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좌좌경론리를 꺾은 김일성해학 

 

《님이여 강을 건느지 마시라》

 

반《민생단》투쟁의 사나운 회오리가 동만의 유격구들을 한창 휩쓸고있을 때인 1934년말∼1935년초는 김일성사령관이 병석에서 앓고있을 때였다. 1935 2월 일명 《동만당단특위련석대회》라고도 하고 《다홍왜회의》라고도 하는 회의가 소집되였다. 《민생단》문제가 주안건이였다. 만주성당 파견원 위증민을 비롯하여 왕윤성, 주수동, 조아범, 왕덕태, 종자운 등 거물급 동만당특위 간부 20여명이 대거 참석한 력사적인 회의였다.

다홍왜는 왕청부근의 지명으로 연길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서 뻐스로 가면 약 2시간 반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그 당시에 교통편도 없는 마당에 아픈 몸으로 그곳에 간다는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김일성사령관은 다홍왜로 떠날 차비를 하였다.

김일성주석은 이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수십일간이나 내처 앓던 몸이여서 회의에 참가할만 한 기력은 없었으나 내가 요구한 회의이니 반드시 가야 하였다. 그런데 4중대장과 정치지도원을 비롯한 군대내의 많은 동무들이 내가 다홍왜로 떠나는것을 한사코 반대하였다.(4 44페지)

4중대 정치지도원이 김일성사령관에게 《대장동지, 만주성당에서도 파견원이 오고 공청만주성위에서도 파견원이 왔다는데 어쩐지 심상치 않습니다. 진리가 아무리 대장동지편에 있다고 해도 어쨌든 대장동지는 혼자이고 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있지 않습니까.》라고 극구 참가를 반대한다. 20 1, 그야말로 사면초가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극좌좌경분자들과 정면대결하려는 김일성사령관의 앞길을 막지 못하였다.

이러한 정황에 대해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다홍왜회의가 우리에게 미소를 보내고 축복의 인사를 보내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나를 고무해주는 락천가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들이 나의 출발을 앞두고 그처럼 불안해한것은 무리가 아니였다.(4 45페지)

1935 2, 그때 동만일대의 험악한 분위기를 두고 김일성주석은 이렇게 회고하고있다.

《… 만주성당이 동만 각급 당부와 전체 당원들에게 전당을 볼쉐비크화하기 위하여 숙반공작과 좌우경을 반대하는 량조전선의 투쟁을 강하게 전개하여 당내에 침입한 반혁명분자들을 모두 제거하고 파쟁주의, 민족주의, 사회개량주의를 청산구축할데 대한 비밀지령을 하달한 뒤였다. 이 지령이 하달된 후 동만 각급 당조직들에서는 반<민생단>투쟁이 더욱 극좌적으로 무자비하게 전개되였다.(4 45페지)

김일성사령관과 동지들이 나누는 대화의 장면은 우리 나라 고가사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련상케 한다. 공무도하가는 고조선시대의 작품으로 가장 오래된 가사문학가운데 하나이다. 사지를 향해 떠나려는 님을 말리며 녀인이 부른 노래이다. 여기 소개한다.

 

     공무도하가 (公無渡河歌)

 

님아 님아 내 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님아 님아 내 님아 그예 물을 건너시네아

  (기어이 물을 건너시나이까)

물에 휩쓸려가시네

아 가신 님을 장차 어찌할고!

 

이 고가사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사지로 가는 영웅남편과 이를 말리는 녀인간의 슬픈 노래와 시는 그리스신화와 중동일대의 신화에서도 나오기때문에 이 가사는 오래된것이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특징을 가지고있다. 백수광부(白首狂夫)로 알려진 남편이 물을 건너 사지로 가는 모습을 보고 그의 안해가 강가에서 부른 노래이다. 이 노래가 하도 슬퍼서 당시의 녀류음악가인 려옥(麗玉)에 의해 《공후인》으로 다시 창작되여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였으며 사람들이 따라부르게 된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있다고 한다.

《민생단》문제와 관련한 김일성사령관과 좌경분자들사이의 론쟁은 그때까지 비공식적인 장소에서 자연발생적인 여러 형태로 있어왔다. 그러나 1935년 당과 군대, 공청의 주요간부들이 다 모이는 다홍왜회의에서 있은 《민생단》과 관련한 론쟁은 공식적인 형태를 띠고 첨예하게 벌어졌다는 점에서 이전에 있은 론쟁들과 다르다.

김일성주석은 이러한 론쟁이 벌어지게 될 다홍왜로 가는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천만한 길이였던가에 대해, 그러나 단호히 그 길에 올랐던 때를 감회깊이 회상한다.

《좌경을 반대하는 세력이나 하나라면 나를 반대하는 세력은 10이나 20명도 넘을수 있다. … 나는 좌경의 포위속에서 전체를 향해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것이다. 론쟁은 나를 단죄하는 성토장으로 되고 회의장은 나를 매장해버리는 재판장으로도 변할수 있다. <민생단>이라고 하면서 나를 정치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장해버리려는 극단한 시도도 있을 우려가 없지 않았다.(4 45페지)

《전우들은 바로 그 점을 제일 걱정하고있었다. 그들은 <숙반>을 주관하고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인정사정없는 돌심장들인가를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래서 전우들은 사색이 되여 다홍왜로 가지 말아달라고 애걸하였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길을 떠났다.(4 4546페지)

《동무들, 이 길은 죽든지 살든지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길이다. 내가 만일 다홍왜로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멸을 가져올뿐이다. … 대결은 피할수 없고 흑백은 반드시 갈라져야 한다.(4 46페지)

 

주체를 세우려 기어코 다홍왜로 떠나다

 

김일성사령관은 오대성과 다른 한명의 전령병의 부축을 받으며 회의가 시작된지 이틀만에야 다홍왜에 도착하였다. 인민혁명군대원들의 엄한 경호조치가 실시되고있는 제8구 농민위원회 사무소에서 만주성당 파견원 위증민과 동만당단특위의 간부들이 김일성사령관을 맞아주었다. 이 너렁청한 사무소건물에서 바로 중국사람들이 동만당단특위련석대회라고 규정한 회의가 진행되고있었다. 흔히 《다홍왜회의》라고 부르고있다. 한때 일부 력사가들이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라고도 하였다.

다홍왜회의는 약 10일가량 진행되였다. 회의도중 들락날락하는 사람들도 있어 출석자의 수자는 고르지 못하였다. 대부분은 중국사람들이였고 조선족출신으로는 김일성사령관과 송일, 림수산, 조동욱을 비롯한 몇몇 간부들뿐이였다. 조동욱은 회의 전기간 중국말을 잘 모르는 조선족간부들을 위해 통역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김일성사령관은 동만당 특위위원의 자격으로 이 회의에 참가하였다.

론쟁이 열기를 띠기 시작한것은 만주성위 순시원 종자운이 보고에서 동만에 있는 조선사람들의 70, 조선혁명가들의 8090%가 《민생단》이거나 그 혐의자들이며 유격구가 《민생단》의 양성소라는 종래의 견해를 되풀이한 순간부터였다.

회의분위기는 종자운의 보고를 지지하는데로 기울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숙반공작위원회》를 강화해야겠다는 발언을 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민생단》숙청은 혁명으로 대내의 반혁명을 포위섬멸하는 특수전이라는 미사려구를 늘어놓았으며 어떤 사람들은 《민생단》이 뿌려놓은 씨종자들을 보다 철저히 무자비하게 뿌리채 뽑아내야겠다고 하였다.

김일성사령관은 이들의 론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질문에 대하여 질문으로 대응하는 론법이 동원된다. 질문에 답을 하면 반드시 그 답에 대한 반론이 나올수 있기때문에 김일성사령관은 상대방의 질문자체에 질문을 던져 그 질문자체가 답이 되도록 하는것이다. 상대방이 주장하는 론법이 스스로 자기모순에 부닥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동만에서 활동하는 조선혁명가들의 대부분이 <민생단>이라면 이 회의에 참석하고있는 나와 기타 조선동지들도 다 <민생단>으로 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당신들은 지금 <민생단>과 마주앉아 회의를 하는가? 우리가 <민생단>이라면 무엇때문에 감옥에 가두거나 죽이지 않고 여기에 불러다놓고 정치를 상론하는가?(4 47페지)

 

김일성해학(諧謔)은 세기적

 

종자운의 론리대로라면 《민생단》 아닐 사람이 없으며 여기 당신들과 자리를 같이하고있는 사람들도 《민생단》이고 그러면 《민생단》과 같이 앉아서 회의를 하고있는 꼴이라는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론리인가?

김일성사령관은 종자운의 론리자체가 자기모순에 빠지도록 말을 이끌어간다. 이것은 그의 여유있는 인성에서 자연히 나온것이다.

《민생단》과 마주앉아 《민생단》을 규탄한다는것은 웃음거리라는것이다.

김일성사령관은 유모아의 명수였고 그의 이런 론법이 그로 하여금 평생 락천가로 살게 한것이며 항일혁명 20년을 이끈 비결이라고 나는 보고싶다.

얼마나 김일성사령관의 말이 종자운일당들의 자기 리탈을 일으키고있는지를 보자.

《동무들이 찍어놓은 그 수자속에는 싸움터에서 전사한 혁명가들도 포함되는가? 만일 포함된다고 가정하면 그들이 항일전쟁에서 목숨을 바친것을 무엇이라고 설명할수 있겠는가? 그러면 일본놈들이 자기편 사람들을 수없이 죽인것으로 되는데 그들이 모처럼 키워놓은 <민생단>원들을 그렇게 죽일 필요가 있었겠는가?

이 회의장을 호위하고있는 1중대의 8090%도 <민생단>으로 보는가?(4 4748페지)

《이 질문으로 하여 술렁거리던 회의장안에서는 갑자기 우리자신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수 없는 차거운 정적이 깃들었다. 사람들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집행석에 앉아있는 위증민의 얼굴만 쳐다보았다.(4 48페지)

 사실은 차거운 정적이지만 으스스 자기 의식을 하면서 일어나는 내면의 웃음인것이다.

김일성사령관의 해학은 거침없이 이어진다.

《다 알다싶이 어떤 물질이든지 본래의 구성요소와 다른 요소가 8090%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그 물질은 다른 물질로 변하게 된다. 이것은 과학이다.

동만에 사는 조선사람의 70%가 <민생단>이라는것은 로인들과 아녀자들을 제외한 조선족청장년들 전부가 <민생단>이라는 말과 같은데 그렇다면 동만에서는 <민생단>이 혁명을 하고있으며 <민생단>이 자기 상전을 반대하는 혈전을 벌리고있단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동만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대부분이 <민생단>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데 이것 역시 리치에 맞지 않는 소리이다. 그들이 만일 <민생단>이라면 무엇때문에 3년동안이나 만성적인 봉쇄상태에 놓여있는 유격구들에서 엄동설한에 집도 없이 입을것도 입지 못하고 먹을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적들과 힘에 겨운 싸움을 하여왔겠는가.

《조선혁명가들의 8090%는 고사하고 그 십분의 일인 89%만 <민생단>이라고 하여도 우리는 이자리에서 마음놓고 회의를 할수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이 회의장주변에서는 지금 조선사람들로 편성된 1중대가 완전무장을 하고 우리들에 대한 경위임무를 수행하고있기때문이다. 이자리에는 몇해째 적들이 소멸하지 못해 애를 쓰는 동만지방의 이름난 혁명가들과 지도핵심들이 다 모여있다. 당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한다면 1중대 성원들도 거의나 <민생단>이겠는데 그들이 좋은 총기를 가지고있으면서도 우리를 습격하여 일망타진하지 않는것이 이상하지 않는가?(4 4849페지)

모두가 《민생단》이라는 생억지의 제창자들은 이 물음에도 역시 함구무언이였다.

《보고에서는 유격구를 <민생단>의 양성소라고 하고 당, 단조직도 <민생단>조직이라고 하면서 리용국은 <민생단> 왕청현당 책임자, 김명균은 <민생단> 왕청현 조직 및 군사책임자, 리상묵은 <민생단> 동만당 조직책, 주진은 인민혁명군 1 <민생단> 책임자, 박춘은 인민혁명 <민생단> 참모장이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동만당이나 왕청현당이나 인민혁명군 1를 모두 <민생단>조직으로 보아도 되겠는가? 동만당 간부들을 <민생단>의 조종자, 지도자들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는가?(4 49페지)

김일성사령관의 론리는 동만 온 바닥이 전부 《민생단》이라면 지금 다홍왜회의자체도 성립할수 없다고 한다. 다시말해서 《민생단》분자들이 포위한 상태에서 회의를 하고있다는것이다.

이것은 자가당착이다. 웃음거리이다. 이러한 론리앞에 할 말을 잊을수밖에 없다.

지금도 북의 지도자들이 전개하고있는 론리는 자세히 분석해보면 모두 다홍왜에서 김일성사령관이 전개한 론리에서 과히 멀지 않다. 다시말해 상대방의 말자체가 자어상위에 걸리도록 만들어버린다는것이다.

이런 론리를 펴자면 이렇게 말하는 자신이 자어상위에 걸리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은 화자자신의 도덕적청렴성에 의해서만 가능해진다.

도덕의 기원은 바로 이런 역설적상황에 있다.

청중은 이 물음에도 침묵으로 대답하였다. 탁월한 론리로 동만당지도부의 론리가 억지임을 단숨에 보여준것이다.

성당파견원으로서 이 투쟁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종합분석하고 평가할 사명을 걸머진 위증민은 당, 단조직자체를 《민생단》조직으로 보는것은 착오이며 부분과 전체는 반드시 구별해보아야 한다는 견해를 발표하여 장내에 조성된 긴장도를 약간 늦추어놓았다.

김일성사령관은 동만인민의 대부분을 《민생단》이라고 락인찍는것은 조선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며 이 견해는 이번회의에서 당장 시정되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 주장은 즉석에서 조아범의 반격을 받았다.

《당신은 무턱대고 <민생단>이 없다고만 하는데 그것은 주관이다. 감옥들에는 지금 수백명의 <민생단>혐의자들이 갇혀있다. 그들이 자기 입으로 <민생단>에 들었다고 자백하고있고 자기 손으로 자백서까지 쓰고있는데 그 자백과 자백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래 당신은 이런 증거자료들을 인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에 대하여 김일성사령관은 《당신들이 <민생단>이라고 몰아대는 혐의자들의 대다수는 <>의 집행자들에 의해 가해지는 육체적고통에 견디지 못해 가짜자백을 한 사람들이다.

당신들은 지금 <민생단> 아닌 <민생단>을 마구 만들어내고있다.(4 50페지)고 반격을 가한다.

 

자기 인민을 지키지 못하는 손금없는 지도자는 가라

 

이상이 다홍왜회의에서 김일성사령관이 론박한 내용의 요약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김일성저작집》의 다홍왜회의 연설문을 참고하면 될것이다. 다홍왜회의에서 김일성사령관이 보여준 태도는 강한 동족애의 발로라는 범위를 초월하며 조선공산당도 사라진 마당에 남의 집 안방에서, 동만간부들앞에서 과감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쳐보였다는 점이다. 특히 종자운은 만주성위 순시원으로서 사실상 최고실력자라고 할수 있는 존재이다.

 12 19일 《대선》을 앞두고 력대 《대통령》후보들이 미국 눈치보고 미국을 찾아가 검증절차를 먼저 통과하려 앞을 다투었다.

최근 유력후보는 뒤구멍통로로 부쉬를 만나러 가려다가 불발탄이 된적이 있다. 어느 후보는 상승일로에 있다가 미국을 갔다온 후 지지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후보시절이나 당선이후에라도 손금이 다 닳도록 빌고 조아려야 《대통령》이 될수 있다는 생각이 유전인자가 되여있을 정도이다. 우리는 《대선》후보들의 손금을 한번 검증해보아야 한다. 관상보다 더 중요한것은 손금이다. 손금이 다 닳아없어진 후보를 지도자로 뽑는 국민들은 자기들자신도 손금이 다 닳아없어졌기때문이다.

후위의 가경흥(賈景興)은 늘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내가 너를 저버리지 않았느니, 그것은 내가 고관에게 절하지 않았기때문이다.》라고 했다.

요즘은 의자생활을 해 무릎굽혀 절할 기회는 없지만 대신에 량손을 하도 비벼대며 힘있는자에게 아첨을 하여 《손금이 없다.》로 바뀐것 같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사대아부굴종 그자체가 사라진것은 아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