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기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려야

                  전투에서 피를 적게 흘리게 됩니다》

황 정 렬

 

오늘 우리 인민모두가 긴장하고 동원된 태세에서 전투적으로 살며 사업해나가면서 군사훈련에 한사람같이 참가하는것을 볼 때면 유격구시절이 엊그제 일처럼 방불히 떠오르군 한다.

그 시절을 돌이켜볼 때마다 나에게는 지금도 얼굴뜨거워짐을 금할수 없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1934년 10월 초순 어느날 밤에 있은 일이였다.

그때 요영구의 뒤틀라즈부락 녀성들은 밤낮을 이어가며 북만원정대원들에게 줄 버선과 장갑을 비롯한 위문품준비를 다그치고있었다.

그날밤도 우리는 저녁밥을 먹고 다시 모여앉아 등잔불심지를 돋구어가며 일손을 재게 놀리고있었다.

자꾸만 아래로 내리드리워지는 눈잔등을 비벼대며 부지런히 일손을 다그쳐가고있는데 문득 몇방의 총소리가 들려왔다.

(아닌 밤중에 무슨 일일가?)

의아감과 긴장감이 뒤섞인 눈길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일손을 멈춘채 서성거리고있는데 마침 밖에서 다급한 발자국소리와 함께 웨침소리가 들리여왔다.

《비상소집이요! 빨리 뒤산으로 오르시오.》

그제서야 우리는 부랴부랴 일감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벌려놓았던 일감들을 다 거두자면 시간이 걸릴것 같았다.

게다가 공청원들은 제각기 분담받고있는 대상들을 데리고가야 하기때문에 빨리 움직여야 했다.

나는 동무들에게 일감들을 그대로 두고 예비집합장소로 가라고 독촉을 했다.

그때 나는 당조직으로부터 반일부녀회원들과 녀성공청원들과의 사업을 할데 대한 분공을 받고있었다.

어쨌든 사람만 제정된 시간에 대피장소로 가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대피장소까지 올라와서 생각해볼수록 위문품을 그대로 두고온것이 속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더욱 난처한 일은 인원점검을 해보니 우리 녀성공청원들이 맡은 늙은이 몇명이 대피장소에 오지 못한것이였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니 추운 밤에 젊은 사람들도 산에 오르기가 스산한데 늙은이들을 데리고 나오기가 미안해서 비상소집신호가 났으니 인기척소리를 내지 말고 집안에 가만히 누워있으라는 주의만 주고 그냥 돌아섰다는것이였다.

가뜩이나 속이 께름직하던차에 이런 일까지 덧생기였으니 나의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워지지 않을수 없었다. 아니나다를가 비상소집정형을 깐깐히 료해하던 반일자위대 대장은 이 사실을 알고 벌컥 성을 내며 이렇게 으름장을 놓았다.

《동무네가 정신이 있소! 정신이! 당장 보고해서 문제가 서게 할줄 아오.》

다음날 아침 사령부에서 나를 찾는다는 련락이 왔다. 속이 덜컹했다. 전날밤 훈련과 관련해서 무슨 이야기가 있을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며 내가 방안에 들어서니 여러명의 녀동무들이 이미 와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시며 나더러 맨 앞자리에 나와 앉으라고 이르시였다.

몸둘바를 몰라하는 나를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를 왜 부른것 같은가고 인자하게 물으시였다.

나는 가뜩이나 들지 못하던 고개를 더욱 푹 수그리며 잦아드는 목소리로 대답을 드렸다.

《잘못을 저질러놓았으니 비판을 달게 받겠습니다.》

나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시더니 인차 정색하시며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동무들을 여기에 모이게 한것은 그 누구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날밤 비상소집훈련때에 나타났던 편향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지적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훈련이라고 하여 귀중한 물자들을 방안에 그냥 두고 대피지로 간것이라든가 늙은이들을 대피시키지 않은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훈련에서 땀을 흘리지 않고 형식주의를 하면 백번 하여도 필요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려야 전투에서 피를 적게 흘리게 됩니다.

훈련의 중요성에 대하여 그처럼 강조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니 몇달전 조선인민혁명군 제3련대 3중대의 훈련장에서 있었던 일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6년 6월 상순에 뒤틀라즈에 주둔하고있던 3중대의 훈련장을 찾아주시였다.

이때 나는 련대지휘성원들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그곳에 가게 되는 뜻밖의 기회를 가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실전을 가상한 전술훈련을 하다가 달려온 중대성원들의 땀배인 잔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시며 훈련에서의 수고를 념려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중대성원들과 허물없이 자리를 같이하시고 이야기를 나누시며 훈련을 실속있게 잘해나가는데서 나서는 일련의 문제들에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 일부 중대들에서는 적들의 준동이 심하고 복잡한 군사적과업이 수시로 제기되는데 언제 군사훈련을 진행할 시간이 있는가고 하면서 훈련을 차요시하고있는데 이것은 매우 옳지 않은 견해이다. 우리는 지금 적들의 사면포위속에서 싸움을 벌리고있는것만큼 훈련의 시간적여유가 따로 있을수 없으며 필요한 시간을 쟁취하여 훈련을 해야 한다. 적들의 발악적인 책동이 심하면 심할수록, 혁명의 앞길에 난관이 중첩되면 될수록 자신을 정신적으로, 군사적으로 무장하기 위한 군정훈련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고 지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사정치훈련을 게을리하고 형식적으로 진행하면 대원들을 군사정치적으로 튼튼히 준비된 전투원으로 키워낼수 없다고 하시면서 어떤 부대에서는 훈련을 잘 시키지 않아 전투행동에 혼란을 준 일이 있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리면 전투에서 피를 적게 흘리게 된다고 하시면서 훈련을 강화하여 모든 중대성원들이 어떤 복잡한 전투정황속에서도 침착하고 대담하게 그리고 민첩하게 행동할수 있도록 준비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러시면서 중대에 신입대원들이 많은것만큼 훈련을 지금처럼 수공업적으로 하지 말고 일정한 기간 집중적으로 진행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직접 중대의 군정훈련을 지도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 이튿날부터 3중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지도밑에 군정훈련을 집중적으로 진행하여 짧은 기간에 중대의 전투력을 일층 강화할수 있었다.

하지만 나자신은 그때까지도 우리 녀성들은 남자들이 유격구를 잘 지키고 적들과 잘 싸울수 있게 뒤바라지나 잘하고 방어축성물 같은것을 만드는데 적극 동원되기만 하면 되는것으로 생각하고있었다.

그렇기때문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3중대훈련장에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실 때에도 거기에 담겨진 깊은 의미를 다 깨달을수 없었고 3중대의 훈련성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단순히 기뻐하기만 했지 그 성과를 따라배우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던것이다.

내가 이런 뼈저린 자책감에 잠겨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속마음을 다 헤아려보신듯 말씀의 어조를 다소 낮추시며 앞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이 북만으로 원정을 떠나게 되면 유격구보위사업에서 유격구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게 되는만큼 녀성들도 자신들을 사상정신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육체적으로 튼튼히 준비하기 위한 훈련에 성실하게 참가해야 한다고 재삼 당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들으며 나는 앞으로 다시는 전날밤 비상소집훈련때에 저지른 그런 일로 해서 장군님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다졌다.

그러나 다진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때로부터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서 나는 그와 류사한 잘못을 또 저질렀던것이다.

그날 오후 내가 담당했던 공청조직에서는 회의를 하고있었다.

회의가 거의 끝나가고있는데 마을어귀에서 비상소집신호가 울리였다.

우리는 회의를 중지하고 마을 뒤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맨앞에서 올라가던 박동무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되돌아서는것이였다.

그는 전번에 산짐승을 잡기 위해 놓은 옹노며 함정들때문에 시간을 지체한 생각이 나서 그런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짐승도 한번 걸렸던 덫에는 다시 안걸린다는데 여기로 올라가다가 또 걸리면 어쩌겠나요?》

박동무의 웃음기가 어린 말에 다른 동무들도 그럼 그렇게 하자고 웃음으로 받아넘기였다.

박동무가 노루옹노에 걸려 한참동안이나 신고를 한 사실을 알고있던 나 역시 옹노가 많이 놓여있다는 그쪽으로 오르고싶지 않았다. 이렇게 되여 다른 길을 타고 산으로 오르던 우리는 산중턱에 이르러 문득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게 되였다.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고계신듯 한 그이의 모습을 뵈오며 우리는 그냥 지나기가 송구스러워 잠시 머뭇거리였다.

우리는 그이의 깊은 사색을 깨쳐드리지 않기 위해 좀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에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수령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들리여왔다.

대피장소로 가자면 여기로 가야 하는데 왜 그쪽으로 갑니까?

그제서야 우리는 그이께 황급히 인사를 올리였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이의 가까이에는 다가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를 손짓해 부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시며 왜 이렇게 시간이 늦어졌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때에야 비로소 너무 시간을 지체하였다는 생각이 든 나는 길을 바꾸어 오게 된 사연을 말씀드리였다.

나의 말을 듣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심중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유사시에 있을수 있는 모든 정황들을 예견성있게 판단하고 해당한 대책을 세웠더라면 오늘과 같은 일이 없었을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놈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때에 우리가 적들을 맞받아 물리칠수 있는 유리한 전투조건을 만들고 훈련을 실전의 분위기속에서 강화하지 않는다면 유격구는 물론 자신의 목숨조차도 지켜낼수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우리들을 거느리시고 대피지 방향에 있던 장애물들을 다 제거하시였을뿐아니라 늙은이들과 어린이들이 오르는데 편리하도록 평탄하게 정리하여 놓으시였다.

그리고 유리한 지형에 사격진지와 참호를 굴설하도록 위치도 새로 정해주시고 이르는 곳마다에 돌무지를 마련해놓도록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구체적인 지도와 세심한 가르치심을 받으며 우리는 비상소집훈련뿐아니라 실탄사격훈련과 감시훈련에도 빠짐없이 참가하여 유사시에 있을수 있는 어떠한 정황에도 능히 대처할수 있는 만단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1934년 10월 하순 위대한 수령님께서 직접 조직하신 비상소집훈련때에 수령님의 높은 치하를 받았으며 북만원정을 떠나시는 그이의 걱정을 다소나마 덜어드릴수 있었다.

그날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북만원정을 떠나시기 불과 며칠전날 밤이였다.

그날밤 몸소 비상소집정황을 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반일자위대의 전투준비정형을 알아보시고 각 병실과 구정부사무실들을 돌아보시였으며 마을도 일일이 돌아보시였다.

다음날 각 조직책임자들을 부르신 자리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과 반일자위대를 비롯한 유격구인민들의 전투준비정형과 동원상태를 알아보기 위하여 비상소집훈련을 실전의 분위기속에서 진행하였다. 인민혁명군대원들과 반일자위대원들모두가 제정된 시간안에 자기 위치를 차지했고 인민들도 조직적으로 대피장소에 제때에 도착시키였다, 이와 같은 성과를 거두게 된것은 유격구의 모든 인민들이 평시에 훈련을 강화하여 땀을 많이 흘린 결과이다,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려야 전투에서 피를 적게 흘리게 된다, 유격구안의 전체 인민들은 오늘의 성과에 자만하지 말고 앞으로도 훈련을 더욱 강화하며 언제나 높은 경각성을 가지고 생활하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뵈오며 나는 멀고도 험한 북만원정의 길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편히 쉬지도 못하시고 그토록 정력적으로 근거지인민들에 대한 훈련지도를 하여주시는 그이의 로고에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졌다.

며칠이 지난 10월 하순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내리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왕청과 훈춘, 연길에서 선발된 3개 중대의 력량으로 꾸려진 원정대오를 거느리시고 뒤틀라즈를 출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원정대오를 바래우기 위하여 나온 우리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며 자신께서 돌아올 때까지 모두가 건강하여 유격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잘하기 바란다는 고무와 격려의 말씀을 하여주시였다.

원정대오는 흰눈우에 발자국을 남기며 로야령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정대원들이 남긴 그 발자국들을 함박눈송이들이 잠간사이에 지워버리였다.

쏟아져버리는 함박눈속에 멀어져가는 어버이수령님과 원정대원들을 손저어 바래드리며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아뢰였다.

(장군님, 멀고 험한 길에 부디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여기 유격구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군님의 말씀대로 유격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더 잘해나가겠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원정을 떠나신 후에도 우리는 그이의 가르치심을 가슴깊이 새겨안고 훈련을 더욱 강화하였다.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려야 전투에서 피를 적게 흘리게 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이 얼마나 정당하고 귀중한 진리인가 하는것을 나는 그 후에 있은 실지 전투들을 통하여 절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원정을 떠나신 후인 1934년 11월 어느날 적들은 유격구를 없애버릴 목적밑에 요영구유격구에 쳐들어왔다.

원쑤들은 현대적인 무기와 수많은 인원을 들이밀며 검질기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놈들은 일상시 훈련을 통하여 단련하고 준비된 유격구인민들을 당해낼수 없었다.

그때 우리 유격구의 산꼭대기마다에는 어른, 아이 할것없이 손에 호미와 삽, 곡괭이를 들고 달려올라와 굴설해놓은 튼튼한 방어진지들이 있었으며 놈들이 쳐들어올수 있는 골짜기들마다에는 놈들의 머리우에 들씌울 돌무지들이 우뚝우뚝 쌓여있었다.

각 조직별로 진행된 여러가지 훈련을 통하여 유사시에 빨리 이동하는 방법, 진지를 차지하는 법, 돌굴리는 법, 작탄던지는 법을 몸에 익힌 우리들은 보초소에서 적발견신호가 오자마자 로약자들과 어린이들을 한사람도 빠짐없이 대피지로 이동시킨 다음 각기 자기 진지를 차지하고있다가 쳐들어오는 놈들을 무리로 쓸어눕히였다.

혁명군의 기본병력이 근거지를 뜨고 없다는것을 알고 기고만장하여 쳐들어오던 놈들은 연약한 부녀자들과 아동댠원들이 들씌우는 돌사태에 총 한방 쏴보지 못한채 묻히웠는가 하면 로인들이 던지는 작탄에 맞아 그자리에서 황천객이 되기도 하였다.

수많은 주검을 남긴채 도망쳤던 놈들은 그 다음해 1월에 상전의 불호령에 못이겨 할수없이 또 기여들었지만 더 큰 참패를 당하고 퇴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기여들 때마다 숱한 주검만을 남기고 도망가는 놈들의 꼴을 보며 나는 1932년 4월초에 있은 놈들의 대《토벌》에 대한 소문을 전해듣던 일이 가슴아프게 돌이켜졌다.

그때 놈들이 대포와 기관총, 비행기까지 가지고 대병력으로 물밀듯이 쓸어들어오자 대감자부락에 주둔하고있던 구국군부대는 마반산을 넘어 서대파로 황급히 철수하였으며 마을의 보위대도 저항을 포기하고 《토벌군》에 투항하였다고 한다.

대감자를 점령한 놈들은 련이어 비행기로 왕청시가를 들부시고 주민가옥에 달려들어 살인, 방화, 략탈을 감행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수많은 인민들이 무참하게 희생되였고 수정같이 맑던 강물에는 인민들의 붉은 피가 흘러내리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놈들이 근거지인민들의 기세에 눌리워 쫓겨가고있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원정에서 돌아오신 후인 1935년 4월 5일에도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청년의용군 대원들은 수령님의 조직지휘하에 진행된 유격구방위전투에서 적《토벌대》를 소멸하고 유격구를 튼튼히 사수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과 청년의용군, 반일자위대를 비롯한 우리 전체 유격구의 인민들이 철저한 군사동원체계를 갖추어놓고 훈련을 강화하지 않았더라면 수십수백배의 병력과 비할수없이 현대적인 무기를 가지고 달려드는 적들을 도저히 물리칠수가 없었을것이며 근거지는 인민들의 피바다로 변하고 그 존재자체를 유지할수조차 없었을것이다.

동만의 유격구들이 일제의 그처럼 악랄하고 검질긴 《토벌》만행속에서도 여러해동안이나 굳건히 건재할수 있은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유격구인민들이 밤이나 낮이나를 가림이 없이 흘리고흘린 훈련의 그 무수한 땀방울의 덕분이라고도 말할수 있다.

하기에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려야 전투에서 피를 적게 흘리게 된다는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간고한 항일의 그 나날부터 대원들과 인민들의 가슴마다에 깊이 새기여주시고 실천을 통하여 그 생활력과 정당성을 남김없이 보여주신 혁명의 참된 진리라는것을 이야기하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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