이기때문에 일차적인 아는것에는 책임이 있는것이다. 그러나 아예 일차적인것마저 무지였다고 말함으로(uu) 아예 원초적인 면죄부를 받으려는 심사일것이다. 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무지의 소치로 이라크침공을 한것이 아니라 원초적인 앎 자체도 없었다는것이다. 제 잘못은 모르고 예수를 비난하는 강도 그리고 예수를 죽이는자들이야말로 《아는것을 알지 못하는(unknown known)》자들이다. 미국이 이런짓을 하고있다는것을 시인하는것은 성경을 아는 그리스도교인들이라면 이는 마치 미국이 예수를 죽인자들과 같은 반렬에 서있는것과 같은 행동을 이라크에서 하고있다는것을 보여주는것이 될것이다. 그래서 람스펠드는 《아는것을 알지 못한다.(unknown known)》고 말하지 않고있다.
람스펠드의 거짓말과 탈현대의 론리
그러나 국방장관이 이 정도의 론리학실력을 가지고있었다는 사실은 경하할만 하다. 대국의 국방장관감은 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 좋은 두뇌를 좋은 방향으로 굴렸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드디여 미국국민들이 람스펠드의 론리에 문제가 있다는것을 안것은 5년이나 지난 2007년이였다. 람스펠드의 론리를 안 미국민들은 지난번 총선에서 부쉬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 2007년 12월 《대선》에서 《한국》은 미국의 5년전 상황이다. 거짓말쟁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후 국민들은 아는것을 알지 못했다고 할것이다. 랭소주의자는 잘 아는자들이다. 그러나 그 아는것을 알지 못한자들이다. 지젝은 이 네번째는 프로이드의 무의식과 같은것이며 라깡의 《안다고 하는 그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앎》이라고 했다. 이는 우리자신에 달라붙어있는것조차 우리가 알지 못하는것이다. 속담의 《등잔밑이 어둡다.》와 같은것이다. 그러나 현대포스트모던학자들은 이 2차적 알지 못하고 한 행위에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이 론리대로라면 《한국》재벌들의 《모르쇠》작전에 면죄부를 줄수 없다는것이다. 모르고 한 행동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것은 사실 서양철학, 특히 데까르뜨이후 근대철학의 근간이 되는 문제이다. 리성적이고 합리적이란 사실상 《생각하는것은 의심할수 없다.》는 즉 데까르뜨의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란 준칙에서 나온것이다. 다시말해서 데까르뜨는 인간은 합리성이라는 의식에 반영되는것만이 책임적이라는것이다. 《한국》재벌과 정치인들에겐 복음과 같은 소리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따위의 합리성을 용납하지 않는다는것이 탈현대의 론리이다.
빨간 알약과 리명박의 위기
미국사람들이 부쉬의 거짓말에 속은것을 아는데 7년이 걸렸다고 했다. 모르는것을 아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리명박의 위기는 그것보다 빨리 올지도 모른다. 그의 당선은 마치 그네작용의 반작용으로 가능했기때문이다. 다시말해서 로무현에 대한 반작용때문이라는것이다. 그래서 로무현이 사라지는것이 곧 리명박의 위기가 된다는것이다. 반작용이 없는 그네가 제자리를 찾는것과도 같다. 이러한 위기는 2차적이다. 가장 큰 위기는 독재세력의 과거 동굴속에 기여든 국민들이 그래도 밖의 자유가 그리워질 때에, 다시말해서 사람들이 빨간 알약을 손에 드는 순간 이것은 리명박의 최대위기가 될것이다. 이 순간은 몰랐던것을 아는 순간이다. 그 순간 리명박의 허상은 마치 땀흘린 다음 랭기를 느끼는것과 같을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리명박의 위기는 곧 우리들의 위기라는 사실이다. 그를 통해 우리의 최대약점은 이미 온 천하에 알려졌다. 코리언들은 경제동물이라는 최대약점말이다. 그리고 나라의 정신적인 기초인 정신력이 경제앞에 물거품이 됨으로써 이것은 구한말이후 최대위기가 될것이다. 그동안 독재세력에의 회귀로 결국 코리언들은 《들쥐》라는 미군 8군사령관의 말이 참이라는것이 다시 재증명될것이다. 이런 국민신선도의 퇴락은 위기가운데 위기라 아니할수 없다. 여기 또 하나 위기는 리명박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지지층은 경상도, 령남 그리고 강남부유층이다. 신라 천년사대주의가 다시 살아나 대미, 대일외교가 굴종적이 될것이다. 그리고 경제살리기란 경우 겨우 5% 인구에 혜택이 돌아가는 경제살리기가 될것이다. 그가운데 가장 우려되는것은 대북관계이다. 그의 한가닥 희망은 《실용주의》로선이다. 그러나 그의 《실용주의》는 수구보수세력의 볼모에서 얼마나 자유로울지는 두고볼 일이다.
거짓말도 쓸모있을 때가 있을가
리명박당선자가 앞으로 미국의 부쉬대통령을 만나러 갈것이다. 외교는 거짓말의 경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MB의 거짓말이 부쉬를 이기기만 한다면 그것도 실용적으로 보아 국익이 될것이다. 누가 상대방의 말귀를 빨리 알아듣고 누가 상대방의 눈치를 빨리 파악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날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쟁이의 말이 거짓말이라는것을 분간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그 리유는 거짓말을 감별하는것은 거짓말이 아니고 참말이기때문이다. 자기 눈을 자기가 볼수 없듯이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을 분간하지 못한다. 정직한자만이 거짓말을 분간할수 있는 기준을 자기속에 가지고있다. 맑은 거울만이 얼굴의 허물을 볼수 있는것과 같다. 그렇다면 거짓말의 수가 높은것을 기대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당선자의 거짓말은 우에서 보는바와 같이 그 수가 2단정도밖에 안되는것 같다. 필부도 잡아낼수 있는 거짓말을 하고있기때문이다. 1차적인 BBK의 진실을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당선자가 보이고있는 2차적인 말과 행동이 거짓말을 하고있음이 드러나고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를 당선시켰다면 그의 거짓말은 우리자신의 거짓말이 되고만것이다. 드디여 당선이 발표된 다음날 외신은 《<한국>인들은 빵과 빠다를 선택했다.》라고 했다. 거짓을 덮고 먹고사는데 급급했다는 풀이일것이다. 이제 특검에서 거짓과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전세계적으로 《코리언들은 거짓말쟁이》라는 락인이 찍힐것이다. 왜냐하면 거짓말쟁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기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한에서만 참말로 인정을 받고 반대로 참말을 하면 거짓말하는것이 될것이다. 이를 저 유명한 거짓말쟁이역설이라고 한다. 이것은 가치관의 대혼란을 가져올것이다. 양치기소년같이 말이다. 나는 이 역설이 탈현대의 론리라고도 하였다. 그럼 이를 합리화하자는것이냐? 그렇지 않다. 인간은 관념적존재이기때문에 거짓말은 어쩌면 불가피하다. 콩을 두고 콩의 관념은 《콩》이 아니다. 콩이란 글자도 콩이 아니다. 그 글자를 먹을수 없기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콩》을 두고 콩이 아니라 하여도 이것은 거짓말하는것이 아니다. 먹을수 있는 콩의 립장에서 보면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있는것이다. 그래서 관념작용을 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한 거짓말은 불가피하다고 하는것이다. 그래서 2차, 3차거짓말이 진화한다고 한다. 그러면 이런 거짓말의 혼란을 어떻게 막을수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